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5월16일 광주광역시에서 개최된 <세계인권도시 포럼>에서 열린 차인표 배우의 북토크 행사를 기사로 전해드리겠습니다. 뺄 수 있는 대목이 없을 만큼 모든 내용이 중요하다고 판단되어 1~4편에 걸쳐 나눠서 출고하겠습니다. 3편입니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2007년 4월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방문한 차인표 배우는 특별한 두 사람을 만났다.
그날 그곳에서 특별한 두 사람을 만났다. 목격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바로 할머니들이 계시는 나눔의 집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두 분이었다. 자원봉사자들 중에서 유독 땀을 많이 흘리면서 말없이 열심히 일하는 중년 여성 두분이었는데 이분들이 누군지 궁금해서 한 할머니께 여쭤봤다. 저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이야. 매년 한달씩 여름이면 이곳에 머물면서 허드렛일을 하고 가. 그 여성들은 일본군도, 정부 관계자도, 남성도 아니었다. 그냥 일본 학교의 선생님들이었다고 한다. 즉 보통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분들을 바라보면서 나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분들이나 나나 2차 대전을 직접 겪은 세대가 아니었고 위안부 사건의 직접적인 가해자나 피해자도 아니었다.

지난 5월16일 13시반 광주 서구에 위치한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2025 세계인권도시 포럼>이 개최됐다. 차인표 배우는 포럼 세부 프로그램으로 열린 북토크 행사에 초대됐다. 차인표 배우는 2009년 출간된 소설 <잘가요 언덕>을 집필했고, 이는 12년만인 2021년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으로 재출간됐다.
차인표 배우는 두 일본 여성을 보며 깊은 사색에 잠겼다.
우리는 그냥 다음 세대를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이전 세대가 마무리짓지 못한 너무나 가슴 아픈 비극과 거기서 파생된 미움과 적대감을 그대로 물려받은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당하지도 않고 저지르지도 않은 비극을 물려받아서 한쪽은 가해자가 되고 한쪽은 피해자가 돼서 서로 미워하고 가슴 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인들이 유대인들에게 했던 것처럼 일본도 공식적이고 반복적인 진심어린 사과를 했다면 다시는 재발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행동이 이어졌다면 다음 세대를 사는 우리들은 미움과 죄책감이 아닌 평화와 화해를 물려받았을 것이다. 이제 이 소설을 통해서 내가 할 일은 단 한 가지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정리됐다.
그 답은 바로 ‘용서’다. 용서를 어떻게 해줄 것인가. 용서를 빌지 않는데 용서가 가능한가. 차인표 배우도 “할머니들은 용서를 원하지만 용서를 할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아무도 빌지 않는 용서를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았다. 구하지 않는 용서를 하는 것, 사과하지 않는 사람을 용서한다는 건 결국 자기 부정이나 자기 기만의 행위가 아닌가? 용서란 과연 누군가 결심한다고 가능한 것인가? 과연 인간이 이룰 수 있는 가치일까? 용서란 무엇일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소설을 쓰는 내내 용서에 대해서 성찰을 하다가 문득 밤 하늘에서 엄마별을 찾는 순이와 용이의 장면을 쓰면서 어쩌면 밤하늘의 별을 찾는 것과 용서를 바라는 마음이 서로 닮아 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별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지만 닿을 수 없다. 만질 수 없지만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별을 보며 소원을 빌 수 있다.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다고 염원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그 순간에 별빛도 나를 비추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닫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용서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다. 용서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어떤 차원의 가치일 수 있다. 하지만 별을 바라보는 것처럼 용서를 바라며면서 아팠던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주기를 소망하고 염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용서를 바라며 소망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걸까? 차인표 배우는 그런 깊은 성찰의 과정 속에서 “할머니들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느끼고 할머니들 주위에서10여년째 머무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내가 머무른 그 영역 그것은 바로 공감의 영역이었다. 공감.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위대한 힘이자 유일한 가치이다. 공감이란 타인이 겪은 고통을 자신의 아픔인 것처럼 함께 아파해 주는 마음이다. 아파서 우는 자의 마음이 되어서 함께 울어주려는 마음 그것이 바로 과거에 분노만 했던 나의 모습에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동안 위안부 사건을 바라보면서 가해자에게만 분노했지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했다. 분노는 할머니들을 위로할 수 없었고 그랬기에 할머니들의 마음은 마냥 무거울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아마 이 사건을 바라보는 수많은 우리들이 비슷한 처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가해자에게는 분노했지만 막상 피해자가 겪은 아픔, 고통을 나누려는 마음은 부족했던 것이다.
