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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는 ‘30%’와 ‘30%’의 배틀로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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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이내훈의 아웃사이더] 19번째 칼럼입니다. 이내훈씨는 프리랜서 만화가이자 배달 라이더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로 비양당 제3지대 정당에서 정치 경험을 쌓은 민생당 소속 정당인입니다.

 

[평범한미디어 이내훈 칼럼니스트] 더불어민주당이 표정 관리에 실패하고 있다. 아주 신났다. 여론조사에서 정권심판론이 우세이고 정당 지지율도 더불어민주연합과 조국혁신당이 도합 40%를 넘겼기 때문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역시 선거 앞에 장사 없다고 비윤석열계 여당 의원들은 연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한 마디씩 던지고 있다. 조해진 의원은 윤 대통령의 사과와 내각 총사퇴를 요구했다. 조 의원의 요구는 타당한 측면이 있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심판론의 시작은 2022년 10월29일 일어난 이태원 참사와 관련이 있다.

 

 

참사 당시 국민들은 국가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길 원했다. 그래야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정국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길을 가지 않을 수도 있었으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감싸려다 이태원 참사 유족 전부를 적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 당시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는 “사과보다 수습이 먼저”라는 입장으로 모든 걸 방어하려고 했다. 이 장관은 국민 분노에 기름을 부었는데 “통상과 달리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고 발언했다.

 

국민께서 염려하실 수도 있는 발언을 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지금은 사고 수습에 전념하겠다.

 

‘유감’은 자기 행위에 대한 소회로는 쓰지 않는 표현이다. 안전과 질서를 도모하지 못 해 벌어진 참사에서 이 장관이 유감이라고 발화한 것은 이태원 참사가 본인 책임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은 의도였다. 국민들이 그걸 몰라서 사과를 요구했을까? 그렇지 않다. 직접적으로 이태원 참사가 이 장관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고 해도 책임자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장관은 남의 일을 수습하는 태도로 일관했고 국민의 분노를 샀고 윤 대통령은 이 장관을 싸고 돌기만 했다. 정권심판론의 불씨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런데 윤 대통령만의 잘못도 아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 장관에 대한 경질 요구를 야당의 공세로만 치부했다. 국민 여론을 대통령실에 고스란히 전달하고 직언하는 여당 정치인은 그야말로 가뭄에 콩이었다.

 

그렇다면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는 달랐을까? 크게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줬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2020년 9월 벌어졌던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보여준 태도를 복기해보면 답이 나온다. 대형 참사가 보수 정부 집권기에 발생해서 그렇지 민주당 정부 하에서 벌어졌다고 했을 때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어느 순간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한 1인 사당이 되어버렸다. 진짜 정상이 아니다. 물론 이 대표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으며 아직까진 판사가 대장동 개발 배임 문제에 대해서 이 대표의 혐의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 50억 퇴직금부터 화천대유의 천문학적 수익 등을 떠올려 봤을 때 이 대표를 향했던 수사의 칼날이 반드시 윤석열 정부였기 때문에 매서웠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윤석열 정부가 검찰 독재 정권이라서가 아니라 그 어떤 정권이었더라도 이 대표는 검경의 수사를 피하기 어려웠다. 만약 이 대표가 스모킹건이 없어 사법적 책임을 피하더라도 본인을 둘러싼 온갖 사법 리스크들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 대표는 전혀 그러지 않았고 오히려 본인 방탄을 목표로 일관되게 스타일을 구기면서 △국회로 들어갔고 △말을 바꿔 불체포 특권 뒤에 숨었고 △전당대회에 나가 당권을 차지했으며 △공천권을 휘둘러 친명 세력을 구축했다.

 

한국 정치와 한국 민주주의는 이재명과 윤석열의 노골적인 마키아벨리즘으로 치닫았다. 어느 순간 한국 정치에선 도의적 책임과 당위가 자취를 감췄다. 상대에 대한 적대감을 한껏 끌어올릴 수만 있다면 어떠한 행위도 용납되고 있다. 요즘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마이크만 잡으면 “범죄자”를 운운하고 있다. 이 대표와 민주당 후보들이 범죄자라는 것이다. 이런 범죄자들에게 “대한민국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건데 범죄자는 정치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오직 처단의 대상일 뿐이다. 검찰 독재 정권이란 레토릭도 마찬가지다. 이 대표의 메시지처럼 독재 정권에 대해선 “회초리”가 답이다. 무너뜨려야 할 대상이지 공존의 대상은 아니다.

 

문제가 크고 심각하다. 윤 대통령은 집권 이후 철지난 색깔론의 다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카르텔 타령과 반국가세력 척결론을 밀고 있다. 콘크리트 지지자 30% 외에는 그 어떤 국민에게도 통하지 않을 낡은 인식의 발로다. 30% 밖 평범한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태도다. 애초 윤 대통령은 정치 경험이 없다. 고집도 세고 마이웨이다. 국민의힘은 총선 직전까지 윤 대통령을 전혀 견제하지 못 했다. 국정 난맥을 돌파할 신선한 아이디어도 없었다.

 

더 이상 이렇게 가서는 곤란하다. 이번 총선에서 대다수 국민들은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정권심판론에 따라 투표권을 행사할 것 같은 분위기다. 하지만 야당이 압도적 다수당이 되더라도 국민의힘은 3년 동안 집권여당이다. 국민의힘이 2024년에 부합하는 새로운 의제와 비전을 제시하지 못 하고 계속해서 윤석열 정부의 기세에 눌려있기만 한다면, 민주당은 검수완박 사례에서처럼 계속해서 일방적인 질주를 할 것인데 심히 우려된다.

 

한국 정치체제에서 거대 양당은 네거티브 정치 외에도 협치의 영역을 향유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네거티브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정국이 펼쳐졌다. 혐오의 힘은 모든 걸 삼켜버릴 만큼 강렬하다. 21대 국회(2020~2024년)를 돌아보건데 네거티브 정치는 비생산적인 것을 넘어 국가의 운명을 위태롭게 할 정도였다. 퇴보 일변도였다.

 

30%와 30%의 싸움이 만연한 상태에서, 40%의 국민들이 더 이상 끌려다닐 필요가 없다. 방법은 다르겠지만 결국 다양성이 공존하는 국회를 구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거제도 개혁이 필수적이다. 이번 총선에선 위성정당이 또 다시 등장해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무력화시켰지만 총선 이후가 중요하다. 중단됐던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토론을 이어가야 한다. 아래로부터 일반 국민들이 모여 함께 숙의할 수 있는 정치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정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30%와 30%가 분노를 해소할 창구로서만 정치를 대하는 상황을 목도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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