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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이 ‘부모와 교사’ 전화번호 쌍욕으로 저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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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권일용 겸임교수(동국대 경찰행정학과)는 “범죄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 그 사회를 투영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범죄 양태는 공동체의 변화와 따로 떨어져서 형성되는 게 아니다. 현금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줄었기 때문에 물리적인 강도 범죄가 희박해고 보이스피싱 등 디지털 범죄가 급증한다. 1980~90년대에는 이유없는 살인이 드물었고 범죄 동기도 명확했지만 90년대 초중반부터 등장한 지존파와 막가파는 기존의 살인마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사회의 변화와 범죄 양태는 같이 가는 것이다.

 

 

권 교수는 지난 5월24일 15시 전남 함평군 함평읍에 위치한 함평엑스포공원 주제영상관에서 강연(1편 기사)을 했다.

 

권 교수는 “강도들이 개과천선해서서 어디로 사라진 것이 아니고 우리의 스마트폰 안으로 들어왔다”며 “그게 사이버 범죄다. 디지털 범죄”라고 강조했다. 보이스피싱과 스미싱이 기승을 부리는 배경이 있는 것이다. 나아가 권 교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일어나는 가스라이팅이나 그루밍 범죄들이 진화하고 발전해서 스마트폰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경종을 울렸다.

 

그래서 물리적으로 ‘문단속’을 하는 것 못지 않게 개인정보보호를 철저히 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주소,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 등은 그나마 우리가 잘 보호하고 있다. 권 교수가 주목하는 개인정보는 집으로 가는 동선과 이동 경로, 좋아하는 색깔과 음식, 친한 친구, 성격 등 사람의 취향과 관련된 정보들이다. 권 교수는 보이스피싱범들이 “이런 걸 한 두달 잘 모아서 오프라인으로 찾아올 수 있다”며 “일주일간 온가족이 일본으로 여행 간다고 인스타에 올리는 것은 어찌보면 집을 다 털어가라고 광고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인스타 뒤지고 구글링만 하면 사는 곳을 충분히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문화에 이런 게 있다. 지하철 타고 이동하다 보면 제 옆에 중년 여성 3명이 앉아서 수다를 떠는데 금방 세 집에 요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 알게 된다. 알고 싶지 않아도 다 알게 된다. 우리는 그동안 친한 친구와 밖에서 만나면 그래야 되고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지나가다가 누구 만나면 어디가? 뭐 먹으러 가? 이런 걸 묻는데 그걸 왜 물어보는지 모르겠다. 오랜만이야 반갑다고 인사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정보들을 순식간에 노출해버리는 게 익숙하다. 아이들이 이런 걸 보고 배우는 것이다. 위험하게 노출되는 사소하게 생각했던 이런 개인정보들이 날 위협하고 있고 (피싱범들이) 그 틈사이를 파고드는 것이다.

 

친한 친구와의 진솔한 대화 자체를 하지 말라는 게 전혀 아니다. 이렇게 모든 걸 발설하는 대화 방식에 익숙해져서 말하지 않아도 되는 대상에게까지 무심코 술술 불게 되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 권 교수의 취지로 해석된다.

 

권 교수는 2021년에 일어난 노원 세 모녀 살인사건을 거론하며 “말도 안 되는 끔찍한 범죄가 사실 택배 송장이라든지 SNS에 올렸던 친구 이름, 어느 동네에 사는지 알 수 있는 특징들을 다 조합해서 찾아간 것”이라며 “이렇게 내가 갖고 있는 취향 정보를 조심하고 서로 서로 마음을 잘 단속하는 것이 이러한 디지털 범죄나 스토킹 범죄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사실 청소년들이 바보라서 어리석어서 가스라이팅과 그루밍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굉장히 교묘하고 치밀해서 한 번 타겟이 되면 빠져나오기가 어렵다.

 

한 여고생이 성인 남성에게 6개월간 디지털상에서 그루밍을 당해서 오프라인에서 만나 성관계까지 맺었다. 이건 명백한 미성년자 성폭행이다. 경찰과 검찰이 재판에 넘겼는데 법정에서 피해자인 여고생이 강압적인 관계가 아니었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증언했다. 그걸 듣는 우리 어른들의 심정은 가슴이 정말 찢어진다. 이미 세뇌되어 가해자를 두둔하고 있다. 그루밍 범죄가 이렇게 위험하고 무섭다. 정서적 빈 공간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다. 범죄자들은 한 달, 두 달, 6개월, 1년에 걸쳐 접근하고 세뇌시켜서 법정에서 자기를 두둔하게 만든다.