80년이 지난 사건을 아직도 이야기하고 과거에 머무르고 있느냐는 힐난을 마주할 때마다, 차인표 배우는 “아직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이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국적을 떠나 전세계에 수많은 사람들이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은 아픔에 진심어린 공감을 보낼 때 자신이 겪은 일인 것처럼 함께 울어줄 때 비로소 억지 사과가 아닌 진정한 사과가 자연 발생적으로 나타나고 진정한 용서와 화해의 장이 밤하늘에 은하수처럼 펼쳐질 거라고 믿는다.
이런 깨달음의 과정이 담긴 책이 바로 <잘가요 언덕>이다. 하지만 차인표 배우의 표현으로 “독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재출간됐지만 절판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반전이 일어났다.
2024년 작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아시아중동학부에서 한국학을 공부하는 3·4학년 학생들 그리고 석박사 과정 수업 시간에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을 교재로 사용하고 싶다는 제안을 해온 것이다. 이를 계기로 나는 작년 6월 제1회 옥스포드 한국 문화 페스티벌의 강연자로 초청받아서 이 책을 소개하고 왔다. 이런 일련의 사실들이 우리나라에도 알려지면서 이 책은 작년에 실제로 베스트셀러에 오르게 되었다. 현재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튀르키예어, 중국어, 인도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 중이고 유럽 여러 대학들에서 한국 문학 교재나 강의 자료로 활용 중에 있다. 이외에도 많은 제안을 받고 있다. 책을 쓰기 시작한지 25년만이고 책이 처음 출간된지 15년 후에 생긴 일이다. 이 책이 이렇게 되리라고 아무도 예상하거나 계획하지 못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위안부 사건에 공감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반증이 아닐까?
뒤늦게나마 많은 분들이 이 책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이유는 이 사건으로 인한 아픔에 공감하려는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피해 당사국 아니면 주변국 그중에서도 희생자들과 주변의 소수 사람들에게만 관련된 문제였다면 온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지금은 전 인류가 아파하는 공통의 문제로 재조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바로 한 세대의 고통을 우리가 충분히 공감을 해서 다음 세대에게는 절대로 같은 고통을 물려주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바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소망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소설 즉 문학의 존재 이유에 대해 차인표 배우는 아래와 같이 정의했다.
문학이란 그런 것 같다. 인간들이 갖고 있는 소망과 소망을 연결해 주는 것. 그 소망은 결국 인간으로 태어난 이 삶을 존엄하게 잘 살아내는 것이다. 존엄하게 살고자 하는 인간의 소망을 연결하는 도구.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살아갈 힘을 보태주는 것. 나는 그것이 문학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문학을 통해 오늘 우리는 위안부 희생자들을 숫자가 아닌 이름으로 떠올리고 인식할 수 있게 됐다.
끝으로 차인표 배우는 자작시를 낭독하며 북토크를 마무리했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입니다. 둘 더하기 둘은 넷이에요. 그런데 엄마 더하기 오빠는 둘이 아니에요. 아빠랑 누나를 보태도 넷이 아니에요. 엄마는, 오빠는, 아빠도, 누나도 숫자가 아니니까요. 사람을 숫자로 부르지 말아요. 이름을 불러요. 누구에게나 이름이 있어요. 아무리 작아도 형편이 딱해도 보잘 것 없어 보여도 우리 모두에게 이름이 있어요. 엄마와 아빠, 누나와 오빠, 동생 그리고 친구들 그리고 그대. 우리 한 명이 한 세상씩 한껏 품고 살아가는 존귀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니 사람을 숫자로 여기지 말아요. 사람은 숫자가 아니에요. 그들은 그대는 우리는 존귀한 생명체에요.
→질의응답은 4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