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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가 국룰? ‘외벌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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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이내훈의 아웃사이더] 5번째 칼럼입니다. 이내훈씨는 프리랜서 만화가이자 민생당 소속 정당인입니다.

 

[평범한미디어 이내훈 칼럼니스트] 우리나라가 세계 1등과 꼴등을 놓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자살률과 출산율이다. 필자는 그 누구보다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왜 그럴까? 고도 압축 성장 때문이다.

 

조선 말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당시 서구 열강들이 동아시아 패권을 잡기 위해 일본과 조선에 개항을 강요했고 결국 항구가 열렸고 물밀듯이 신식 문물들이 유입됐다. 무역이 확대됐다. 그러나 조선의 왕과 귀족들은 기득권에 안주할 뿐 세계 정세와 백성들의 삶에 관심이 없었다. 조선 밖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탐구할 생각 자체가 없었다. 조선에서 생산되는 재화들에 비해 외국에서 들어오는 것들은 값이 저렴했으며 조선의 시장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서구적 평등 사상은 신분 세습이 여전한 조선 말기의 질서를 뒤흔들었고, 얼마 뒤 동학농민운동이 발발하기에 이르렀다. 고종은 어리석게도 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에 손을 벌렸고, 톈진 조약에 따라 일본군까지 진입할 수 있다는 반대 상소를 무시했다. 고종은 애초부터 “서울 병력을 빼는 건 힘드니까 외국 군대 동원해서 막자”는 입장이었다.

 

제국주의적 야욕이 국제적인 트렌드였던 그 당시, 조선에 출병한 청과 일본의 속셈이야 뻔했 다. 청나라는 임오군란(1882년)과 갑신정변(1884년) 이후 조선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했는데, 동학란을 계기로 일본이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영향력을 완전히 차단시켰다. 이내 벌어진 청일 전쟁(1894~1895년)에서 일본은 조선에서 청나라를 완전히 몰아냈으며, 고종은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1897년)으로 바꾸고 새로운 나라를 선포했지만 일본의 식민 지배를 피할 수 없었다. 비정한 힘의 논리 앞에서는 반만년 역사도 소용없었다.

 

일본은 본격적으로 조선을 수탈하기 위해 강제적인 개화 정책을 밀어붙였다. 일본은 1918년 본국에서 쌀값이 폭등해 데라우치 내각이 퇴진하자, 조선의 쌀을 증산해서 일본으로 가져가는 ‘조선산미증산계획’을 실시했으며 그 이후로 한반도 곳곳에 철로가 건설되고 농토가 개량되었다. 일본의 속셈은 어디까지나 조선의 인력과 물자를 본토에 보내는 것이었다. 조선산 쌀은 대부분 일본으로 옮겨졌고, 수많은 조선인들은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 노동을 해야만 했다. 1945년 해방 이후 3년만에 수립된 대한민국은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국토 대부분이 초토화됐지만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전략의 일환으로 빠르게 산업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현대자동차는 미쯔비시 엔진을 들여와 자동차를 생산해오다가 어느새 세계 5위의 자동차 기업으로 발전했다. 삼성전자는 기존의 종합 전자제품 기업으로서의 입지를 유지하면서도 일본이 투자하지 않던 D램에 주목해서 세계 반도체 산업의 선두에 서있다.

 

 

항상 미리 대비하지 못 하고 외부적인 힘에 의해 강제로 개방당했던 나라. 그럼에도 망하지 않고 끝까지 생존력을 발휘했던 나라. 빠르게 따라가야 했기에 외형적인 성장에 올인해야 했다. 그러나 여러 부작용이 뒤따랐다. 성장 제일주의는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빼앗았다. 고위험 저임금 일자리들이 양산됐으며 이들의 노동조건은 처참한 상태로 방치되었다. 생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경쟁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서로를 닦달했다. 생존 전쟁에서 밀리지 않거나 탈락하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의 스펙을 끌어올리느라 정신이 없다. 온전히 나 자신의 안위를 챙기느라 바빠 죽겠는데 결혼하고 출산할 여유가 있을까? 출산율이 급감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는 등 자살율 증가는 필연적이다.

