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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정치? "모두가 정치 경험 쌓는 생활정치센터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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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정치인’ 또는 ‘국회의원’이라고 하면 어떤 스테레오 타입의 인물이 떠오르는가? 아마 십중팔구는 50대 남성일 것이다. 실제 국회의원 300명 중 80% 이상이 그렇다. 여전히 정치는 뭔가 나이가 많고, 잘 나가는 사람들이 해야 한다는 편견이 있다. 유럽에서는 중학생 때부터 정치 교육을 받고 어린 나이에 직접 정당 가입을 해서 활동을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청년들의 정치 참여는 요원하다. 물론 헌정 사상 최초로 30대 제1야당 대표(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나오긴 했지만 그건 이 대표와 같은 월등한 인물이 이뤄낸 매우 특수한 사례다. 여러 청년 정치인들은 지금 필드에서 분투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공진성 교수(조선대 정치외교학과)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점점 대학 내 운동권 세력이 쇠퇴하게 되면서 청년들의 비교우위 의식이 약화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공 교수는 10월28일 저녁 광주 동구에 위치한 YMCA 무진관에서 개최된 <청년의 정치 참여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 토론회에 참석해 발제문을 발표했다.

 

과거에는 청년들이 학생운동을 하며 “독재에 저항하는 정의로움”이란 비교우위 의식을 갖고 정치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 세대들은 극심한 경쟁사회에서 취업 준비 등 자신에게 주어진 생존게임에서 살아남느라 바쁘다. 소위 586세대(1960년대생으로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세대)는 자신들이 선점한 비교우위를 내세워 직업 정치인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지금의 청년 세대는 그런 비교우위가 없기 때문에 당연히 정치에 관심이 덜하다. 공 교수는 이에 대해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밝혔다.

 

공 교수는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청년들은 커다란 정치 이슈가 있을 때 광장에 나와 자신들의 목소리를 크게 내지른다”면서 요즘 청년들이 아예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다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자기 일에 몰두한다”는 것이다. 

 

공 교수는 왜 과거의 대학생들이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는지 풀어냈다. 일단 그 당시 40~50대에 비해 △그나마 한가했고 △지식이 있었고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웠다. 아무래도 80년대 당시 대학생이라면 지금처럼 대학 진학률이 높지 않았을 때라 상대적으로 지성인 취급을 받았다. 또한 아직 공부하는 신분이라 경제적 이해관계가 없었다. 먹여 살릴 처자식이 있는 시기가 아니다.

 

공 교수는 이를 두고 고대 그리스의 시민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고대 그리스 폴리스에서 직접민주주의를 영위하며 살아갔던 시민계급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다. 생산과 관련 육체적으로 고된 노동은 노예가 전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청년은 30~40년 전의 청년들과는 너무나 다른 처지에 놓여 있다. 하늘과 땅 차이다. 일단 요즘 청년들은 너무 바쁘다. 취업 준비만으로도 너무 바쁜데 학점도 챙겨야 되고, 과제도 해야 한다. 알바는 덤이다. 그리고 아직 사회에서 제대로 자리 잡지 못 해 불안하다. 이것은 경제적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먹고살 걱정으로 인해 모든 정신적 에너지가 저당잡힌 것이다.

 

공 교수는 “바뀐 것은 청년 자체가 아니라 청년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정치적 환경”이라며 “정치를 직업으로 삼으려는 청년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인구 구조가 많이 달라졌다.

 

공 교수는 “현재 출산율이 1명 이하로 떨어져 있다. 태어나는 인구는 거의 없는데 의학의 발달로 중노년층 인구는 오래 산다.  결국 점점 인구 그래프가 역삼각형 모양으로 변하고 있다”며 “청년층이 직업 정치에 진입하려고 해도 그 위에 중노년층 정치인들이 확고하게 벽처럼 자리잡고 있어 진입이 힘들다”고 주장했다.

