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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섭하지 않는 ‘독일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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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얼마전 평범한미디어는 부모가 자식의 결혼 상대에 대해 반대할 자격이 없다는 취지의 칼럼을 작성한 ‘치유공간 이웃’ 이명수 대표의 견해를 지면에 실은 바 있다. 직접 동의를 얻고 평범한미디어로 가져오고 싶을 만큼 공감이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당 기사를 소개하는 평범한미디어 유튜브 영상에 악플이 줄줄이 달렸다. 대부분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자식이 부모로부터 물적 지원을 받는 부분을 강조했고, 그런 만큼 부모가 자식의 결혼에 어느정도 개입하고 간섭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취지를 피력했다.

 

예식비랑 신혼집 장만할 때 도움 받는 대가로 간섭받는 거지. 솔까 도움 1도 안 받는다면 알릴 필요도 없지. 근데 영상 내용은 너무 잼민이 발상이다.

 

초등학교 5학년 딸을 둔 엄마라고 밝힌 모 네티즌은 길고도 진지한 댓글을 달기도 했다.

 

두분 이야기를 듣자하니 부모의 참견이 부당하다는 이야기 같은데 그렇다면 두분이 가장 잘 되고 행복하길 바라는 사람이 누구일까? 반대하는 이유가 단지 예비 배우자의 능력이 마음에 안 들어서일까? 나의 가장 소중한 자식이 안 그래도 쉽지 않은 결혼생활에서 여러모로 수월한 배우자를 만나 사랑받으면서 평안하게 잘 살길 바라는 마음 아닐까? 만약 이 영상을 두분의 부모가 본다면 내가 제일 사랑하는 자식이 자신들을 이렇게 생각한다는 걸 안다면 그동안 자식을 위해 살아온 인생이 얼마나 서글플까. 두분 말씀대로 참견이 싫다면 부모의 금전적도움과 정신적 도움을 일체 바라지말길 바란다. 받을 거 다 받으면서 불만만 드러낸다면 중학생 사춘기 아이들과 다를 게 뭔가?

 

 

사실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의 거의 모든 편을 통달했던 사람으로서 이런 한국적 풍경이 국룰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너무나 답답했다. 그러던 와중 지난 16일 방송된 SBS <동상이몽2>에서 독일인 남편과 결혼한 개그우먼 김혜선씨의 이야기를 접했다.

 

김씨는 이혼 가정에서 성장했던 만큼 가족애적 결핍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나중에 커서 결혼하면 자녀를 많이 낳아서 식구가 많은 그림을 항상 상상해왔다고 한다. 김씨는 독일에서 소개팅으로 만난 남편 스테판 지겔과 결혼했고, 스테판을 한국으로 데려왔다. 스테판은 베를린 공대에서 도시생태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정부부처와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등 자신의 커리어와 미래가 창창했지만 모든 걸 포기하고 사랑하는 김씨를 따라 낯선 한국땅을 밟았다. 서로 사랑하는 만큼 2세 계획을 세워서 바로 실행했을 것 같지만, 스테판은 아이를 갖고 싶다는 김씨의 마음을 들어주지 않았다. 스테판은 제작진 인터뷰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사실 나는 아기를 원치 않는다. 혜선과 함께 하는 삶이 제일 좋기 때문에 둘만의 시간을 계속 갖고 싶다.

 

김씨는 그런 스테판에 대해 서운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땐 다른 친구들이나 아기도 필요없다고 말하길래 아 나를 너무 사랑하는구나. 나를 너무 사랑하고 나만 보는구나. 그러고 좋아했었다. 근데 언젠가부터 심각해지더라. 지금도 내가 나이를 먹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아이를 낳고 싶다.

 

1983년생 40세. 소위 말하는 노산의 문제도 있기 때문에 김씨는 조급해진다. 그래서 시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비행기 공포증과 코로나가 겹쳐, 한국에서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 했던 스테판의 부모는 이번에 생애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김씨는 넷이 모인 자리에서 대놓고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자신의 입장을 지지해달라는 시그널을 시부모에게 보냈다. 그러나 김씨는 서운함이 느껴질 정도로 확고한 독일 시부모의 소신을 확인했다.

 

김씨: (2세 계획이 없다는 스테판에게 독일어로) 우리 돈 열심히 벌어야 해. 난 아기를 갖고 싶거든. (한국어로) 아기 필요해. 갖고 싶어. 나는 아기 갖고 싶은데 스테판은 원치 않는다.

 

시어머니 베로니카: 굉장히 뜨거운 주제구나.

 

김씨: 나는 이미 나이가 많다. 여자는 나이 들면 몸이 달라지니까. 하루 빨리 아이를 갖고 싶다.

 

김혜선: 시어머니, 시아버지. 도와달라.

 

베로니카: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니?

 

시아버지 군터: 너희들 문제에 우리 의견을 섞을 순 없어.

