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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날 차버린 여친이 야속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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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한연화의 뼈때리는 고민상담소] 44번째 사연입니다.

 

[평범한미디어 한연화] 상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이것만 말해두지. 오늘 상담의 대상은 너 따위가 아냐. 이거 알아? 사람들은 임신 핑계로 연인의 발목을 잡는 걸 여자들만 한다고 여기더라? 왜 막장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잖아. 가난한 집 딸이 임신을 무기로 재벌집 며느리로 들어가는 거.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여자들이 주로 그러는줄 아는데 사실은 아냐. 남자들도 여자 임신시켜서 주저앉히는 거 은근 많이 한다? 애까지 생겼는데 지가 뭐 어쩌겠냐 심사랄까. 아 얘기가 길어졌네. 네가 그런 놈이라고요. 네가요. 아 뭐 됐다. 내 신조가 대화는 통할 상대에게나 한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면 그 새끼는 몽둥이로 쳐맞으면 말을 알아듣는 개새끼보다 못 한 상대라는 거라서 더 이상 너한테는 할 말 없으니 물 맞기 싫으면 어서 꺼져. 너한테 뿌리려니 소금조차 아까워서 걸레 빨다 나온 구정물이나 뿌려야겠으니까. 대신 오늘 내 상담의 내담자인 여친분. 이리 와서 앉으시죠. ‘아직은’ 임신부이시니 푹신한 방석 깐 제일 좋은 자리에 앉아서 내가 내주는 아마자케나 한 잔 하시라고.

 

 

자 마시면서 천천히 들어. 우선은 축하해. 지옥에서 빠져나온 걸 축하한다고. 흔히들 그러잖아. 남의 집 가장 빼오는 거 아니다. 그 말이 왜 나왔는지 알아? 흠 아직은 잘 모르려나. 어쨌든 가부장제 하에서 가장이라는 게 어떤 존재더라? 기본적으로 집안 식구들 다 먹여 살리는 존재가 가장인 거잖아. 그러니 자식 하나가 집안 식구들 다 먹여살리고 있으면 그게 실질적인 가장이지 뭐야. 그런데 그 가장이 결혼을 해서 집에 돈 벌어다줄 인간이 사라졌네? 그럼 어떻게 되겠어. 당연히 집에 돈줄 끊어놓은 며느리나 사위한테 내 돈줄 어쩔 거냐, 너라도 나를 먹여살려라고 하며 손 벌리지 않겠어? 아니 나이 스물아홉이나 먹고도 아빠한테 경제적으로 도움 받는 나도 아빠 만나면 미안해서 고개를 못 들 지경인데 도대체 양심에 무슨 털이 얼마나 쳐나셨기에 충분히 경제활동 가능한 나이에 자식한테 손 벌리는 걸 당연시하는지는 내 알 바 아니지만 좌우지간 그 정도로 경제적으로 능력도 없고, 생활력도 제로에, 양심까지 없는 사람들이 내 돈줄 네가 끊었다 지랄하는 거 그거 누구도 감당 못 해. 같은 흙수저 출신이라도 학을 떼고 도망갈 일인데 못 해도 은수저로 보이는 당신이 그거 감당할 수 있을 거 같아? 노놉! 절대 불가야. 걸핏하면 이 핑계, 저 핑계로 시댁 지원해주느라 잘 사는 친정에 손 벌리다 친정까지 같이 지옥으로 꼬라박는 일이 되고 말 걸.

 

더구나 며느리가 자기들보다 잘 사는 집안 딸이다? 이거 백이면 백, 네 친정 그렇게 잘 살면서 사돈댁은 안 도와주냐고 며느리 친정에 도움받는 걸 아주 당연시 여길 게 분명해. 희한한 게 말이야. 꼭 아들보다 잘 사는 집안 딸이 며느리로 들어오는 집은 그렇게 며느리를 호구 취급하며 갈구더라고. 한국식 가부장제 하에서 며느리는 가장 지위가 낮은 하녀 같은 존재라 그런가 생각이 들 정도로 말야. 게다가 남친 엄마는 아프고 남친 아빠는 일용직이라 둘 다 노후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다면 와. 요즘 평균 수명 80세라 골골거리며 오래도 살텐데 죽을 때까지 당신이 책임지란 소리잖아, 이거 아니 내 부모도 노후 대비가 되어 있어서 나만 잘 살면 되는 마당에 왜 남의 부모를 책임져? 하아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네.

 

그뿐이 아냐. 가장 심각한 문제는 남친이 자기가 콘돔 끼기 싫어서 당신한테 피임약 먹였다는 거 아냐. 그 약 오래 복용하면 몸에 좋을 리도 없다는 거 알면서 지가 콘돔 끼기 싫어서 당신한테 약 먹이다가 피임약 잃어버렸는데도 지 좋자고 섹스했다는 거 아냐? 아니 애초에 당신에 대한 존중이 있다면 그런 짓을 할 수 있었을까? 못 하지. 절대 못 하고 말고. 그렇게 당신에 대한 존중이 없는데 앞으로의 결혼생활은 어떨까? 결혼생활에서 당신을 존중해줄까? 나는 전혀 아니라고 보거든. 당신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1도 없는 남편새끼에 며느리한테 손 벌리고 당연시 여기는 양심에 털 난 시짜들까지 말 그대로 네이트판에 올라갈 사연 되기 전에 당신 이거 선택 잘 한 거야. 남친이 애는 어떻게 할 거냐 했지? 뭘 어떻게 해. 어차피 낙태죄도 헌법불합치 판결 난 마당에 남친이 당신을 낙태죄로 고발할 수 있을 거 같아? 아직 나이도 젊겠다. 한국에서 미혼모로 살아봐야 득 될 것도 없겠다 그깟 세포덩어리 때문에 가시밭길 가지 말고 쿨하게 좋은 병원에서 중절 수술 받고 몸조리나 잘해. 그리고 남친이 당신 잡는다고 이상한 소문낼지 모르니 미리 퇴사하겠다고 상사에게 이야기하고. 인수인계 끝마치는대로 퇴사하고 집에서 편히 쉬고 당신이 하고 싶은 분야 공부 더 하면서 전문성 키워서 더 나은 곳으로 이직해.

 

자 내가 할 수 있는 조언은 여기까지. 뭐 태아를 두고 세포덩어리라 하는 나를 보고 어떤 인간들은 저거 사람 맞냐 할지 모르겠지만 나 사람 맞아. 그리고 의학적으로 세포덩어리 맞고. 내가 원래 지독히도 공감 이전에 판단이 우선인 인간이니 이렇다고 여기길 바랄께. 한국 사회에서 아스퍼거는 천형과도 같은 약점이라 나도 일부러 드러내지는 않는 편이니까 말야. 자 그럼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 앞으로 당신 인생에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라며 그 아마자케 값은 받지 않을게. 그럼 우리가 어떤 삶을 살든 다시 볼 일은 아마 없을테니 이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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