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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가 소수민족 갈등 이용? “그 자체로 거대 이익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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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천양원 기자] 5.18 민주화운동 41주년인 올해 미얀마에서 많은 시민들이 학살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 야만과 폭력은 현재진행형이다. 미얀마의 참상에 슬퍼하고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 자체로 중요하다. 동시에 우리가 해야할 일은 군부의 행태를 정치학적으로 해부해보는 것이다.

 

지난 5월25일 방영된 KBC 광주방송 <쿠데타의 역사>를 통해 미얀마 참상의 본질을 정리해봤다. 해당 프로그램은 KBC 창사 26주년 3부작 특집으로 기획됐고 심용환 역사전문작가, 장준영 교수(한국외국어대 동남아연구소), 공진성 교수(조선대 정치외교학과) 등 3인의 학술 토크(토크멘터리)로 진행됐다.

 

 

근대국가의 핵심은 폭력의 독점이다. 일정한 범위의 공동체에서 폭력이 독점되지 못 하면 언제든지 군사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폭력의 분점은 “하나의 국민으로 충분히 통합”되지 못 한 역사적 배경이 있는 지역에서 일어난다.

 

공 교수는 ‘발칸반도’와 ‘동남아시아’를 예로 들며 “서로 다른 제국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들이 주로 분쟁 지역이 된다”고 강조했다. 동남아시아 지역 또는 미얀마 사례만 보더라도 아주 오래전부터 이슬람 제국, 무굴 제국, 중화 제국 등의 교차 지배를 받게 됐고 근대 이후 영국 제국의 식민지까지 거치게 되면서 “(영국이) 분리전술을 이용했기 때문에 하나의 국민이 될 기회를 얻지 못 했다”는 설명이다.

 

반면 한국은 “항일 투쟁을 하면서 식민지 지배 기간 동안 오히려 민족의식이 생겨서 국가는 없지만 하나의 민족”을 형성했다.

 

공 교수는 “(하나의 민족이 되지 못 한 역사적 배경이) 오늘날까지도 미얀마에서 군사적 충돌과 분쟁의 씨앗으로 남아 있다”고 역설했다.

 

이어 “폭력 사용의 정당성을 독점하는 것이 국가인데 정확하게 미얀마는 폭력 사용의 정당성을 독점하지 못 하고 있다”며 “소수민족들이 여전히 무장을 하고 있고 그것을 근거로 군부가 계속 등장하고 있고 그러면서도 독점은 이루지 못 하는 상황 이 과점 상태가 지속되는 한 (분쟁의) 불씨는 계속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논지를 전개했다.

 

미얀마 군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장 교수도 “제국의 흔적이 미얀마에 명확하게 남아 있다. 영국이 식민 지배를 하면서 단순하게 행정 시스템으로만 통치한 것이 아니”라며 당시 소수민족들에게 종교적 분리전술을 구사했던 영국의 행태를 지적했다.

 

심 작가는 “소수민족 문제에 있어서 군부가 갈등을 실질적으로 해결했던 적도 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그걸 명분처럼 활용하고 있는 것이 현재”라고 정리했다.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는 “규율 민주주의”로 뒷받침됐다.

 

장 교수는 “사실 군부가 헌법을 만들면서 내세웠던 하나의 이념이 규율 민주주의”라며 “자기들끼리 규약을 만들어놓고 그걸 위반했을 때는 언제든지 제재를 할 수 있다는 건데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이념과 사상과는 완전히 배치된다. (2015년 11월8일 25년만에 치러진 총선 이후 군부가 민간에) 권력의 이양이 아니라 임시적으로 맡겨놓은 그런 상황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운을 뗐다.

 

민족 분쟁과 미얀마 연방(1989년~)의 해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군부가 직접 세운 규율대로 강력한 통치권이 행사돼야 한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우리(군부)가 존재하지 않으면 135개의 민족이 산산이 흩어질 것이다. 그러면 강국들 인도와 중국 등 이런 국가들이 소수민족들 다 흡수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 연방은 쪼그라들거나 해체될 수밖에 없다”며 “버마족이 전체 인구의 70% 정도니까 최소한 버마족 입장에서는 연방이 분열되기를 원치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군부의 규율 민주주의는 허상이다.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된 직후에는 미얀마 소수민족들이 분리독립과 자치권을 원했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

 

장 교수는 “(대다수 소수민족들은 현재) 독립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군부에) 협조하려는 움직임을 많이 보이는데 군부가 일부러 이들을 이간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진행자 역할을 맡은 심 작가는 한국의 반공주의와 레드 콤플렉스와도 비슷한 지점이 있다고 환기했고 공 교수는 “쿠데타를 일이키는 세력들은 언제나 사람들 마음 속에 있는 불안들을 과장해서 자기들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을 한다”며 “질서가 유지되지 않을 것 같다거나 외부의 침략 위협이 있다거나 경제적으로 더 빈곤해질 수 있다 등등. 이런 것들을 명분으로 내세운다”고 밝혔다.

