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사실 오래전부터 정치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국회 출입 정치부 기자로서 현장을 지켜봤을 때도 뼈져리게 깨달았다. 현행 제왕적 대통령제를 손보는 권력구조 개헌과, 승자독식 단순다수대표제의 단점을 보완하는 선거제도 개혁 이 2가지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무지 어렵다. 개헌도 어렵고, 선거제도 개혁도 어렵다. 거대 양당은 1표만 더 받아도 모든 걸 가져가는 선거 시스템과 선거 문화 속에서 너무 많은 이익을 챙기고 있었고, 그 기득권을 한뼘도 내놓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위성정당의 부작용이 뼈아프지만 2019년 12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패스트트랙까지 태워가면서 겨우 도입했다.
이제는 개헌을 해서 대통령제에 손을 대야 한다. 조금이라도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국회의 의사를 반영해서 총리를 두도록 규정한 ‘분권형 대통령제’도 좋고, 프랑스처럼 ‘이원집정부제’로 갈 수도 있고, 이참에 폭력적인 대통령제 자체를 폐지하고 ‘의원내각제’로 가자는 주장도 나쁘지 않지만 너무나 커다란 목표를 세우다가 개헌 담론 자체가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양당의 엄청난 이해관계 문법이 작동하기 때문에 대타협을 이루기 어렵고, 국민투표까지 가야 하는 개헌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여론의 힘도 받아야 한다. 그동안 숱하게 실패했던 개헌 정국이 또 반복되면 안 된다. 이제는 작은 변화라도 현실화시켜야 한다.
그래서 당장 양당이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모델 ‘대통령 4년 중임제’에 대해서 각잡고 따져봐야 한다. 평범한미디어 크루로서 격주로 ‘오목렌즈 대담’을 진행하고 있는 박성준 센터장(다소니자립생활센터)은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박 센터장과 나눴던 ‘정치제도 개혁’에 대한 깊은 고민을 담은 두 기사 계엄 이전과계엄 이후를 추천한다!)
이제는 독재를 못 하게 하는 독재 스토퍼의 역할을 했던 단임제라는 게 이게 또 다른 형태의 독재의 수단이 돼버렸다. 그래서 불완전하지만 가장 현실적으로 합의에 이를 수 있는 대통령 중임제로 가야 한다. 사실 대한민국 정치 역사에서 독재가 워낙 길었기 때문에 중임제를 해보려고 해도 대통령들이 중임에서 만족하지 않고 3선 개헌, 4선 개헌을 했고 그 결과로 딱 한 번만 하도록 단임제를 선택한 건데 이제 단임제의 폐해가 나타났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중임제로 돌아가야 되는 거고 두 번으로 딱 제한하는 형태로 해야 된다.
관련해서 며칠 전 열린 학술대회에서 지병근 교수(조선대 정치외교학과)의 발표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지 교수는 지난 2일 13시반 광주 북구에 위치한 전남대 진리관 701호 강의실에서 개최된 학술대회<12.3 내란 이후 사회 대개혁과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에 참석해 “중임 허용에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그런 것이다. 뭐냐 하면 가장 긍정적으로 이야기되는 게 민주적 책임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현 단임제는) 첫 번째 임기가 끝날 무렵 대통령 본인이 잘하든 못하든 임기가 끝나는 것이기 때문에 본인이 잘하려고도 안 하고 또는 국민들의 눈치를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임기말에는) 그게(민주적 책임성)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중임을 허용하면 이런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지만 당연히 부정적인 효과들에도 주목을 할 필요가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를 생각해보면 된다. 트럼프 사례처럼 한 번 낙선했다가 다시 권좌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연달아 재선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임기말 유권자 여론을 살피는 효과가 있다. 반대로 지 교수는 중임제의 단점으로 “포퓰리즘이 등장할 가능성”을 꼽았다.
그렇기 때문에 소위 얘기하는 과도한 예산을 편성해서 집행을 하고 그걸 통해서 인기를 높이려고 하는 이런 것들 때문에 국가 경제가 망가지는 부분도 예상할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선거 운동의 공정성을 침해”할 가능성이다. 실제로 침해하지 않는다고 해도 현직 대통령이 임명한 행정안전부 장관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버티고 있는 현실을 고려했을 때, 자신의 중임 여부가 걸린 만큼 무언가 장난질을 하지 않을까 괜히 의심스럽다. 야당과 야권 시민사회에서 강하게 문제제기를 하면서 ‘부정선거론’ 급으로 공정성 시비기 발생할 수도 있다. 지 교수는 “관건 선거 시비에 휘말릴 수 있는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부연했다.