 

 

정치인이 되겠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도박판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 너무나 불안한 베팅이다. 그러나 인지도를 잘 쌓고 자리만 제대로 잡는다면 소수의 ‘철밥통’이 될 수도 있다.

 

공 교수는 “직업 정치의 영역에는 정년이 없다. 건강만 하면 죽을 때까지도 할 수 있다”며 “인생 이모작, 삼모작 정치인들이 많다. 지금 국회에 있는 분들은 잘 보면 원래 전문직으로 있다가 당선되어서 입문하거나 공무원 출신이 정년 퇴직후 인생 이모작 격으로 정치에 입문한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꼬집었다.

 

특히 군단위 시골로 내려가면 이런 현상이 더 심하다. 군의원과 도의원은 어디서 본 사람만 계속 나온다. 군민 유권자들은 “인물이 없다”는 말을 참 많이 한다. 지역 정치는 “고인물들”의 먹잇감이 된지 오래다. 사실 중장년 유권자들은 인생 이모작 정치인을 선호하는 측면이 있다.

 

왜냐면 “사회적 지위가 있고, 고시 출신에 학벌이 좋기 때문에, 유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문제는 “그들이 과거에 몸담았던 기관의 로비스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공 교수는 “유권자의 니즈에 맞춰서 행정을 통제할 생각보다, 자기가 몸담았던 행정의 논리대로 정치를 하려 한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현대 국가가 가지고 있는 맹점 중 하나”라며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를 인용했다.

 

즉 “일종의 관료제라고 하는 강철 우리에 갇혀 보기에는 굉장히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자유를 위협하고 꼼짝달싹 못 하게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관료제에 압도되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좋은 정치인들이 시스템을 새로 구축하면 된다. 

 

공 교수는 “행정이라고 하는 거대한 국가기구를 통제하고 주권자인 국민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그런 강력한 리더쉽을 갖춘 정치인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정치인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며 “요즘 같은 고령화, 수도권, 지방 양극화 시대에 행정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는 청년 정치인들을 길러낼 수 있을까?”라고 화두를 던졌다.

 

이어 “정당 외에는 그런 정치를 가르칠 마땅한 장소, 기관, 학교가 없다”고 덧붙였다.

 

 

공 교수는 “정치인을 길러내는 데 있어 시민사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피력했다. 정치적 올바름의 관점에서 무엇이든 비판부터 하고 보는 도덕적-윤리적 잣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옳은 말을 하고 옳은 정치를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 정치에서 유권자에게 얼마나 효능감을 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공 교수는 “현대 정당은 자유주의적 정치관에 근거하고 있다. 기능적 분업의 원리에 충실해서 정치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자신들과 이해관계가 맞는 당원들의 지지와 후원에 힘입어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방식으로 집권 경쟁에 뛰어드는 것”이라며 “이런 전문화와 직업화의 경향을 거스를 수 없다. 호남의 시민사회가 가진 반정당적 편향이 극복되어야 한다. 우리의 반정당정치적 성향이 역설적으로 철새 정치인을 낳는다”고 역설했다. 

 

이어 “정당정치에 실망하여 정당 바깥의 시민사회에서 희망을 찾는 것은 일종의 현실 도피“라며 “시민사회에서 거대한 관료기구를 통제할 유능한 정치인을 길러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정당을 통해 일찍부터 정부와 현실 정치를 경험하는 것이 미래의 정치인에게는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따.

 

일종의 정치 훈련은 훨씬 더 정교한 시각과 책임성을 갖춰가는 정당 활동을 통해야만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

 

 

