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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신작’에 불안한 마음이 드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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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의 오목렌즈] 86번째 기사입니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한국에서 봉준호 감독과 박찬욱 감독은 영화계 탑2 거장 중의 거장으로서 신작이 나오면 일단 믿고 보는 것이 국룰이다. 박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가 개봉했다. 기본적으로 봉준호 감독에 비해 박 감독은 ‘대중성’ 보단 ‘영화적 완성도’와 ‘예술성’에 포커스를 두는 것 같다는 느낌이었는데 이번에는 칼을 갈고 “깐느 박보다 천만 박으로 불리고 싶다”고 선언했다. 스스로 “언제나 천만을 노렸다”고 했지만 그의 영화는 뭔가 깊고, 기괴하고, 잔혹했던 측면이 있다. 나홍진 감독의 작품 못지 않게 여러 번 곱씹어서 봐야 했다. 9월25일 개봉했는데 첫날 스코어는 33만명으로 나쁘지 않다.

 

 

이번 오목렌즈 대담에서는 박 감독의 <어쩔 수가 없다>를 주제로 박성준 센터장(다소니자립생활센터)과 대화를 나눠봤다. 개봉날 16시반에 전화 통화를 했는데 박 센터장은 “일단 박찬욱 감독의 기존 영화들이 있기 때문에 항상 신작은 기대치가 좀 있는 편”이라며 “출연 배우들 역시 굉장히 힘을 준 영화”라고 입을 뗐다.

 

1명, 1명씩 봤을 때 과연 이 배우들을 한 번에 뭉치게 해놓고 작품과 연기에 대한 그런 어떤 기대감은 최상이다. 근데 하나 걱정되는 건 굉장히 지금 익숙한 상황과 설정 같다. <어쩔 수가 없다>를 두고, 넷플릭스에 익숙해진 한국인들이 과연 극장에서 볼 영화인가?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벌써부터 비관적인 전망이 나왔는데 배경이 뭘까. 박 센터장은 “극장에서 볼 영화보다는 오히려 OTT 쪽에서 더 터질 것 같다는 생각이 좀 든다”며 “극장에서 보는 맛은 있겠지만 <오징어 게임>이나 이런 것을 봤을 때의 느낌 같은 게 더 나오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반전과 스포 요소가 있겠지만 기본 설정만 놓고 보면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이 오징어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이 살육의 게임을 벌이는 익숙한 풍경이 떠오를 수 있을 것 같다. <어쩔 수가 없다>에서는 40대 남성 유만수(이병헌 배우)가 주인공이다. 만수는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고 가족의 생계가 막막해진 만큼 필사적으로 재취업을 위해 노력하지만 허사로 돌아간다. 결국 “나를 위한 자리가 없다면 내가 만들어서라도 취업에 성공하겠다”고 다짐하며 어느 순간 ‘사람을 죽이는 행위’에까지 다다른다. 스포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꽤 많이 알려진 영화의 기본 서사다. 고광일 영화평론가는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결국 영화가 개봉한 2025년에도 생명력을 유지하는 키워드는 기계화, 자동화로 인해 실직으로 내몰린 가장의 비이성적 돌발행동이다. 그런데 우리는 박 감독의 필모그라피에서 이미 같은 이야기를 한 번 본 적이 있다. 바로 <복수는 나의 것>이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실직으로 궁지에 몰린 청각장애인 류(신하균)은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누나의 수술비를 마련하려다가 걷잡을 수 없는 비극을 맞이한다. <어쩔수가없다>와 <복수는 나의 것>에서 어쩔 수 없다는 자기합리화를 거쳐 선택하게 된 극악한 문제해결의 도구는 각각 살인과 유괴다. 두 경우 모두 도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천인공노할 짓이지만, 범죄를 통해 노리는 수익의 차이가 박 감독이 <어쩔수가없다>를 어쩔 수 없이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 박 감독이 전작 <복수는 나의 것>에서 설정해놨던 틀이다. <복수는 나의 것>이 포함되는 ‘복수 3부작’에서도 관통하는 극단 행위의 ‘어쩔 수 없음’이 이번 신작에서는 어떻게 그려질지 몹시 궁금한데 당장 내일 영화를 보러 가려고 한다. 박 센터장은 “호불호는 갈릴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색깔이 워낙 뚜렷해서 배우들도 그렇고 감독도 그렇고 불호인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생충>도 떠오르고 <콘크리트 유토피아> 같은 경우도 극한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물론 구체적으로 보면 전부 다 다르다. <어쩔 수가 없다>는 평범함과 극한이 섞여 있다. 실직을 당하고 가족을 지켜야 된다라는 것 때문에 그거 하나 가지고 모든 무리수의 동기를 만들어내는데 아무래도 박찬욱 감독이기 때문에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좋을 것 같다. 다만 충분히 흥행할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박 감독은 홍상수 감독이나 故 김기덕 감독처럼 의미있는 영화를 출시하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되고 그 의미와 스케일을 받쳐주는 흥행을 동시에 가져가야 할 포지션이다. 본인도 간절히 원하고 있다. 거장이기 이전에 엄연한 상업영화 감독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래도 박찬욱 감독은 작품성과 흥행을 봉준호 감독 만큼은 아니지만 둘 다 잡은 편이었는데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지 쉽지 않을 것 같다. 나는 박찬욱 감독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다만 이번에 불안한 이유가 뭐냐 하면 영화를 보기 전에 소개된 한정적인 정보와 기본 스토리만으로는 기대감이 안 생기기 때문이다. 이번엔 꼭 보고 싶다이기 보단 박찬욱 감독의 장점이 잘 안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미술이나 연출, 미쟝센 등등 이런 것들을 전혀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텍스트로 영화의 얼개를 본 상태라서 그런 박찬욱 감독만의 분위기가 잘 만들어졌느냐가 핵심일텐데 보지 않은 상황에서는 좀 불안하다.

 

요즘 영화계는 몹시 힘들다. OTT로 수백억짜리 작품들을 쉴새 없이 볼 수 있기 때문에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도 예술성과 작품성이 아닌 대중성에 기대어 시도를 하는 추세다. <범죄도시> 시리즈나 조정석 배우가 출연한 코믹 장르가 그나마 관객들의 선택을 받는 사실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사실 요즘 살아남는 영화들은 오히려 대중성에 약간 더 기대고 시리즈물 형태로 더 나와야 된다. 근데 지금 <어쩔 수가 없다>는 잘 모르겠다. 3년 전 <헤어질 결심> 때와는 분위기가 다른 것 같다. 내 선입견인지 모르겠는데 영화를 보고 다시 감상평을 나눠봤으면 좋겠다. 영화를 한 번 봐야 될 것 같다. 보고 나면 조금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드는데 아직까진 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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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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