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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연화의 뼈때리는 고민상담소④] 첫 성관계 하고 “너에게 처음을 선물해줘서 너무 행복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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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한연화] 우선, 놀랍다는 말부터 좀 하고 싶네. 여러모로 이렇게 놀라운 사람은 나도 처음이야. 그러니까 당신 남친 말야, 당신 남친. 나 처음 이 글을 봤을 때 내 눈을 의심했어.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건가를 넘어서서 내가 보고 있는 이게 사실인가. 아니, 지금 2022년에 이런 글이 올라올 수 있는 건가 싶어서 몇 번을 눈을 씻고 다시 봐야 했다고. 나도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살다살다 이런 미친놈은 생전 처음이고, 아마 앞으로 살면서 내가 이런 미친놈을 볼 일도 없을 것 같아. 

 

본인은 대학생이고 남자친구는 직장인이야. 일곱살 차이가 나고 연애한지는 두 달 조금 안 됐어. 얼마 전에 남친이랑 관계를 했다. 나는 처음이었는데 남친이 되게 좋아했어. 내가 처음이라는 거에 조금 과하게 집착하는 게 이상하긴 했다. (처음인데 안 아팠어? 그런 말로 시작하더니 처음이라 어쩌고 저쩌고 식으로 얘기를 이어갔다. 지금 생각하니 하는 말마다 처음이란 말을 넣더라.) 관계와 관련해서 전부 다 배려해주고 챙겨주는 사람이었고 솔직히 여친이 자기랑 처음 하는 걸 싫어할 남자는 없으니까 이건 뭐 이해했어. 근데 어제 남친이랑 데이트를 했는데 집에 갈 때쯤 갑자기 차에서 장미 꽃다발이랑 향수를 꺼내서 주는 거임. 내가 놀라면서 갑자기 왜 선물을 주냐고 하니까 처음 관계를 기념하는 선물이래. 무슨 기념 선물?? 우리 기념일도 아니고 나 생일도 아무 것도 아닌데?? 그러니까 그거 기념 선물이래. 기념이라는 말이 왜인지 모르게 좀 불쾌했지만 워딩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굴지 않으려고 고맙다고 하고 집에 왔는데 그 안에 있는 편지를 읽고 소름이 끼쳤음. 너에게 처음을 선물해줘서 너무 행복하다. 진짜 여자가 된 걸 축하한다. 장미 향수가 성년의날 선물이라기에 챙겨봤다. 앞으로 예쁜 사랑 나눴으면 좋겠다. 이런 멘트들이 적혀 있는데 선물 줄 때 자신의 스윗함에 취해 있는 듯한 느끼하고 음흉한 표정이 겹치면서 진심 토할 뻔했음. 같은 남자들이 봤을 때도 저 XX 이상한 거 맞지 않아? 너무 정 떨어진다 갑자기. 생리통 챙겨주듯이 달달한 음식이나 찜질팩을 선물했으면 괜찮았을 것 같은데 성년 운운하면서 장미랑 향수 사다 준 게 너무 싫음. 진짜 여자라는 말도 개X 같아. 헤어지자고 해도 합법이지? 

<고민글 출처 : 'www.dogdrip.net> / 2021년 8월>

 

 

내가 왜 생전 본 적도 없고, 볼 일도 없을 당신 남친을 향해 욕부터 하고 시작하는지 궁금할 거야. 남자친구가 이상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사람이라는 게 원래 일말의 여지에 매달리는 법이라 헤어져야겠지, 그게 맞겠지 하면서도 그래도 남자친구가 그렇게 이상한 사람은 아니었으면 하는 게 당신의 속마음일 테니까. 당신, 혹시 해우채라고 들어본 적 있어? 흔히 말하는 기생 머리 올려주는 값을 해우채라고 하는데, 정식기생이 되기 전 단계의 어린 견습 기생인 동기와 첫날밤을 보내고 머리를 올려줄 때 치르는 값을 해우채라고 하지. 그러니까 당신 남친이 말한 것처럼 기생들에게는 첫날밤을 보내는 것이 진짜 여자가 되는 셈이야.

 

아직도 모르겠어? 당신 남친은 당신을 기생 취급한 거야. 당신에게 준 꽃다발과 향수는 일종의 해우채인 셈이고. 그런데 화도 안 나? 지금 당장 그 꽃다발로 싸대기를 때리고, 향수병으로 머리를 깨도 할 말이 없는 일이야, 이건. 어디 자기 여자친구를 머리 올리는 기생 취급이나 하고 있냐고 온갖 욕을 다 퍼부어도 모자라는 상황이라고. 그런데 한가하게 이런 글이나 올리고 있다는 게 나로서는 놀랍다 못 해 어이가 없네. 나였다면 그 자리에서 평소에 얼마나 더럽게 놀았으면 나를 이딴 식으로 취급하냐고 지나가는 사람들 다 쳐다볼 만큼 난리를 쳤을 테니까. 

 

이제 좀 알겠어? 여자가 처음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여자가 자기랑 하는 게 처음이라니까 ‘진짜 여자가 된 걸 축하한다’ 운운하며 선물을 주는 남자가 어떤 남자인지. 물론, 최대한 좋게 생각해서 해우채까지는 아니더라도 사고방식이 옛날 사람이다 정도로 봐줄 수도 있겠지. 아직도 여자의 순결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20세기까지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이 남자는 자기와 만나는 여자는 순결했으면, 자기와 잠자리를 갖는 것이 남자와 잠자리를 갖는 처음이었으면 하는구나 그런 정도로. 하지만 어느 쪽이든 지금 시대에 맞는 사고방식은 아니지 않아? 조선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이며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이 “조선 남자들의 심사는 참으로 이상하외다”라면서 조선 남자들은 여자가 순결하기를 바라면서 자기는 정조를 지키지 않는다고. 정조는 도덕도 법도 아니고 오직 취미라고 이야기한 것이 언제인데 아직도 나혜석이 살던 그 시대 남자들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그게 더 끔찍할 거 같은데. 

 

종합하자면 당신의 남자친구는 사고방식이 20세기에 머물러 있는 데다 자기는 여자의 순결을 중시하면서 실제로는 이런 짓 저런 짓 다 하며 더럽게 놀았을 가능성이 매우 농후한 이중적인 사람에 여자친구를 돈 주고 사는 존재 취급이나 하는 미친놈이라는 거야. 여자가 처음이면 값이 올라가고 진짜 여자가 되는 거? 그거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는 거잖아. 기생이든, 성노동자든, 하다 못 해 신부로 팔려가는 거든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고. 이제 우리 대에 끝내야 할 일이잖아. 그리고 누군가는 작게나마 시작해야 할 일이고. 그러니까 그 남자와 헤어져. 그리고 헤어질 때 몇 대 때리든, 향수병을 던지든 한 마디만 해. 다른 여자한테 또 이럴 생각하지 말라고. 여자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순결이 다가 아닌 존재라고. 나를 기생 취급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다른 여자에게까지 선물 같지 않은 선물을 던지는 지랄 같은 거 할 생각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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