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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과 기시다의 ‘선물 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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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윤석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다시 한 번 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무래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관련 이슈에 대해 양해를 구하기 위한 명분이 클 것이다.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류에 대해 누구보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언론과 야당의 공세에 애써주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인데, 기시다 총리는 곧 리투아니아에서 개최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때 윤 대통령과 따로 만나기 위해 스케줄을 조율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의 5일 보도로 알려진 사실인데 이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가 오염수 방류 계획에 대해 윤 대통령에게 직접 짧은 브리핑을 할 예정이다. 기시다 총리는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보고서를 통해 오염수 방류 계획이 안전하다고 인증을 해준 만큼 과학적으로도 아무 이상이 없다는 점을 어필할 것으로 점쳐진다. 기시다 총리는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으로부터 직접 보고서를 받고 만족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높은 투명성을 갖고 (오염수의 안전성을) 국내외에 정중하게 설명하겠다.

 

사실 윤 대통령은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한일 관계 정상화를 위해 애를 많이 썼다. 그 결과 기시다 총리가 방한하고, 윤 대통령이 방일하는 등 총 세 차례나 정상회담이 이뤄졌다. 1년 전만 해도 기시다 총리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 때 윤 대통령을 만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손사레를 쳤는데 윤 대통령이 일본이 구미에 당길만한 선물 보따리를 먼저 제시했다.

 

양국간 첨예한 현안들은 독도와 역사교과서 등 아주 많지만 무엇보다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문제가 핵심이다. 2018년 우리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판결을 확정하자, 당시 아베 내각은 한국 기업에 대한 화이트리스트(수출 우대) 제외 조치를 강행했고, 이에 반발해서 한국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반일 불매운동을 벌이는 등 양국 관계는 얼어붙었다. 그 이후 4년이 흘렀는데 지난 3월 윤 대통령은 외교부를 내세워 ‘제3자 변제’ 방식을 발표했다. 행정안전부 산하에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두고 여기서 조성한 재원을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제공해서 변제하는 방식이다. 피해자들을 대변하고 있는 임재성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정부 해법의 본질은 피해자들의 판결과 채권을 없애는 조치”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현재 생존 피해자와 유가족 15명 중 11명이 제3자 변제안을 수용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 일본 전범기업의 가해 책임을 면책시킨 것이라는 국내 여론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어쨌든 윤 대통령이 국내 반발 여론을 무릅쓰고 이런 선물 보따리를 안겨주자 기시다 총리도 반응하기 시작했고 수 차례의 한일 정상회담 성사와 더불어 6월에는 화이트리스트 복원 조치(수출무역관리령 일부 개정)를 결정했다. 사실 3월에 이미 발표한 것을 실행한 건데, 윤 대통령은 해당 발표에 대한 응답으로 지난 4월 먼저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 복원시켰고 동시에 WTO 제소를 취하했다. 이로써 4년간의 한일 냉각기는 공식적으로 해소됐다. 앞으로 한국 기업은 일본에 전략물자 수출을 신청할 때 수출우대국가 소속 기업으로서의 혜택(심사 기간 기존 15일에서 5일로 단축+신청 서류 5종류에서 3종류로 감축)을 받게 됐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화이트리스트 문제를 해결해준 일본 정부에게 그에 맞는 두 번째 선물을 안겨줘야 하는데 그게 바로 오염수 방류 문제다. 오염수가 방류되면 과학적으로 안전한지의 여부와 무관하게 윤석열 정부는 무조건 일본의 방류를 승인해줘야 하는 처지가 된 셈이다. 그래서 기시다 총리보다 더욱더 적극적으로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가 방류 문제에 발벗고 나서서 한국 시민단체, 언론, 정치권 등등과 대신 싸워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기시다 내각도 방류 문제와 관련 주변국들을 달래기 위해 대응책을 세우고 있다. 가짜 정보에 대한 팩트체크 여론전에 힘을 쏟는다든지, 우장하오 주일 중국대사의 방류 계획 철회 촉구에 대해 “사실에 반하는 내용을 발언하고 있다”며 불편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사실 윤석열 정부의 대일 저자세 외교는 국내에서 비판적인 여론이 지배적이긴 한데, 과거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도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오염수 문제에 대해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스탠스였다. 국민의힘 김웅 의원은 5일 페이스북에 게시물을 올리고 “2년 전 우리 당 의원 과반수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반대했다”면서 아래와 같이 풀어냈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오염수 방류에 동조했다. 정의용 외교부장관은 2021년 4월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IAEA 기준에 따른다면 굳이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경화 장관도 “후쿠시마 오염수, 일본의 주권적 영토서 이뤄지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민주당도 문재인 정부의 입장에 암묵적으로 동조했다. 이제 여야가 바뀌니 서로의 입장도 바뀐다. 세상에 방사능보다 더 해괴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야당일 때는 위험하지만 여당이 되면 위험하지 않아진다. 그게 과학이라고 한다. 과학을 얘기하지만 국민이 정치인에게 바라는 것은 과학이 아니다. 그보다는 신의와 공정 그리고 용기다.

 

 

오염수 문제가 어느 순간 정치적 진영논리의 늪에 빠져버렸다.

 

2년 전에 위험했으면 지금도 위험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것이 비과학적 괴담 유포라면, 2년 전 우리는 비과학적이었는가? 그렇다면 괴담 유포자는 바로 우리 아닌가? 지금이 과학이라면 그럼 2년 전의 괴담유포 행위에 대해 먼저 사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2년 전과 비교해 우리가 과학적이게 된 이유와 근거는 무엇인가? 그도 저도 아니라면 후쿠시마 방사능 물질의 반감기는 고작 2년인가? 그때와 지금이 같지 않으면 국민은 정치를 믿지 않는다. 밥 한 공기 먹고, 회 먹고, 수조물까지 먹어도 국민은 정치인을 믿지 않는다. 오염수를 희석하면 안전해질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치는 희석되지 않고 더욱 농축되어 간다. 희석되지 않는 정치인의 진영논리는 방사능보다 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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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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