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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윤창호법’ 적용 기준이 고무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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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故 윤창호씨 친구들과 윤창호법 제정 운동을 할 때부터 걱정하던 지점이었다. 분명 술 마시고 운전을 해서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게 만들면 바로 특가법상(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험운전치상 또는 치사(윤창호법)가 적용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교특법(교통사고처리특례법)과 윤창호법 둘 중 하나다. 음주운전 가해자와 수임료를 받은 변호사들은 후자가 아닌 전자를 적용받기 위해 필사적이다.

 

양형의 차이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①윤창호법 위험운전치상은 징역 1~15년이고, 치사는 징역 3년~무기징역

②교특법상 음주운전치상과 치사는 일괄적으로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

 

 

그래서 윤창호법이냐 교특법이냐가 중요한데 이 둘을 가르는 기준은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 해당되느냐다. 윤창호법으로 불리는 특가법 5조의 11 1항 법조문에 보면 실제로 “음주 또는 약물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라고 돼 있다. 술에 취해 혈중알콜농도가 0.08% 이상(면허 취소 기준)이라고 해도 윤창호법이 아닌 교특법이 의율될 수 있고, 0.08% 이하라고 해도 윤창호법이 적용될 수 있다.

 

그래서 음주운전 가해자는 술에 취해 사고를 낸 게 아니라 “딴짓(조수석에 탄 여자친구와의 스킨십)하다가”, “착용하던 렌즈가 돌아가서”, “스마트폰을 보느라” 등등 이런 사유로 주의력이 분산되어 사고를 냈다고 항변한다. 로펌은 이러한 빈틈을 노려 전략을 세운다.

 

도대체 술 때문에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라는 것은 뭘까?

 

헌법재판소는 이렇게 정리했다.

 

“알콜이 사람에 미치는 영향은 사람에 따라 다르므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 해당되는지 여부는 구체적인 교통사고에 관하여 운전자의 주취 정도 뿐만 아니라 알코올 냄새, 말할 때 혀가 꼬부라졌는지 여부, 똑바로 걸을 수 있는지 여부, 교통사고 전후의 행태 등과 같은 운전자의 상태 및 교통사고의 발생 경위, 교통상황에 대한 주의력·반응속도·운동능력이 저하된 정도, 자동차 운전장치의 조작을 제대로 조절했는지 여부 등을 종합해서 판단해야 한다(헌법재판소 2009. 5. 28. 선고 2008 헌가 11 전원재판부 결정 참조).”

 

아니 그냥 술 마시면 다 취하는 것이고, 그 상태로 운전하면 위험한 것이고, 인명 피해까지 냈다면 똑같이 나쁜 것이지, 술에 강하면 덜 처벌받는다는 말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다. 법리에 맞게 혈중알콜농도라는 기준 딱 하나만 갖고 0.03%(면허 정지 기준)를 넘으면 일괄적으로 윤창호법 적용을 할 수는 없는 걸까?

 

 

교통사고 전문 정경일 변호사(법무법인 엘엔엘)는 23일 평범한미디어와의 통화에서 “요즘 이슈가 되는 게 윤창호법 형량이 높아지니까 그걸 계속 부인한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운전하면 형사처벌을 받는 건데 술에 취한 상태라는 게 도로교통법 44조에 보면 정해져 있다. 혈중알콜농도 0.03% 이상을 말한다고 돼 있다”면서 “근데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 대해서는 별도로 명시적인 판단 규정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요즘 피고인들은 술 먹은 건 맞는데 술 때문에 사고난 게 아니라고 부인한다”며 “결국 검사가 혈중알콜농도와 피고인의 상태 등으로 입증해야 하는데 판사도 부담스러워서 윤창호법 적용을 쉽게 안 해준다”고 설명했다.

 

그러므로 헌재가 정리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 대한 기준이 정밀하게 적용되기 보다는 △사람이 죽거나 크게 다치는 등 결과가 중대할 때 △언론 보도가 많이 이뤄져 이슈화가 됐을 때 등 이 2가지 기준으로 윤창호법이 들쑥날쑥 적용되고 있다. 사실상 결과가 중대하더라도 언론에 얼마나 보도됐느냐에 따라 판결의 수위가 아주 많이 달라진다.

 

실제로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다.

 

지난 6월17일 대전지방법원은 음주 수치 0.12%로 음주운전 치사를 범한 피고인 A씨에 대해 윤창호법 무죄를 판결했다. 심지어 해당 피고인은 두 차례나 음주운전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었다. 재판부는 “언행 부정확, 보행 비틀거림, 혈색 붉음이라고 된 경찰 정황 보고서만으로 피고인의 주의 능력·반응속도·운동능력이 상당히 저하된 상태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피고인에 대한 음주 측정 사진으로 보면 눈빛이 비교적 선명하다. 다음날 이뤄진 조사에서도 사고 경위를 비교적 상세히 기억했다”고 판시했다.

 

정 변호사는 “사진상 눈빛이 술에 취한 눈빛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그렇게 해서 빠져나가서 항소심 진행 중”이라며 황당함을 감추지 않았다.

