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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고치다가 숨진 청년 “혼자 작업하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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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사회초년생 28세 청년 A씨가 엘리베이터를 점검하다 숨졌다. 홀로 작업하기에는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 사고 직전 동료에게 문자를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동료가 14분만에 도착했을 때 A씨는 이미 사고를 당해 심정지 상태가 된 뒤였다.

 

엘리베이터 수리 기사 A씨는 지난 23일 낮 2시20분경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동의 한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가 고장났다는 민원 접수를 받고 현장으로 출동해 점검과 수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워낙 위험하고 정교한 작업이다 보니 최소 2명의 작업자가 필요했지만 A씨는 혼자였다. A씨는 도저히 혼자서 할 수가 없다고 판단해서 2시6분쯤 사수 기사에게 문자를 보냈다.

 

혼자 작업하기 힘들 것 같아요.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문자를 보낸 직후 A씨는 엘리베이터와 함께 밑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아파트 7층 높이 20미터에서 떨어졌던 만큼 A씨는 손쓸새도 없이 목숨을 잃었다. 2인 1조의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고질적인 안전불감증이 또 한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미국계 오티스엘리베이터는 총 직원수만 2000여명에 이르는 중견기업인데 A씨는 오티스 강북지역본부 소속이었다. 강북본부에만 50명 넘는 직원이 있다. 당연히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다. 오티스 강북본부는 A씨의 죽음에 무거운 책임이 있다. 더구나 A씨는 경력 5개월에 불과한 신입이었다. 직장인 익명게시판 블라인드에 오티스 소속 모 직원이 글을 올렸는데 “말로만 안전을 외치는 회사”라며 오티스를 강하게 비판했다. 

 

안전한 근로환경을 위해 작업자들이 먼저 사측에 요구했지만 사측은 철저히 무시했다. 안전모와 안전벨트를 던져주고 안전 교육을 하긴 하는데 맨날 똑같은 소리 떠들고 서명이나 받으며 책임만 면하려 하는 등 말로만 안전을 외치는 회사였다. 노동조합이 먼저 2인 점검을 요청했지만 듣고도 외면한 대표와 임원들이 죽인 것이다. 가파르게 늘어나는 엘리베이터 대수와 비교해 작업자 충원은 이를 따라가지 못 했다. 지금도 전국 서비스엔지니어들은 점심을 못 먹어가며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모자란 인원으로 고장처리하느라 밤새 졸린 눈 비벼가며 운전대 잡고 일하고 있는데 겉보기만 번지르르한 안전 교육이 대체 무슨 소용이냐.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관련자들을 엄정 처벌해야 한다.

 

 

강북본부가 직영으로 관리하는 엘리베이터만 6만여대에 달했는데 담당 기사는 700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2인 1조로 작업을 할당받더라도 한 조가 160대를 관리해야 한다. 감당할 수 없는 작업량이다. 그렇다면 오티스측에서 인원 충원을 더 해서라도 2명이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오티스 방규현 노조위원장은 방대한 작업량으로 인해 기사들이 “혼자서 일을 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굉장히 많이 호소하고 있다. 이번 같은 경우에 만약에 둘이서 일을 했다고 하면 이런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A씨가 사망하기 전부터 인력 문제와 2인 1조 준수를 위한 대책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오티스측은 어이없는 입장만 내놨다고 한다.

 

명확한 규정이 없는 만큼 아파트 단지 등 현장 단위로 2명이 투입되면 된다. 2인 투입 원칙이 과도하게 해석된 것이고 잘못된 인식이다. 1인이 더 안전할 수도 있다.

 

오티스는 사고 직후 언론 취재가 이뤄지자 아래와 같은 형식적인 입장만 내놨는데 실상은 겉과 속이 완전히 딴판이었다.

 

슬픔에 잠겨 있을 유가족께는 깊은 애도를 표하며 유가족 지원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당사는 안전 관계법령을 준수하며, 승강기를 유지관리하고 있다. 또한 엔지니어의 안전을 위한 작업 매뉴얼은 존재하며, 이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당사는 계속적으로 조속한 사고 원인 규명에 총력을 기울이고 어떠한 조사에도 성실히 임하겠으며 향후 임직원들의 안전에도 더욱 만전을 기할 것이다. 다시 한 번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유가족분들의 아픔에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일단 강북본부 포함 다른 지역본부들에 대한 전수조사가 불가피할 것 같은데 엘리베이터 기사들이 실질적으로 혼자 작업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현대엘리베이터 소속 모 기사도 블라인드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반복 고장이 1시간 동안 처리하다가 떨어진 것 같다. 승강기가 1대 뿐인 건물에도 2인, 여러 대 있는 건물에도 2인이 보내진다. 승강기가 1대 뿐인 저층 건물에서는 2인 1조로 작업을 하면서 승강기가 여러 대 있는 고층 건물에서는 2인이 절반씩 나눠서 작업하게 돼 실질적으로는 1인 점검이 되는 상황이다.

