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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국회’가 헛소리로 전락하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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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양당 원내대표가 만났으나 빈손으로 끝났다. 사전에 양당 원내수석부대표끼리 만나서 7월 임시국회를 10일부터 여는 것에는 합의를 했지만 언제 닫을지에 대해서는 원내대표급 협상으로 남겨뒀던 것이 합의 불발로 귀결됐다. 이번에는 임시국회 종료일이 문제가 되지 않았고, 굵직한 현안들에 대한 야당의 요구사항이 여당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눈치였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와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는 13일 오후 김진표 국회의장 주재로 의장실에서 회동했다. 수석부대표들의 만남에서는 일단 7월 임시국회를 열어놓고 18개 상임위원회에서 다룰 법안들에 대해선 가급적 언급을 자제했는데 두 원내대표는 만나자마자 본론부터 꺼냈다.

 

먼저 윤 원내대표는 “6월 국회에서도 민생 법안 처리가 상당히 지연되고 실적도 기대에 미치지 못 했다”며 “(7월 임시국회에서는) 쟁점 없는 법안들을 많이 처리해야 할 상황”이라고 입을 뗐다. 윤 원내대표가 무쟁점이라고 생각하는 법안들은 보호출산제법과 학자금 무이자 대출법 등이다. 후자는 민주당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국민의힘 의원들과 협상하지 않고 단독으로 통과시킨 법안인데, 윤 원내대표는 내용에 대해 이견이 없으니 어렵지 않게 통과시킬 수 있는 법안으로 인정해줬다. 불만이 없진 않겠지만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의 협조를 받아 7월 임시국회를 빨리 열어서 상임위별 무쟁점 법안들을 통과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다. 특히 윤 원내대표는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소관 우주항공청 설치 특별법에 대해 “국민적 기대가 있는 법안”이라며 7월 안에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기본적으로 윤 원내대표는 윤석열 정부가 집권하는 동안 국회에서 통과되는 법안들이 모두 정부여당의 성과로 남을 수 있다는 노림수를 갖고 있다. 통상 여당 원내사령탑이 갖고 있는 협상 기조라고도 할 수 있는데, 야당의 대여 투쟁을 디펜스하기 위해 국회를 닫아놓는 강성 여당론으로 가지 않고 웬만하면 국회를 열자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반면 박 원내대표는 “윤 원내대표가 세세히 말씀해준 것에 고맙게 생각하고 공감하는 바가 있고 얼마든 협의해서 접점을 찾는다는 기대가 있다”면서도 이미 윤석열 정부가 시행령으로 마무리지은 ‘공영방송 수신료 분리 징수’ 문제에 대해 새로운 요구사항을 내놨다. 의장 산하에 ‘수신료공론화징수위원회’를 설치해서 수신료 징수 방식, 비용 부담 비율 등을 놓고 재논의하자는 것이다. 이미 민주당 윤영찬 의원은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해놨는데 전기요금에 KBS 수신료를 합산 청구할 수 있도록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정부여당이 시행령으로 전기요금과 수신료를 분리 납부할 수 있도록 밀어붙였는데 곧바로 맞불을 놓은 것이다. 나아가 박 원내대표는 방송 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을 본회의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민주당은 이미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법제사법위원회에 올라간 방송 3법을 본회의에 직회부했고, 이에 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상태다.

 

 

공영방송의 중립성과 방송법 문제는 아시아경제 박준이 기자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은 분석 기사를 정독하면 쉽게 파악할 수 있는데, 여야가 공수 교체에 따른 내로남불적 태도를 가장 심하게 보여주는 화약고 같은 쟁점 이슈라고 할 수 있다.

 

현행 공영방송 이사회(주로 KBS와 MBC)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추천한 이사들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으로 구성되는데 여당몫 3명, 야당몫 2명으로 짜여져서 사실상 대통령 맘에 드는 인물이 공영방송 사장으로 선임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 입장에서 정권교체 이후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MBC·KBS 사장이 낙하산으로 꽂히지 않았다. 그래서 불만이 많은데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처럼 권력기관을 동원해서 무자비하게 사장을 내쫓고 낙하산을 꽂기에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여권이 대신 선택한 우회로는 △수신료로 KBS를 때리고 △“바이든 날리면”과 같은 정권에 불리한 보도를 문제삼아 MBC를 배척하고 △여당 내 미디어 모니터링 조직을 만들어 조금이라도 불리한 보도가 나오면 “좌파 편향”이라고 항의하는 것 등등이다.

 

반면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가 집권할 때 고안해놓은 특별다수제 모델(공영방송 이사회 정수를 13명으로 확대하되 여당몫 7명, 야당몫 6명으로 해서 3분의 2 찬성으로 사장을 선임할 수 있도록 함)을 내세워서 야당이 반대하는 인물이 공영방송 사장으로 선임되지 못 하도록 하려 했는데 막상 문재인 정부가 집권하자 입을 씻고 모른척했다. 그때는 오히려 자유한국당이 특별다수제 법안을 처리하자고 민주당을 압박했다. 다시 정권이 교체된 지금도 그렇고 문재인 정부 재임 때도 그렇고 민주당이 개발한 논리는 이런 거다. 공영방송 이사회 정수를 21명으로 늘리되 여야 포함 국회몫 5명, 미디어학회몫 6명, 시청자위원회몫 4명, 방송관련협회 3곳 각각 2명씩 6명 등으로 구성해서 여권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운 공영방송 사장을 선임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힘 입장에서 어차피 물러나게 될 현 MBC·KBS 사장의 다음 주자를 최대한 여권 편향적인 인물로 앉혀야 하기 때문에 방송 3법에 절대 동의해줄 수 없다.

