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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연화의 대만 여행기①] ‘크루즈 여행’ 비추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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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한연화] 우선 이번 시간부터 한 3화 동안은 고민상담이 올라오지 않을 거라는 걸 미리 밝혀둘게. 내가 그동안 안 좋은 일을 많이 겪어서 회복이 필요하기도 했고 또 친구가 크루즈여행이 싼 값에 나왔다고 같이 가자고 해서 대만에 다녀오느라 당신들의 고민을 들어줄 여유가 없었거든. 대신 고민상담소의 원래 취지를 생각해서 마침 휴가철이니 내 여행기를 통해 어떤 여행을 왜 추천하고 싶지 않은지 이야기하려고 해. 더구나 나는 극내향인에 의사도 눈치 못 챌 정도로 잘 숨기고 사는 고기능 ADHD라 나처럼 내향인 ADHD인 사람들이 있다면 내 여행기를 통해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것도 있고. 자 그럼 여행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말했다시피 내가 다녀온 곳은 대만이야. 정확히는 대만의 북쪽인 타이베이 근교지. 친구가 부산항에서 출발하는 3박4일 대만 크루즈가 무척 싼 값에 나왔는데 2인부터 된다며 비용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같이 가자고 하기에 나도 이 기회에 한 번 가보자 싶어 오케이 했지. 해외에 나가는 것은 생전 처음이라 여권, 트래블월렛 카드 등등 발급받아야 할 게 너무 많더라. 으아악. 다행히 대만은 90일 정도는 무비자로 있을 수 있어서 관광 비자를 발급받지 않아도 된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 뭐야. 하아 거기에 내가 평소에 쓰던 영문 이름이 여권에는 쓸 수 없는 이름이라고 해서 철자를 변경하고. 아 준비과정은 여기까지만 하련다. 아무튼 당신들은 여권 미리 발급받아놔. 지금 당장은 쓸 데가 없을지 몰라도 나처럼 꼭 필요할 때 우왕좌왕하느니 미리 발급받아놓는 게 나아. 그리고 요새 세상에 여권없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안 그래?

 

각설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크루즈 여행 이야기를 해보지. 나는 개인적으로 크루즈 여행은 정말 추천하고 싶지 않아. 그래 바다 위의 호텔은 맞지. 레스토랑, 뷔페, 클럽, 바, 카페, 수영장, 스파, 헬스장, 조깅 트랙, 대극장, 카지노 등등 온갖 편의시설 및 오락시설에 면세점까지 있을 정도니 바다 위에 떠다니는 호텔 맞지 뭐. 크루즈터미널이라고 카페리호 등과 달리 탑승구까지 있는 전용 터미널에서 크고 멋진 배를 타고 해외로 나간다는 것도 설레고 말야. 아니 진짜 출국 절차 마치고 배에 타서 객실로 들어가서 침대에 딱 눕는 그 순간까지는 무척 설렌다? 언제 출발하나 싶어서 막 두근두근하고. 그런데 설렘은 딱 거기까지야.

 

나는 피곤해죽겠는데 쉴틈이 없다니까? 모든 승객이 참여해야 하는 선상대피훈련은 당연히 가야지. 대문 밖이 저승길인 게 사람 일인데 먼 바다로 나가는 여행길에 뭔 일 터질지 알고 대피훈련을 안 받겠어. 도대체 무슨 깡으로. 아무튼 그게 끝나면 선사에서 하는 설명회가 시작되는데 여기까지가 첫날의 공식 일정이야. 이걸 듣는 것이 좋으니 피곤한데 잠도 못 자고 듣는다고. 으아악. 아 제발 나 잠 좀 자면 안 될깝쇼?

 

더구나 내가 탄 배는 코스타세레나호라고 하는 지하층에서 지상 11층까지 있는 배였는데 이거 진짜 길이 미로가 따로 없는 거야. 말했다시피 나는 ADHD이고 ADHD들은 당연히 길치일 확률이 높아. 맞아. 나도 길치야. 길을 못 찾는 건 둘째 치고 지도를 못 읽는다고. 내게는 카카오맵도, 구글 지도도 다 대중교통 노선 확인하는 것 외에는 무소용일 정도인데 선사에서 승객들에게 나눠준 안내도를 본다 한들 길을 찾을 수 있을까? 노놉! 절대 아니지. 애초에 뇌의 문제인 걸 난들 어쩌란 말입니까. 이건 태생적인 거고 아동 ADHD를 제때 치료하지 못 한 덕분에 성인 ADHD로 그대로 남아 나를 괴롭히고 있는 건데 난들 어쩌란 말야. 내가 예수야? 한 번 죽었다 깨어나 볼까? 죽었다 깨어나면 이놈의 ADHD가 고쳐지나 안 고쳐지나 어디 한 번 보자. 어? 아무튼 내가 ADHD라고 누누이 이야기했는데도 같이 간 친구라는 놈은 계속 나보고 바보라느니, 돼지라느니, 할줄 아는 게 뭐냐느니. 그러는데 나는 ADHD라고. 내가 몇 번을 얘기하냐악!