나아가 이런 지점도 있다. 현행 단임제 하에서도 임기말 집권 여당이 대통령과 선을 그으려고 하는 레임덕 기간이 발생하는데 중임제라고 해서 그러지 않을까? 지 교수는 “1차 집권기에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2차 집권기에는 단임제 하에서 발생하는 레임덕이 중임제를 채택한다고 하더라도 똑같이 발생할 수 있고 그럴 위험성이 분명히 있다”며 “그래서 그런 차원에서 대통령 중임제 도입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같이 고려해서 고민을 해야 된다”고 제언했다.
그리고 연임제인지 중임제인지도 고민스럽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했고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도 제안했던 게 뭐냐 하면 연임제다. 연이어 선출되는 경우에 한하여 1차 중임할 수 있다는 안을 제안했다. 연임제로 할 것이냐 아니면 중임제로 할 것이냐는 2가지 선택지가 있다.
말 그대로 현직 대통령이 연이어서 두 번만 할 수 있는 것이 연임제다. 그 외에 다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래서 중임제처럼, 연이어서 하지 않아도 다시 출마할 수 있도록 허용해둔 것이 금지된다. 중임제는 재임 횟수를 두 번이나 세 번 등 제한을 둘 수도 있고 안 둘 수도 있다. 다만 연이어 하지 않고 나중에 다시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지 교수는 미국 예일대 교수였던 정치학자 故 후안 린츠의 ‘대통령제 비판론’을 거론했는데, 린츠는 지난 1990년 ‘대통령제의 위험성(The Perils of Presidentialism)’이란 논문을 발표해서 대통령제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린츠에 따르면 직선제로 뽑힌 의회와 대통령 둘 다 ‘정통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초 여소야대’ 국면에서는 탄핵이 남발되고 군대가 동원될 수도 있다. 불안정한 남미 국가들의 정치 형국을 상정했던 린츠의 이론이 2024년 대한민국에서 계엄 사태로 재현됐다. 우윤근 전 국회 사무총장은 아래와 같이 풀어냈다.
일찍이 후안 린츠 교수는 대통령제가 끼치는 가장 큰 영향은 승자독식의 결과를 지향하는 통치와 더불어 ‘제로섬 게임’의 강렬한 요소를 민주 정치 속으로 도입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선거의 승자는 전쟁의 전리품을 챙기듯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패자는 죄인처럼 모든 것을 잃는다. 선거 결과 나타난 유권자의 표심이 51대 49라 하더라도, 권력의 분포는 100대 0이 되고 만다.
말 그대로 양당이 죽도록 싸우고 저주하는 ‘적대적 공존의 양당체제’라고 할 수 있다. 지 교수는 “근본적으로 대통령제는 행정부와 입법부 사이에 화해의 계기를 마련하기가 힘들다. 이건 제도적으로 극한 대결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린츠의 주장이라는 점을 재차 피력했다. 반대로 지 교수는 린츠의 논점과 달리 “대통령제의 문제점은 입법부와 행정부간의 대립이 아니고 대통령으로의 권력 집중” 자체로 본 학자들도 있다는 점도 환기했다.
이제 대통령이 사용할 수 있는 5가지 도구상자가 있는데 대통령이 입법부를 통제하기 위해서 또는 정치적인 지지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수단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예산 편성권을 활용한다거나 아니면 시행령을 활용한다거나.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행정부가 집행기관으로서의 어떤 기능보다 입법부로서의 역할을 한다거나 아니면 국회의원들을 컨트롤하기 위해서 예산을 활용하는. 여러 가지 수단을 이용해서 대통령 본인의 사적 권한을 확대하기 위한 시도들이 대통령제를 취하고 있는 국가들에서 널리 보여지고 있다는 차원에서 짚어봐야 한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지 교수는 “대통령 중임제는 레임덕 극복 뿐만 아니라 민주적 책임성 강화 그리고 대통령과 국회간의 권력 분립 원칙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대통령에 대한 여당의 종속관계와 정치의 사인화를 극복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과제다. 그리고 대통령에 대한 권한을 축소하자는 논의들이 굉장히 많지만 저희가 한편으로 또 고려해야 되는 부분은 뭐냐 하면 정부의 기능을 약화시키지 않고 국회와 협력을 강화하는 이런 방안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지 교수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들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명문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4년 대통령 중임제로 개헌을 한다면 권한대행에 대한 규정도 같이 포함해서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