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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부모? 비양육자? “난 그런 표현들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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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13년간 5000여건의 이혼 상담을 진행했던 박은주 변호사(법무법인 온조)는 어느날 법원에서 재판을 기다리며 모 판사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며칠 전 이혼 소송 재판에 갔다가 기다리면서 봤는데, 어떤 남편과 아내가 끊임없이 서로를 비난하며 싸우더라. 법정에서도, 서면에서도 엄청나게 싸웠다. 근데 판사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나는 당신들이 누가 잘못했고, 잘 했고, 유책이 누구이고, 왜 이혼을 하게 됐는지 관심이 없다. 우리 법원에서 오직 관심있는 것은 미성년 아이들의 복리와 정서다. 거기에 집중해서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더 이상 서로를 비난하지 말라고 얘기하는데, 그건 정말 법원의 일관된 입장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유튜브 채널 <김작가TV>에 출연해서 위와 같은 에피소드를 풀어놓으면서 슬픈 질문을 받았다. 이혼이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이런 질문인데 박 변호사는 “질문 자체가 되게 슬픈 게 어떠한 영향을 줘서도 안 되기 때문에 슬픈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고, 부모의 이혼도 본인들의 선택이 아니었다. 그냥 어른들의 선택과 결정으로 엄마와 아빠가 이혼하는 것이다. 부모의 이혼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면 안 된다. 그런데 영향을 상당히 많이 미친다.

 

부모의 선택으로 태어난 자녀가 부모의 이혼으로 불행해지면 안 된다는 취지의 대화가 오가는 맥락에서, 평범한미디어가 주목했던 메시지가 나왔다. 박 변호사는 “한부모”란 표현과 “비양육자”란 표현에 문제제기를 했다. 그냥 그런 표현 자체가 싫다고 말했는데 행간은 아래와 같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 중에 한부모 가정이란 말이 있다. 한부모 가족 지원을 받으려면 이혼해야 하고 저금리 대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얘기하는 과정에서 한부모 가족이란 표현을 많이 쓰는데. 이혼을 했다고 해서 한부모 가정이라고 볼 수 없다. 부모가 이혼했는데 아이들에겐 엄마와 아빠가 그대로 있다. 한부모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마치 이혼하면 한쪽 부모가 없어지는 듯한 그런 느낌을 일반인들에게 많이 준다. 나는 그런 단어를 되게 싫어한다.

 

사별 부부의 자녀가 아닌 이상 이혼을 했다고 부모 중 한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혼 부부의 자녀는 한부모 가정의 자녀로 규정되어 버린다. 자연스럽게 동거하고 있는 부모 외에 다른 부모는 양육의 의무가 상대적으로 가벼워지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박 변호사는 양육자와 비양육자란 표현이 문제적이라고 주장했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을 양육자, 아이를 안 키우는 사람을 비양육자라고 부르는데 그것도 단어를 수정해야 한다. 비양육자라는 말을 하는 순간 이 사람은 아이를 키우지 않고, 아이에게 부모로서의 역할을 해주지 않아도 된다는 뉘앙스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말은, 아이를 직접 데리고 사는 사람을 주양육자, 양육비를 지급하면서 면접교섭을 하는 사람은 부양육자. 이런 말이 훨씬 더 좋지 않을까? 비양육자가 아니고 부양육자고, 한부모 가정이 아니고 가정은 해체됐지만 부모는 여전히 아이들을 서포트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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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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