물론 정당에 소속될 경우 진영논리에서 자유롭지 못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그렇다고 정당의 기능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무조건 “진영논리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생각은 역설적으로 현실 정치의 플레이어로 참여 하는 것에 또 다른 편견과 두려움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밖에도 공 교수는 청년 정치가 활성화되려면 저변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했다. 스포츠를 예로 들자면 생활 체육 저변이 넓은 나라일수록 뛰어난 스포츠 선수가 많이 나올 수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일부 시민들은 ‘기초의회 무용론’을 말하곤 하는데 공 교수는 반대로 “기초의회를 없애지 말고 모든 시민이 정치를 경험할 수 있는 일종의 생활정치센터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과거 중학교에서 순번제 반장처럼 아예 마을 단위에서 기초의원을 돌아가면서 경험해보자는 것이다. 물론 이에 맞는 권한과 책임 수당이 주어져야 한다. 관련해서 최근 미래당은 동장 직선제와 동의회 구성을 대안으로 내세웠는데 공 교수는 뒤풀이에서 이에 대해 “왜 직접 해보지 않고 누굴 뽑으려고만 할까”라는 반응을 보였다.

 

끝으로 공 교수는 “일견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더 많은 청년들이 뛰어들고 그러다가 정말 국가와 공동체의 운명을 책임질 위대한 정치가가 탄생할 수 있다. 이건 우리 모두의 과제”라며 “동시에 프로 정치인은 정당에서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하고 그 사람들이 정말로 삶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도록 정당을 통해서 뒷받침을 해주는 것이 병행돼야 우리 대한민국의 정치적 미래가 밝을 것”이라고 설파했다.

 

 

토론을 맡은 정다은 부단장(민변 광주전남지부 공익변론단)은 “우리 부모님은 대학을 나오셨지만 운동권으로 분류되는 세력은 아니었다. 그저 가화만사성이 목표였다”며 “그래서 나는 대학만 잘 가면 좋은 직장을 얻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 편안한 인생을 살 것이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을 들으며 살아왔고 운동권은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이렇게 나처럼 오늘날의 청년은 민주 정부 하에서 부모의 구체적인 교육과 지원을 받으며 청소년기를 보낸 뒤 사회로 배출되었다”며 “오늘날의 청년은 정치를 통해 안정된 직장과 평온한 삶을 얻을 수 있다는 경험을 많이 하지 못 했다”고 말했다.

 

정 부단장 부모의 양육 방침과 같이 “공부만 열심히 하면 평온한 삶이 보장된다“는 가르침을 교육과정 12년 내내 듣고 자란 세대가 요즘 청년들이다. 역설적으로 다들 그렇게 치열하게 공부만 하다 보니 더 불안해지기도 한다. 사실 이럴 때일수록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에서 한물간 조폭 양아치 동철(박중훈 배우)은 취업 준비로 힘들어하는 세진(정유미 배우)에게 “우리나라 청년들은 너무 착하다. 뭐 뉴스 보면 유럽에서는 청년들이 일자리 달라고 깽판치고 별 지랄을 다하던데”라며 “취업 안되는 거 니가 못 나서 그런거 아니”라고 말해준다.  

 

동철은 그런 방식으로 세진을 위로했다. “그래 니 잘못이 아니”다. 동철은 취업난이 사회구조적인 문제임을 간파한 것이다. 아무리 스펙을 열심히 쌓고 공부를 열심히 해도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정 부단장은 “이명박 정부에 이르러 청년들이 촛불 시위를 경험함으로써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게 되었다. 청년의 정치 경험이 실제 정치에 참여하는 원동력으로 변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다”며 “교육 수준과 지적 수준이 높은 청년들은 정치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순간 집단적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트리거만 있다면 청년들의 정치 참여는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

 

다만 정 부단장은 “청년들이 정치의 필요성을 조금 더 빨리 인식하도록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면서 “청소년 시절부터 정치 경험의 기회를 많이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정 부단장은 “정당법에서 정한 18세 당원 가입 연령을 하향하고 각 정당에 청소년 조직의 형성, 유지, 관리를 담은 배양의 의무를 부여해서 청소년 정치 세력을 양성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이런 방법으로 배양된 정치 준비세력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청년 정치 세력의 인적 충원, 이슈 형성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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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욱

안녕하세요.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입니다. 권력을 바라보는 냉철함과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겠습니다. 더불어 일상 속 불편함을 탐구하는 자세도 놓지치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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