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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탄희의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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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과거 국회를 출입하던 정치부 기자 시절 ‘선거제도 개혁’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닫고 관련 기획 시리즈 기사를 약 2년간(2018년 6월~2020년 3월) 연재한 적이 있었다. 국회에는 1당 더불어민주당과, 2당 국민의힘이 싸우지 않고 통과시킬 수 있는 무쟁점 민생 법안들이 꽤 많다. 그러나 소수의 쟁점 사안들로 인해 언제든지 여야가 대치하다가 모든 국회 상임위원회가 올스톱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항상 다음 선거에서 더 유리해지기 위해 상대를 자빠트려야 하는 ‘권력 게임’의 요소들이 상존한다. 더 잘 하는 모습을 보이는 선의의 라이벌? 선의의 경쟁? 그런 건 없다. 상대를 욕하고 비난해서 더 나쁜놈으로 낙인찍을 수밖에 없는 정치 구조와 정치 문화가 뿌리 깊다. 정치학자 박상훈 박사는 아래와 같이 이야기했다.

 

여야가 합의를 해야 법이 많이 만들어지는데 사실 여야가 합의를 많이 한다. 보통 나라들은 국회 본회의에서 평균 2건 이상을 통과시키지 않는다. 근데 한국 국회에선 1만건이니까 한 번에 200건 이상 통과시킨다. 근데 이상하지 않나? 맨날 싸운다고 하는데 어떻게 법을 여야가 합의해서 처리하는가? 싸우는 법안들은 다 대통령 관심 법안이다. 대통령 관심 법안에서만 싸우고 나머지 지역 개발 예산 등등 이런 건 다 서로 봐주는 형식으로 하고 있다. 싸움의 대상은 대통령 관심사인데 여당은 대통령 공약사항이라고 밀어붙이려고 하고, 야당은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 공격하는 방법으로 본인들의 영향력을 추구한다. 이게 지금 우리식 정치다.

 

 

한국 정치를 좀 안다는 사람들은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존”이라고 표현한다. 어차피 딱 1표만 더 많이 받는 1등이 모든 걸 먹는 ‘1등 당선제’이기 때문이다. 1등이 45%를 득표하고, 2등이 40%를 득표했다면 과반 득표도 하지 못 한 1등이 당선되고 2등이 받은 40%는 쓰레기통으로 처박힌다. 승자독식. 영어로 The Winner Takes It All인데 이게 합리적일까? 민주당과 국민의힘 거대 양당은 1표만 더 많이 받으면 다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상대를 공격하는 선거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고, 똑같은 이슈가 발생하더라도 자기편은 감싸고 상대편은 조져야 한다. 내로남불 진영논리는 일상적이다.

 

그리고 딱 1명만 뽑는 대통령에게 엄청난 권한을 몰아주고, 국회의원도 딱 1명만 뽑는 지역구 소선거구제 위주의 선거제도를 갖고 있는 한국 정치의 풍경에서는 양당 외에 다른 소수정당들은 당선될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래서 양당 중 한 곳만 정권을 잡을 수 있고, 국회에서도 1당 아니면 2당을 차지할 수 있다. 4400만명의 유권자들 중 대부분은 소위 사표방지심리에 따라 양당 외의 다른 정당들에게 표를 주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큰맘 먹지 않는 이상 쉽지가 않다. 그냥 투표장에 안 가버리거나 양당 중 덜 싫은 곳에 표를 줄 수밖에 없다.

 

민주당 이탄희 의원은 2020년 총선에서 당선된 초선 의원인데 이러한 한국 정치의 비극을 금세 깨달았다. 얼마전 이 의원은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 ‘이탄희의 솔직한 고백’이란 짧은 영상을 올렸다.

