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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자살 특강①] “핵심은 붕괴된 공동체의 문제” 살만한 세상?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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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 지금 이런 조언을 할 때가 아니다. 두 발 딛고 서있는 곳 즉 속해 있는 공동체들이 살만하지 않다는 것이 핵심이다. 청소년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정신과 전문의 안병은 원장(행복한우리동네의원)은 “우리 청소년들은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면서 “핵심은 붕괴된 공동체의 문제다. 살만한 세상이냐. 집이 건강하냐. 학교가 건강하냐”라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은) 돌봄의 공동체인 가족을 부정한다. 가출이다. (어른들은) 가출하는 아이들에 대해 얼마나 불온하게 쳐다보는가. 배움의 공동체인 학교를 부정한다. 탈학교. 어른들이 만든 세상을 부정한다. 자살”이라며 “그러면 어떻게 살고 싶은데? 니가 생각하는 죽음은 뭐니?”라고 물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데 보통 어른들은 아이들이 힘들다고 하면 “살면 얼마나 살았다고 이 자식들이. 니네가 가출을 해? 니네가 학교를 관둬? 자살을 해?”라고 하면서 “불온한 존재”로 취급한다.

 

안 원장은 지난 4일 청년정의당 정신건강위원회 주최로 정의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강연에 연사로 참여했다. 안 원장은 강연 주제를 <청소년 자해, 자살, 그리고 애도>로 잡았다.

 

“헬조선”과 “이생망” 나아가 “자살각”이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고 있다. 청소년·청년층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인데 그만큼 살아가며 버티는 것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안 원장은 “(매년 연초마다 여러 유서들을 받아보는데) 참 노트를 쓰는 문장들을 보다 보면 많이 아프다. 다양한 아픔들이 있구나. 많은 친구들이 너무 힘들다. 핵심은 뭐냐. 사는 게 힘들다”면서 “아이들이 이생망이라고 한다. 10대의 삶이 죽고 싶다. 자살하고 싶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이렇게 채워져 있다”고 환기했다.

 

그렇지만 안 원장은 “분명히 살아가는 삶 속에서 또 다른 삶은 가능하다”며 “이번 생이 망했다? 다른 삶을 살면 안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단순히 힘들어하는 청소년에게 다른 삶을 살아보라고 하는 꼰대적 조언이 아니다. 안 원장은 개명 행위를 “건강한 자살”이라고 비유했다. 개명을 통해 과거의 굴레를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대로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나가고 싶은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 원장은 “(아버지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가 있다면) 농담 아니다. 정말 아버지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바로 자살 연습이다. 은유적 자살과 상징적 자살이 가능하다. 가장 많이 하는 은유적 자살이 뭐가 있을까? 개명이 그렇다”며 “이름 왜 바꾸는가? 촌스러워서? 사회적 악인과 같은 이름이라? 개명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 운명을 바꿔보고 싶어서 그런다. 이건 건강한 자살이다. 근데 이름 바꾸기 전에 나랑 상의 좀 하자. 내가 개명 전문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다. 잘 죽이자. 너 이름만 바꿔선 안 돼. 그때 네가 죽이고 싶은 걸 같이 죽여보자”라고 풀어냈다.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정말 부모를 죽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부당한 개입과 간섭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 부당한 간섭을 죽여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안 원장은 이번에 쓴 의 한 소제목이 “아버지 죽이기”라며 “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를 잘 죽였다면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런 얘기를 썼다. 사도세자는 왜 그랬을까? 내 하나의 생각인데 사도세자를 아버지가 건강하게 잘 죽였다면 그런 비극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죽여야 하는 대상이 아버지일 수도 있지만 학교일 수도 있고 잘못된 교우관계일 수도 있다.

 

안 원장은 좀 더 도발적으로 “(상담을 하다 보면) 가끔 너를 왜 죽이냐? 죽이지 말라는 게 아니라 자살이라는 건 내가 뭘 죽일지 모르니까 내 육체적 존재 자체를 죽이는 것인데 나랑 같이 죽이자. 내가 잘 죽일 수 있게 네 자살 도와주마”라는 말을 건네기도 한다면서 “네가 죽여야 할 게 네 전체가 아니라면 뭘까? 널 괴롭히고 있는 오래된 상처 그 생각 죽여야 돼? 그럼 죽이자. 아버지를 죽여야 되면 아버지 죽이자. 이러면 그 다음주에 누가 와서 아버지를 죽이라니? 따지는 부모가 있다. 그 말 같은가? 얘 아버지 못 죽이면 자기를 죽인다. 학교를 죽여야 될 수도 있다. 그래야 얘가 산다. 그래야 살 수 있다”고 설파했다.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문장을 누구나 이해하고 있지만 어느정도 터부시되는 것도 현실이다.

 

안 원장은 “우리는 어쩌면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는 것을 터부시한다. 금기시하는 것 같다”면서 과거 ‘돈’과 ‘성’에 대한 이야기가 금기였다가 잘못 둑이 무너져서 “포르노그래피적 사회”가 됐듯이 “잘못 터부시되고 잘못 무너지면 원치 않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돈과 성은 부끄러움과 연관된 터부였다. 죽음은 두려움이자 공포다. 그래서 이것을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게 어쩌면 더 불편하고 저항이 더 클 것”이라며 “어쩌면 잘못 무너진 성에 대한 금기가 포르노그래피적 사회를 만들었다면 두려움에 의해서 금기시된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잘못 무너진다면 어떤 사회가 올까. 죽음이 사실 상업적으로 많이 악용되고 있는 현실”이라고 피력했다.

 

예컨대 “보람상조와 같은 상조회사가 넘쳐나고 있다”는 것이다.

