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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치 참아야만 하나요" 건설 현장에도 '여성 노동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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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김미진 기자] "매일 일기를 쓰지 않은 게 후회된다."
 

올 4월말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경북 포항의 공장 건설화재 감시원 A씨의 유언장 중 일부다. 7장 분량의 유서엔 차마 입에 담지도 못 할 현장 관리자들의 폭언과 성희롱 등 A씨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이유들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일각에서는 "왜 알리지 않았냐"는 안타까운 질책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A씨는 그저 가만히 이같은 고통을 감내하고만 있었을까? 아니다. 공군 및 해군의 여군 성범죄 사건들처럼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주변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덮기 바쁜 관리자들과, 하소연을 무시한 주변 사람들의 방관이 이들을 절망으로 몰아넣는다. 

 

피해자를 향한 오해들은 주위로부터 형성되고 이 때문에 A씨의 결정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간과하는 것은 그때부터 그들 스스로 2차 '가해자'가 된다는 사실이다. 

 

일부 사람들은 A씨가 '여성'과 '하급 노동자'라는 사실에 중점을 두고 "여자들이 끈기가 없다", "엄살부린다. 다들 그런 거 겪고 산다" 등등 어이없는 발언을 쏟아내기도 한다. 

 

 

과연 A씨는 여자라서? 하청업체 노동자라서? 참을 수 없는 폭언과 저질적인 성희롱을 참아야만 했던 걸까? 

 

평범한미디어는 얼마전 충청권에 위치한 모 용접공장에서 현장 관리자로 일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 B씨를 만났다.

 

B씨는 "상시적인 성차별 및 성폭력, 비난 등을 당해왔습니다"고 운을 뗐다.

 

B씨는 "여자라는 이유로, 30대 어린 나이에 건설 현장 관리자가 됐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저 예쁘게 생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끝없는 조롱과 성희롱을 참고 견뎌내야만 했습니다"며 "A씨가 왜 매일 일기를 쓰지 않았는지 후회한다는 말도 이해가 갑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데 피해 사실이라도 기록해뒀어야 한다는 자책이 이해가 돼요"라고 말했다.

 

이어 "저도 아직 할 말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아마 제가 더 호소한다고 해도 또 다시 무시될 게 분명합니다. 보복이 두렵기도 해요"라고 토로했다. 

 

 

건설 현장 관리자라는 중책을 비교적 어린 나이에 맡았다는 이유로 "낙하산"이라고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B씨의 손을 봤다. 찢겨진 상처들과 데인 자국이 가득했다. 오래전부터 앓았던 마음의 자국들이 새겨져 있는 것만 같았다. 

 

B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돈을 벌기 위해 건설 현장에 다녔고 졸업하자마자 정식으로 취업해 용접 일을 해왔습니다"며 "안전 장비가 있어도 남성들의 체격에 맞는 사이즈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안전하게 사용할 수 없어요"라고 증언했다. 

 

이어 "장갑이나 보호구가 맞질 않고 유니폼도 헐렁해서 불꽃이 얼굴이나 옷 속으로 튀어서 화상을 입은 적도 허다해요"라고 털어놨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5년 15만5131명이던 여성 건설 노동자는 2019년 20만 2399명으로 늘었다. 건설업 종사자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도 같은 기간 8.4%에서 10%로 늘었다. 건설 노동자 10명 중 1명은 여성이다. 여성 건설 노동자가 이렇게나 빠른 속도로 늘고 있는데 여전히 건설 현장은 철저히 남성 위주다. 남성에게 모든 것이 맞춰져 있다. B씨를 비롯한 여성 건설 노동자들은 법이 바뀌는 등 대책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B씨와 함께 일하는 또 다른 여성 건설 노동자 C씨는 평범한미디어와의 통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보호 장비입니다"라며 "현행 산업안전보건법과 노동법 등으로는 우리 여성 건설노동자들의 안전과 고통을 덜어낼 수 없습니다. 반드시 법 개정이 이뤄져야만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새로운 노동 원칙들이 만들어진다면 그게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는지 관리가 돼야만 A씨와 같은 안타까운 사례들을 막을 수 있습니다"라고 간절히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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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진

사실만을 포착하고 왜곡없이 전달하겠습니다. 김미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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