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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배송 금지’ 담론이 국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박성준의 오목렌즈] 98번째 기사입니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박성준 센터장(다소니자립생활센터)은 단박에 “지금 새벽 배송을 금지시키기는 조금 힘들다”고 말했다. 새벽 배송 찬반 담론이 한 달 넘게 식지 않고 뜨겁다. 평범한미디어는 오목렌즈를 통해 이 문제를 다뤄보려고 했는데 타이밍을 놓쳐서 관망하고 있었다. 이번 담론이 처음 형성된 것은 지난 10월 말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가 한국경제 보도를 페이스북에 공유하면서다. 한국경제는 여권과 민주노총 택배노조의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나온 발언을 단독 보도했는데 그 자리에서 노조가 새벽 배송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저 노조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고 국토교통부나 민주당이 그 주장을 받아서 추진하겠다는 것이 전혀 아니었다. 그런데 난리가 났다.

 

 

장혜영 전 의원이 한 전 대표의 페북 게시물에 반박을 하며 공개 토론을 제안했고 실제 성사됐다. 이번 오목렌즈 대담(11월14일 13시)에서는 관련 이슈를 놓고 대화를 나눠봤다. 박 센터장은 “새벽 배송을 다짜고짜 금지하기에는 다들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어렵다”면서 “물론 택배기사들의 건강권과 노동권에 대한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고 운을 뗐다.

 

새벽 노동과 과로로 이어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히 문제가 있고 그것에 대해서 제도를 바꿔야 되는 것들이 필요하긴 한데 지금처럼 선언적으로 금지부터 나오면 문제를 풀기 어렵다.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와 노동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벽 배송을 금지해야 한다는 접근법은 어찌보면 이런 것들과 같다. 이를테면 세월호 참사 때 해경이 무능했으니까 해경을 해체하자고 하는 것이나, 검찰이 정치 수사를 했으니 검찰청을 없애버리는 것과 같다. 박 센터장은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있어서 근로시간의 변경이나 새벽 배송을 일방적으로 못하게 하는 거 그 방법밖에 없냐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분들은 지금 쿠팡이라는 곳에 소속되어 있지만 본인이 시간을 선택해서 하는 형태의 분들도 많다. 특히나 배송업계에 있는 노동자들은 야간 작업이라는 위험성과 플러스 단가에 대한 생각도 하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 금지보다는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야 된다. 내가 생각하는 비교적 합리적인 제안이라고 하면 새벽 시간 배송 물량을 어느정도 제한했으면 좋겠다. 그니까 1인당 새벽 시간에 배송할 수 있는 물량의 갯수를 좀 줄이면 되지 않을까 싶다.

 

택배 노동자들은 대부분 특수고용직 형태로 사실상 자영업자 취급을 받으며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사각지대에 있다. 박 센터장은 “쿠팡에서 그립을 좀 더 쥐더라도 고용의 형태를 정상적으로 가져가서 그분들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들이 새벽 시간에 배송을 하더라도 무조건적으로 물량을 많이 배송해서 수익을 내는 생존 경쟁에 내몰 게 아니라, 택배 기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물량을 제한하고 그들의 노동권을 보장해주고, 궁극적으로는 인원을 늘려야 된다.

 