 

정작 “죽음 앞에서 우리 삶의 이야기가 사라지는 것 같다. 죽음은 우리 삶의 일부이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죽음의 병상에서 아주 위생적으로 잘 처리돼서 장례식장으로 갔다가 화장터로 갔다가 납골당으로 가는 일련의 시체 처리과정만 남은 건 아닐까”라는 게 안 원장의 진단이다.

 

이런 생각도 해본다. 나도 내 첫 죽음에 대한 경험이 신해철씨의 죽음에 대한 경험과 비슷한 것 같다. 나는 키우던 개가 복날을 맞이해서 죽었는데 아버지는 내게 쥐약을 먹고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게 내 첫 경험이었다. 여러분들은 어떤가? 할아버지를 떠나 보낸 것이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고, 가장 아픈 이별은 어머니를 떠나보냈던 것이다. 최근에 내가 본 외래에서 이런 아이들이 자주 온다. 많이 사랑하던 애완견이 죽는다. 아이가 많이 슬퍼하니까 할머니 딴에는 손녀를 위로하려고 같은 강아지 사줄게. 이렇게 말한다. 이 아이가 이 슬픔이 할머니 말에 더 무너진다. 할머니가 과연 잘못했을까? 서로 몰랐던 것이다. 이런 예가 너무 많다.

 

 

과거 안 원장은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은 한 아이를 상담했는데 그 아이는 기르고 있던 애완견을 떠나보내고 무척 힘들어했다고 한다.

 

안 원장은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서 애완견을 치료해줘야 했었다라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때로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 준비하는 것, 이야기하는 것 등 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이것에 대해 드러내놓고 같이 고민할 누군가가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고 강조했다.

 

지금의 안 원장을 만들어준 세 가지 원동력이 있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운동 △좋은 사람 만남 등인데 먼저 안 원장은 “지금도 삶이 두렵고 죽음이 두렵다. 어쩌면 그래서 의과대학에 갔는지도 모르겠다. 프로이트는 그렇게 말했다. 무의식적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의사가 되고자 하는 꿈을 꾼다”고 말했다.

 

이어 “두 번째는 운동이다. 운동이 날 지탱해주는 힘이 됐다. 오늘 정의당 당사에서 끝나면 사람들과 영등포역까지 같이 걸어가려고 한다. 40분 걸릴 것 같은데 수원역에서 내려서 집까지 걸어가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나 안 원장은 “운동이 정신건강에 얼마나 좋은지 다음에 기회되면 강의를 해보고 싶다”며 “잘 살려고 노력하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그렇게 안 원장은 정신과 의사가 되어 “죽음을 꿈꾸는 아이를 많이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죽음을 꿈꾼다”는 표현이 어색하다.

 

이에 대해 안 원장은 “자살하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들은 실제 죽음의 상태를 원하는데 그 은유적 상태가 뭘까?”라며 “이 친구들이 하나같이 죽음을 뭘로 보느냐? 탈출구로 본다. 해방의 의미로 본다”고 강조했다.

 

안 원장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아이들을 세 가지로 분류했는데 △자살 사고(죽음을 꿈꾸는 아이들) △자해(나도 나를 사랑하고 싶어요) △애도(버거운 숙제로 남겨진 부재) 등이다.

 

안 원장은 “자살을 희망하는 아이들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자해다. 스스로 몸을 해치는 아이들이다. 근데 나도 날 사랑하고 싶다. 이걸 말하고 있다. 자해는 날 사랑하고 싶은데 이것 저것 방법을 다 해봤는데 안 돼서 자해를 해보고 그게 편해졌다. 내가 편해지고자 하는 행동이 자해”라며 “세 번째는 소중한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애완견이 될 수도 있다. 죽음으로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애도 과정에 있는 아이들. 소중한 사람이 없음의 상태”라고 설명했다.

 

 

현재 안 원장은 <아이와 죽음을 이야기하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책을 쓰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아이와 죽음을 주제로 대화할 수 있을까.

 

안 원장은 “여러분은 죽음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나눠본 적 있는가? 외래 진료에서는 숱하게 많이 나눴는데 공교롭게도 그렇게 하면 반 이상이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삶과 죽음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주제”라며 “(힘들어하는) 아이들은 왜 살아야지? 나는 누구지? 삶이 뭐지?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는데 거기서 죽어도 상관없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안 원장 스스로도 “죽으면 왜 안 되고 자살하면 왜 안 되지?”라는 물음에 뭐라고 확답을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만큼 죽음이란 명제는 무척 어렵다.

 

죽어도 상관없다. 죽고 싶다. 자살하고 싶다. 같은 얘기일까? 많은 친구들은 이렇게 살아서 뭐해? 죽어도 상관없지만 죽진 않을거야. 누가 죽여주면 괜찮아. 좀 더 힘들어지면 죽고 싶어진다. 근데 자살하지는 않는 거야. 그러다 자살하고 싶다는 뭐냐. 적극적으로 나를 살해할 의지가 생긴 것이다. 이것은 학문적 분류는 아니지만 왔다갔다 하고 조금씩 의미가 다르다. 나조차도 때로는 죽어도 상관없고 죽고싶고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넘나들 때도 있다. 농담처럼 자살예방센터장이 자살하면 참 모양새 웃기겠다는 표현이 드는데 마치 자살조장방송이 되면 안 되는데 나 자신도 힘들 때가 있다.

 

안 원장은 “내가 정신과 의사 생활을 하면서 자살예방센터장도 했고 자문까지 하면서 아직도 자신있게 죽지마라는 말을 자살예방센터장으로서 자신있게 못 하겠다”며 “왜 자살 하면 안 되나? 자살하라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그렇지만 고민을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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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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