 

음. 그러고 보니 내가 크루즈를 너무 나쁘게 써놨나? 좋은 점도 있어. 생전 접해 볼 일이 없을 고급 문화를 접해볼 수 있다는 거야. 당신들이나 나나 평생 동안 살면서 턱시도나 이브닝드레스 같은 멋진 옷을 입고 정찬회장에 앉아서 학교에서 배운 테이블 매너대로 무릎 위에 냅킨을 펼쳐놓고 포크와 나이프를 바깥쪽에서부터 종류별로 써볼 일이 얼마나 있을까. 아마 없을지도 몰라. 전에 호텔 연회장이며 주방에서 알바할 때 나는 언제 포크, 나이프 종류별로 써보나 했는데 그 목표 하나는 이룬 거지 뭐. 아쉬운 건 나는 이브닝드레스나 칵테일드레스 같은 것도 없고 정장원피스도 없어서 그냥 랩원피스를 입고 갔다는 거야. 으으. 이럴 줄 알았으면 드레스 한 번 장만해두는 건데 말야. 당신들도 꼭 정장이나 턱시도, 드레스 같은 건 장만해둬. 언제 입게 될지 몰라. 평생 입을 일 없을 거라고 여겨져서 옷장 속에 쳐박아두는 한이 있더라도 꼭 장만해둬. 언젠가는 어떤 형태로든 입게 될 테니까. 뭐 한국인들이야 크루즈 정찬회에서도 정장이나 드레스 안 입고 평상복 그대로 입고 가고 심지어 반바지에 슬리퍼 끌고 가기도 하지만 그래도 정찬의 기본 예의는 갖춰야 하지 않겠어? 그런 자리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채우는 것이고,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고, 음식에 담긴 문화와 이야기를 음미하는 것이니만큼 그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 하지 않겠냐 이 말이지. 그 외에도 고급스러운 바에 앉아서 공연을 보며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점이지. 언제 그렇게 멋진 공연을 보며 맥주를 마시는 호사를 다 누려보겠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루즈여행을 추천하지 않는 건 내가 극내향인이고 ADHD이기 때문이야. 나는 새로운 환경에 처하게 되면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편이고, 낯선 사람이 내게 말을 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만큼 낯선 환경이나 사람에 대한 경계도가 매우 높다는 뜻이지. 그러니 한국어가 통하지 않아 영어나 이탈리아어로 소통해야 하는 이탈리아 선적의 크루즈 안에서 내가 느꼈을 혼란이 어떤 것이었을지 짐작이 가지 않아? 외향인인 친구는 스스럼없이 소통이 가능한데 나는 그럴 수가 없는 사람이니 말을 하지 않게 되고, 친구는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 하고. 하 게다가 자꾸 직원들이 인사를 건네는데 제발 말 좀 안 거시면 안 될까요? 내가 직원들을 무시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고 기분이 드러워서 인사를 받지 않는 것도 아니라 그냥 낯선 사람들을 경계하기 때문에 대화를 이어나가기가 어려운 것뿐이라 그저 고개만 숙여서 답례를 하는 정도라고. 그런데 친구는 인사를 안 받아준다고 뭐라고 하고. 하아 진짜 크루즈가 극내향인에게 지옥 맞아. ADHD에게도 여러모로 지옥 맞고.

 

거기에 친구는 매일 배달되는 선상 신문을 보면서 프로그램을 가자고 하는데 나는 그냥 사람들하고 어울리지 않고 조용히 쉬는 걸 좋아한단 말야. 그저 책이나 읽고 잠이나 자면서 쉬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 극내향인에게 얼마나 괴로웠겠어. 가장 큰 문제는 나는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쓰는 것이 안 돼.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쓰는 것이 엄청난 노력을 요하는 일이라 유튜브 영상도 긴 건 잘 못 본다고. 그래서 영상보다 활자가 편한 거고. 그런데 친구가 같이 애니매이션 영화를 보자고 계속 불러서 나로서는 좀 환장할 노릇이었지. 뭐 그렇게 해서 본 대만 드라마 ‘상견니’는 재미있었지만. 쩝. 이건 뭐 외향인 친구와 여행가지 말라는 게 되었네.

 

아, 하나 더. 몇날며칠 배에만 있는 거 그거 정말 갑갑하다? 아무리 배 안에 좋은 곳이 많으면 뭐하냐. 갑판에 올라가보면 보이는 건 망망대해요. 나는 이 배 말고는 아무데도 갈 수가 없는데. 그거 정말 갑갑한 기분이라니까. 하아.

 

아무튼 이런 많은 이유들 때문에 크루즈여행은 비추야. 뭐 그래도 가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을게. 다만 외향인과 내향인이 같이 가는 건 좀 피해주라. 그거 내향인들에게는 정말 죽을 맛이거든. 또 ADHD에게도 크루즈는 죽을 맛이니 만약 ADHD 있는 사람과 같이 여행가려면 크루즈는 반드시 피하고.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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