 

폭우로 물감옥이 된 반지하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신림동 주민들은 공공임대주택 예산이 70년만에 최대치로 감액돼서 안전한 보금자리로 옮기지 못 했다. 거제도 조선소에서 자기 자신을 철창에 용접해서 가뒀던 하청노동자 유최안, 그의 염원이었던 진짜사장교섭법은 아직도 통과되지 못 했고 그는 여전히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을 대변하려는 의정활동이 화제가 되고 많은 분들의 격려와 응원을 받을수록 나의 좌절은 깊어졌다. 왜냐면 우리가 지키고 싶은 사람들의 삶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대안을 아무리 치열하게 고민하고 준비해도 다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왜 사람을 지키려고 만든 정치가 사람을 지키지 못 할까? 죄다 이상한 사람들만 국회의원으로 뽑아놔서 그럴까?

 

이 의원은 3년 반의 의정활동 기간 동안 한국 정치의 본질을 직시했다. 이 의원은 “증오 정치를 부르는 정치구조 때문”이라며 “지금의 정치구조는 상대방이 못 하면 내가 이익을 보는 반사이익구조”라고 강조했다.

 

반사이익구조는 문제 해결 경쟁이 아니라 증오 경쟁을 유도한다. 내가 못 해도 상대방이 더 못 하면 쉽게 이길 수 있다. 어차피 양당 이외의 선택지가 등장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잘 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데에 총력을 기울인다. 국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경쟁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나는 정치개혁에 집착한다. 증오 정치구조를 깨지 않으면 사람을 지키는 정치를 할 수가 없다.

 

이런 문제점을 인지하고 바꿔보려고 했던 선거제도 개혁의 역사는 유서가 깊다. 대략 25년 전부터 故 김대중 대통령이 ‘독일식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제시했고, 故 노무현 대통령은 ‘대연정론’을 불사하며 불합리한 선거제도를 뜯어고치려고 시도했지만 좌절됐다. 2015년에는 소위 ‘이병석안’으로 그 당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협상 실무자들이 합의안을 마련해놓고도 지도부가 걷어차버렸다. 2018년 중반부터 2019년 연말까지 한국 정치사 최초로 비양당 원내외 7당과 시민사회가 총력을 기울였던 시기에도, 꾸역꾸역 민주당이 자유한국당을 패싱하고 패스트트랙에 선거법 개정안(준연동형 캡 비례대표제)을 태워서 통과시켰지만 결과적으로 2020년 총선에서 위성정당이 등장해 양당이 모든 의석을 독점하는 처참한 상황으로 귀결됐다.

 

 

21대 국회(2020~2024)에서도 선거법을 합리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움직임이 없지 않았다. 또 다시 위성정당이 출몰할 수 있는 불완전한 준연동형으로 2024년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위기감이 컸다. 시민사회에선 2021년 연말 선거제도개혁연대(정치개혁공동행동)가 출범했고, 정치권에서도 양당 정치인들 중 승자독식 선거제도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 모여 2022년 연말 정치개혁 2050을 출범시켰다. 2023년 올해로 접어들어서는 △4월 국회 전원위원회 대토론 △5월 대국민 공론화 절차 △7월 양당 2+2 협의체 협상 등등 일련의 과정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내년 총선까지 딱 5개월(2024년 4월10일) 남았다. 이 의원은 지난 3일 방송된 MBC 라디오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해서 우울한 현실을 알렸다.

 

우리 국민들께서 그나마 이렇게 희미하게 선거법에 관련돼서 이런 저런 얘기를 들으셨을텐데 일단 말씀드릴 건 지금까지 들었던 모든 이야기는 다 잊으라. 모든 선거법 개혁과 관련된 얘기는 다 중장기 과제로 넘어갔다.

 

그러니까 하나의 지역구에서 2~5명까지 뽑는 중대선거구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의원 정수 증원론,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등 다 무산됐다는 소리다. 이 의원은 “지금 기본적으로 현행 선거제도 소선거구 253개, 비례대표 47개. 이렇게 치른다는 걸로 결정이 됐다”며 “남은 쟁점은 딱 하나”라고 말했다. 2020년 21대 총선 이전 즉 2016년 20대 총선 때까지 쭉 적용됐던 승자독식 선거제도(지역구 소선거구제 253석+비례대표 47석)로 회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딱 하나 쟁점이 남았다. 이 의원은 “최근에 국민의힘에서 별안간 민주당에게 47석의 비례대표를 병립형으로 뽑자. 촛불혁명 이전 2016년 옛날 제도로 돌아가자고 이런 제안을 덜컥 했다”고 전했다.

