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27일 13시 광주 동구에 위치한 ‘전일빌딩 245’ 4층 시민마루에서 개최된 박상영 작가의 북토크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대표작 <대도시의 사랑법>에 대한 이야기, 성소수자 서사, 소설가로서의 삶 등 박상영 작가의 다양한 토크 내용을 정리해서 4개의 시리즈 기사로 전달해드리겠습니다. 이번 기사는 3편입니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된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이 대표작이지만 다른 작품들도 많다. 예컨대 2021년과 2022년 연달아 출간된 <1차원이 되고 싶어>와 <믿음에 대하여>에는 “내가 나이에 따라서 성장해왔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박상영 작가는 “사실은 <1차원이 되고 싶어>가 <대도시의 사랑법>보다 먼저 구상된 얘기”라며 “습작생 때 장편 소설 쓰기를 시도하면서 썼던 소설이었는데 그때 한 원고지 300매 정도 써놨다가 포기했었다”고 회고했다.
내가 이 서사를 감당할 능력이 안 되는구나라는 그런 깨달음을 얻고 포기해놨다가 이제 책 2권을 내고 첫 장편 소설 계약을 하면서 <1차원이 되고 싶어>를 이제는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썼다. 어떤 10대 때의 고통과 즐거웠던 감정들, 행복했던 기억들을 다 녹여서 정리할 수 있는 심리적인 거리도 확보가 되고 어떤 작가로서의 스킬도 그만큼 많이 길러진 것 같다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10대 얘기로 돌아가서 그것을 첫 장편 소설로 내게 됐던 건데 사실 난 <대도시의 사랑법>도 장편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한국의 어떤 문학계의 지형상 주로 신인 작가들에게는 단편 소설 청탁이 오니까 내가 이렇게 찢어서 발표해서 연작이라는 구성을 취했을 뿐인 거지 장편 소설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그렇게 대박이 나서 부커상 인터네셔널 부문 후보작에 오르기도 했는데 박 작가는 그 당시 “이제 부담스러워서 차기 작품을 어떻게 내려고 그러니 뭐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왜냐면 이미 다음 작품 <믿음에 대하여>를 다 써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음 소설을 미리 구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코로나 거리두기의 영향 탓이었다.
그전에 이미 다 써놓은 상태였고 이게 코로나 시절에 우리 모두가 인생이 뒤집어지는 경험을 했는데 나 역시도 그때 생각이 나는 게 앞서 말씀드렸던 그 <방구석 1열>과 <역사저널 그날>에 출연했을 당시가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였다. 근데 그때는 막 누가 방송국에서 걸리면 기사가 계속 났었다. 너무 무서웠다. 방송 출연이 내 고정 수입원인데 내가 코로나에 걸려서 못나오게 되면 결국 돈을 못 벌게 되는 거고 높은 확률로 고정이 잘릴 수 있어서 목숨 걸고 사수해야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거의 아무 데도 안가고 집 밖에 안 나갔었다. 특히 한창 거리두기가 심할 때는 서울에서는 헬스장 문 닫고 카페 문 닫고 모든 공간이 문을 닫았을 때가 있었다. 그때는 진짜 집에만 있으니까 미칠 것 같았는데 그때 내가 이 소설들을 구상했다. (코시국 초기 거리두기 수칙을 위반한 사람들의 동선이 공개되는 등) 우리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공포심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믿음에 대하여>를 되게 빠른 속도로 써내려갔다. <대도시의 사랑법>이 부커상 후보고 어쩌고 막 이런 생각 없었고 그냥 재밌고 좋은 소설을 써야겠다는 이런 생각으로 그냥 신나게 출간했었다.