새벽 배송을 하더라도 안전하게 해야 한다. 사실상 토익 시험에 응시하는 청년들처럼 ‘강요된 자발성’이 작동해서 어쩔 수 없이 심야에 장시간 노동을 해서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박 센터장은 “본인한테 배당된 물량을 감수해야 하고 그렇게 심야 장시간 노동을 통해 소득을 벌어야 한다”며 “차도 덜 막히고 엘리베이터 탈 때 주민들도 덜 마주치는 등 야간이라는 시간대의 용이성이 있지만 그래서 새벽 노동의 위험성이 간과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계속 말하지만 야간 배송하는 노동자들을 쿠팡에서 전원 고용하고 그 고용된 노동자들한테 소득을 보장해주고 하루에 배당되는 물량의 개수를 제한하면 쉽게 해결될 문제다. 물론 쿠팡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새벽 배송 금지를 떠나서 다른 해결 방향을 살펴볼 필요도 있다. 노동당 이장규 경남도당위원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심야 노동을 줄이는 걸 기본으로 하되 새벽 배송이 꼭 필요한 경우라면 유료라도 이를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면서 “적절한 선에서 서로 합의하면서 이런 시스템을 쿠팡에 요구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애초에 새벽 배송을 명분으로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 쿠팡이다. 자신들이 새벽 배송을 통해 성장했다면 그에 맞는 시스템을 만들 책임도 쿠팡에게 있다. 애초에 꼭 필요한 경우에만 새벽 배송을 선택하도록 하면서 거기에 대해서는 지금처럼 거의 무료 배송이 아니라 상당한 배송료를 부과하면 새벽 배송 물량이 대폭 줄어든다. 새벽 배송을 이용하는 사람의 3분의 2는 굳이 새벽 배송을 받지 않아도 별로 불편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면 이런 소비자들은 굳이 비싼 배송료를 내면서 새벽 배송을 시킬 이유가 없으니까 물량이 3분의 1 정도로 줄어든다. 그러면 이 정도 물량은 새벽 5시부터 배송을 시작해도 지금처럼 아침 7시 이전에 배송이 가능하다. 왜 새벽 배송 물량을 줄이는 건 생각하지 않고 지금 물량을 전제로 그건 불가능하다는 식으로만 생각하는가? 그리고 이렇게 물량이 줄어들면 분류나 상하차 등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도 당연히 줄어든다.

 

한편으로는 이번 담론이 한창일 때 천현우 작가가 새벽 배송 금지를 찬성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이에 대해 몇몇 진보 인사가 인신공격성 맹비난을 하는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그들이 새벽 배송 금지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천 작가의 아래 발언에 열폭했다.

 

쿠팡을 불지옥처럼 묘사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쿠팡은 중소기업 평균보다 좋은 일자리가 맞다. 물론 쿠팡은 독점 다 끝낸 후엔 그 일자리를 줄일 것이다.

 

이에 박권일 작가는 아래와 같이 공격했다.

 

쿠팡은 그나마 낫다고 운운하며 노동자끼리 불행 배틀 시키면서 결국 노동 착취 기업 항문을 핥는 분들, 조선일보 지면에선 조선일보가 좋아할 말을 하고 한겨레 지면에선 한겨레가 좋아할 말을 하는 분들, 그런 분들이 한국을 장시간 노동, 야간 노동, 산업재해 불지옥으로 만든 것이다.

 

전주희 연구원(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도 “전형적인 약자 올림픽”이라고 직격했다. 박 센터장은 “누군가 하나 공격 대상이 필요했던 것 같다”며 “근데 천현우 작가가 걸려들었다”고 말했다.

 

용접공 출신 천현우 작가가 희생된 느낌이 있다. 지금이 기회가 아니면 이 얘기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측에서 몰아가는 것이다. 그래야 이 이야기가 계속 찬반이 왔다 갔다 하면서 지속되기 때문이다.

 

이런 정책 의제 담론은 정치권 코어 안으로 들어가서 더욱더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박 센터장은 “근데 지금 한동훈 전 대표 말고는 이 문제에 대해서 오히려 국민의힘 쪽에서는 말이 없다”며 “한동훈 대표는 하나의 이슈를 잡아서 자기를 드러내려고 계속 이야기를 하는데 당에서 지원 사격 하나도 안 나오고 있다”고 환기했다.

 

국민의힘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와야 되고, 국회 환노위나 고용노동부에서도 적극적으로 입장을 내면서 좋은 방향으로 논의를 끌고 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고 있다. 그러니까 이게 국회와 제도권으로 들어가지 않고 계속 밖에서만 돈다. 장혜영과 한동훈 전부 다 원외 인물이다. 그래서 원내로 제도권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동력이 떨어질까봐 걱정이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이슈라서 밖에서 휘발되면 안된다.

 

나아가 장시간 노동과 과로를 하고 무조건 근면성실하게 일하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봐야 한다. 박 센터장은 “우리나라는 사실 장시간 노동을 약간 장려하는 느낌이 있다”며 아래와 같이 역설했다.

 

그런 흐름을 좀 깰 수 있는 뭔가가 나와야 되는데 이번 담론이 그런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좀 이왕 토론이 시작된 거 활발하게 토론이 됐으면 좋겠다. 이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노동이 관성이라서 일을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있다. 그러니까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에게 갑자기 일하지 말라고 그런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분들이 과로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게 아니라 일자리와 노동 시간이 줄어들고 내 돈이 줄어들고 이런 생각이 드니까 그걸 왜 막아? 그러는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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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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