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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일찍 ‘2025년’을 돌아보며

[김철민의 산전수전 山戰水戰] 29번째 글입니다.

 

 

[평범한미디어 김철민 크루] 벌써 12월이 다 되어 간다. 석달 전 평범한미디어 독자들께 소식을 전한 이후로 한해가 다 지나갈 즈음 다시 인사를 드리게 되었다.

 

법학과 관광 두 전공으로 각기 다른 대학교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게 된지도 꽤 됐는데, 올해 2학기는 정말 숨가쁘게 지나갔던 것 같다. 1학기 때보다 더 욕심을 냈던 만큼 무리를 좀 했다. 매주 이어진 프로젝트 과제로 밤을 새우는 일이 잦았고, 관광법규론 수업에서는 예상보다 더 많은 판례를 분석하며 그 의미를 정리해야 했다. 호텔관광경영학 전공자이기 이전에 법학 전공자이기도 해서 비전공자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주변의 기대 어린 시선에 부응하기 위해 두배로 노력을 했다. 다행히 중간고사 기간 즈음 어느정도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수많은 과제들과 시험 준비를 병행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는데 이악물고 해냈다. 성적도 만족스러웠다.

 

수강생들 사이에서 “법학 전공자를 어떻게 따라가겠느냐”는 말들이 넌지시 들렸는데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 사실 법학 전공자인 나 역시 관광법규 판례들을 처음 접해봤다. 그냥 더 꼼꼼히 찾아보고 세세하게 분석했을 뿐이었다. 결국 학부 전공 여하를 떠나 각자의 학습 태도와 준비 정도가 결과를 판가름했을 것이다.

 

앞서 산전수전 칼럼들을 읽었던 독자들이라면 내 인생을 힘들게 만든 악연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내 인생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이번 학기에 만났던 관광법규론 담당 교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법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현직 변호사인데다 호텔 실무 경험까지 갖고 있는 인물로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이미 걸어가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법학과 관광을 접목해서 대학 교수가 되고 싶은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업 시간 외에 자연스럽게 찾아가서 진로와 연구 방향에 대해 깊은 상담을 받게 되었는데 이렇게나 와닿는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실무와 학문을 두루 경험한 관록이 느껴졌다.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조언을 가슴에 새겼는데, 정신 없이 바쁜 이번 학기의 가장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전임 교수가 아니라는 사실이 참 아쉬웠다. 현 지도 교수에겐 좀 실례 되는 말이지만 지도 교수 변경을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싶을 정도로 귀인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학기엔 같은 박사과정 동기생 지선이(가명)의 내부고발 사연을 듣고 함께 분노했던 일도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난 학기까지만 해도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간병하느라 지선이에게 나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입장이었지만, 이번 학기엔 입장이 바뀌어 내가 그의 고민을 듣고 함께 해결책을 찾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구체적인 내용을 모두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석사 때 겪었던 불합리한 문제와 닮아 있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지도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당장 해당 교수를 찾아가서 항의를 하고 싶었을 만큼 분노를 억누르기 어려웠다. 세상에서 갑과 을의 위계 구조가 가장 견고한 곳이 바로 ‘교수와 대학원생’의 관계다. 갑이 갑질을 하지 못하도록 사회 곳곳에서 예방 대책이 세워지고 있는 동안 대학원에서는 여전히 공백이 크다. 씁쓸하기 그지 없다. 그나마 지선이가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서 대학 인권위원회와 연구윤리위원회에 사건이 접수되어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교수로부터 성범죄를 당하고도 아무 말도 못하고 속을 끓이고 있는 대학원생들이 너무 많다.

 

돌이켜보면 나도 석사 때 익명의 내부고발자였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날 색출하려 했던 교수가 다른 대학원생들을 포섭하려고 광기를 부렸던 악몽이 선하다. 그만큼 지선이의 처지에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끼고 있다. 그저 지선이가 당한 불합리한 일과 성추행 범죄가 잘 해결되길 바랄 뿐이다. 무엇보다 2차 피해를 당하는 일 없이 온전히 마무리 지을 수 있길 옆에서 돕고 싶다. 가해 교수가 합당한 처벌과 징계를 받게 될지 두눈으로 지켜볼 것이다.

 

끝으로 평범한미디어 독자들에게 조금 이른 송년의 덕담을 건네고 싶다. 어느덧 2025년이 저물고 새해가 다가오고 있는 시점이 됐기 때문이다. 다들 올 한해도 고생 많으셨다. 내년에는 내공을 가다듬는 성숙한 시간을 보내길 바라며, 좋은 목표를 단단히 세우고 달성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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