 

최근 인천시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18세까지 총 1억의 양육 자금을 지원해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인천 외에도 전국 지자체들에서는 현금성 지원을 대폭 늘리는 각종 출산장려책이 쏟아지고 있다. 지원금이 없는 것보단 낫겠지만 출산율 반등이 기대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 무한 경쟁 시스템의 대한민국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삶의 여유가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바뀔 조짐이 없다. 경쟁의 굴레에서 잠시라도 벗어나면 낙오되는 시스템이 공고한데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한들 경력을 포기하고 양육을 선택할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개인적으로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외벌이를 권장해야 한다고 본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부와 모 중 한 사람은 돈을 벌었고, 한 사람은 양육을 전담했다. 그게 일반적인 풍경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딩크족을 선택하거나, 자식을 조부모 등에게 맡기고 맞벌이를 하는 것이 국룰이다. 돈도 돈이지만 양육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런데 양육 시간을 확보해주기 위해 외벌이를 권장하는 게 옳은 걸까? 일단 외벌이를 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갖춰졌다고 생각한다.

 

첫째, 끝 모르고 치솟던 부동산 시장의 상승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저출산 장기화로 부동산 수요 예측을 하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측면이 있을 것이고, 중국발 부동산 위기로 투자금이 빠져나가는 영향도 있을 것인데 확실한 부분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상승세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더 이상 내 집 마련을 위해 부부가 치열하게 맞벌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둘째, 고용 환경이 변화했다. 인공지능이 산업에서 활용되는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만큼 고용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핵심은 구조조정이다. 주요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직무 외에 꽤 많은 일자리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 일하는 사람들의 규모가 갈수록 감소하고 부득이하게 구조조정이 이뤄지게 된다면, 국가적으로 외벌이를 권장할 수 있는 명분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셋째, 성평등의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다. 아직도 사회 곳곳에서 여성들은 불합리한 일을 겪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곳에서 사회적 성취를 이뤄냈다. 얼마든지 서로 합의해서 남자가 집안일과 육아를 전담하고, 여자가 일을 할 수 있다. 부부가 외벌이를 해도 선택해도 충분히 자연스럽다.

 

넷째, 탄소 저감의 효과가 있다. 맞벌이에서 외벌이로 변화하면 필수적인 소비의 규모가 줄어든다. 출근하는 사람들이 줄기 때문에 교통 체증의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운수업계에서 불만이 터지겠지만 인공지능 시대에 일자리 감소는 운수업만의 고충도 아니고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어떤 지원책으로 외벌이를 권장할 수 있느냐고? 집에서 양육하는 배우자의 국민연금을 국가가 출산 후 10년 동안 대신 납부해주는 방법을 제안하고 싶다. 그렇게 되면 적지 않은 부부들이 외벌이를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금 폭탄이 예상되는 포퓰리즘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한 해 지출하는 저출산 예산이 50조원이다. 명목상 예산에 들어가는 산부인과 진료보조금 등 필수비용을 제외하고 대략 반의 반으로 계상해도 12조원에 달한다. 엄청난 액수다. 2023년 국민연금 징수액이 42조원인데, 이중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부모 중 한쪽이 내는 국민연금의 전체 규모는 절반에도 못 미칠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원래 책정돼 있는 저출산 예산의 상당수를 외벌이 가정 배우자의 10년치 국민연금으로 돌리는 것이 터무니없는 아이디어는 아니다.

 

이렇게까지 해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까지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저출산 문제를 방치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한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부모의 돌봄은 절대적이다. 부모의 보살핌을 온전히 받아야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다시 한 번 인간이 인간답게 클 수 있는 방법으로서, 외벌이를 통한 양육 환경 개선을 제안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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