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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관위’를 규탄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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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이내훈의 아웃사이더] 11번째 칼럼입니다. 이내훈씨는 프리랜서 만화가이자 배달 라이더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로 비양당 제3지대 정당에서 정치 경험을 쌓은 민생당 소속 정당인입니다.

 

[평범한미디어 이내훈 칼럼니스트] 처음 겪어본 선관위(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참으로 엄격했고 철저했다. 2018년 지방선거 때의 일이다. 서울시의원 후보(강북구 제2선거구)로 출마했고 공보물 인쇄를 마치고 유권자들에게 전달하려고 했는데 선관위로부터 배포 불가 판정을 받았다. 규정상 길이 27cm, 너비 19cm여야 하는데 한 변이 1mm가 더 길었다. 정말 밀리미터가 맞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공보물 전량을 다시 재단해서 배포했다. 솔직히 좀 오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신뢰가 갔다. 예비 선출직 공직자들에 대한 선관위의 태도가 이만큼 엄격할 필요가 있다고 받아들였다.

 

 

그런데 오해였다. 선관위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180도 바뀌었다. 2020년 총선 패배 후 민생당을 대하는 선관위의 사무 처리는 원칙도 없고 상식도 없었다. 여러 사건들이 많지만 2가지만 언급하고 싶다.

 

먼저 직무정지된 당대표 인장 공문을 수리한 일이다. 선관위는 2020년 6월경 시도당이 소멸하면 해당 시도당 당원 자격도 상실된다는 유권해석 공문을 민생당 비대위원회에 보낸 적이 있다. 그 이후 민생당은 2021년 8월28일 1차 전당대회를 통해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했다. 전당대회가 종료되고 혼란이 일었는데, 비대위가 선관위의 유권해석을 무시하고 소멸된 시도당 소속 모 당원(서진희씨)에게 투표권과 피선거권을 부여했던 것이다. 당원이 아닌 자가 당대표가 된 셈이다.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이관승·김정기 비대위원장 직무대행은 선관위 유권해석에 이의제기를 하지도 않았고 별도로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다. 출마 등록을 받으면 체크해보고 해당 당원에게 다른 시도당을 통한 입당 조치를 내릴 수도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고, 오히려 당원 자격 소멸 사실을 숨기고 전당대회를 치렀다. 결국 뒤늦게 이런 사실이 알려진 만큼 일부 당원들은 이미 선출된 당 지도부에 대해 직무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해서 승소 판정을 받았다. 그래서 민생당은 2022년 6월 지방선거에서 공직 후보자를 공천할 당시 당대표가 직무정지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생당은 후보를 공천했으며 9억3000만원에 이르는 선거보조금까지 지급받았다. 알고 보니 민생당 사무처가 직무정지된 서진희씨의 인장을 찍고 공천당부 공문을 제출한 데 이어, 두 직무대행이 임명한 임동순 서울시당위원장(현 사무총장)이 후보를 공천했던 것이다. 물론 서씨는 도장을 찍지 않았고 선관위는 서씨의 직무정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애초에 무효 공문을 수리하고 선거보조금까지 지급한 것인데 그 직후 두 직무대행이 민생당 대표자로 등록됐다. 덧붙이자면 당시 김정기씨는 이중당적 신분이었다. 현행 정당법상 이중당적은 명백한 불법이다. 그러나 선관위는 이미 대표자가 변경 등록된 것에 대해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당권자 신분이 선관위로부터 정식 승인된 이후 민생당은 빠르게 나락으로 떨어졌다.

 

두 번째는 최근의 일이다. 바로 당비 대납 문제다. 언젠가 선관위에 방문해서 민생당의 2022년 회계보고 증빙자료를 열람한 적이 있다. 살펴봤더니 이관승씨와 김정기씨에 대한 여러 건의 비위 사실과 더불어 당비 대납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민생당 중앙당과 연구원이 2022년 6월부터 12월까지 당 예산으로 직책 당비를 대납했던 것이다. 정당법 31조 2항에 보면 “당원은 같은 정당 타인의 당비를 부담할 수 없으며 타인의 당비를 부담한 자와 타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당비를 부담하게 한 자는 당비를 낸 것이 확인된 날부터 1년간 당해 정당의 당원 자격이 정지된다”고 규정돼 있다.

 

민생당 비대위는 2020년 2월 창당 이후 4년간 당원들이 당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을 막아왔다. 대의기구인 중앙위원회를 구성하지 않았고, 선출직 공직자가 1명도 없어서 거수기인 당무위원회를 통해 업무의 정당성을 부여했다. 민생당은 당 전체가 심각한 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다. 기본적으로 법원이 정당 활동의 자유에 간섭하지 않는 기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위법적인 행태를 규명하기 위해 증거를 모았다. 이렇게 정당법에 명확히 저촉되는 당비 대납 사실을 발견한 만큼 고소했고 증거를 제출했다. 더불어 선관위 정치관계법 질의란을 통해 민생당 지도부가 정당법을 위반하고 총선에 참여한 사실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 이들의 무도한 행태를 막을 방법이 없는지 문의했는데 선관위의 답변은 가관이었다.