 

 

미얀마는 인구 규모(5150만명)로 봤을 때 한국과 비슷하다. 다만 미얀마는 다민족 국가다. 버마족이 대략 68%(3500만명)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절대 다수다. 그밖에 샨족, 카렌족, 라카인족, 로힝야족, 카친족, 한족, 아라칸족, 몬족, 와족, 친족, 나가족, 기타 등등 여러 소수민족들이 있다. 총 소수민족 수만 140여개 집단에 달하고 통용되는 언어만 250여개다. 그러나 영국은 미얀마 식민 통치기(1885년~1942년/1945년~1948년) 내내 버마족을 억압했고 동시에 소수민족들의 자치권을 내세우며 분열 정책을 폈다.

 

미얀마 군부는 역사적으로 봤을 때 악한 존재로만 기능하지는 않았다. 소수민족들의 끝없는 분쟁을 잠재웠을 때는 되려 국민적 신임이 높았다.

 

장 교수는 “미얀마 군부의 특성은 다른 나라들에 거의 없는 국민적 인기에서부터 시작했다. (영국과 일제로부터의) 독립운동을 규합시킨 세력이 군부였다. 혁명 군부로서의 기능을 했다”며 “독립 후에도 민간정부의 총리가 군부에게 찾아가서 우리는 도저히 나라를 통치할 수 없으니 군부가 나서서 해결해달라고 한다. 군부는 쿨하게 그걸(섭정체제 1958년~1960년) 받는다. 18개월 동안 통치를 하면서 전국 무장단체들을 소탕한다. 말 그대로 사회의 법과 질서를 만든다. 쓰레기없는 거리를 만든다. 그리고 18개월 뒤 1960년 다시 병영으로 복귀했다”고 정리했다.

 

예컨대 미얀마 분쟁의 원흉으로 평가받는 군부세력의 우두머리 네윈(1911년~2002년)은 1962년 소수민족 갈등을 명분삼아 쿠데타를 자행했고 자치권을 빼앗아버렸지만 대다수 미얀마 국민들로부터 응원을 받았다. 정확하게는 버마족의 지지였다. 버마족은 네윈의 쿠데타 세력이 지난번처럼 사회 분란을 안정시키고 “다시 병영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믿었다.

 

공 교수는 네윈의 쿠데타 명분 즉 “사회 혼란”의 내용에 대해 물었고 장 교수는 “가장 큰 문제가 내전 문제였다. 독립 이후 1949년 1월부터 전국 각지의 무장단체들이 등장했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 독립하자마자 세워진 버마 연방(1948년~1962년) 정부가 로힝야족을 “영국의 앞잡이”로 여기고 강하게 탄압하는 등 버마족과 소수민족들 간의 극심한 갈등이 지속됐다. 1962년까지도 이러한 혼란 정국이 제대로 청산되지 못 하고 무장단체들의 출현이 계속돼왔던 것이다.

 

네윈 세력은 그 명분으로 손쉽게 권력을 획득했는데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장 교수는 “핵심은 그러니까 1962년 쿠데타 이후부터 혁명 군부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서서히 상실하기 시작하는 것”이라며 “그때부터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네윈이 버마사회주의계획당 BSPP 창당)를 시작했는데 모든 사유재산을 국유화한다. 독점한 국가의 부를 군부가 독식하게 된다. 군부는 부의 맛을 알게 되는 것이다. 원래의 기능을 타락했다. 26년 동안 네윈이라는 1명의 군인이 절대 독재자로 군림했다”고 설파했다.

 

 

독일 정치철학자 헤어프리트 뮌클러(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의 여러 저서(‘제국’과 ‘새로운 전쟁’)를 번역 출간했던 공 교수는 ‘군부의 이익집단화’로 미얀마 군부의 속성을 설명했다. 뭔클러는 21세기에 발생하고 있는 각종 전쟁의 양태를 구조적으로 연구해 세계 정치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공 교수는 “서구에서 근대국가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폭력 독점이 이뤄진다. 상비군. 국가의 군대가 생겨난다. 그 군대가 (국가의 통제 하에 있는 시장경제 즉) 민간경제에 종속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월급을 받는 것이다. 그 월급의 출처는 국민들이 평화로운 경제활동을 해서 내는 세금”이라며 “그러니까 군대가 존재하기 위해서라도 사회가 잘 살아야 되고 사회는 평화롭게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서 그 군대가 필요한 것”이라고 풀어냈다.

 

그렇게 “(평화경제와 상비군의) 상호 의존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상적인 평화경제에 의존해야 할 군대가 갑자기 경제활동의 주체로 나서게 되면 비극이 시작된다. 오직 국가가 평화경제로부터 거둬들인 세금으로만 운용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게 된 것이다.

 

공 교수는 “분쟁 지역의 특징이 그곳에서 평화경제에 의존하는 군대가 아니라 오히려 군대가 경제적 주체가 돼서 철저하게 전쟁 경제처럼 운영을 해나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테면 “오히려 가난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군인이 되고 군인이 되어야만 약탈을 하거나 착취를 하거나 아니면 불법적으로 자원을 밀수·판매를 해서라도 돈을 벌 수 있는. 군대가 민간경제에 의존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악순환은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장 교수는 “미얀마만 그런 것이 아니다. 확대해서 동남아 전체로 보면 태국과 인도네시아 군부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이익집단으로 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하며 “(만약) 미얀마 국민이 군부 통치를 청산한다고 하더라도 정치 분야에서의 군부의 역할을 축소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경제활동의 주체로서 군부는 앞으로 어느정도 시기에는 이권을 누릴 가능성이 크다”고 호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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