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비의 비엔나 라이프] 27번째 글입니다.

[평범한미디어 조은비 디라이트 대표] 과거 나는 책을 한줄로 소개하라는 칸에 이렇게 적었다.
인간은 살기 위해 도망치면 손가락질 받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정해진 길을 벗어나고 싶은 어른들을 위한> 변명을 공개적으로, 책으로 쓰고 싶었다. 한 번쯤 벗어나보면 어떨까. 괜찮지 않을까. 그 결과가 정말 생각만큼 나쁠까. 정해진 길을 벗어났던 내 경험을 나누고 싶었다. 도망친 결과 대단한 성공을 거머쥐진 않았다. 어쩌면 그 대가로 쉽게 우울해하거나 외로워하거나 불안해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도망치기 전과 완전히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읽는다. 어떤 이들은 나를 멋있다고 말한다. 가끔은 그들의 말에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움츠린 어깨가 펴지며 새로운 꿈과 함께 자신감이 피어오른다.
그렇게 인터넷 어딘가에서 찾은 ‘출간 기획서’ 양식을 다운 받아 하나씩 빈칸을 채워나갔다. 나의 도망에 대한 책을 쓰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그러면서 20대부터 시작된 나의 꾸준한 <도망의 역사>를 떠올려 보았다. 하루 일하고 그만둔 그곳, 3일 일하고 그만둔 그 회사, 3개월 일하고 그만둔 그 회사도. 그들에게 나는 얼마나 민폐였을까. 나는 버티지 않았다. 불편함을 참지 않았다. 그냥 거기서 멈춰버렸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 하루 9시간 거의 매일을 함께 해야 하는 직장의 기본 형태 자체를 온마음으로 거부했다. 친구는 나에게 핀잔을 줬다.
배가 불렀지. 간절하지 않았던 거야.
그래도 맡은 일에 실수하지 않기 위해 나는 아침마다 빈 속에 항불안제를 한잔의 물과 함께 털어 넣었고 점심을 먹고나서 다시 그 행위를 반복했다. 그렇게 버텼던 곳은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했다.
당시 남자친구는 그런 나를 보고 “운이 없다”고 했다. 나는 정말 ‘운’이 없었던 걸까. 지금 생각해보면 운이 꽤 좋았던 것 같다. 더 이상 그곳에서 버틸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아도 되니까. 정규직 전환에 실패했지만 나는 자유의 몸이 된 것이었다. 다시 새로운 직업을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상황을 그렇게 보지 못했다. 연인의 말처럼 운 없는 실패자였다.
사기업이라 적응하기 힘들었던 걸까. 공무원 시험으로 도망치기도 했다. 공무원 시험 설명회에서 ‘운좋게; 경품에 당첨되어 <2개월 무료 수강권>을 받았고 드디어 부모님은 내가 잘될 거라고 축복해주셨다. 자신들이 원하는 길과 같은 길을 처음으로 선택한 딸을 응원해주셨다. 예전 글에서도 적었듯이 연인의 엄마는 합격만 하면 입생로랑 백을 사준다고 약속했다.
이것도 못 한다고 하면 대체 무얼 할려고 그러는데?
독서실의 열람실 문 앞에 쭈그려 앉아 전화로 “못하겠다”고 엄마에게 고백했을 때 엄마의 한숨에는 슬픔이 묻어났다. 그래 맞아. 이제 몇 번째 도망이지? 몇 번째 포기하는 거지? 몇 번째 실패인 거지? 여기서 도망치면 그곳엔 무엇이 있을까? 하고 싶은 게 없어졌다. 나는 쓸모 없어 보였다. 그렇게 당시 실습 중이던 상담 선생님을 만났다. 1시간 1만원이라는 엄청나게 저렴한 상담비 덕분에 나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첫 상담에서 나는 “하고 싶은 게 없다”며 꺼이꺼이 울었다.
<도망의 역사>를 떠올리다가 지금 출간 기획서를 쓰고 있는 나로 돌아왔다. 책을 쓰고 싶어 하는 나에게로. ‘도서 컨셉’을 적으라는 곳에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유명한 대사를 부정하고 싶다고 썼다. 이렇게 쓰는 게 맞는 건가? 모르겠다. 적어도 도망치는 사람들이 낙원을 바라고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남들의 눈치를 보며 수백번 망설인 뒤 자존심, 자존감, 자신감 등등 나를 이루던 중요한 그것들을 울면서 벗어 던지고. 그 자리에 죄책감을 품은 채 무거운 뱃머리의 방향키를 있는 힘껏 트는 행위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그렇게 도망쳤던 순간들을 이제는 후회하지 않는다.
이 책으로 도망이 자유를 향한 갈망이라고 대단한 용기라고 읽어주는 사람들에게 가닿고 싶다. 내가 자주 꾸는 꿈처럼 푸르고 끝없는 바닷 속을 힘껏 마음대로 헤엄치는 사람으로 기억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