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준의 오목렌즈] 71번째 기사입니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박보영 배우의 최근 연기 활동이 인상적이다. 넷플릭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와 <멜로무비>도 그렇고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디즈니플러스 <조명가게>와 얼마전 종영한 tvN <미지의 서울>도 박보영 배우만이 할 수 있는 연기력을 보여줬다. 박성준 센터장(다소니자립생활센터)은 “이번 드라마는 제목부터가 되게 끌렸다”며 “사실 한 배우가 1인2역으로 쌍둥이 역할을 수행하면서 판이하게 다른 성격을 연기했다”고 말했다.
이게 쉽지 않은데 쉽지 않다는 게 배우가 연기하기도 쉽지 않지만 시청하는 사람들이 몰입하기도 쉽지 않다. 근데 그게 되더라. 조금만 어긋나면 그런 건데 정말 잘 소화했다. <미지의 서울>에서 미지와 미래의 성격이 다른데 박보영 배우는 <오 나의 귀신님>에 나왔던 그런 캐릭터하고 실제 성격이 비슷한데 미지가 그런 느낌이다. 이 드라마도 미지의 서울 생활이 가장 중요하다. 미지와 미래가 쌍둥이인데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고 그래서 다르게 표현하려고 애쓰지 않았던 것이 좋았다.

박 센터장과의 오목렌즈 전화 대담은 주로 정치사회 분야를 취급하는데 페이스북에 올린 <미지의 서울> 극찬 코멘트를 보고 묻게 됐다.
박효영 기자: 우리가 종종 드라마와 영화 얘기도 했으면 좋겠는 게 좋은 영화와 드라마가 인생에 대해서 가장 깊은 성찰과 사색을 주더라. 책 1권 읽은 느낌 약간 그런 게 있다. 특히 아주 많은 사람들이 보기 때문에 많은 생각들이 모이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영화와 드라마가 가진 힘이 크다. |
박성준 센터장: 드라마 얘기는 이번에 처음 했는데 좋은 드라마가 있다면 언제든지 깊게 대화를 나눠봤으면 좋겠다. |
박보영 배우는 <미지의 서울> 방영을 마치고 언론 인터뷰에서 “대본이 너무 좋았다. 내가 위로 받은 만큼 시청자들에게도 뜻깊은 위로가 될 것이라 여겼다”고 소감을 밝혔다.
매일 아침 눈 뜨면 검색했다. 실시간 반응 보는 게 오랜만이더라. 다행히 좋은 반응이 많아 안심됐고 본방을 보면서도 정말 풍부하게 잘 나왔구나 하고 뿌듯했다. 힘들긴 했지만 아쉽기보단 만족스러운 작업이었다. 촬영 전에 1인 2역을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힘들줄 몰랐다. 상대가 있는 척하며 혼자 연기해야 하는 장면도 많았고 나중에 CG로 합칠 땐 눈높이나 시선이 안 맞아 혼자 앉아 있을 때도 있었다. 늘 상대가 해주는 리액션에 의지해왔는데 이번엔 움직이는 속도까지 다 계산해야 했다. 어렵지만 많이 성장한 것 같다.
<미지의 서울>은 쌍둥이 자매 ‘미지’와 ‘미래’가 각기 다른 삶을 살다가, 일련의 위기를 겪고 서로 삶을 바꿔서 살아보는 설정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박보영 배우가 1인 2역을 연기했는데 두 배역 다 “편한 건 없었다”고 고백했다.
미래는 많이 절제해야 했다. 표정도 적게 쓰고 목소리 톤도 달라야했다. 내 안에 둘 다 있는 것 같다. 사회생활할 땐 미지 같고 친구들하고 있을 땐 미래 같달까. 내 안의 미지가 60%, 미래가 40% 정도다.
