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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할 정당에 ‘표’ 달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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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이내훈의 아웃사이더] 3번째 칼럼입니다. 이내훈씨는 프리랜서 만화가이자 민생당 소속 정당인입니다.

 

[평범한미디어 이내훈 칼럼니스트]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의 역사가 다 다른 만큼, 법 제도 역시 다 다르다. 대통령제도 있고, 의원내각제도 있고, 이원집정부제도 있다. 한국처럼 정당법을 별도로 두고 있는 나라들이 있겠지만 별도의 정당법 없이 선거법에 포함돼 있는 나라들이 많다. 의회 구성과 선출 방법 역시 모두 다르다. 우리나라는 1961년 故 박정희 대통령이 쿠데타로 집권한 이후, 헌법 6호를 국민투표로 개정하고 1963년에 정당법을 제정했다. 초기 정당법은 독일의 정당법을 토대로 만들었는데 1조와 2조의 기조가 흡사하다. 한국 정당법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음이 분명하지만 궁극적으로 정당 등록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아무나 정치할 수 없는 구조를 구축한 것인데 해방 정국이나 휴전 상태에서의 이념 갈등이 극심했던 트라우마가 작용했다.

 

독일 등 수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의 정당법상 정당 설립 요건은 간소한 편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온갖 제약들이 많다. 우선 정당 등록을 위해서는 1000명 이상의 당원이 등록된 5개 이상의 광역단체 시도당을 둬야 한다. 정당 가입을 위해 개인정보를 줄 수 있는 사람들을 5000명이나 모아야 한다. 2005년 지구당을 폐지하면서 등록 요건도 함께 강화된 측면이 있다. 물론 당원 명부가 허위라고 해도 얼렁뚱땅 승인 받을 수 있지만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처벌될 수도 있다. 어찌됐든 정치권 유명 셀럽들이 신당을 만들지 않는 이상 한국에서 5000명을 모으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거대 양당 중심의 정치세력 외에 힘들게 정당을 만들고 도전했던 숱한 역사가 있다. 한국 정당사의 한 모퉁이에는 군소정당 수난사가 자리잡고 있다. 진영논리와 편가르기 정치에 질려 대안 정당이 부상하다가도 대선 때만 되면 어김없이 양당 구도로 회귀했다. 당연히 군소정당들이 설 자리는 항상 좁았다.

 

 

얼마전 정의당과 녹색당이 내년 총선에서 선거연합정당을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정의당이 일찌감치 선거연합정당 전략을 공식화했고 여기에는 진보당, 녹색당, 노동당, 직접민주지역당연합, 지역정당네트워크 등이 포함됐다. 물론 녹색당만 동의했고 나머지 세력들은 고심 중인데 지역정당 조직 외에 노동당과 진보당은 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으로의 양당 흡입력이 공고한 가운데 정의당이 궁여지책이라도 짜내야 하는 사정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정의당의 선거연합정당 전략은 성공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본다. 한국의 상황과 제도는 유럽과 다르기 때문이다.

 

독일과 이탈리아 사례를 살펴보자. 독일은 연방제 국가로서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다당제가 안정적으로 자리잡았다. 그만큼 제도 역시 뒷받침 되었는데, 독일 선거법은 복수정당의 공동 명부나, 선거강령이 다른 동일 명부는 금지되지만 한 정당의 후보가 다른 정당의 명부로 출마하는 것과, 주별로 정당 명칭을 달리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실제 2005년 의회 선거에서 민주사회당과 선거대안당이 선거연합을 단행해서 단일 명부로 후보를 낼 수 있었고 연방 전체에서 득표율 8.7%를 얻었다. 꽤 성공적이었다. 선거가 끝나고 두 당은 좌파당(Die Linke)으로 통합했다. 이탈리아는 정당법이 없다. 정당 규제가 느슨한 편이다. 그래서 ‘극단적 다당제’(Sartori 1966)로 불릴 만큼 정당이 난립했었다. 이탈리아에서도 선거연합 사례들이 있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1994년 선거연합으로 구성한 베를루스코니 정부가 8개월만에 붕괴했고, 1996~1998년의 월계수연맹 정부도 임기를 채우지 못 했다. 결국 2005년 선거법이 개정되어 제1선거연합에 추가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가 도입됐다. 정의당 김준우 비대위원장은 유럽에서도 선거연합정당의 사례가 흔하다고 주장했지만, 유럽 국가들에서 나타난 선거연합 사례들은 의회 선거 보다는 총리 또는 대통령 결선투표 몰아주기용으로 국한되는 경우가 많았다.

