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오래전부터 꽤 많은 에너지를 들여 ‘연예인과 연예계’의 메커니즘과 작동 방식 같은 것을 탐구하고 사색해왔다. 정확한 키워드로 집약해보면 ‘연예인과 대상화’다. 주어는 목적어(대상)에 대한 이미지와 인상을 갖기 마련이고 그게 인간이다. 그 인상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같은 대상을 두고도 누구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누구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다. 가족, 직장, 학교, 친구관계, 동호회 등등 그 어떤 곳에 가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우리는 대상에 대한 인상을 갖기 마련이고, 자기 자신 역시 타인의 인상 속에서 마찬가지로 대상화된 존재로 남기 마련이다. 그래서 누구나 이미지 메이킹, 뒷담화를 하고 당하고, 소문, 조리돌림, 유언비어 등등의 키워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때로는 그런 대상화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그런다.
다만 연예인이든 유명인이든 인플루언서든 그 양태와 패턴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불특정 다수의 관심과 인기로 업이 유지되는 직종에 있는 사람들은, 대상화를 당하는 범위가 너무 넓어서 일반인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우리가 ‘악플’이라고 하면 그런 유명인에게 향하는 온라인상의 악의적인 댓글과 게시물을 의미한다. 악플이 사회적으로 문제인 이유는 어떤 대상에 대한 불호 감정과 그것을 표현하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불호 감정을 ‘폭력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플을 아래와 같이 규정해볼 수 있을 것 같다.
1. 욕과 인신공격
2. 정제된 표준어로 모욕하고 저주하는 것
3. 상관 없는 가족을 끌고 오는 것
이러한 짓들을 악플로 규정해볼 수 있고 이것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와 암묵적인 합의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폭력적으로 인상평을 드러내면 그 폭력의 화살은 어떻게든 연예인 당사자에게 닿게 돼 있고 그것은 비극적인 자살을 비롯 온갖 부정적인 결과를 양산한다. 2007년 유니 사례부터 시작해서 최진실, 설리, 구하라 등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그런 악플의 악랄함과 잔인함이 작용했던 대표적인 사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자살까진 아니더라도 크고 작게 악플로 고통 받지 않아본 연예인들은 없을 것이다. 악플은 사회악이 틀림 없고 연예인을 죽게 만들 수도 있는 중대한 사회 문제가 맞다. 가수, 배우, 예능인 등 정식 연예인 외에도 ‘연반인’이나 ‘유튜버’, ‘인플루언서’가 넘쳐나는 요즘 이러한 악플 문제는 더더욱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개인적으로 연예 기사 댓글란 폐지는 좋은 정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연예 기사 댓글란에는 연예인의 컨텐츠와 이미지에 대한 호불호 인상이 균형적으로 노출될 수가 없고 애초에 악의를 품은 인간들만 드글거리기 때문이다. 다만 연예 기사 댓글을 없앤다고 악플 문제가 해결됐다고 볼 수는 없다. 유튜브 댓글창과 SNS, 커뮤니티로 악플의 움직임이 옮겨갈 뿐이다. 그렇다면 유튜브 댓글도 없애고, SNS에서 연예인에 대한 게시물을 올리면 바로 검열 후 삭제당하도록 하고, 커뮤니티도 그렇게 해버리면 될까? 중국이나 북한처럼 해버리면 되는 걸까?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렇게 할 수가 있을까? 그냥 애초에 대중의 입방아에 오르는 연예인들의 연예업 자체를 없애버리면 더 간단하지 않을까? 아마도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 분야를 가장 오래 연구해왔던 박경신 교수(고려대)조차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쉽게 내놓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식으로 발화가 이뤄지는 온라인 공간 자체를 폐쇄하는 방향으로 치닫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것이라고 본다.
너무 어려운 문제겠지만 결국 연예인에 대한 인상과 감정을 드러내고 싶더라도 폭력적이지 않도록 훈련하고, 노력하고, 그런 움직임들이 생기고, 정치권 차원에서도 정책을 개발하고, 학계에서도 연구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보급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아래처럼 치환해볼 수 있다.
A: 선플
B: 무관심과 무발화
C: 부정적인 감정을 건조하게 표현
D: 악플
E: 실제 해악적인 행위로 발현
D와 E로 악화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A와 B가 아니라고 해서 C 자체를 악플로 규정해서 악마화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C마저 악플 취급하고 연예인에 대한 인상평을 언급만 해도 악플러가 된다면 연예업은 유지되기 어렵다.
예를 들면 올해 가을에 있었던 ‘신지와 문원’ 관련 논란이 고민해보기 좋은 케이스다. 신지가, 전과자도 아닌 다만 뜨지 못한 연예인 남성과 결혼을 하든 약혼을 하든 멤버들에게 소개하든 말든 그걸 유튜브로 찍어서 공개하든 말든 사실 문제될 건 전혀 없다. 다만 편집해서 올라온 그 정제된 영상에서 짧게 몇몇 포인트가 부각된 정도만으로도 문원에 대한 대중의 불호 여론이 강하게 형성됐다. 대중에게 각인된 첫인상이 그렇게 박혀버렸다. 단순히 이혼과 자식 문제가 아니고 ‘태도’와 ‘배려’의 측면에서 다수 대중이 그렇게 느낄만한 포인트들이 있었다.
