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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칼 맞는 걱정’ 해야 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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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미국에 가면 막연하게 총에 맞진 않을까? 그런 과잉 걱정을 하곤 했는데 이젠 한국에서도 길거리에서 칼 맞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기고 있다. 호신용품을 사고 호신술을 배우고 있다. 뒤에서 갑자기 점프하며 목을 찌르는 조선, 차량을 몰고 인도로 돌진하는 최원종의 범죄 패턴을 봤을 때 개인의 호신만으로 될 일은 아니지만 진짜로 그렇게라도 해야 할 것 같다. 구조와 시스템 등 정책 변경을 통해 무차별 살인 범죄에 대응하는 것이 본질적이겠지만 그런 변화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고 더디다.

 

 

프로파일러 출신 배상훈 교수(우석대 경찰행정학과)는 “두려워서 시민들이 호신용품 사고 그러는데 사실 아무 의미가 없다”며 “일반 여성이 어떻게 삼단봉을 쓸 것인가? 후추 스프레이나 전기충격기 쓰지도 못 하면서 빼면 오히려 뺏긴다”고 말했다. 차라리 호신술을 배워볼 수도 있겠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호신용품을 구입해서 그걸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전문가한테 한 달 정도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게 배 교수의 조언이다. 한국일보 이서현 기자가 전문가들의 팁을 토대로 정리했는데 “검거나 제압이 아닌 회피 목적이라면” △범행을 인지하는 즉시 멀리 도망가기 △막다른 곳에 몰리거나 거리를 벌릴 수 없는 상황이라면 상대방을 가격하지 않고 몸의 중심을 밀쳐 넘어뜨리기 △넘어져서 누워있는 상태가 됐더라도 최대한 발로 범인의 다리쪽을 세게 차서 중심을 무너트려 넘어뜨리기 △어떤 운동이든 체력과 반응 속도를 기르는 걸 최소 3개월~1년 정도 실천하기 등을 기억해야 한다.

 

배 교수는 “공공장소에서 벌어지는 다중을 상대로 하는 범죄에 대한 대비 수칙을 수립해야 한다”면서 “도망가라. 주변 도움을 청하라. 다친 사람을 구호하라. 3가지 원칙을 순서에 따라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심폐소생술, 생존 수영, 화재 기초 대응, 교통사고 예방 등 다양한 안전 상식을 알고 있는 것처럼 이제는 예측할 수 없는 칼부림 범죄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대처법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다.

 

정부가 해야 할 일도 수두룩하다.

 

배 교수는 신림동 살인사건이 벌어졌을 때 경찰청과 법무부가 가장 비겁했다면서 “법무부 보호관찰소는 이런 전과를 알고도 뭐 했는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유감의 설명도 없었다. 신림역에서 칼부림하는데 이걸 어떻게 막는가? 천만의 말씀”이라고 질타했다. 배 교수는 ‘공간 치안’ 개념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내가 뉴욕시 사례를 드는데 뉴욕시와 LA 시내에 왜 기마 경찰이 있는가? 말로 뭘 하라는 게 아니라 높은 곳에서 정보경찰이 보는 것이다. (흉악범이) 칼을 들고 뭔가 하려고 하더라도 경찰이 들여다보고 있네? 그러고 범행을 자제한다. 강남역이든 신림역이든 송파역이든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공간 치안 같은 것이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안 한다. 대안이 없다는 변명만 늘어놓고 아예 말을 안 하고 있다. 공간 치안에서는 너무 무력하다.

 

진행을 맡고 있는 팟빵 소속 김피디는 “우리나라에 CCTV가 많아서 치안이 안전하다고 하는데 이런 유형의 범죄들, CCTV에 찍히든 말든 범행하는 범인들에게는 전혀 의미가 없다”며 “언제든지 내가 제압될 수 있는 위압감을 줄 수 있는 보이는 위치에서 경찰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고민을 안 하고 있다”고 호응했다.

 

실제로 인천경찰청이 2015~2022년 기마 경찰을 운용한 바 있었는데 주로 관광지에서의 이미지 메이킹으로만 활용했었다. 꼭 기마 경찰이 아니더라도 도심 번화가 등에서 갑자기 벌어지는 강력 범죄를 물리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대책을 고민해봐야 한다.