 

독일과 달리 양당제 질서가 강력하고 제도적 뒷받침이 전혀 마련되지 않은 한국에서 선거연합 전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김준우 비대위원장이 구상하고 있는 선거연합정당은 타 정당 인물들이 정의당에 입당해서 출마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생각해봐야 할 부분들이 있다.

 

첫 번째로 정의당 빼고 다른 정당의 인물들은 탈당해야 한다. 정당법상 이중 당적은 불법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중당적을 금지하는 정당법 조항이 지극히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민생당에서 당적을 숨기고 당무를 망가뜨린 사례를 실제로 겪어봤기 때문이다. 선거연합을 위해 탈당을 하면 이전의 당과 법적으로 무관해진다. 녹색당 외에 다른 진보정당들이 자존심을 접고 과연 탈당해서 정의당으로 입당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두 번째로 선거가 끝나고 연합정당 수임 기구의 판단이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위성정당 더불어시민당에서 비례대표를 제명해줄 때는 이미 과반 넘는 의석이 있었기 때문에 수월했다. 그런데 정의당이 추진하는 선거연합정당의 확보 의석수가 솔직히 10석을 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의석수에 따른 정당 국고보조금 배분율이 달라지기 때문에 정의당발 선거연합정당은 총선 이후에 1석이 아쉬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즉 선거연합정당이 선거 이후 비례대표 당선자를 제명해주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빚이 많은 정의당 주머니 사정상 국고보조금이 깎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비례대표 당선자에게 타당 활동을 해도 제재를 가하지 않더라도 당적을 유지하도록 방침을 내릴 수도 있다.

 

세 번째는 선거가 끝나면 당선인의 마음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1석의 미니 정당 소속으로는 원내에서 법안 발의는커녕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적이다. 그래서 원소속 정당으로 돌아가느니 정의당에 잔류해서 앞날을 도모해보고 싶은 유혹에 직면하게 된다. 용혜인 의원과 조정훈 의원의 사례만 봐도 원내 1석 정당은 현역 의원 마음대로 좌지우지되는 패턴으로 흘러가게 돼 있다.

 

마지막 네 번째로 가장 큰 문제는 이런 거다. 정의당발 선거연합정당에 노동당과 진보당이 합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합류하더라도 과연 유권자들이 이들에게 표를 줄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과거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을 거치면서 이 세 정당의 관계는 파국을 맞이했고 각자의 길을 가게 됐던 역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선 앞두고 급하게 뭉친다고 해서 대국민 설득력이 얼마나 있을까?

 

무엇보다 선거 이후 해산하겠다는데 표를 줄 국민들이 얼마나 될까? 정치적 이상을 조금이라도 실현하기 위해서는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 그렇지만 선거에 승리하려고 국민을 헷갈리게 하면 안 된다. 정의당이 양당체제의 무능이 판치는 시대에도 반사이익을 가져가지 못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정의당도 내로남불 논리에서 자유롭지 않다. 정의당은 3년 전 총선 정국에서 양당의 위성정당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반발했으면서 정작 총선 끝나고 위성정당을 허가해준 선관위에 대한 행정소송 제소를 중도에 취하했다. 나는 민생당 비례대표 2번으로서 마음의 부채를 갖고 있다. 그래서 홀로 3년(2020년 4월~2023년 3월) 동안 헌법재판소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그러나 정의당은 오직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의 관점에서만 위성정당 문제를 바라봤던 것 같다. 정의당은 국민 눈치를 봐야 하며 당장 생존을 위해 꼼수를 쓰지 말아야 한다. 선거연합정당은 선거 끝나고 해산할 정당을 만든다는 점에서 양당의 위성정당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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