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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친자 확인’ 해보자는 남편 요구 들어줘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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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한연화의 뼈때리는 고민상담소] 48번째 사연입니다.

 

[평범한미디어 한연화] 와. Cis-AB형과 B형 부모 사이에서 O형 자식이 나온 경우라. 이거 고등학교 졸업한 이후로 오랜만이네. 고등학교 통합 과학에서까지는 이걸 배웠는데 솔직히 살면서 희귀 혈액형 가진 사람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되겠어. 그래서 잊고 살았지. 그런데 그걸 다시 기억나게 만들다니 이거 대체 뭐냐. 과학 시간에도 이거 배울 때 이 문제로 혹시 애가 바뀐 건 아니냐, 내 자식이 아닌 건 아니냐 하면서 옥신각신하다가 친자검사 해서 친자인 거 맞다고 밝혀지는 사례가 많았다고 들었는데 이런 경우를 수업시간 말고 듣는 건 처음이네. 하긴 당신 혈액형이 전세계 인구 중 0.001%만 소유하고 있다고 하니까 내가 이런 경우를 수업시간 외의 일로 듣기는 처음인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희귀 혈액형이지만 한국과 일본에는 제법 있다고 하니 의료업에 종사한다면 들을 기회가 있겠지만 나는 의료업 종사자는 아니니 말이야.

 

 

각설하고, 나는 당신 남편 입장도 이해는 돼. 아무리 머리로는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해도 사람이라는 게 자기 일로 직접 닥치면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가 어려운 법이거든. 더구나 남자들은 자기 배로 직접 품어서 낳는 여자들과는 다르게 직접 아이를 낳을 일이 없기 때문에 ‘정말 내 자식이 맞는 걸까?’ 하는 의심을 기본값으로 깔고 갈 수밖에 없거든. 그래서 여자친구가 임신했다는데 “그거 내 애 맞아?” 했다가 싸대기 맞았다는 남자들이 종종 있는 거고 말이야. 거기에 뉴스 같은 거 보면 산부인과에서 애 바뀌었다가 얼마 만에 찾았네 하는 일들 심심치 않게 나오잖아. 아무리 병원에서 철저히 관리한다 해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실수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감안하면 이런 상황에서는 의심이 더욱더 커지는 법이지. 정말 내 자식이 맞을까? 혹시 애가 바뀐 건 아닐까? 아니지 그래도 마누라가 Cis-AB니까 내 자식이 맞겠지? 가만 그래도 혹시...?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야. 그래서 “우리 친자확인 해보자”라는 이야기가 나온 걸 거고 말이지.

 

뭐 당신 입장도 이해는 가. 바람피운 적도 없는데 바람난 여자로 보는 것 같아서 화가 나겠지. 나를 대체 어떻게 본 건가 하는 생각도 들테고. 그렇게 나에 대한 신뢰가 없나 하는 배신감도 들테지. 남편이 나를 믿지 않는데 내가 남편을 어떻게 믿고 사나 싶을테고. 더구나 지금 산후조리 중이라서 많이 아프고 예민할테니 더하겠지. 그래도 말이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남편은 이미 자기 자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는데 당신이 감정만 내세워서는 될 것도 안 돼. 오히려 당당하면 왜 검사 못 하냐는 말도 들을 수 있고 말이지.

 

내가 보기에 지금 중요한 건 남편이 왜 친자 확인을 하려는 건지 그 이유부터 확실히 아는 거야. 병원에서 애가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건지, 아니면 당신이 다른 남자를 만났을 거라고 보는 건지 그것부터 알아야 한다고. 그래야 다음 대응책을 생각할 수가 있거든. 일단 남편 몰래 녹음기를 켜고 한 번 물어봐. “당신 혹시 내가 바람이라도 피웠다고 생각해?” 하고. “나 Cis-AB형인 거 알잖아. 우리 애가 O형으로 태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알았잖아. 그런데 왜 이러는 거야? 당신이 왜 이러는지 알고 싶어서 그래”라고 하면 본심이 나올 거야. 이때 화내지 말고 정말 이유를 모르겠다는 걸 강조해가며 이야기해. 그래야 본심이 나올테니까. 그리고 그 대답이 “애가 바뀌었을 수 있잖아”로 나오면 “그래 알겠어. 나를 의심하지 않는 게 맞는 거지?”라고 한 번 더 물어봐. 당신을 의심해서 그랬다는 게 아닌 이상 이걸로 이혼 사유가 될지 안 될지는 애매한 영역이니까.

 

하지만 대답이 “진짜 내 자식이 맞는지 어떻게 알아?” 식으로 나오거나 “누구 자식이야?” 하는 식이라면 “그거 무슨 뜻이야?” 하면서 당신을 의심해서 그런 게 맞다는 대답을 유도해내야 해. 그래야 이혼할 때 녹취 파일을 증거로 사용할 수 있으니 말이야. 그러고 나면 당신과 남편, 둘 모두 친자확인을 해봐. 이때 남편이 당신을 의심해서 그런 게 맞다면 친자로 나올시에 민법 840조 6항의 이혼 사유에 해당함을 적극적으로 주장해서 소송 걸어. 혼인을 이어갈 수 없을 만큼의 혼인 파탄 사유가 남편에게 있음을 증명해서 위자료랑 양육권은 챙겨야지. 안 그래?

 

자, 알아들었으면 이제 감정 추스르고 내가 만든 이 비파잎탕이나 마셔. 그리고 절대 감정부터 내세우지 말고 지금 상황을 해쳐나갈 생각이나 해. 감정이야 이 상황이 지나가고 추슬러도 되니까.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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