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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난 해결’이 아닌 ‘재개발’ 공약만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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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이내훈의 아웃사이더] 12번째 칼럼입니다. 이내훈씨는 프리랜서 만화가이자 배달 라이더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로 비양당 제3지대 정당에서 정치 경험을 쌓은 민생당 소속 정당인입니다.

 

[평범한미디어 이내훈 칼럼니스트] 필자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자가용은 중산층의 상징과 같았다. 그런제 이제는 자동차가 없는 집을 찾아보기 힘들다. 2대 이상 보유한 가구도 적지 않다. 통계상으론 가구당 자동차 보유 대수가 0.85대로 영국의 0.86대와 맞물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자동차는 부가가치 품목이라기 보단 생활가전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익숙해졌다. 필자가 사는 아파트에서도 얼마 전 주차 문제로 투표를 했다. 가구당 가능한 주차 대수를 3대로 하는 것에 대해 주차 등록비를 대폭 상향할지 아니면 가구당 2대까지만 허용할지에 대한 것이었다. 주민들은 후자로 결정했다.

 

이처럼 자동차 공화국 대한민국에선 주차 문제가 심각하다. 외국도 다르지 않겠지만 우리 정부는 주차난에 대해 사실상 제대로 대처하지 못 하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한국은 오래 전부터 자동차 산업을 의도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자동차 생산량 세계 5위로 올라섰는데 1955년으로 거슬러 가보자. 최씨 3형제(최무성/최혜성/최순성)는 6.25 전쟁 직후 미군으로부터 물려받은 엔진, 변속기를 바탕으로 드럼통을 펴서 철판을 대고 자동차를 만들었는데 최초 국산 자동차 ‘시발 자동차’다. 그 이후 박정희 정부는 1962년 자동차 진흥정책의 일환으로 외국 자동차 기업이 국내 기업과 협업하지 않으면 한국에서 사업을 할 수 없게 규제했고, 덕분에 국내 기업들은 조금씩 완성차 생산 기술을 갖춰나갈 수 있게 됐다. 성장 속도는 빨랐다. 불과 20년만에 현대자동차, 대우자동차, 쌍용자동차, 기아자동차, 삼성자동차 등이 각축을 벌이게 됐다. 최종적으로는 현대·기아자동차만 살아남았다. 쌍용자동차는 인도 마힌드라와 중국 상하이자동차를 거쳐 다시 KG 모빌리티에 인수되며 국내 기업으로 돌아왔다. 대우자동차는 외환위기를 버텨내지 못 하고 GM과 타타에 분할 매각되었고, 삼성자동차는 르노에 인수되었다.

 

이처럼 한국 정부가 수용력을 따지지 않고 자동차 산업과 판매 진흥에만 포커스를 맞추다보니 그 과정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차를 타고 다니는 마이카 시대가 펼쳐졌고 주차난은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최근 새로 짓는 주택은 가구당 1대 이상 주차 공간을 확보하도록 규제하고 있지만 이전에 지어진 대부분의 주택 단지에는 주차 공간이 가구당 1대 미만이다. 그래서 이중, 삼중으로 겹쳐서 주차하는 것이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 주민들의 불편이야 말할 것도 없고, 주차 문제로 갈등이 벌어지는 일이 잦다. 아파트 단지 입구를 막고 며칠 동안 비키지 않아서 입주민 전체가 차량을 이용하지 못 하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주차가 도로를 넘어 보행로까지 차지하다보니 보행자가 안전하게 걷지 못 하는 일이 드물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 아이들이 동네에서 놀지 않고 PC방만 찾는 이유는 동네에 놀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해서 인데 그나마 남아 있는 공터는 모두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주차 행정에서 만큼은 교과서로 불릴 만큼 주차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일찍부터 차고지 증명제를 도입한 것인데 주차장을 확보하지 않으면 차량 등록을 할 수 없다. 또한 도심지에 여분의 주차장이 많고, 대중교통체계가 발달되어 있다. 일본의 전철과 버스, 트램, 페리는 전국 곳곳을 촘촘히 연결한다. 도요타는 현대자동차보다 판매량이나 브랜드 인지도가 압도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맹목적으로 기업의 편의를 봐주기보다 시민 편의를 우선으로 주차장을 확보하고, 대중교통체계를 세밀하게 발전시켜왔다. 일본을 찾는 해외 여행객이 우리나라의 4배에 달하는 이유는 잘 정비된 대중교통과 정돈된 도심 시스템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도심지가 정돈되려면 주차 문제 해결이 기본 조건이다.

 

 

우리나라에도 차고지 증명제가 있다. 영업용 차량은 이전부터 의무적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일반 차량에 적용한 것은 제주도에서 2017년 처음 실시했다. 제주도는 여타 도시보다 인구 밀도가 낮아서 가능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1인당 자동차 등록 대수로 치면 서울이 0.3, 제주도가 1.0으로 제주도가 전국에서 가장 높다. 여객용 차량 28만대를 빼더라도 0.6으로 높은 수준이다. 그만큼 제주도에서도 주차장이 부족해서 주민 불만이 적지 않았다. 제주도가 발 빠르게 움직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다가오는 총선에서 주차 문제의 대안을 이야기하는 정치인과 정당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가성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공간 확보를 위해서는 주민 설득과 매입 예산이 필요한데, 그 돈이면 차라리 재개발을 내세우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여기는 걸까?

 

주차 문제로 야기되는 사회적 갈등 비용은 위험한 수준에 다다랐다. 언론에 등장하는 각종 주차 시비 소식은 극히 일부다. 정치권에서 더 이상 주차 문제를 손놓고 있으면 안 된다. 주차 공간이 부족하면 우리 모두의 스트레스가 올라간다. 총선에서 주차 정책과 대안이 논의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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