모든 인간은 약점을 갖고 있다. <미지의 서울>에 나오는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다. 박 센터장은 “학력이 안 되는 경우(미지) 혹은 장애가 있는 경우(임철수 배우가 맡은 선임 변호사 이충구 역할) 혹은 어떤 이유로 자기 이름으로 살지 못 했던 난독증이 있는 사람(원미경 배우가 맡은 김로사 역할) 등등 여러 가지 약점들을 가졌던 사람들이 스스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꾸미려고 하지 않는다”며 “그들이 어울려서 서로의 도움을 받으면서 하나의 뭔가를 완성해 나가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김선영 배우가 열연을 펼친 ‘염분홍’이라는 인물도 성장 서사를 갖고 있다. 염분홍은 재혼한 남편의 아들 이호수(박진영 배우)를 친아들 못지 않게 애지중지 자랑거리로 삼고 있는 인물이다. 잘나가는 변호사인데다 훤칠하고 잘생긴 호수를 남들에게 자기 아들로 소개하며 우쭐함을 느낀다. 호수는 교통사고를 당해 신체 장애를 갖고 있는데, 염분홍은 절친이 그런 호수의 장애를 조롱한 것으로 받아들여 화를 내기도 한다. 단순히 화를 내는 수준이 아니라 말 한 마디에 절친의 머리끄덩이를 잡을 정도로 피해의식이 심했다. 그러나 이내 화해하며 자기 성찰을 하게 된다. 염분홍은 스펙이 변변치 않은 호수와 미지가 사귀는 것을 마땅치 않게 여기기도 했는데, 말미에 둘의 관계를 인정하고 응원해준다. 박 센터장은 “사실 다른 조연 배우들도 빈틈이 없다”며 “염분홍을 연기한 김선영 배우도 대단한 역할이었고 미지와 미래의 엄마 장영남 배우도 못지않은 내공을 보여줬다”고 극찬했다.
결국 미지의 변화가 중요하다. 미지는 패배의식과 패배주의를 갖고 있는 인물이었다. 육상 선수로 지내다가 다리를 다치고 알바와 일용직을 전전하게 되는데 자존감이 낮아졌고 은둔을 하기도 한다. 미지는 “호수가 날 좋아할 리가 없다”고 되뇌인다. 그러다가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고 당당하게 나설 수 있다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으로 변화해간다. 박 센터장은 “<왕자와 거지>처럼 역할을 바꾸는 것들은 기존에도 되게 많았는데 이 작품이 좀 특이하고 다르다라고 느껴졌던 것”에 대해 아래와 같이 풀어냈다.
미래하고 미지가 위치를 바꾸는데 서로가 오히려 상대방이 있는 공간이 더 편안해한다. 자기 옷을 입었다고 생각했던 그곳에서는 적응을 못하는데 미지는 서울로 가고 미래는 시골에 남는다. 그러니까 겉으로 보는 모습하고 내면에서 어떤 가지고 있는 것들이 좀 다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지는 부상을 당하고 하고 싶었던 걸 못하고 계속 피해다녔는데 오히려 대학을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미래는 시골에서 오히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능으로 전자상거래와 연결시키고 확장해서 영농을 해보고 싶다는 성공하고 싶은 귀농 청년의 포부가 생겼다. 기존의 기준으로 보면 미래가 성공한 것이고, 미지는 여전히 시골의 엄마 옆에서 뭔가를 해야 될 것만 같은데 결말은 그렇지 않았다. 이게 이 드라마의 포인트라고 나는 본다.
미지는 미래의 모습으로 서울로 갔고, 미래는 미지의 모습으로 시골로 갔다. 그게 아이러니하게도 엄청난 효과를 냈다. 박 센터장이 주목한 것도 이 부분이다.
미지로서 서울에 간 게 아니고, 미래도 미래로서 시골에 온 게 아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역할을 해야 됐기 때문에 본인의 단점이 장점으로 승화되는 과정이 더 잘 표현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자신의 모습으로 갔으면 단점은 여전히 단점이었을 거다. 내 모습을 숨기고 다른 사람으로 산다는 건 다른 사람을 관찰해서 그 사람의 장점을 표현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니 오히려 나중에는 ‘내 진짜 장점이 이거였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서울에서도 여전히 미래가 미래로 살았다면 그렇게 바뀌지 않았을 거고, 시골에서도 여전히 미지가 미지로만 삶을 살았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텐데 서로 역할을 바꾸면서 그것들을 거울 치료하듯이 들여다봤던 것 같다.
끝으로 박보영 배우는 <미지의 서울>의 대사들이 자신에게도 위로가 됐다면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사람들이 다 잘 사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다들 힘들다. 나 역시 가끔 ‘나만 이러나?’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 대사들이 너무 위로가 됐다. 후회만 하는 게 맞나? 그때도 최선의 선택이었는데. 그 말이 너무 와 닿았다. 내가 별로로 보일 때도 있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그냥 열심히 살면 괜찮다는 메시지가 정말 좋았다. 예전 드라마처럼 ‘괜찮아질거야’가 아니라 ‘너도 힘들지? 나도 그래’라고 말해주는 작품이었다. 그런 점이 차별화됐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