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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댓국 맘껏 먹을 ‘자유’가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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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이내훈의 아웃사이더] 14번째 칼럼입니다. 이내훈씨는 프리랜서 만화가이자 배달 라이더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로 비양당 제3지대 정당에서 정치 경험을 쌓은 민생당 소속 정당인입니다.

 

[평범한미디어 이내훈 칼럼니스트] 2020년엔 순댓국이 5000원이었다. 그런데 2023년이 되니 9000원으로 무려 80% 올랐다. 반면 같은 시기 월 평균 임금은 318만원에서 353만원으로 11% 찔끔 올랐다. 물가 상승폭이 훨씬 크기 때문에 사실상 내 월급은 갈수록 줄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물가는 급등하는데 왜 노동의 값인 임금은 그에 미치지 못 하는 걸까? 이번에는 이 얘기를 해볼까 한다.

 

 

코로나 시국 3년간 세계 각국은 돈을 많이 풀었는데 효과가 미미해보였다. 코로나 이후 삶의 양태에 따른 산업 트렌드가 급격하게 변하다보니, 산업 분야마다 수요가 급증하고 폭락한 곳들이 있었고 물가 변동 추세가 분야마다 달랐다. 국가에서 돈을 푼다고 해서 일괄적으로 물가 흐름이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위축된 산업군에는 국가가 돈을 풀어 일부나마 손해를 보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긴 썼다.

 

그런데 포스트 코로나가 도래하자 국가에서 푼 돈은 결국 주식과 부동산으로 흡수되고 말았는데, 자산시장의 과열을 관리하기 위해 자연스레 미국 중앙은행(FRB)은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달러를 발행하는 기축통화국 미국의 통화 정책은 세계 경제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주요 국가들도 따라갈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금리 인상 기조로 어느정도 자산시장의 거품을 막았지만 갈수록 벌어지는 임금 격차에는 수수방관이라는 점이다. 코로나 사태로 경제 사다리에서 미끄러진 사람들이 매각한 자산은 버틸 여력이 있던 사람들에게 그대로 흡수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자본시장이 발달한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발생하고 있다.

 

수많은 물가 품목 중 핵심은 음식값이다. 필자는 요즘 즐겨 먹는 순댓국의 값이 날이 갈수록 비싸지는 걸 체감하고 있다. 각국의 식료품 구매 비용을 비교해봤을 때 한국은 OECD 38개국 중 2번째로 높다. 1등은 스위스이긴 한데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평균 임금을 감안했을 때 사실상 한국의 식료품비가 가장 비싸다고 봐도 무방하다. 정말 식당에서 밥을 먹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다. 한국은 다른 분야도 그렇긴 하지만 식료품비가 비싸질 수밖에 없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에 놓여 있다. 쌀을 제외한 곡물류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고, 2022년 2월부터 본격화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날 기미가 없는 만큼 대외적으로 불안한 요인이 장기화되고 있다.

 

한 번 오른 물가는 잘 내려가지 않는다. 물가 하락세는 매번 굼뜨다. 그렇다면 월급이 올라야 상쇄 효과가 있을텐데 실질 임금은 2년 연속 하락했다. 실업률 추이로 봤을 때 2020년 이후 계속 하락하긴 했지만 좋은 게 아니다. 숙련도가 필요한 일자리는 줄어들고, 몸으로 때우는 단순 노동 일자리만 늘어났다는 우울한 풍경이 자리잡고 있다. 코로나발 후유증이 큰데 자동화가 극단적으로 확산됐다. 어딜 가도 키오스크가 우릴 맞이하고 있고, 뉴스와 일상 속 AI의 존재감은 날로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수출 전망을 나쁘지 않게 봤는데 내수 전망치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그만큼 경제적 약자들에게 혹독한 시간이다. 한국은행이 미국 중앙은행보다 먼저 기준금리를 인하한다면 시장에 돈이 풀려서 당장 경기가 회복되는 듯 보일 수 있으나 이처럼 물가 오름세에 비해 임금은 더디게 오르는 양극화 현상을 더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일자리는 충분치 않고, 고용안정성은 낮아졌는데 대출 여력만 늘어나면 돈은 땅으로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리를 내리는 조치보다 실질 임금을 보전할 수 있는 정책이 필수적이다.

 

 

물론 AI 시대에 무턱대고 양질의 일자리를 공급하고 고용안정성을 높이는 것은 경우에 따라 매우 신중해야 하고 그 자체로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존재하는 일자리의 실질 임금을 보전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 정책을 좀 더 적극적으로 가져가는 것이 중요한데 공정거래위원회와 고용노동부의 역할을 확대하고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해보고 싶다. 현재 공정위는 신고된 사항에 대해서만 제재하고 처벌하는데, 신고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도 선제적으로 조사하고 예방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자영업 종사자 비중이 매우 큰 우리 경제 구조에서 노동법은 지켜지면 다행이고, 임금을 깎기 위한 여러 꼼수들이 만연한 것이 현실이다. 복잡하게 가지를 친 원하청 구조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갉아먹고 있는데 원청의 이윤 관점에서만 효율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원하청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부조리만 디테일하게 파악해서 예방하기만 해도 임금 양극화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도 그렇고 임기 내내 자유를 강조하고 있다. 자유는 종류가 많다. 표현의 자유, 정치 활동에 참여할 자유, 기업 활동의 자유 등등 많은데 모두 민주주의의 중요한 덕목이지만 이걸 기억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구성원들간의 조화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정치체제다. 우리는 종종 구성원들의 공존을 붕괴시키는 행위까지 자유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오류를 저지른다. 탐욕 때문에 타인의 자유를 위협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갭투자로 집을 수 백채씩 보유했다가 문제 생기면 도망치거나, 갑과 을의 관계에서 자유 계약으로 포장된 원하청 관계는 윤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와 아무 관련이 없다. 지금 밥상 물가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것은 어쩌면 윤석열 정부의 완급조절 실패가 경제적 약자에게 떠넘겨지고 있는 상황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노동 정책을 손보길 바라지만, 제발 대외 요인 핑계 좀 그만 대고 밥상 물가 잡는 것에 올인하고 최선을 다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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