 

 

이처럼 엘리베이터 작업자들의 사망 사고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통상 1년에 2건 이상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2019년 3월 부산 해운대구의 한 아파트 17층에서 노후 엘리베이터 교체 작업을 하던 30대 작업자 2명이 추락해 숨졌고, 같은 해 12월 경기 포천의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엘리베이터 공사를 하던 50대 작업자가 떨어져 숨졌고, 불과 며칠 전 6월16일 경기도 오산 원동의 한 상가 건물에서도 30대 작업자가 홀로 고장난 엘리베이터의 문을 수리하다 지상 2층에서 지하 2층으로 떨어져 숨을 거뒀다.

 

엘리베이터 추락의 원인은 다양하다. 엘리베이터는 고정 도르래의 원리와 같은데 모터(권상기)를 작동시켜서 카(사람이 타는 공간 elevator car)와 무게추가 움직여서 균형을 맞추는 형태로 사람을 위아래로 옮겨준다. 카를 이동시키려면 ‘와이어로프’로 올리고 내려야 하며, 이 로프가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레일’이 필요하다. 또 레일을 받쳐주는 ‘브라켓’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흔히 엘리베이터 고장은 대부분 일시적인 정전, 전원 퓨즈 절단 등의 이유로 발생한다. 점검 작업자들은 도어나 브라켓을 보수하다가 추락 사고를 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로프가 파단(닳아서 잘록해져 떨어짐)되거나 브라켓이 갑자기 떨어져버리는 일들이 잦다. 승강로 균형추를 밟고 카의 외부 판넬을 조립하다가 추락하는 경우도 있고, 엘리베이터를 교체하기 위해 추가 안전장치를 설치해놓고 중앙 와이어 하나를 절단했다가 변을 당하기도 한다.

 

A씨가 왜 죽음을 맞이하게 됐는지에 대한 부분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 고용노동부 서울청 광역중대재해수사과, 서울서부지청 산재예방지도과 등에서 근로감독관을 현장으로 급파해서 사고 경위를 파악하고 있는데 이미 작업중지명령이 내려졌다. 추후 중대재해처벌법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를 가려내서 법적 처벌 절차에 돌입할 계획이다.

 

 

A씨는 사고 당시 안전 장비를 착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행정안전부의 관련 규정에 따라 2명 이상이 함께 작업해야 하는 위험한 일이었는데 A씨는 혼자 헬멧과 안전 로프 없이 작업을 하다 숨졌다. 근데 이런 지점이 있다. 지난 2021년 12월 대선 정국 당시 경기도 안양에서 도로 포장 공사를 하다 노동자 3명이 롤러에 깔려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은 “작업을 원활하게 하려고 센서를 껐다가 다치면 본인이 (과실로) 다친 것”이라고 발언해서 많은 비판을 받았었다. 왜 센서를 끄고 작업을 하게 된 것인지에 대한 배경을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 2인 1조를 지킬 수 없었는지, 왜 헬멧과 안전 로프를 갖추지 않고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배경을 살펴야 한다. 노동건강연대는 아래와 같이 주장했다.

 

왜 안전 센서를 끄면서까지 작업을 해야 하는지 묻지 않은 채, 누가 센서를 껐는가에만 주목하는 시각이 바뀌지 않는 한 ‘산재 사망 노동자 줄이기’는 구호로 남을 뿐이다.

 

무엇보다 매번 비용과 시간 효율을 명분으로 수많은 노동 분야에서의 2인 1조 규정이 무시되고 있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 규정으로 남겨두지 말고 강제적인 법률로 박아놓을 필요가 있다. 재계는 해당 규정 자체에 회의적이기 때문에 ‘권고’ 수준에 불과한 규정은 유명무실 그 자체다. 사회학자 엄기호씨는 노동자가 2인 1조로 함께 일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파했다.

 

2인 1조는 인간의 활동인 노동, 작업(창작), 행위 그 어떤 것으로 보더라도 인간의 조건 자체라 할 수 있다. 행위는 말 그대로 공통의 집을 짓는 공동의 행동이기 때문에 최소 조건이 2인1조가 될 것이다. 작업(창작)은 고독한 창작자 혼자만의 과정인 것처럼 보이지만 끊임없이 피드백해주면서 내가 보지 못 하는 것을 보게 하고 독선과 독단에 빠지지 않게 하는 동무가 필요하다. 노동에서 2인 1조가 필요한 것은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인간 활동의 세계에서 ‘홀로’란 없으며,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이 ‘홀로’를 강요할 때 인간은 위험에 빠진다. 노동을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으로 여겨 노동자들이 서로를 위험에서 보호하는 ‘행위’를 제거해버리고 ‘홀로’ 노동하게 한다.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서로가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 위험에 빠졌을 때 즉시 작업을 멈추고 사람을 먼저 구하는 일, 이것이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가 구축하고 지켜야 하는 ‘세계’다. 물론 그 세계를 사회가 보호해야 한다. 2인 1조가 돼야 노동은 다시 서로를 보호하는 행위가 되며 활동적 삶의 현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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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욱

안녕하세요.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입니다. 권력을 바라보는 냉철함과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겠습니다. 더불어 일상 속 불편함을 탐구하는 자세도 놓지치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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