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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계에서 ‘안성기’를 대체할 인물이 없다

[박성준의 오목렌즈] 102번째 기사입니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2025년 9월 故 전유성 선생님과 11월 故 이순재 선생님에 이어 새해벽두부터 故 안성기 배우가 우리 곁을 떠났다. 안성기 배우는 대한민국 국민 누구에게 물어봐도 이견 없는 ‘국민 배우’로서 68년간 연기활동을 이어왔다. 박성준 센터장(다소니자립생활센터)은 “저희가 작년부터 계속 연예계 큰별들의 죽음에 대한 얘기를 연속으로 하고 있는 느낌”이라며 “안성기 배우는 이번에 어떻게든 고비를 넘기고 끝내 완치할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며칠 전 음식을 못넘기고 쓰러져 심정지 상태로 응급실로 이송됐다. 일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됐을 때 위험해지는 것인데 어떻게 보면 이럴 때 죽음이라는 게 우리 옆에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번 오목렌즈 전화 대담(1월7일 16시)에서는 안성기 배우의 삶과 연기 철학을 짚어봤다.

 

 

지난 2022년 12월 대종상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은 안성기 배우는 투병 와중에도 영상 수상 소감을 통해 아래와 같이 밝힌 바 있다.

 

오래 오래 영화배우로 살면서 늙지 않을줄 알았고 또 나이를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최근 들어 시간과 나이는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지금 우리 영화와 영화인은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영광의 뿌리는 우리 선배 영화인들이 심고 키운 것이고, 또 지금의 우리 탁월한 영화인들의 역량과 땀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내 건강 너무 걱정들 많이 해주시는데 아주 좋아지고 있고 또 새로운 영화로 뵙도록 하겠다.

 

마치 유언이라고 봐도 될만한 내용으로 느껴져 마음이 아프다. 2019년 혈액암 발병 이후 투병 기간 동안 영화 <한산>과 <노량>에 특별출연을 한 만큼 그 두 작품이 유작이 됐지만 이제 더 이상 안성기 배우의 명품 연기를 볼 수 없게 됐다

 

이순재 배우와 달리 유작이라고 할만한 것이 특별히 남겨지지 않았다고 보는 게 맞고 워낙 어려서부터 영화에 출연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이 찍은 영화들을 보면서 한 시대를 알아갈 수 있었다. 실제로 아역 배우로 열심히 활동하다가 휴식기를 거치고, 1980~90년대부터 한국 영화계의 중심에 있게 됐는데, 성인 배우로 자리잡기까지 한국 영화의 역사와 함께 성장해왔다. 그리고 나이듦에 따른 역할들의 변천이라고 그래야 되나? 그런 것들을 되게 자연스럽게 잘 소화했다. 그 자리에 그냥 있지 않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며 올라섰다. 아무튼 안성기 배우가 한국 영화계에 남긴 족적이 뚜렷했고 컸다.

 

이미 박 센터장은 페이스북에 본인의 인생 영화로 <라디오스타>를 꼽았다. 그 이유는 “한 30번 본 것 같은데 사실 안성기 배우가 받쳐주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던 영화이자 박중훈 배우보다 더 빛났던 영화”였기 때문이다.

 

<라디오스타>는 안성기 배우니까 할 수 있었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영화다. 나는 주인공 최곤을 맡은 박중훈 배우보다는 오히려 안성기 배우 쪽에 포커싱 맞춰서 여러 번 봤던 것 같다. 거기서 철저하게 조연인 것 같았지만 제일 빛나는 건, 사실 왕년에 잘나갔던 사고뭉치 가수 최곤을 컨트롤하고 묵묵히 곁을 지킨 매니저 민수였다.

 

안성기 배우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인물이 중학교 동창 50년지기 조용필 가수, 13편의 영화 협업을 함께 한 배창호 감독, 4편의 영화에서 최고의 듀오로 활약한 박중훈 배우 등이 있다. 그중에서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된 인물은 누가 뭐라 해도 박중훈 배우다. 박 센터장은 “워낙 자주 작품에서 만나기도 했고 진짜 친한 선후배이기도 했고 같이 한 영화들 자체가 두 사람을 위한 그런 영화이기도 했으니까 한국인들에게 기억이 많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중훈 배우도 빈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침통한 표정으로 “먼저 진심으로 존경하는 선배님, 또 한 사람으로서 인격적으로 존경하는 선배님이 떠나게 되어 많이 슬프다”고 밝혔다.

