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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소수정당 후보들이 ‘허경영’에 패배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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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4.7 보궐선거가 끝났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나는 오래전부터 원내외 소수정당들을 취재해왔는데 고구마를 물없이 먹은 기분이 들었다. 서울시장 선거에 총 12명이 출마했는데 의미있게 취재해왔던 소수정당의 후보들은 6명이었다. 이들은 정치를 비즈니스로 여기는 국가혁명당 허경영씨 보다 표를 못 받았다.

 

△3등 허경영 국가혁명당(1.07% 5만2107표)
△4등 김진아 여성의당(0.68% 3만3421표)
△5등 신지혜 기본소득당(0.48% 2만3628표)
△6등 신지예 무소속 팀서울(0.37% 1만8039표)
△7등 송명숙 진보당(0.25% 1만2272표)
△8등 이수봉 민생당(0.23% 1만1196표)
△9등 오태양 미래당(0.13% 6483표)

 

 

이슈 메이킹을 할줄 알고 창의적으로 정치활동을 해왔다고 믿었던 미래당의 오태양 대표는 꼴찌였다. 오 대표의 득표율은 허씨의 8분의 1에 불과했다. 

 

오 대표는 지난 2월16일 출마 선언을 했을 때부터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오세훈 서울시장을 타겟삼아 철저히 네거티브에 집중했다. 동시에 본인의 소수자성을 부각했다. 오 시장이 예고한 선거운동 장소를 미리 선점해 갑질당하는 이미지를 만들고 격하게 항의하며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오 시장의 용산참사 망언에 사과를 요구하다 캠프 관계자로부터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오 대표는 작년 2월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의 공식 위성정당 미래한국당 창당대회에 찾아가 “당장 해산하라”고 외치다 거친 폭력에 노출된 적이 있었다. 1년 전과 똑같은 전략이 되풀이 된 것이다.

 

이번 보궐선거 직전 미래당을 탈당한 박성준씨는 페이스북에서 “(오 대표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로서 성소수자의 권리를 전면에 내세웠다”고 밝혔지만 성소수자의 권익을 위한 실질적인 공약이 부각되기 보다는 그의 네거티브 액션들로만 이미지화가 됐다.

 

사실 소수정당 소속 후보로서 효과적인 마케팅을 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유권자들은 그런 그에게 표를 주지 않았다.

 

곽우신 오마이뉴스 기자는 페이스북을 통해 “(미래당과 오 대표는)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진중하게 뒤돌아보기를 바란다. 이번 선거판에서 눈에 띈 건 오세훈 캠프와 충돌할 때 밖에 없었다”며 “모든 이슈에서 다른 후보나 정당의 마이너 카피판 정도의 존재감 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위성정당 때도 그랬고 이번에 박원순(오 대표가 출마 선언 직전 ‘박원순 시민정신 계승’ 거론)에 대해서도 그렇고 항상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노선에서 적당히 맞는 말만 반복하는 정도”라며 “미래당이 그리고 싶은 미래는 정책의 나열이 아니라 비전으로 엮여서 구체화되어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허씨는 출마를 해야만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허씨는 매주 서울 종로3가에서 12년째 대중강연을 해오고 있다. 강연회에는 사회의 밑바닥을 구성하고 있는 소외계층이 가득하다고 한다. 요양보호사, 용달화물 운전자, 미화원, 건설노무자, 마트 캐쉬어, 백화점 알바, 기계청소부, 택배기사, 페인트공 등 이들은 21대 총선에서 실제 출마했고 그 숫자만 1000명에 달했다.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은 작년 3월2일 출고된 경향신문 칼럼을 통해 “사이비정당(국가혁명당)이 요양보호사, 미화원, 백화점 알바, 페인트공들과 만나길 주저하지 않는 동안 진짜 정당들은 어디서 누구와 만나고 있었던가”라고 환기했다.

 

강 연구원은 허씨와 국가혁명당이 엉터리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허씨의 강연이 열리는 장소와 국가혁명당의 선심성 공약들이 어필하는 사회적 계층, 예비 후보들의 나이와 학력, 직업을 통틀어 보았을 때 이들의 사회적 지위가 부자와 빈자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울 것 같은가?”라며 “청년 당사자 정치가 유효하다면 이들의 장년 당사자 정치도 유효할 것이고 노동자 당사자 정치가 유효하다면 이들이야말로 바로 그 노동자 당사자들이다. 이들의 출마는 간단히 농담거리로 삼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왜 진보적 소수정당들은 국가혁명당처럼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의 참여와 동조를 이끌어내지 못 하는 걸까. 누군가는 이번 보궐선거에서 허씨의 득표율을 두고 “1번도 싫고 2번도 싫은 유권자가 장난삼아 허경영에 투표했을 것”이라고 힐난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투표장에 안 갔을 것이다. 

 

 

故 노회찬 의원은 이른 새벽 6411번 버스를 타고 출근해야만 하는 투명인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을 잡을 수 있는 곳”에 진보정당이 있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노 의원의 6411번 정신이 허씨의 대중강연과는 거리가 멀겠지만 최소한 지속적으로 사회적 약자들과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을 해줘야 할 것 같다.

 

2019년 여름 나는 취업사기를 당했다. 내가 못 받은 임금은 200만원 정도였다. 소액 임금체불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지불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나를 스카웃했기 때문에 취업사기라고 봤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막막했다. 변호사를 선임해서 형사고소를 해보고 싶었는데 착수금만 500만원에 시간당 상담비는 20만원이었다. 

 

현직 언론인으로 사회 문제를 비판해왔던 나였지만 언제든지 위기에 몰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한낱 힘없는 약자에 불과하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때 우연히 정의당 비상구(비정규직노동상담창구)를 만났다. 비상구 소속 노무사를 소개받았는데 그는 아무 대가없이 내용증명서를 작성해줬고 각종 비슷한 케이스들을 보여주며 구체적인 대응 노하우를 알려줬다. 눈물나게 고마웠다. 돈 없는 가난한 청년의 손을 잡아줬다는 것이 참으로 감격스러웠다.

 

대한민국에는 정치사회적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사치인 사람들이 있다. 당장 알바를 하지 않으면 생활이 어려운 가난한 대학생, 일용직 노동자, 발달장애인 가족들, 쪽방촌 거주자, 노숙자, 탈학교 청소년 등등. 소수정당들이 어떤 정책이 필요하고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이런 주장을 하기 이전에 지금 당장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지속적으로 다가가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는 없을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진 못 하더라도 자신들의 어려움을 함께 걱정해주고 있다는 정서적 안정감이라도 안겨줄 수는 없을까? 

 

강 연구원은 “정작 가난한 사람들의 삶터에서 그들과 꾸준히 만나며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물어본 정치인과 정당은 얼마나 있었을까. 허경영과 1000명의 출마자들을 마주하여 던지게 되는 질문이다”고 화두를 던졌다. 

 

길가는 시민들이 민망함을 느끼지 않고 먼저 들어와 자기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곳곳에서 간이 상담소라도 운영해보면 어떨까? 소수정당들은 선거 때가 아닌 평소에 잘 해야 한다. 당사에 있지 말고 거리로 나가야 한다. 행사에 참여할 게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의 삶터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꾸준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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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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