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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유성의 활동과 업적을 목격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박성준의 오목렌즈] 96번째 기사입니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지난 9월25일 세상을 떠난 개그맨 故 전유성씨가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이미 훈장을 받기로 결정된 상황에서 끝내 직접 받지 못하고 눈을 감았는데 그의 딸 전제비씨가 대리 수상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0월23일 개최된 <2025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 고인이 별세하기 3일 전에 남긴 육성 소감을 공개했다.

 

예전에 선배들도 (상을) 많이 받으셨는데, 그럴 때마다 코미디언들이 많이 받아야 후배들도 많이 받겠구나고 했다. 날 거쳐서 간다니까 굉장히 영광스럽다. (훈장을 받은 이유는) 남들이 안 한 짓거리로 사랑을 받은 것 같다. 예를 들자면 남들은 말만 하고 잘 안한다. (옛날에는) 서울서부터 부산까지 기차를 타고 가지 않은가. 그런데 어느날 부산까지 버스만 타고도 갈 수 있더라. 그래서 나는 직접 진짜 버스를 타고 갔다 온다. 그런 걸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는 것 같다. (개그맨들 중에도) 무식한 개그맨, 유식한 개그맨이 있는데 (대중이 날) 알고 보면 무식한데 유식한 개그맨으로 착각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박성준 센터장(다소니자립생활센터)은 “사실은 좀 많이 늦었다라는 느낌이 들긴 한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이미 대중문화계에서 이 정도의 업적을 갖고 있는 분이라면 진작 훈장을 주고 널리 알렸어야 했다. 물론 늦었어도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부고나 약력을 쓸 때 한줄이 더 들어간다는 거는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 생전에 고인이 하셨던 일들을 국가적으로 공식 인정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 자체가 전체 코미디언 혹은 개그맨들에게도 굉장히 사기를 높이는 일일 수 있다. 만약 한국 개그계 명예의 전당이 있다면 1호 헌액을 한 번 생각해 볼만한 인물이 전유성씨이기 때문에 굉장히 의미가 깊다.

 

이번 오목렌즈 대담(10월31일 14시)에서는 조금 늦었지만 ‘희극인 전유성’에 대해서 다뤄봤다.

 

 

고인을 설명하는 키워드를 꼽아보자면 △아이디어와 기획력 △꼰대 거부 △후학 양성 등으로 집약될 수 있다. 박 센터장이 보기에 고인은 “단순히 코미디언이라기보다는 약간 기인에 가까울 정도로 즉 이 시대를 살았지만 이 시대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인물”이었다.

 

왜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가. 동시대에 이런 인물의 활동과 업적을 목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영광이었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들 중에 하나라고 본다. 전유성씨는 주연으로 나서서 뭔가를 하려고 했던 느낌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늘 주변에서 누군가를 받쳐주고 아이디어를 제공해주고 이렇게 해보자고 길을 제시했던 사람이다.

 

고인은 개그맨 용어 상용화, 공개 코미디쇼의 탄생과 정착, 코미디 극단 운영, 지역 코미디 페스티벌. 반려동물 동반 콘서트 등등 항상 새로운 길을 개척해왔다. 박 센터장은 “사실 고인은 코미디하고 상관없는 공부도 굉장히 많이 했던 사람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좀 있다”고 운을 뗐다.

 

개그맨들이 개그계를 떠나서도 뭔가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줬던 것 같다. 그런 걸 전수할 수 있는 정확한 어떤 장을 만들어놨다는 게 가장 큰 업적이 아닐까 싶다. 그냥 자기 스스로 해야 될 일을 매번 만들어서 했던 인물이다. 그는 분명 개그맨이었지만 개그맨보다는 작가와 기획자로서의 역할을 본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을까 싶다. 스스로는 별로 웃기지 않은 개그맨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이번에 수상 소감으로 유식하지 않은 사람을 유식하게 보이는 코미디언이었다고 얘기하셨지만 그건 겸양의 표현인 것 같고 굉장히 다방면에서 아이디어를 갖고 실행했던 인물이었다.

 

실제로 고인은 “코미디언이 세 종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아이디어도 있고 연기도 잘하는 최양락이 있고, 아이디어는 없는데 시키는 걸 잘하는 경우가 있고, 그런가 하면 연기는 못하는데 아이디어가 있는 경우가 있다. 세 번째 경우가 나였던 것 같다”고 자평한 적이 있다. 개그 콘서트가 다시 부활했지만 개그맨들의 공개 코미디쇼가 자취를 감추고 있는 추세다. 다만 유튜브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개그맨들이 활동을 도모해야 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고인은 아래와 같이 강조했다.

 

코미디언들이 나오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MC를 맡든 뭘 하든 그게 코미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고 보고 있다. 꼭 콩트가 아니더라도. 콩트가 없어졌을 뿐이지.

 

개인적으로 하늘로 떠나기 전 고인이 출연했던 후배 유튜브 채널들 중 <조동아리>에서의 이야기가 가장 좋고 와닿는 부분이 많다. 꼭 시청해보길 추천하고 싶다. 그때 개그맨 김수용씨는 고인에 대해 “선배님은 흔히 말하는 꼰대가 아니셨다”고 평가했다.

 

우리 신인 때 선배들 보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고 밥 먹고 마주쳐도 또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지 않은가. 근데 선배님은 야 하루에 한 번만 인사하면 되지 뭘 볼 때마다 인사하냐.