 

베로니카: 물론 우리는 손주가 있으면 너무 좋겠지만 2세 계획은 부부가 결정해야 할 문제다. 제3자가 결정할 문제가 아냐.

 

 

시부모의 반응을 접하고 놀란 김씨의 표정에 대해 제작진은 “말문이 턱 막혔다”고 자막을 달았다. 김씨는 답정너를 요구하는 맥락에서 시부모에게 “한국에서는 결혼하면 시부모들이 2세를 가지라고 하기도 한다”고 언질을 줬다. 김씨의 이 말이 끝나자마자 제작진은 흔히 볼 수 있는 한국적인 드라마의 한 장면을 배치시켰다. 시어머니가 강압적으로 며느리의 임신을 재촉하며 한약을 쥐어주는 장면이었다. 그만큼 한국적으로 봤을 때 김씨의 요구와 간절함이 이상한 게 아니라는, 김씨의 입장에 힘을 실어주고 싶은 것이 제작진의 의도로 여겨졌다. 실제로 VCR을 보는 고정 패널들도 하나같이 독일 시부모의 메시지에 놀라움을 금치 못 하는 리액션을 보였다. 그나마 과거 <뜨거운 사이다>와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페미니즘적 관점을 이해하고 있는 김숙씨마저도 “(2세 문제는 자녀 부부 스스로 결정하도록 부모가 개입하지 않는) 이게 맞는 건데 우리가 보기엔 낯설다”고 코멘트했다.

 

이지혜씨: (독일 시부모의 확고한 철학을 듣고) 동상이몽의 다큐멘터리 같다.

 

김구라씨: 프로그램에서 갑자기 철학자가 나와서 얘기하는 것 같다.

 

시아버지 군터는 거듭된 김씨의 구원 요청을 듣고 “너희 둘이 결정할 문제니까 내가 관여를 많이 하고 싶진 않지만 가장 중요한 건...”이라면서 “둘이 잘 의논해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마침표를 찍었다. 김씨는 시부모를 통한 쓰리쿠션 압박 전략을 아무리 구사해도 소용이 없고, 결국 스테판을 설득하는 길 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두분이 항상 내 편이어서 기대했는데 여기선 칼같이 대답을 하더라. 서운하더라.

 

베로니카는 제작진 인터뷰에서 다시 한 번 아래와 같이 강조했다.

 

당연히 아이는 없어도 된다. 아이가 있고 없고에 따라 둘을 더 사랑하거나 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니까. 두 사람의 부모로서 저희가 가장 기쁜 일은 함께 결정내리는 걸 지켜보는 것이다. 그래서 둘의 결정에 의견을 보탤 수 없다.

 

 

만약 스테판이 아이를 갖길 원하지만 타이밍상 나중에 갖고 싶어하는 정도라도 됐다면 시부모는 김씨의 편을 들어줬을 것 같다. 그러나 스테판이 아이를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만큼, 김씨의 편을 들어줄 수가 없다. 아무 편견없이 아들의 선택으로 데려온 동양인 며느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줬던 시부모이기 때문에, 임신 문제에 대해서도 아들의 입장을 존중해주는 것이다.

 

독일 부모도 부모다. 아들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없는 게 아니고, 일체의 바람이나 원하는 바를 전달하지 않는 게 아니다. 군터는 “혜선이 자기 일을 열심히 하니 스테판도 한국어를 좀 더 잘 하면 (한국에서) 직장 구할 기회가 더 많아지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분명 스테판이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할 문제임에도, 군터는 아버지로서 집안일과 아내 외조에 힘쓰고 있는 스테판에게 한국에서도 커리어를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을 내비쳤다. 하지만 자녀를 갖고 양육하는 문제는 그런 영역이 아니라고 봤다.

 

고정 패널 오상진씨는 자녀 부부의 임신 문제에 관해 시부모가 스스로 “제3자”라고 칭하는 모습을 보며 “유러피안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코리안 스타일과 유러피안 스타일의 문화적 차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통상적인 한국 부모들이 자녀를 소유물 또는 대리만족의 도구로 보는 것, 그래서 번듯한 직업을 얻고 결혼해서 떡두꺼비 같은 손주를 안겨주는 걸 당연하게 요구하는 부분, 이런 점들을 퉁쳐서 싸그리 욕하기 보단 그런 문화가 형성된 역사와 맥락에 대해서도 공부해보면 좋을 것이다.

 

<동상이몽2>는 중장년층에도 인기가 높은 프로그램이다. 이번 회차에서 독일 부모의 유러피안 스타일을 접하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됐고, 무엇을 느꼈을지 감상평을 들어보고 싶다. 끝으로 <동상이몽2>는 방영 이후 기사화가 자주 되는 프로그램임에도, 이번 회차 관련 자녀 부부의 임신 문제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독일 부모에 초점을 두고 제목으로 뽑은 기사는 딱 1개 밖에 없었다는 현실이 씁쓸하다는 점을 밝혀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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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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