 

 

민주당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방송 3법과 노란봉투법 등을 본회의에서 단독 처리할 기세다. 그럴 능력도 있다. 그렇게 되면 윤석열 대통령이 또 다시 거부권을 행사하게 될 것이 불보듯 뻔하고 그렇게 정국은 살얼음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김 의장은 “정치가 국민에게 추가적인 걱정거리가 돼선 안 된다”며 “노란봉투법과 방송법은 양곡관리법과 간호법의 전례(거부권으로 좌초)를 거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라고 당부했다. 박 원내대표에게 일방적인 처리를 삼가해달라고 요청한 셈이다. 물론 김 의장도 민주당 출신이기 때문에 수신료 문제와 방송 3법에 대해서는 사실상 민주당의 입장에 서서 “결국 KBS·MBC와 같은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성을 방송법을 통해 어떻게 제도적으로 보장하느냐가 (정리되면) 원천적으로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했다.

 

사실 더 뜨거운 화약고는 내년 총선에서 적용될 선거제도를 바꾸는 일이다. 이날 두 원내대표는 하루 빨리 협상을 마무리짓자는 원론적인 메시지만 주고 받은 채 아무 소득없이 헤어졌다.

 

윤 원내대표는 “양당 정개특위 간사와 수석부대표(2+2 협의체)가 지속적으로 만나고 있지만 아직까지 속도를 못 내고 있다. 우리 당에서도 빨리 입장을 정리해 의장이 추진하는 취지에 맞는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언했고 박 원내대표도 “극단적 대립 정치를 해소하기 위해 중차대한 과제에 대한 답을 양당과 국회가 찾아내야 한다는 절박한 인식이 있다”고 호응했다. 김 의장은 아래와 같이 주문했다.

 

선거법 개정이 7월 중 끝나야 8월 중 정개특위에서 선거구 획정을 마무리 지을 수 있고, 9월 정기국회부터는 다른 의안 처리에 들어가야 한다. 정기국회에 일단 들어가면 선거법을 다룰 가능성이 없어서 또 다시 예전처럼 선거가 임박한 시기까지 늘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이달 말까지 정치적 합의를 완전히 내려주기를 바란다.

 

김 의장이 백날 당부해봤자 안 지켜질 가능성이 높다. 4년 전 21대 총선 때도 넉달 남겨둔 연말에 겨우 통과됐는데 이번에도 2023년 연말이나 내년 초에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두 원내대표는 7월 임시국회의 종료일과 회기 일정 등 구체적인 스케줄에 대해 합의하지 못 했고 공개 회동을 마치고 30분간 비공개로 대화를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둘 다 기자들에게 “큰 틀에서 공감하는 바가 있다”는 메시지를 냈기 때문에 조만간 양당 수석부대표가 추가 협상을 진행해서 타결시킬 것으로 점쳐진다.

 

사실 민주당은 과거 2020년 총선에서 180석 대승을 거둔 직후 “일하는 국회”를 밀었다. 일 안 하는 국회보단 일하는 국회가 더 낫다. 당연한 말이지만 여기에는 민주당이 문재인 정부 후반기에 국회 의석까지 압도적으로 차지했으니 본인들이 원하는 법안들을 빨리 통과시키기 위해 제1야당(미래통합당)의 발목잡기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소수 야당의 반대를 무마하기 위한 프레임으로 일하는 국회를 내세운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은 실제로 구호만 외친 게 아니라 제도화를 추진하려고 했다.

 

①법적 근거없는 상임위원회와 법안소위(법안심사소위원회)의 ‘만장일치제’

②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 권한 축소

③회의 일정 협상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상시국회’

④안건 논의 순서

⑤소속 상임위원의 지속성 보장

⑥심사기간 단축

⑦입법 활동보다 지역구 활동에 치중하는 문제 개선

 

이중에서 입법화가 된 것은 거의 없고 ​③과 관련있는 ‘월 3회 이상 법안소위 개최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일하는 국회법이 여야 합의로 통과되어 2021년 3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2년이 지나도록 월 3회 이상 법안소위를 개최한 상임위원회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심지어 2022년에는 운영위원회 법안소위가 1년간 0번 개최됐다. 외교통일위원회, 정보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는 꼴랑 두 번 개최됐다. 법률에 따라 전체회의도 월 2회 이상 개최해야 하지만 공염불이 됐다. 일하는 국회법이란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데 2021년 17개 상임위의 법안소위 개최 횟수는 총 274회인데 반해 2022년에는 122회로 급감했다. 아무리 대선과 지방선거가 있었다고 해도 절반도 안 되는 법안소위 개최 횟수는 한국 정치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상임위별 계류되고 있는 법안들도 2022년 기준 평균 800건에 달한다.

