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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에서도 우울과 무기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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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조은비의 비엔나 라이프] 3번째 글입니다. 조은비씨는 작은 주얼리 공방 ‘디라이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우울증 자조 모임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현재는 “모든 걸 잠시 멈추고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게으르게 쉬는 중”이며 스스로를 “경험주의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평범한미디어 조은비 칼럼니스트] 비엔나에 와서 모든 게 좋아졌다면 참 좋았겠지만 사실 그렇진 않았다. 외국에서 일도 안 하는 백수로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싫었고, 한국에서 가슴 아팠던 일들을 굳이 생각하며 또 슬퍼했다. 살고 있는 도시를 바꾸었지만, ‘나’라는 존재는 그대로니까.

 

 

비엔나는 각종 통계자료가 보증하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다. 하지만 내 몸과 마음은 여전히 무거울 때가 있다. 외로움에 잠들지 못 하거나, 우울함에 계속 잠만 잤던 날도 있었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최고의 도시에 살고 있는데 여전히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떠올려보는 지겨운 교훈이 있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단 한 번의 화려한 목표 달성으로 탄탄대로가 보장되는 인생 따윈 없다. 행복은 늘 쉽게 오지 않는다. 반대로 뼈저린 실패로 인생 전체가 망해버리는 것도 아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명문대에 진학했다고 해서 심신의 건강이 보장되지 않았던 것처럼, 찐득하고 아린 연애가 끝나도 어김없이 새로운 사랑에 빠졌던 것처럼 인생은 늘 그랬다. 호사다마와 전화위복이었다.

 

그래서 나는 꿈꾸던 도시에 살고 있다고 해서 내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진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살아가는 환경이 중요하겠지만 이곳을 살아가는 나의 마음도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까 비엔나에서도 난 여전히 행복을 위해 매순간 노력하고 있다. 마치 위태로운 줄 위에서 꾸준히 중심을 잡아 앞으로 나아가는 곡예사처럼 아등바등 애쓰고 있다. 나를 너무 몰아붙이지 않는 선에서 좋은 습관들을 만들려고 한다. 식단을 건강하게 편성하고, 하루에 1분이라도 운동을 하려고 하고, 하루에 한 번 이상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해야 할 일들을 만들고 약속을 잡아서 귀찮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이렇게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몸과 마음이 개운해져 있다. 정신이 맑아져 있다. 달라져 있는 나를 발견하고 더 힘을 내서 시도해본다. 그렇게 내 인생을 가꿔나간다.

 

이렇게 나는 비엔나에서 줄을 타며 한국에서의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 돌아가야 하는 치열하고 빠른 내 나라, 내 도시에서 살기 위한 연습을 가장 살기 좋은 도시에서 하고 있다. 어릴 적 봤던 <드래곤볼>에서 주인공이 강적을 무찌르기 위해 기술을 연마하던 ‘정신과 시간의 방’처럼, 한국과는 시공간이 모두 다른 이곳 비엔나에서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을 발견하고 시험해보고 실천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비엔나의 핫플레이스를 즐기러 가는 게 아니라, 침대를 떠나 세수를 하고 할 일들을 만들어 밖에 나가보는 차원에서 방문했다.

 

느리고 더디더라도 언제나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더 노력할 것이다. 삶을 단념하지 않고 하루 하루를 살아내보려고 한다. 혹시 나와 비슷한 우울과 외로움의 감정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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