 

40년 동안 배우로서 선배님과 같이 영화를 찍고 했다는 것도 행운이지만. 그런 인격자와 함께 있으면서 좋은 영향을 받은 것 참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어떻게 이 슬픈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다. 선배님이 영화계에 끼친 영향, 선후배 동료들에게 주신 사랑 잊지 않고 잘 간직하겠다. 사람 좋은 웃음으로 계신 분이라서 실감이 가지 않는다. 내가 드린 말씀을 다 드린 것 같아서 관객 여러분 국민 여러분들께서도 안성기 배우를 영원히 기억해주길 부탁드린다.

 

연극과 드라마에 단 한 편도 출연하지 않고 오직 영화 외길을 걸어온 안성기 배우의 자리는 한국 영화판에서 독보적이고 대체 불가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박 센터장은 “돌아가신지 며칠 안 됐는데 걱정스럽다. 그분이 있는 한국 영화계와 없는 한국 영화계의 차이가 좀 클 것 같다”며 “그만큼 한국 영화사에 많은 흔적을 남기셨던 분”이라고 묘사했다.

 

사실 6년간 투병해오셨지만 중간에 완치도 했고 이번 고비도 어떻게든 넘기고 다시 훌훌 털고 일어설 것이라 믿어서 아직까지 그의 부재가 와닿지 않는다. 이게 되게 힘든 일인데 안성기 배우는 작가주의라고 할 수 있는 영화에서도, 온전히 상업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영화에서도 굉장히 자기 캐릭터에 맞게 역할을 잘 소화했다. 사실 언젠가부터 안성기라는 배우는 극을 중심에서 확 끌고 가는 것보다는 <실미도>나 <화려한 휴가>처럼 주변부에서 중심부를 돋보이게 확실히 받쳐주는 역할을 딱딱 보여주면서도 무게감을 갖는 배우가 됐다.

 

이미 연기 경력과 연차가 어마어마했고 후배들에게 항상 모범을 보였기 때문에 촬영 현장에서도 그의 존재는 빛이 났다.

 

영화계에서 안성기 배우가 굉장히 큰 어른으로 대접받았던 것은 사실 아역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나이에 비해서 연차가 굉장히 높은 편이고 다른 노년 배우보다 더 무거운 중량감이 있었던 것 같다.

 

2010년에 개봉한 <페어 러브>도 인상적이다. 50대 노총각과 20대 대학생의 순수한 첫사랑을 담은 멜로 영화인데 안성기 배우는 지천명이 될 때까지 연애 한 번 못해본 모쏠이자 고지식한 수리공 ‘형만’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박 센터장은 “<페어 러브> 같은 경우는 안성기 배우 입장에서는 되게 모험을 했다 싶은 정도였는데 역시나 그 연기력은 어디 안 가고 이하나 배우와 나이 차이가 꽤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풋풋한 그 감정들이 다 살아숨쉬었다”고 평가했다. 여대생 ‘남은’ 역할을 맡은 이하나 배우는 형만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연기를 했는데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었다. 영광”이라며 아래와 같이 소감을 밝혔다.

 

촬영 내내 즐거웠다. 안성기 선배님은 매사 여유가 있었고 합리적이었다. 배울점이 정말 많았다. 모든 일에 대해 다 알고 있는 듯했다. 안성기 선배님만 따라다녔고 편했다. 영화 안에서 표현된 것 처럼 안성기 선배님은 유머러스하다. 선생님의 자연스러움에 반했다.

 

안성기 배우 하면 또 떠오르는 것이 ‘커피 맥심’ 광고와 ‘유니세프’ 활동이다. 박 센터장은 “영화 안과 영화 밖에서 영화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에 대한 고민을 되게 많이 하셨던 것 같다”며 “광고도 가려서 고민해서 했던 것 같고 한 번 하면 되게 오래 했다. 유니세프 활동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사실은 안성기 배우 정도의 배우가 다시 나타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 정말 어려울 것이고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앞으로도 그분의 연기나 그분의 영화들이 우리 삶에서 계속 곱씹어질텐데 그때마다 한 번 더 기억하고 탐구해줬으면 좋겠다. 딱 국민 배우라는 이름을 생각했을 때 한국 영화계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고 누구도 다른 이름을 부르지 못할 만큼 제일 먼저 떠오를 인물이 안성기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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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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