 

 

문제는 일을 안 하는 국회가 아니라, 상대의 일이 안 되도록 ‘공격하고 방어하는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 한국 정치의 구조다. 1등만 당선되는 지역구 선거 위주(지역구 253석+비례대표 47석)의 총선 선거제도로 인해 거대 양당은 잘 하면 독식이고, 못 해도 제1야당의 지위를 보장받는다. 1표만 더 받으면 되기 때문에 상대를 저주하는 방식으로 정치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비슷한 패턴을 밟게 되는 건데 통상 국회 사이클을 보면 야당이 정부여당을 궁지로 몰아넣을 이슈들을 발굴해서 문제제기를 강하게 하면 여당이 디펜스하며 반격하는 식이다. 야당의 협상력은 국회를 보이콧해서 멈춰놓는 것이고 다시 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갖고 여당과 줄다리기를 해서 원하는 걸 쟁취한다.

 

야당 입장에서 보면 항상 국가적으로 너무나 중요한 사안들이 눈앞에 들이밀어져 있어서 지금 당장 정부여당의 잘못을 시정시키지 못 하면 국회를 멈추는 것이 당연하다. 수신료 문제, 오염수 공방, 양평 고속도로 논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원래 정치가 이해관계의 차이를 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생각이 달라서 싸우는 건 사실 자연스럽다. 하지만 국회에는 온갖 의제들이 넘쳐나는 만큼 쟁점과 무쟁점을 분리해서 후자만 상시적으로 논의하고 처리하는 시스템과 문화가 존재해야 하는데 한국 정치에는 그런 게 없다. 무쟁점 사안들을 포함해서 국회 전체를 스톱시켜야 야당의 협상력이 올라가고 정부여당의 성과를 조금이라도 자빠트릴 수 있기 때문인데, 요즘에는 이례적으로 많은 의석을 점유하고 있는 거대 야당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원하지 않는 법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켜버리는 패턴이 굳어져버렸다. 원래 대통령의 거부권은 아주 드물게 행사되는 것인데 민주당의 일방 독주는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는 형국이다.

 

 

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양당이 선거 승리에만 매몰되어 있다 보니 역설적으로 “제대로 일하는 정치”가 어렵다고 설파했다.

 

한국 정당들은 늘 이렇게 얘기해왔다. '우리에게 과반수를 달라, 해결하겠다.' 지금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내년 총선에서 우리가 과반수를 얻고 승리하면, 대한민국을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은 그동안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 과반수도 줬고, 권력도 줬었다. 180석 줬는데 제대로 한 게 없다는 불만이 일리가 있다. 한국 정치가 민생을 위해서 제대로 일하는 정치, 일하는 국회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인가. 한국 정치에 부족한 건 과반수 권력이 아니다. 대화와 타협의 역량이다. 합의와 승복의 문화다. 국가 건설 초기에는 권력만 있으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박정희 시대가 그랬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지금은 대통령 권력이든, 과반수 권력이든, 권력이 있다고 다 따라오지 않는다. 시장과 시민 모두 커지고, 다양해지고, 똑똑해졌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하고 승복하지 않으면, 제대로 결정하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지금 한국 정치에 절박한 건 총선 승리, 과반수가 아니다. 민생을 바꾸고 변화와 개혁에 성과를 내는 정치가 되려면 대화와 타협의 역량이 필요하다. 결정하고 합의하고 승복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그래서 김 의원은 “단독 과반수는 지지율에 비해 초과 의석이다. 지지율 40%로도 의석수는 과반수를, 운이 좋으면 180석 60%까지도 차지할 수 있다”며 “다수파는 착시를 일으키고 독주하게 된다. 그 초과 의석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상대방은 승복하지 않는다. 결사적으로 발목을 잡게 되어 있다”고 정리했다.

 

결국 단독 과반수 정치는 일은 제대로 못 하고, 독주와 발목잡기의 악순환에 빠진다.

 

 

단독 과반수의 승리만 추구하게 되는, 다시 말해 다 먹고 싶은 양당의 욕심을 부추기는 현행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 일하는 국회를 만드는 근본적인 열쇠다. 양당 원내대표가 합의하지 않아도 수많은 현안들을 논의해야 하는 국회가 멈추지 않도록 선거제도를 제대로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처럼 선진국들 중에서 유사한 거대 양당제가 유지되고 있는 미국, 일본, 영국 등만 승자독식 소선거구제 위주의 선거제도를 갖고 있다.

 

호서대 이기영 명예교수는 “(한국 정치의) 소선거구제, 대통령 중심제 정치체제가 가장 큰 문제”라며 “세계 정상의 행복 국가들은 대부분 극한 대결 대신 소수 의견까지 존중하는 북유럽에 위치한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나라들”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젠 사표를 줄이고 서로 간의 합의를 통해 국정을 펼쳐 나가야 되는 비례대표제 선거제도를 확대·강화해 나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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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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