박 작가는 소설 외에 에세이집도 낸 바 있다. 소설 집필과 에세이 쓰기는 서로 다른 창작의 즐거움이 있다. 박 작가는 “에세이는 그냥 나 자체”라며 “나이기 때문에 편안하게 재미있게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자가가 생각하는 에세이와 소설의 접근법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대신에 에세이는 자기 검열이 좀 많이 들어간다. 나와 내 주변에 대한 직접적인 얘기이고, 때로는 아주 먼곳에 있는 사람의 얘기를 쓸 때도 있는데 잘 모르는 사람 얘기를 쓸 때는 논픽션이기 때문에 조심을 하려고 하고 허락도 다 구하고 쓴다. 픽션 소설 같은 경우에는 약간 나의 본진 같은 느낌이 있는데 나로선 극본가나 에세이스트로서도 본업이긴 하지만 소설은 나의 어떤 핵심적인 영역 같은 생각이 좀 있다. 그래서 쓸 때부터 조금 자세를 고쳐 앉게 되는 게 있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픽션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좀 만끽한다. 대신 형식적으로는 소설이 매우 보수적인 장르다. 내용으로는 아무거나 담을 수 있는데 그 장르의 규칙 같은 게 분명히 존재를 한다. 그래서 문학계에서 합의가 된 그런 틀에 잘 맞춰서 좋은 소설을 쓰려고 노력을 하게 된다.
박 작가에게 ‘친구와 우정’은 가족 이상의 의미가 있다. 좋은 글감이자 소재로 작용하기도 하는데 “친구를 좀 각별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
(내가 에세이에 나열한 친구들이 많아서 다들 인맥을 부러워하던데) 별로 부러워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은 게 여러분들의 친구와 똑같다. 그냥 뭐 친구의 기준은 별거 없다. 뭐 마음 잘 맞으면은 처음 봐도 바로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좀 싫은 사람은 10년을 같이 알고 지내도 카톡 오면 12시간 동안 안읽고 있고 여러분들 다 그러지 않는가? 나도 마찬가지다. 물론 친구를 각별하게 생각한다. 내가 아무래도 가족이 따로 없고 부모님이랑도 사이도 안좋고 그렇다. 그래서 친구를 약간 어떤 대안 가족의 차원에서 많이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애착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재희 같은 소설 속 인물을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친구와의 애착관계가 남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걸 쓸 수 있었던 것 같고 <순도 100%의 휴식>도 사실은 여행기이지만 친구에 대한 얘기다.
다들 그 정도의 친구들이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 박 작가의 에세이들을 읽어본 독자라면 정말 친구가 많아도 정말 많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이에 대해 박 작가는 “가장 큰 오해가 친구가 엄청 많은 사람이라는 오해인데 여러분 평생 동안 만난 친구들의 숫자를 헤아려 보면은 그 정도 나온다”고 강조했다.
인생의 친구들을 다 털어넣은 거기 때문에 직장에서 만난 은사님과 이금희 쌤까지 써넣었다. 이금희 쌤 1년에 한 번 본다. 그러니까 그렇게 친구가 많지 않다. 그리고 그 친구들 대부분이 사실 잘 못보고 요즘은 다 바빠져서. 특히 내 나이 또래들(30대 후반)이 이제 사회적으로 결혼의 연령이 많이 늦춰지긴 했지만 한창 애를 낳고 있을 때다. 남자애들이나 여자애들이나 다 그래서 많이 떠나 있다. 지금 다 그들 각자 가정의 세상으로 떠나 있고 그런 상황이다.
박 작가의 업적 아닌 업적이라고 하면 한국 문학의 비주류인 퀴어를 소재로 다뤘다는 점이다. <대도시의 사랑법>이 출간됐던 2019년과 6년이 흐른 2026년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을텐데 박 작가는 “그때만 해도 행복하고 발랄한 퀴어들이 어색하다”는 피드백을 들었다고 고백했다. 퀴어는 비극적이고 기구한 삶을 살아야 하는 스테레오 타입이라도 있는 걸까?
퀴어라는 소재가 근데 그게 좀 싫었다. 데뷔작 중에 하나가 이제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와 이 소설의 제일 앞쪽에 있는 <중국산 모조 비아그라와 제제, 어디에도 고이지 못하는 소변에 대한 짧은 농담>이라는 당해에 발표된 가장 긴 제목의 소설 2편을 내서 당선이 됐는데 그 <중국산 모조 비아그라> 퀴어 소설을 보고 평론가들이 약간 그때는 인식이 좀 떨어질 때였어서 이상한 소리를 진짜 많이 하셨다. 그때 들었던 코멘트가 이렇게 행복하고 발랄한 퀴어들이 좀 어색하고 이상해. 이런 얘기하시고 박 작가가 잘 쓴 건 알겠는데 그냥 개인의 일기장 같아.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쓰면서도 진짜 일상적이고 일기장 같은 그런 귀여운 소설을 쓰고 말 것이라는 그런 마음으로 <자이툰 파스타>와 <대도시의 사랑법>을 쓰게 된 것이었다. 일종의 투지와 같은 개념이다. 근데 그게 개인적인 차원에서 창작의 이유였는데 작품으로 나왔을 때 이렇게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문학계에서도 사실 이제 당사자성을 지닌 퀴어 문학들이 내가 데뷔했을 무렵 막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중에서 가장 많은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작가 중 하나가 된 것인데 그래서 나 혼자서 이걸 이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도 여러 명의 <토지>를 읽은 사람들 중 1명이고 그런 축적된 관심들을 어깨에 이고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제는 퀴어 문학이 전혀 비주류로 취급되지 않는 시대가 됐다.
