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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물질 노출로 골병 들었지만 "파견 노동자라 산재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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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김미진 기자] "그때 회사가 제대로 조치만 했더라면 피해자가 더 늘지 않았을 거예요."

 

파견업체를 통해 경기도의 한 휴대폰 부품공장에서 일하게 된 A씨는 일을 시작한지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아 시력을 잃었다. 3교대 중에서 야간조였던 A씨는 "알코올이다. 괜찮다"는 말을 듣고 알루미늄 절삭기계 앞에서 일을 했으나 출근한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던 시점에서 호흡 곤란 증세를 보였다. 조금씩 시력까지 잃게 됐다. 

 

결국 A씨는 오른쪽 눈이 실명됐고 왼쪽 눈의 시력도 90% 가량 잃게 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경찰 조사 결과 사측에서 주장한 '알코올'은 에탄올이 아니라 인체에 유해한 메탄올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이 터진지 벌써 5년이 지났지만 A씨는 여전히 깜깜한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 하고 있다. 앞으로도 어둠 속에서 곪아가는 마음을 껴안고 살아야만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이 관리 대상 유해물질로 지정하고 있는 메탄올은 생식독성 및 눈 손상성, 특정 표적장기 독성이 있는 물질이다. 어떤 식으로든 인체에 노출되면 안 된다. 공기를 통해서도 전파가 되는 만큼 이를 다루는 노동자들은 안전설비가 설치된 환경에서 방어용 보안경, 내화학성 장갑 등 안전장비를 갖추고 일해야만 중독 증세를 피할 수 있다.

 

그러나 A씨에 따르면 사측에서는 달랑 일회용 마스크 하나만 지급했다고 한다. 메탄올을 그대로 흡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파견 노동자들의 비참한 처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파견 노동자만 그럴까? 파견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짓밟는 기업은 직접 고용 노동자들의 안전 역시 제대로 보장할리 만무하다. 가장 실망스러운 점은 고용노동부조차 이들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A씨를 비롯 실명 피해자들은 일이 벌어진지 4년이 지난 작년이 되어서야 겨우 산업재해로 인정되면서 배상 판결을 받아낼 수 있었다.


파견 노동자들의 화학물질 산재는 이뿐만이 아니다. 경기 안산에서 밸브 보수작업 도중 염산이 유출돼 2명이 다쳤으며, 용인에서는 소화설비 배선을 철거하다 이산화탄소가 누출돼 2명이 질식사했다. 

 

 

충남의 한 건설 현장에서 일했던 B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폐암 3기다. B씨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도 석면폐증에 시달리고 있다. 고농도의 석면에 노출되기 때문에 앓게 된 명백한 직업병이다. 그러나 산재로 인정받지 못 했다.

 

B씨는 "석면 노출을 일으킨 사측에 민사소송을 걸 수 있다고 했는데 그 증거를 찾을 수가 없다고 포기하라더라"며 "심지어 일용직에 파견 노동자라 산재도 안 된단다. 산재도 그렇고 관련 제도(석면 피해구제)가 있다길래 시도는 해봤는데 행정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 나같은 사람에겐 소용이 없나보다"라고 통탄을 금치 못 했다. 

 

B씨는 더 이상 일을 할 수도 수술을 받을 수도 없다. 이제는 현장으로 나가기엔 너무나 쇠약해졌고 일을 할 수 없어 수술 받을 돈도 없다. 시장에서 알바를 하는 아내에게 기대어 죽지 못 해 살고 있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산재로 인정받는 것은 노동자들의 기본적 권리다. 직접 고용이든 파견 고용이든 불문하고 모두가 누려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그 권리를 묵살당한 채 아픈 몸을 이끌고 현장에 나가는 노동자들이 태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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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진

사실만을 포착하고 왜곡없이 전달하겠습니다. 김미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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