 

또한 최원종이 칼을 휘두르며 백화점 홀을 어슬렁거리고 있을 때 AK플라자 분당점에서 운용하고 있는 CCTV 관제원은 뭘 하고 있었던 걸까? 배 교수는 “누가 칼 들고 다니고 사람이 피 흘리며 쓰러져 있었는데 안내 방송이 없었다”며 “백화점 경비원이 뒤늦게 보고 이리 가라 저리 가라고 우왕좌왕했는데 범인은 그걸 보고 쫓아다녔다”고 설명했다.

 

 

범행을 피하기 위한 개인적 호신과 벌어졌을 때의 치안 체계의 문제점을 다뤘는데, 사실 법무부와 행정안전부, 경찰청 등이 범죄 위험군에 대한 현황 파악도 관리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배 교수는 “가장 핵심적으로는 정신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이라든지 재범 위험이 높은 사람들은 분명히 징조가 나타난다. 조선도 계속 거길 왔다갔다 했는데 왜 관리가 안 됐는가?”라며 “많은 사건들을 다룰 때마다 그런 범인들을 많이 접했을텐데 왜 관리가 안 되는가? 보호관찰관이 1명당 200명 넘게 관리하는데 그 얘기도 지금 몇 년째인가. 책임있는 당국에서 대안을 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3년 대검찰청이 발표한 <묻지마 범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무차별 범죄의 경우 정신질환자, 무직이나 일용직 노동자, 전과자 등이 범인일 때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배 교수는 “(최원종 사건을) 충분히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었다”며 “(2019년 4월 벌어진) 안인득 사건에서도 수많은 대안들이 나왔지만 보면 하나라도 적용이 된 게 없다”고 환기했다.

 

정신보건센터 같은 데서 왜 관리가 안 됐는지 확인을 해봐야 한다. 진단이 나왔고 위험도도 있는데 그것에 대한 관리를 안 하고 약을 안 먹는다고 방치했다. 안인득 사태와 똑같았다. 결국 망상이 누적되니까 범죄로 나타났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에서 방화살인범 안인득 사례를 깊게 탐구한 바 있는데 이에 따르면 안인득은 2008년 생산직 공장에서 허리 부상을 입고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좌절됐다. 그 직후 실직하게 되면서 안인득의 피해망상이 시작됐는데 정신과 치료와 약물 복용을 병행하는 동안에는 재취업에 대한 의욕을 불태우는 등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당하게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좌절이 반복됐고, 약물 치료마저 끊기게 되어, 홀로 고립되며 파국으로 치닫았다. 백종우 교수(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약물치료를 받았던 상태가 지속됐다면 안인득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안인득처럼 치료를 중단한 정신질환자를 관리하는 시스템이 지역사회에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기초단체별로 존재하는 정신건강복지센터가 그 시스템의 핵심인데 타인을 해할 수도 있는 정신질환자가 센터 등록에 동의하지 않으면 그들이 방치되다가 자살하든지 타인을 공격할 수도 있는 것이 한국 정신질환 관리의 현실이다. 백 교수는 “이 대목이 참 아쉽다. 환자가 동의해야 비로소 지자체 관리 시스템에 편입되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에선 안인득처럼 보호 관찰 처분 이력 등 자신과 타인을 해칠 위험이 높은 환자는 의료기관이 지자체로 정보를 제공하게 돼 있다”고 밝혔다.

 

현 정신질환 치료관리 시스템은 치료 의지가 없는 환자가 방치되기 쉬운 구조다. 응급 입원도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치료를 멈춘 안인득이 다시 의료기관의 도움을 받을 기회였기 때문이다. 환자 동의없는 입원 제도는 분명 남발해선 안 되지만 꼭 필요한 순간엔 작동해야 한다.

 

 

법을 어긴 정신질환자에 대해 법관이 ‘치료 감호’를 명령해서 감호소에 수용하는 제도가 있기도 한데 시설이 충분치 않아서 현실적으로 문제가 많다. 치료감호소도 딱 하나다.

 

정채연 정의당 정신건강위원장은 5일 오전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한국은 이미 법관의 치료감호, 치료명령제도를 시행 중이고 국내에 단 하나 뿐인 치료감호소는 과포화상태가 된지 오래”라며 “국가의 유일한 공식 서비스 체계라 할 수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정작 관할구역의 중증정신장애인을 사례 관리할 수 없을 정도의 적은 인력 및 과중한 업무가 대두되어 왔다”고 밝혔다.