 

그래서 권 교수는 청소년들이 그런 디지털 범죄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노출되며 얼마나 취약한지 연구해야 하고 일반 시민들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요즘 청소년들의 문화와 생각을 알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요즘 우리 주변 청소년들에게 각종 범죄들이 굉장히 밀접하게 다가와 있는데 우리는 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 애들은 안 그래. 내가 30년간 경찰 근무하며 청소년들이 잘못해서 부모가 경찰서에 오면 하나 같이 우리 애는 착한데 친구를 잘못 만나서 그랬다고 말한다. 그만큼 우리는 청소년들의 삶을 모른다. 내 자녀가 집에서 보인 모습과 밖에서의 모습이 아예 다르다는 걸 모른다.

 

 

사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변호사나 판검사도 피싱 범죄로부터 자유롭지 않을 정도로 수법이 아주 치밀해졌다.

 

올초 총기 관련 미국 LA 세미나에 다녀왔는데 그때 느닷없이 해외에서 79만원이 결제됐다는 문자가 왔다. 나도 그때 문자를 보는 순간 바쁘다보니 (여행사에 직접 물어보지 않고) 이 인간들이 나한테 말도 안 하고 무슨 결제를 한 거야. 그리고 그 날라온 링크에 손끝이 거의 닿았다. 정말 접속만 안 됐지 사실 손이 닿았다. 그때 깨달았다. (프로파일러 출신 경찰이었던) 나도 이런데 아무리 피싱 범죄 예방하자고 하고 조심하라고 해도 정말 순식간에 당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 정말 피해자들 비난하면 안 된다. 조심하지 않았냐고 비난할 필요가 전혀 없다. 우리가 사기 피해자들에게 욕심에 눈이 멀어서 확인도 안 한 피해자 탓도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우리 서로 이렇게 피해자를 비난하게 되는 것이 바로 사기꾼들이 노리는 것이다. 그놈들이 만든 교묘한 계략에 당한 피해자일 뿐이다. 정말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짓 하지 말아야 한다.

 

요즘 언론에 보면 청소년들이 도박과 마약에 과도하게 노출돼 있어 심각한 상황이라는 뉴스를 접하게 된다. 그런데 권 교수는 청소년 전체를 그런 식으로 싸잡아서 단정하는 것을 경계하며 “인지적 휴리스틱일 수 있다. 주변에서 2~3명 정도만 일탈했던 사례를 접하고 요즘 다 그런 것”이라는 착각을 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정말 잘 걸어가고 있다. 이런 판단들이 왜 일어나냐면 잘 모르기 때문이고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권 교수는 서울 강남권 사교육업계 인사로부터 직접 들었던 충격적인 이야기를 소개했다.

 

청소년들이 스마트폰에 상상조차 하지 못 할 심한 욕으로 누군가를 저장해놓는다. 아주 심한 쌍욕으로 전화번호를 저장해놨는데 그 대상이 누구냐면 자기 엄마와 아빠다. 그리고 선생님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 말라고 했는데 요즘 꽤 많은 청소년들이 그러고 있다는 것이다.

 

초중고 12년간 자기 욕구와 의사가 항상 유예되기만 하는 것이 청소년들의 삶이다. 파도처럼 생각과 성향이 급변하는 청소년기에, 인격적으로 존중 받지 못 하고 맨날 가정과 학교에서 해야 하는 숙제들에 놓여 질식할 것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데 그걸 주도하고 있는 주체가 바로 부모와 교사다. 겉으로는 존댓말을 쓰며 따르는 것 같지만 전화번호 이름으로라도 분노를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권 교수는 청소년들이 처한 환경을 탐구해야 하며 “본질을 찾아야 된다”고 역설했다. 지금의 중고등학생이 15년 전에 “흉악한 악마들”로만 태어난 게 아니기 때문에 도대체 그동안 사회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고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깊게 이해해야 한다.

 

(200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15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다양한 얘기들이 있겠지만 나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그 15년간 우리가 되게 힘들었다. 어른들이 너무나도 치열하게 경쟁했고 살아남기가 힘든 세상이 돼 버렸다. 어른들이 힘들면 아이들도 힘들다.

