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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회사생활 퇴직한 아버지에게 “이런 배은망덕한 딸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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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한연화의 뼈때리는 고민상담소] 59번째 사연입니다. 한연화씨는 알바노조 조합원이자 노동당 평당원입니다.

 

[평범한미디어 한연화 칼럼니스트] 와. 이거 정말 아버지의 전생이 궁금해지는 사연이네. 아니 당신 아버지 말야. 혹시 전생에 나라라도 팔아먹으셨대? 도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으면 이런 자식도 자식이라고 낳을 수가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네, 이건. 하. 아버지가 자식농사 제대로 실패하셨고요. 그걸로도 모자라 자식이 이제 자기 아버지 쓰레기라고 욕 좀 해달라고 남들 다 보는 데 공개적으로 글까지 올렸는데 소감이 어떠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야이 철딱서니 없는 인간아. 아버지가 그동안 고생하신 건 생각 안 해? 평소에도 욱하는 성정의 아버지가 뭐 때문에 그 성정 다 참아가며 회사에 꾸역꾸역 남아서 전무까지 될 정도로 최선을 다해 일한 것 같아? 다 너랑 네 동생, 엄마 때문이야. 뭘 알긴 알아? 너희 어머니가 윗분들 사모님들 찾아다니고 하면서 내조한 거? 그것도 물론 있겠지. 하지만 내조고 자시고 아버지 성정에 충분히 박차고 나올 수 있었을 거야. 그걸 너랑 동생, 어머니 먹여살리겠다고 30년 넘게 버티고 계셨던 건데 그동안 고생하셨다. 이제 우리도 다 컸으니까 좀 편히 쉬세요라고 말하지는 못할망정 마치 아버지가 쓰레기라도 되는 것처럼 이런 데다 글이나 올리고 있어? 내가 다 어이가 없다.

 

4인 가족 생활비가 1100만원이라고? 그게 얼마나 엄청난 건지 모르지? 4인 가족이 300만원이 뭐야 200만원 정도로 생활하는 집도 많아. 그런데 생활비를 월 1100만원이나 쓰고 그러고도 돈이 남아 골프에 그림까지 할 정도였으면 너희 아버지가 얼마나 노력하셨을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 있어? 자식 결혼자금 지원 얘기까지 나왔을 정도면 너희 아버지가 얼마나 몸이 부서져라 일해가며 집에 돈 가져왔을지 한 번이라도 헤아려 본 적 있냐고. 한국 사회에서 그 정도 수입 찍고 그 위치까지 가려면 야근은 기본이었을 거고 휴일도 없이 일하셨을텐데. 너희 아버지 성정에 온갖 더러운 꼴 참아가며 일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텐데. 자식이 고작 아버지가 말없이 퇴직 한 번 한 거 가지고 이 지랄이라니 대체 너한테 아버지가 어떤 존재였을지 알만하다. 와. 진짜 아버지 불쌍해서 어떻게 하냐.

 

게다가 부모가 너한테 눈 낮춰서 빨리 시집가라고 한 거? 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거든. 요즘 세상에 자식한테 그렇게 말하는 부모는 없어. 더구나 자식에게 장래가 촉망될 정도의 재능이 있다면 더욱더. 완전히 독립하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 장래가 촉망될 정도로 재능 있고, 평소 행실로 봐서 싹수가 있다고 판단되면 집에서 나가겠다고 해도 좀 더 돈 모아서 나가라고 그러지. 그런데 너에게 시집가라느니 완전히 독립하라느니 하는 걸 보면 너는 재능도 없고 싹수도 노랗다는 뜻이야. 부모가 아무리 지원해봐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데 그런 자식 지원해줘봐야 뭐 하겠어. 집안 기둥뿌리 빠지다 폭삭 무너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봐봐. 아버지 퇴직했다고 이런 글이나 올리는 데서 이미 네 싹수가 얼마나 노란지 알 수 있지 않겠어?

 

게다가 동생이 대학원 갈 정도면 너도 자기 밥벌이는 할 수 있을 정도의 나이라는 뜻인데 언제까지 부모한테 얹혀살려 그랬어? 뭐 나도 우리 아버지한테 경제적으로 도움은 받고 있었지만 올해부터 지원 못 해준다는 얘기 듣고도 그러려니 했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굶어죽든, 말든 이 나이 먹고 사람새끼가 맞으면 맨몸으로 한 겨울 꽁꽁 언 땅에 던져놔도 자기 먹을 길은 찾아가는 게 당연한 거니까. 그런데 너는 그만한 각오도 없이 부모한테 얹혀서 편하게 살 생각이었나 보네. 안 그래?

 

아버지가 퇴직한 이유도 사실 나는 좀 알 것 같아. 먹여살려야 하는 자식이 아버지의 노력에 맞게 그만큼 따라와주면, 아버지도 힘이 나서 아무리 더러워도 계속 돈을 벌게 되어 있거든. 원래 그런 게 아버지들이니까. 그런데 먹여살려야 하는 자식이 싹수가 노랗다면 와 이거 나 같아도 회사 때려치우겠다. 그런 자식 계속 내 돈 들여 먹여살려봐야 뭐 하겠냐고. 그러니까 너희 친할아버지가 50년 동안 부인과 자식들이 벌어온 돈으로 생활한 걸로 네 싹수가 노랗다는 걸 가리려 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사람새끼처럼 살 수 있을지 생각해. 그리고 이런 거 올릴 시간에 아버지 그동안 고생하셨다고 밥이나 한 끼 차려드리고. 알겠어? 자 오늘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 그러고 보니 이제 새해가 밝았군. 새해에는 성인군자처럼은 살지 못 해도 적어도 사람처럼은 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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