 

이런 김씨의 말을 듣고 있던 고인은 “그건 나도 볼 때마다 인사하기 싫었으니까”라고 맞받아치며 웃음을 자아냈는데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런 경우도 있었어. (과거에 선배들한테)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하면 야 너 여기로 와봐. 여기 몇 명이 앉아 있니? 4명이요. 근데 왜 세 번만 했어? 10명 있으면 열 번 인사를 하라고 하고 그런 건데 정말 그때 속으로 욕했는데 지금 이름 밝히고 싶어 간질간질하다.

 

개그맨 류담씨로부터 뺨을 맞는 등 개그계의 혹독한 똥군기 문화를 겪었던 개그맨 황현희씨는 고인의 타계 소식을 듣고 아래와 같이 고백하기도 했다.

 

부끄러움이 많아 태어나서 한 번도 반장, 부반장, 과대표, 심지어 장기자랑조차 나가보지 못했던 날 무대 위에 세워 주신 분이 바로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으로부터 내 인생은 다시 시작될 수 있었고 덕분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날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던 날 사람답게 만들어 주시고, 늘 곁에서 이끌어주셨다. 때로는 따뜻하게 꾸짖어 주시며 날 바로 세워주셨기에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삶의 중요한 갈림길마다 선생님과 나누었던 대화는 언제나 내게 지침이 되어었다. 이제는 그 대화를 누구와 나눠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선생님 감사했다. 지금도 감사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감사할 것이다. 선생님의 가르침과 마음은 내 삶 속에 깊이 새겨져 언제까지나 내 길을 밝혀 줄 것이다. 제자로서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들며 살겠다.

 

고인은 꼰대가 아니었다. 그 대신 후배들의 앞길을 위해 헌신하고 기회를 제공해주려고 노력했다. 2000년 KBS 공채로 데뷔한 무명 개그맨 윤석주씨는 지난 9월26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故 전유성씨에 대해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사실 선배님과는 거의 접점이 없었다. 방송국에서 스쳐 지나며 두어 번 뵌 게 전부였다. 그렇게 25년이 흘렀다. 그런데 작년 아침 7시 정말 뜻밖의 전화가 걸려왔다. “야, 나 전유성이야. 너 요즘 유튜브 재밌더라. 나 요즘 그거 보는 재미로 살아.” 너무 황당하면서도 따뜻했던 순간이었다. 선배님은 “너 좀 보러 가야겠다. 제주에 산다며? 주소 보내”라고 하셨고 며칠 뒤 정말 내 가게로 찾아오셨다. 왜 나였을까?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유튜브에 짤막한 개그 영상을 열심히 올리는 걸 보고 너무 재밌었다며 직접 보고 싶으셨던 것이다.

 

고인은 까마득한 후배 개그맨을 만나기 위해 실제로 제주도로 갔고 5시간 동안 회포를 풀고 윤씨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고인의 후배 사랑은 남다르다. 실제 친분 여부와 무관하게 후배 개그맨들을 챙겼고, 발굴했고, 자리잡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고인은 이문세부터 주병진, 이영자 등 굵직한 연예인들을 발굴하기도 했지만 예원예술대 코미디학과 교수로 재임하며 김신영, 조세호 등을 키워내기도 했다. 개그맨 시험을 3회 이상 낙방한 지망생들을 모아 극단(코미디 시장)을 만들어서 유명 개그맨으로 만들어내기도 했다. 고인은 개그맨 조세호씨의 결혼식 주례사를 했던 걸 소개하며 아래와 같이 역설했다. 

 

이번에 조세호 주례사 중에 그런 얘기를 했었지. 돈 많이 벌어라. 돈 많이 벌어서 빌딜도 사고 그래라. 근데 문제는 빌딩을 산 애들이 빌딩 임대업자들이 자꾸만 되더라. 어렸을 때부터 내가 연예인이 되고 싶었지. 빌딩 임대업자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지 않냐. 그래서 한 층 정도는 조세호 극장을 만들어서 후배들 길 열어주는 것 하나 만들면 어떻겠냐. 그런 얘기를 했는데 왜 후배들 양성에 그렇게 신경을 쓰세요. 뭐 그런 얘기들이 있다. 선배 양성하는 것보다 훨씬 쉬워. 그래서 하는 거야. 지금 선배 양성하고 싶어도 얼마 남지도 않았고.

 

어느덧 고인이 세상을 떠난지 한 달이 지났다. 고인은 주어진 인생을 담담하게 살아왔고 홀연히 떠났는데 그가 마지막으로 기획을 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다.

 

인생 참 지루하다고 생각할 때도 있고. 길구나 너무. 이렇게 느낄 때도 있지만 뭐 길다, 짧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사는 거야. 세월이 빨리 흘러갔네? 뭐 그런 생각은 없고 그냥 어떻게 하다보니까 여기까지 왔구나. (중략) 사실은 뭐 짜지 않고 그냥 막 얘기하는 그런 공연으로 ‘59금’이라고 해서 59세 넘은 사람들만 입장시키고 뭐 속여서 들어오면 어쩔 수 없고. 5월21일과 5월22일에 할 생각을 갖고 있다가 내가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져서. 몸이 좋다가 갑자기 컨디션이 확 떨어지면 5미터 걷기도 힘들 정도로 그래서 혹시 또 그럴까봐 못했다. 언젠가 꼭 해보고 싶다. 최양락, 이봉원, 엄영수, 이홍렬, 이경실, 김수용을 공연 멤버로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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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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