1. 가족만큼 가까운 코요태 멤버들을 처음 만나는 상견례 자리에서 츄리닝 바지를 입고 오려고 했다는 점
2. 실제로는 라디오로 만나 인스타 디엠을 먼저 보냈으면서 신지와 코요태의 유명세를 전혀 몰랐다고 말하고 그런 명예를 무시하는 것처럼 비춰진 점
3. 멤버들에 대한 무례한 농담
4. 신지를 호명할 땐 “지선이”이라고 하면서 전처에겐 “님”이라고 표현한 점
사람들은 오랫동안 예능인과 가수로 대중에게 친숙하면서도 똑부러지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신지가 왜 저런 남자를 만나지? 이런 패턴으로 불호 여론이 들불처럼 일어났고 사실상 문원이 그렇게까지 규탄 받을 전과자도 아니고 부도덕한 짓을 하지도 않았지만 욕을 먹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조성됐다. 해당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오랫동안 신지와 코요태를 좋아했던 팬들의 걱정어린 장문의 설명이 들어가 있다. 신지도 하나하나 다 읽어봤다고 한다. 이런 것들이 전형적인 C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댓글을 쓰는 사람들도 전부 악플러일까? 그 이후 문원이 신지의 생일상을 차려줬고, 신지는 푸짐하다고 묘사해서 인스타에 올렸는데 그걸 보는 대중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미 한 차례 논란의 대상이 된 바 있는 만큼 기사화도 됐다. 이를 접하는 대중의 다수는 이게 푸짐하다고? 이게 말이 되나? 이렇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신지는 굳건히 문원을 다시 유튜브에 출연시키고 있는 중이다. 굳이 문원을 다시 출연시켜서 화를 자초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신지와 문원의 자유로운 판단에 따라 꾸준히 대중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서 이미지를 회복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현상에 대해 신지가 문원을 유튜브에 출연시키든 말든 네가 뭔 상관인데? 생일상이 푸짐하든 말든 왜 그런 걸 가지고 뭐라고 하냐? 등등 C를 악플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다.사실 뭐라 할 필요도 없고, 유튜브에 나오든 말든 자기 자유가 맞다. 다만 연예인과 연예인 가족이 함께 공개 활동에 합류해서 대중 앞에 나설 때 그에 대한 평가와 인상이 자유롭게 형성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D와 E가 문제지 C는 자연스럽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쓸데없는 것이 연예인 걱정”이라는 표현은 하나 마나 한 불필요한 말이다. 당신만 이 연예인에 대해 관심이 없고 그럴 수 있지, 인기 있는 연예인에 대한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는다. 연예인에 대한 인상평 자체를 악플 취급하거나 가치 없는 일 취급하며 ‘자신의 처세’나 신경쓰라는 것은 무용한 일이고 비현실적이다. 그런 사람조차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이슈가 발생했을 땐 자기 일처럼 과몰입해서 오버하게 돼 있다. 누구나 자신이 관심 있는 유명인이나 연예인에 대해서는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연예인의 대상화와 악플 문제는 한끝 차이면서도 매우 복잡한 사안이다. 비평가 한윤형은 과거 엠씨몽의 병역 논란이 거셀 때 아래와 같이 주장한 적이 있다.
연예인의 대중성이란 것은 사실상 대중에 의해 임의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연예인에 대한 대중의 분개를 마냥 비합리적인 것으로 말하는 것도 그 영역의 특성을 무시한 일이다. MC몽에 대한 대중의 분개를 비합리적이므로 ‘부당’하다고 말한다면, MC몽의 과거의 드높은 인기는 합리적으로 ‘타당’한 것일까. 어쩌면 이 문제는 ‘타당’과 ‘부당’의 영역과는 상관이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한윤형은 ‘싫어할 권리’와 ‘공격할 권리’라는 개념을 분리했다. C와, D·E를 명백히 분리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렇더라도 이런 얘기는 할 수 있을 것이다. MC몽에 대한 분개의 감정이 타당할지라도 그에 대한 대처는 그를 향해 공격적 언사를 내뱉는 것보단 ‘적극적 무시’ 내지는 ‘불매에 대한 독려’를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싫어할 권리'와 '공격할 권리'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며, 아무리 대중과 연예인의 특수관계를 고려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MC몽을 공격할 권리'까지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인터넷상의 활동은 어디까지가 감정의 표현이고 어디서부터가 상대방에 대한 공격인지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으나, 그렇다고 인터넷상이기에 모든 행위가 정당화된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악플은 심각한 문제가 맞지만 자신이 연예인이자 유명인이라면 대중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에 대한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연예인은 무명일 땐 대중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유명해지면 ‘유명세’를 치른다. 전국 범위로 인기를 성취해야 업이 지속될 수 있는 직업적 특성상 악플의 타겟이 되기 쉽다. 악플에 노출되기 쉬운 연예인의 마음가짐이 중요한데 적극적으로 고소하고 대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걸그룹 아이브의 장원영과 같은 관점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내가 진짜 잘못한 게 아니니까 마음 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잘못하거나 피드백 받아야 될 일에 있어서는 난 진짜 완전히 받고 싶은 마음이야. 오히려. 정확하게. 너무 너무 감사하고. 그런 게 아니고서야 내 본질에 스크래치를 내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