퀴어 문학이 한국 문학계에서 주류 장르가 되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그래도 거기에 일조를 한 것 같아서 굉장히 자부심을 좀 갖고 있다. 이젠 오히려 약간 유행이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많이 나왔어서. 근데 단순히 유행이 아니라 그냥 하나의 꾸준한 작품 형태로 남겨두기 위해서 나도 계속 퀴어 작품을 쓸 것 같다.
그렇다면 박 작가는 그런 퀴어 소설을 쓸 때 일종의 사명감 같은 걸 갖고 있을까?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혀졌으면 바라는지 문득 궁금한데 박 작가는 “읽는 동안에는 개인적인 일상처럼 느끼길 바라고 다 읽고 났을 땐 비로소 사회적 메시지로 남기를 바란다”고 집약했다.
전통적인 작가들이 글쓰기를 되게 신격화하고 미화해서 하는 얘기들을 조금 싫어한다. 여러분들이 하는 다른 모든 일들이 다 똑같은 노동이고. 글쓰기는 내게 돈을 벌어다 주는 수단인데 그것에 플러스 알파로 내게는 의미가 좀 각별한 게 있는 것이다. 앞서 말씀드렸던 대로 내가 괴로웠던 일이나 일상에 있어서 어떤 견딜 수 없었던 문제 같은 것들을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서 해소를 좀 할 수가 있었다. 내 안의 실타래처럼 꼬여 있던 문제를 글쓰기를 통해서 좀 객관화시켜 볼 수도 있게 되었고, 심지어는 글 쓰고 유통하는 과정을 통해서 많은 독자들과 소통을 하고 내 혼자만의 어떤 좀 꼬인 생각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많은 분들과 같이 공유하고 있는 생각이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그래서 내겐 일종의 치유의 개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많은 독자들이 나의 책을 읽고 많은 위로를 얻었다거나 위안을 받았다는 말씀을 해주시는데 나 역시도 그분들의 그런 말씀을 통해서 큰 위안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글쓰기가 곧 힐링이 되는 셈인데 박 작가는 원래 “글을 쓰기 전에 진짜 뾰족뾰족한 사람”이었지만 글을 쓴 뒤로 “사람이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글을 쓰게 되면서 원래도 안했지만 작은 범법행위들이나 무단횡단도 안하려고 노력을 하는 식으로 변하게 됐다. 그래서 나한테 글쓰기는 좀 각별한 의미의 노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박 작가의 다음 플랜이 알고 싶다.
지금 프로젝트를 2개 진행하고 있다. <믿음에 대하여> 드라마 프로젝트가 하나 있는데 지금 캐스팅과 편성을 돌리고 있다. 아직은 어떤 배우들이 할지 또 어디서 틀게 될지 확정되지 않았는데 부디 무사히 좋은 자리를 찾아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현재 당장 쓰고 있는 거는 그 (출판 프로젝트) ‘안전 가옥’에서 내년 상반기에 출간될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을 쓰고 있다. 지금까지 썼던 것과는 전혀 다른 형식의 소설이고 퀴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1940년대에 태어난 재벌 할머니다. 그녀의 인생사를 쭉 훑는 어떤 비밀과 범죄와 살인과 이런 치정과 이런 것들이 얽혀 있는 그야말로 장르적인 요소가 강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지금 제일 걱정은 기존에 내 팬들이 좀 실망하고 떠나가지 않을까. 왜냐하면 너무 달라진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런 걱정이 있는데 그래도 나오면은 좀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고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마지막 4편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