 

그래서 이걸 민주당이 받을 거냐 안 받을 거냐. 이것 쟁점 딱 하나 남았다.

 

병립형과 연동형의 차이점은 간단하다. 총선에서 유권자가 ‘정당’과 ‘인물’에 각각 한 표씩 행사한다고 했을 때 정당 득표율에 따른 비례대표 당선자 규모와, 지역구 당선자 규모를 연동시키느냐? 아니면 별도로 병립시키느냐? 이런 뜻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면 정당 득표율로 총 확보 의석수를 픽스시킨다. 그러니까 A정당이 300석 정원에서 정당 득표율 10%를 받았다면 30석을 보장받는 건데 만약 지역구 당선자 규모가 17석이라면 13석을 추가로 얻는 것이다. 그런데 A정당이 만약 지역구 당선자 규모가 30석을 넘겼다면 비례대표 의석을 1석도 받지 못 한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체제가 자리잡은 국가들 중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 한국 딱 7곳을 제외하고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이 채택한 선거제도가 바로 이런 유형이다. 네덜란드처럼 지역구 없이 모든 의석을 비례대표제로 뽑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독일처럼 인물 투표라고 할 수 있는 지역구 선거를 유지하는 대신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서 지역구 선거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사표를 보완하는 방향을 선택하기도 한다.

 

민주당은 어찌됐든 국민의힘과 마찬가지로 거대 양당 중 한 곳이라는 기득권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겉으로는 당론으로 주장한 적이 꽤 있지만 사실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을 최대치로 먹고 싶어하는 속내가 있다. 그래서 ‘준’연동형(300석 기준 10% 얻으면 30석의 2분의 1 15석 보장)에 ‘캡’(47석 중 30석만 연동형으로 배분)까지 씌웠던 것이다. 이것도 모자라 그 당시 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 미래한국당을 만들었으니 우리도 만들 수밖에 없다면서 위성정당 더불어시민당을 만들어서 기존의 승자독식 선거제도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현재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꼬드기려고 하는 ‘병립형으로의 회귀’는 고작 47석의 비례대표 의석조차 다른 소수정당들에게 주지 말고 양당이 나눠갖자는 “달콤한 유혹”이다. 양당이 지역구에서 확보한 의석과 별개로 비례대표 배분에서도 정당 득표율 만큼 그대로 다 가져가겠다는 건데. B정당이 300석 정원에서 지역구 130석을 당선시켰고 정당 득표율 40%를 얻었다면, 총 비례대표 의석 47석 중 40%(19석)를 추가적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그렇게 B정당은 300석의 40%인 120석이 아니라 29석을 더 받아서 149석을 얻게 된다. 이게 양당이 가장 선호하는 병립형이다.

 

사실은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계속 유혹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사탕 하나 주면서 어린이 꼬드기듯이 하고 있는데 사탕 계속 먹으면 비만 걸리고 당뇨일 때 계속 더 먹으면 사람 죽을 수도 있다.

 