 

귀하의 질의 내용은 이미 수사 중인 사안을 전제로 한 것이므로 그 위법 여부는 사직당국의 판단 결과에 따라야 할 것이다. 아울러 당비 대납과 관련한 첨부 선례를 참고하길 바란다.

 

한 마디로 사법적 결론을 기다리는 것 외에 선관위는 아무 조처를 하지 않을 것이며 정체도 불분명한 “사직당국”의 판단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당원 자격은 형사처벌 사항이 아니다. 또한 선관위가 첨부한 선례에는 “당원 자격이 정지되는 시기는 당헌당규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객관적인 자료와 사실관계 등에 의하여 당해 정당이 그 사실을 확인한 날임”이라고 돼 있었다. 해당 정당이 사실을 확인해야만 비로소 정당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고 유권해석한 것인데 결국 민생당처럼 중앙당과 연구원이 당비 대납을 한 경우, 대표자 스스로 대납을 확인하지 않으면 정당법 적용을 피해갈 수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판단이다.

 

선관위는 단순히 정당 활동을 보조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정당들이 법률을 준수하도록 할 관리 책임을 부여받은 헌법기관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공보물의 한 변이 1mm가 넘었다는 이유로 배포를 금지시킬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민생당의 위법에 대해서는 철저히 방임과 방치로 일관했다.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엉망진창 민생당의 상황은 선관위의 무책임에서 기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당 활동이 법률에 반하는 사실을 신고 받고도 처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관위의 업무 해태는 2020년 총선 위성정당 사태에서 도드라진다. 정당법 2조에 따르면 정당의 정의에 대해 “국민의 자발적 조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위성정당은 어떠한가? 위성정당을 만들어서 비례대표 의석을 도둑질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앞순위 기호를 받기 위해 자당 소속 국회의원들을 파견했다. 기성 정당이 총력을 기울여 하위 정당을 설립하는 것은 명백한 하향식 간섭이다. 이게 간섭이 아니면 무엇이 간섭인가? 위성정당을 국민의 자발적 조직이라고 볼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을까? 선관위는 위성정당을 허가한 이유에 대해 정당법 15조 “등록 신청을 받은 관할 선관위는 형식적 요건을 구비하는 한 이를 거부하지 못 한다”는 점을 들었다. 일단 위성정당은 국민의 자발적 조직으로 볼 여지가 없기 때문에 형식 요건을 충족했다고 볼 수 없다. 더구나 관할 선관위는 지자체 단위 지역 선관위를 지칭하는 만큼 해당 지역 선관위는 중앙선관위의 세부 규칙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중앙선관위가 위성정당의 위법성을 파악해서 세부 규칙을 마련했다면 관할 선관위는 얼마든지 위성정당에 대한 등록 신청을 불허할 수 있고, 이것은 정당법 15조에 저촉되지도 않는다. 재차 강조하지만 선관위는 정당의 사무가 법률을 위반하지 않도록 헌법기관으로서 관리하고 통제할 재량권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관위는 위성정당의 등록을 수리하게 했고, 공직선거법상 합동 선거운동에 해당하는 행위를 묵인했다. 공직선거법 88조는 타당 후보자를 위한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선관위는 “당대표자는 불가능하지 않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만들었다. 당대표는 공직선거법 88조에서 규정한 “연설원, 또는 대담, 토론자”에 해당하는 만큼 모정당이 아닌 위성정당을 위해 선거운동을 하면 안 된다. 이런 당연한 사실을 선관위만 외면했던 것이다.

 

선관위에 대단한 걸 바라지 않는다. 강북구 선관위가 공보물이 1mm 더 길단 이유로 배포 불가를 판정했던 것처럼, 중앙선관위가 정당들이 정당법과 공직선거법을 준수하는 데 있어 최소한으로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다. 누구에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누구에겐 법망을 빠져나갈 이상한 해석을 제공하지 말라는 것이다. 민생당 중앙당과 연구원이 장기간 당비 대납한 책임은 대표자에게 있다. 민생당 사태가 괜히 일어난 게 아니다. 이관승씨와 김정기씨는 임기 동안 80억원을 썼는데 그 어떤 선거에도 후보자를 내지 못 했다. 선거에 후보를 내지 못 하는 정당의 두 대표자가 80억원을 사용했다. 민생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비 대납자에 대해 즉시 당원 자격 및 당직을 정지한다고 돼 있다. 그러니까 민생당이 현 상태로 총선에 참여하는 일을 선관위가 방임하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다. 이미 민생당은 수많은 비위행위로 수사를 받고 있는데 거기에 선관위가 추가 혐의를 보태는 일이다. 민생당은 더 이상 내려갈 바닥도 없다. 더 망가질 수도 없을 만큼 망가졌다. 다시 한 번 선관위가 헌법기관에 걸맞게 정당 활동이 법을 어기지 않도록 권한과 책임을 다해줄 것을 부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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