 

 

권 교수는 인간이 갖고 있는 자아에는 내 모습 그대로의 ‘실존적 자아’와 사회가 요구하는 걸 수용하고 이행하는 ‘당위적 자아’ 2가지가 있다면서 전자와 후자의 틈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내가 부모의 자식으로서 열심히 공부해야 되고 성적도 높아야 되고 사회에 나가면 취직도 잘 해야 되고 뭔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밟아가야 된다고 하는 (당위적 자아에서 오는) 사회적 압력이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근데 (실존적 자아는) 따로 있다. 그나마 예전에는 (이 두 자아가) 비슷하게 균형을 이뤘다. 열심히 노력해보고 안 되면 다른 길로 가면 되지! 그러니까 다른 노력을 해도 그 자체로 괜찮았는데 지금은 눈에 보이는 성과와 효율이 있지 않으면 아무 인정도 받지 못 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자기가 느끼는 스스로의 자아와, 사회가 요구하는 당위적 자아가 너무나 심하게 충돌을 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도 중고생들이 굉장히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시기가 있었는데 이때가 학구열이 가장 높았을 때라고 한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부모와 사회가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부분을 떠나서 스스로 그런 걸 인식하고 부응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던 거다. 어찌됐든 세대간에 각자의 스트레스를 이해하고 해소하기 위해 도와주고 따뜻한 말을 해주고 또 들어주고 기다려주고 이런 것들이 무의미하고 필요없다고 생각되는 시대가 돼버렸다. 사실 이게 우리를 파괴하는 가장 큰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회가 그렇게 변해버렸다. 특히 권 교수는 시대에 따른 범죄 양태의 변화를 짚으면서 크게 2가지 사건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본인이 쓴 책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 다루고 있는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까지의 범죄 양태는 “동기가 뚜렷한 사이”에서 발생했다는 특성이 두드러졌는데 어느 순간 엄청난 전환이 일어났다.

 

그때는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여러분들이 알고 계시는 수사반장 최불암 선생님이 다 잡아오셨다. CSI 프로파일링이 필요 없었다. 동기가 뚜렷하니까 피해자 주변 수사를 해보면 원한을 갖고 있거나 갈등이 있는 용의자를 특정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1993년과 1994년 지존파와 막가파처럼 소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자기 감정을 표출하는 범죄자들이 나타나는 시작했다. 한국 사회의 범죄가 완전히 모습을 바꿨다는 걸 분명히 보여준 시그널이었다.

 

 

지존파와 막가파를 거쳐 정두영(2000년), 유영철(2004년), 정남규(2006년), 강호순(2009년) 등 연쇄살인마가 등장하게 되면서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에 대한 조명이 이뤄졌다. 그 이후 권 교수는 “지존파와 막가파에 버금가는 엄청난 (범죄 양태 변화의) 시그널을 줬던 것”이 바로 조주빈(2020년)으로 상징되는 N번방 사건이라고 환기했다.

 

여성 청소년이나 20대 초중반 여성들이 주요 피해자였는데 권 교수는 "먼저 성범죄가 일어났다. 성착취 영상이 제작됐고 그걸 거래했으니 경제 범죄가 일어났다. 그 다음 피해 여성들은 회복되지 않은 피해 때문에 삶 전체가 파괴되어 집 밖에 나오지 못 하거나 자살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이 죽었다. 조주빈 일당은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았지만 사람을 죽게 만드는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N번방 사건은 사이코패스가 저지를 수 있는 성폭행, 경제 범죄, 살인 등을 다 모아놓은 범죄종합세트였다. 놀랍게도 가해자들은 고등학교에 다니거나 20대 초반의 어린 남성이었다.

 

한편, 권 교수는 도박과 마약에 빠진 사람들이 “현실 도피”를 추구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고 설명했다. 즉 “(도박과 마약을 하는 동안에는) 골치 아픈 것들 잊어버리고 아무 걱정 안 해도 되기 때문에 계속 빠져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권 교수는 이들이 무엇 때문에 “현실을 피하고 싶어하는지 그 근본 원인을 찾아가는 것이 본질적인 해법의 계단으로 올라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권 교수는 “(도박과 마약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호기심 때문에 시작했고 언제든지 끊을 수 있다고 진술한다”면서 “그러나 언제든지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끊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부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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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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