그런데 병립형으로의 회귀를 선택하지 않더라도 양당은 나머지 비례대표 47석을 최대치로 가져갈 수 있다. 그렇다. 위성정당을 만들면 된다. 100% 연동형이든, 준연동형이든, 준연동형 캡이든 연동성을 남겨두더라도 양당은 다른 정당인 것처럼 눈속임을 하는 위성정당을 급조해서 병립형처럼 먹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의원은 △병립형으로의 회귀를 막고 △‘위성정당 금지법’까지 도입해야 진정한 연동형의 의미가 있다고 설파하고 있다. 위성정당 금지법은 여러 형태가 있겠지만 총선에 참여할 정당에게 지역구 출마자 규모에 상응하는 비례대표 출마자 규모를 의무적으로 유지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가장 간단하고 합리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위성정당 금지법은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민주당 주류 세력이 통과시킬 생각이 없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렇다면 이 의원의 구상은 뭘까? 신장식 진행자가 “(만약 연동성을 유지하더라도) 국민의힘은 위성정당 만들 게 뻔한데 민주당이 지금 이 의원처럼 대응하는 건 순진한 생각 아니냐”고 묻자 이 의원은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국민의힘이 2020년 총선에서 위성정당 만들어서 19석을 얻었고 지역구에서 84석 도합 103석 확보했는데) 이번에 국민의힘에서 위성정당을 만들면 과연 국민들이 19석을 몰아주실까? 특히나 우리 민주당이 다른 야당들과 다함께 연대해서 위성정당 금지법 추진하고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혼자서 위성정당 금지법 거부하고 국민의힘만 위성정당 만든다? 나는 절대로 19석 국민들께서 몰아주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한다. 당장 (곧 창당될) 보수신당과도 경쟁해야 될 거고. 또 우리 민주당이 위성정당 만들지 않으면 국민의힘에서 영남 유권자들이나 소위 말하는 보수 지지자들에게 국민의힘 위성정당에 몰표해달라고 말할 수도 없다. 19석에서 반토막 나면 그때는 소위 말하는 윤석열 대통령 거부권 행사 기반인 100석(법안 거부권 행사하더라도 국회로 돌아와서 재표결했을 때의 의결정족수)도 무너질 수가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의원은 “22대 국회(2024~2028)를 민주당이 1당 역할하면서 합리적인 보수 세력과 진보 야당들이 같이 공존하는 그런 국회로 만드는 것이 그것이 대한민국의 현재 무정부 상태 정치 올스톱 사태를 깰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역설했다.

 

 

이 의원은 개혁보수 세력까지 포함하는 소위 ‘야당 연합정치론’을 밀었는데 이게 가능하려면 “47석 골목상권”을 민주당 지도부가 건드리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병립형으로 회귀하자는 국민의힘의 제안을 거절하고, 위성정당을 안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2020년 총선에서 거둔 ‘꿈의 숫자 180석’을 재현하고 싶은 욕망이 없지 않을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지킨다. 위성정당 금지법 한다. 이재명 당대표도 약속했던 것이고 민주당의 오랜 약속인데 아무래도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국민들에게 한 약속보다는 눈앞의 이익에 흔들리는 경우들이 있을 수 있지 않은가? 그런 의원들이 조금씩 나오는 것들이 보이고 있고 해서 내가 단호하게 커지지 않도록 끊고 가야 된다는 차원에서 말씀드린다. (중략) 만약에 저희가 47석 골목상권을 지킨다고 선언하면 아마 많은 새로운 세력들이 창업을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국민들의 선택권이 넓어지는 것이고 최종적인 결정은 국민들께서 하는 것이다. 지금 있는 정당들을 가지고 연합하는 게 아니고 새롭게 만들어진 정당 등을 상대로 해서 국민들이 선택권을 행사하셔서 22대 국회가 구성이 되고 나면 그 구성된 22대 국회의 진보 야당과 합리적인 보수 세력과 연대해서 윤석열 정부를 심판하고 견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의원도 정치인이고, 지도부에 밉 보이지 않아서 재선하고 싶은 욕심이 있을텐데 그의 공언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싶다. 그래서 이 의원은 1일 방송된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아래와 같이 약속했다.

 

내가 사실 지금까지 쭉 말씀드린 걸로 진심은 전해졌을텐데. 내가 개혁을 말하던 사람인데 최소한 개악은 막아야 되지 않겠는가? 나는 이렇게 말씀드리겠다. 내가 사실 대통령도 아니고 당대표도 아니지만 내가 가진 건 그래도 국회의원직 아닌가? 내가 가지고 있는 이걸 걸고라도 반드시 막아내야 될 만큼 이 일이 너무 중요하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걸겠다. (민주당이 병립형에 찬성하거나 위성정당을 만들면 의원직 사퇴한다는 뜻인지?) 모든 걸 걸고 막겠다. 반드시 막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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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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