 

정신장애인의 직업재활 및 주거재활을 담당하는 재활시설은 필수 서비스나 다름없는데 민간이 몇년을 운영해서 지자체로부터 승인받아야만 보조금을 지급받는다. 정신장애인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 그 자체만으로 취업이나 주거가 제한된다. 정신장애인 등록율은 다른 어떤 장애 유형보다 낮다. 이런 사실들은 다 무시하면서 범죄자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만이 그토록 중요하단 말인가? 지금의 메시지들은 오히려 정신장애인 및 그 가족들에게 병을 들키지 말고 숨기라고 말하는 격이다. 치료가 더욱 어려워지는 건 당연지사다. 이런 식으로는 이상 동기 범죄를 해결할 수 없다.

 

정신질환자 뿐만이 아니라 사회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고립 문제도 들여다봐야 한다. 광주 지역에서 사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동규 시민기자는 6일 페이스북에서 tvN <알쓸범잡>이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조승희 사건을 다룬 대목을 발췌했다. 이를테면 박지선 교수(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는 “범죄를 저지르는데 있어서 고립의 영향이 굉장히 크다. 묻지마 범죄자들의 공통적인 특성을 보면 혼자 고립돼 있었던 기간들이 굉장히 길다. 다들 몇 개월 이상 된다”고 발언했고 권일용 교수(동국대 경찰행정학과)도 “다 같은 일을 겪고 있지만 맥주 한 잔 마시면서 서로 울분을 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해소가 되는데 그것이 고립돼 있는 자들이다. 정신질환 이야기도 나오는데 치료받고 있는 정신질환은 조금도 위험하지 않다. 가족이 포기하고 약을 끊고 치료를 중단하고 3개월을 넘기면 이때부터 위험해 지는 것”이라고 동조했다.

 

(고립된 범죄자들이 선입견과 달리 말을) 많이 한다. (프로파일러로서 범죄자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어봤을 때 평생 내 이야기를 이렇게 집중해서 들어준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라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다. 사실 이 사람들은 자기 의사 표현을 잘 못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에도 상대방이 나를 무시한다고 추상해서 생각한다.

 

 

김 기자는 “최근 부쩍 늘고 있는 묻지마 범죄를 해결할 단서가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고립을 줄여야 한다. 영국처럼 고독부를 신설해 고독 문제를 사회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고독부 신설 등 사회적 고립 해소를 위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 문제는 우리 사회의 연대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지금의 은둔형 외톨이 관련 정책도 범정부적으로 대대적으로 손봐야 한다. 이번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정신질환도 공권력의 연약함도 아닌 급속히 확산하고 있는 사회적 고독에 있다.

 

경향신문 박용하 기자는 사회적 고립의 문제로 무차별 살상 범죄를 들여다보고 해결책을 마련하고 있는 일본 사례에 주목했다.

 

일본에선 무차별 살상 사건들을 모아 정부 차원의 연구도 진행했다. 법무성은 2013년 ‘무차별 살상사범에 관한 연구’에서 범인들을 인구통계학적으로 분류하고 범행의 형태와 시간, 장소, 방법적 특징 등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범행 형태를 두고는 ‘단일살인’과 ‘대량살인’, 동시에 여럿을 노리는 ‘스플릿 살인’과 시간차를 둔 ‘연속 살인’ 등으로 나눴다. 동기에 대해서도 ‘처지에 대한 불만’과 ‘특정인에 대한 불만’, ‘자살·사형에 대한 소망’, ‘감옥으로의 도피’, ‘살인에 대한 관심’ 등으로 분류했다. 일본 사회는 연구를 통해 무차별살상 사건의 가장 큰 동기는 처지에 대한 비관이며,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빈곤이 이를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고갈 수 있다고 봤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2021년 내각 관방에 고독과 고립 대책 담당 부서를 별도로 설치하고 △고독 문제를 24시간 전문적으로 상담하는 전화를 시범 운영하고 있으며 △범죄 발생시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번화가와 학교, 대중교통에서 모의 대응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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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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