 

 

이에 반해 대만 유학생 故 쩡이린씨를 사망케 한 음주운전 범죄자 김모씨는 4월14일 1심(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6단독)에서 윤창호법을 적용받아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김씨의 음주 수치는 0.079%였고 A씨처럼 두 차례의 음주운전 벌금형 전과가 있었다.

 

윤창호씨 및 쩡이린씨 친구들 등 음주운전 피해자들과 함께 하고 있는 평범한미디어는 언론 조명이 충분히 이뤄져야만 법원의 판결이 엄중해지는 현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관련 보도를 이어가고자 한다.

 

예컨대 걸그룹 애프터스쿨 출신 연예인 리지(본명 박수영)씨의 경우 5월8일 음주 수치 0.08% 이상으로 음주운전을 하다 앞에 있던 택시를 들이받아 택시기사를 다치게 했고 그 결과 윤창호법을 적용받았다. 당초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혐의로만 의율됐다가 약식 기소로 마무리될뻔 했는데 기사의 부상 사실이 밝혀져 윤창호법이 추가됐다. 리지씨는 정식 재판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그래서 법을 바꿔야 한다.

 

정 변호사는 “(법을) 아예 바꿔야 한다. 그런 문구(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 자체를 술에 취한 상태로 바꿔버리면 된다”고 제안했다.

 

 

얼마 전 평범한미디어는 위 대전 사건처럼 음주 수치와 피해 결과가 중대함에도 윤창호법이 미적용돼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피해자 가족의 제보를 받았다. 관련 내용을 다룬 기사는 국민일보 등 고작 3건에 불과했다.

 

작년 11월10일 새벽 5시20분 40대 여성 안선희씨는 경기도 용인 수지구 죽전패션타운 앞 횡단보도를 건너다 오토바이에 치였다. 이 사고로 선희씨는 뇌손상 및 다발성 골절을 입고 뇌수술까지 받았다. 전치 12주 이상 진단이 나왔는데 선희씨의 여동생 승희씨는 “사지마비의 식물인간이 됐다”고 표현했다.

 

전남 출신 선희씨는 가족과 떨어져 수도권에 혼자 살고 있었고 매일 새벽 병원으로 출근하며 조리사로 일하고 있는 중이었다. 특히 선희씨는 생업으로 조리사 업무를 하면서도 공부를 병행했을 만큼 열심히 살았다고 한다.

 

승희씨는 평범한미디어에 “친언니가 무면허 음주운전자에게 교통사고를 당하여 사지마비 상태로 식물인간 같이 됐다. 피해 보상이 제대로 되지 않았음에도 가해자의 형사 재판 1심에서 윤창호법이 적용되지 않아서 징역 1년 6개월밖에 선고되지 않았다”고 풀어냈다.

 

가해자 20대 남성 손모씨는 △혈중알콜농도 0.083%에 △초범이었고 △신호를 위반했고 △무면허였고 △피해자 가족과 합의하지 못 한 상황이었음에도 윤창호법 적용을 피했고 6월17일 1심(수원지방법원) 결과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합의를 하진 못 했지만 피해자 가족이 받은 피해보상금(3000만원)과 초범인 점을 손씨의 유리한 양형 요소로 판시했다. 그러나 B씨의 간병비만 연간 6000만원에 달하는 상황이라 3000만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항소심으로 가게 됐는데 승희씨는 “충격을 받아서 사고 이후 3개월 동안 아무 것도 대응을 못 하고 관공서와 병원만 왔다갔다했다”며 “가해자 아버지가 형사 재판 중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접근했다. 선의로 당장 돈이 없는데 일부 있을 때 조금씩 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처음에 합의할 의사가 없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렇게 3000만원을 받았는데 승희씨는 “그게 형사 재판에 이용될 것이라고 생각 못 했다”면서 “돈은 받았지만 합의서를 안 써줬다. 그러자 가해자측에서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그랬고 형사재판 중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대놓고 합의를 해달라고 압박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승희씨는 “(손씨의) 작은 아버지라는 분이 사람이 죽기야 했나? 벌 받으면 된다는 식으로 막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승희씨는 검사가 3년을 구형했지만 원래 항소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면서 “(선고 형량이) 절반 정도 나오면 내부 규칙상 항소를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강력 반발하고 겨우 항소가 됐다”고 말했다.

 

승희씨는 고작 1년 6개월이 선고된 이후 가족들 모두 상황이 심각해졌다는 것을 인지하고 언론 대응에 나서게 됐다고 했다.

 

인척 변호사를 공식 선임했고 청와대 국민청원(저희 언니가 만취한 무면허 운전자에게 사고 당하여 의식불명이 되었는데, 가해자에게 엄벌을 구합니다)에 글을 올렸다. 30일 기준 4478명의 동의를 받았다. 20만명 이상이어야 청와대의 답변을 이끌어낼 수 있는데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고 있다.

 

승희씨는 윤창호법의 적용 기준이 너무 자의적이고 주관적이라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다”면서 법 개정을 위해 나서고 싶다고 했다.

 

승희씨는 26일 평범한미디어와의 통화에서 “윤창호법 개정이 필요한 것 같다. 다른 음주운전 피해 가족들과 함께 저희가 참여해서 힘을 보태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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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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