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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기본소득 “기존 복지체제 흔들까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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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웅의 정책 스토어] 8번째 칼럼입니다.

 

 

[평범한미디어 김진웅 성동구의회 정책지원관] 덴마크 사회학자 에스핑 앤더스의 ‘복지국가 모형’에 따르면 노르딕 사회민주주의, 영미형 자유주의, 독일·프랑스의 보수주의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자유주의 복지국가 모형에 가깝고 작은 복지국가에 속한다. 그러나 한국의 국민건강보험제도는 전세계에서 대만과 함께 가장 질 높은 보건의료 서비스 제도로 평가되는 만큼 적극적인 복지 제도 중의 하나로 분류된다. 이렇듯 각 국가의 시장경제 상황과 정치·사회·문화적 여건에 따라 복지 서비스의 방향이 천차만별이지만 사회보험과 공공부조, 사회서비스를 기반으로 복지국가를 운영한다는 사실만큼은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복지국가는 공공부조, 사회보험, 사회서비스 등 3가지 기둥으로 구성된다. 먼저 공공부조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기초연금이 해당된다. 두 번째 사회보험은 국민연금, 국민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 등이다. 세 번째 사회서비스는 현물 서비스 제공 방식인데 사회복지관, 어린이집, 장애인생활시설, 아동양육시설, 학교 밖 청소년지원센터 등 생애주기별 복지 대상자의 욕구에 기반한 서비스를 말한다.

 

 

필자는 사회복지학 박사로서 대한민국의 복지제도는 저부담 저복지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일정 정도의 책무성과 신뢰성이 축적됐다고 생각한다. 연금 개혁이나 보건의료 개혁 등이 미완 상태로 남아있지만 특정 정치 세력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관철되지 않고 집단지성에 따라 합리적인 방향으로 사회보장제도의 틀이 완성되어 갈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최근 유력한 대권 주자인 이재명 후보가 내놓은 ‘기본사회’ 시리즈가 등장하면서 복지국가 철학과 묘한 긴장관계를 형성하고 있어서 우려스럽다.

 

기본소득의 대전제는 ‘무차별성’인데 기본적으로 복지국가는 필요에 따라 사안별로 대상자를 선정하거나 소득과 재산의 정도를 고려해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비록 기본소득이 선별하는 행정 비용을 덜 들게 하고 불행 경쟁의 낙인효과를 최소화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그런 만큼 기본소득을 옹호하는 학자들과 단체가 있다. 심지어 기본소득당도 있다. 그러나 과연 기본소득 모델이 기성 복지국가 모델을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대국민 대상으로 집행돼야 할 제도와 정책은 책무성, 신뢰성, 합리성, 지속가능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하지만 기본사회의 핵심 기본소득은 그런 4가지 요소가 담보될 수 있는 정책이 아닌 것 같다. 일반적인 사회보장제도와 기본소득의 차이점은 재원조달 방식이다. 사회보장제도는 명확하게 노동자의 소득 수준을 고려하여 일정한 액수(보험료 및 직접세 형태)를 지속적으로 납부하게 한다. 그런데 기본소득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얼마를 납부하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다. 기껏해야 초고소득자와 대기업 등으로부터 세금을 더 많이 걷어서 전국민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쓰겠다는 것이 전부다. 그렇다면 사회보험과 기본소득을 병렬 상태로 놓고 운영을 하겠다는 걸까? 국가 정책은 심심풀이 아이디어 싸움으로 번져서도, 고착되어서도 안 된다. 내가 더 나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고, 진보적 의제를 선점하고 있다는 자랑거리가 되어서도 안 된다.

 

현행 복지 시스템을 불안정하게 만들면서 효과와 신뢰성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정책 아이디어를 밀어붙이면 안 된다. 전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느라 더 많은 복지 혜택을 받아야 할 계층이 피해를 볼 수도 있으며, 그런 사람들이 꽤 많아지면 한국 사회는 대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아무리 봐도 기본소득은 믿음직스럽지 못 하고 신뢰하기 어려운 실험 모델에 불과한 것 같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격언이 있듯이 생각보다 한국인들은 노동으로 얻어지는 소득에 대해 등한시 하지 않는다. 자신이 종사하는 업종에 대한 소명의식을 갖고 있는 한국인들도 많다. 필자 또한 노동에서 찾는 보람이 크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 소득을 통해서 꾸준히 납부한 사회보험료와 세금으로 나의 가족이 복지 서비스 혜택을 받고, 내가 모르는 사람이 실직을 당했을 때 실업급여 수급을 받아 노동시장에 재진입 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기쁘게 받아들인다. 무엇보다 국민연금,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등을 성실히 납부해서 노후를 보장받는 제도에 대한 합리적 만족감이 존재한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어떠한가? 그저 국민이라는 이유로, 국내에 거주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금 얘기되고 있는 30만원~40만원을 매달 공짜로 받는다? 이것이 과연 현행 복지체제에 익숙해진 노동자들과 국민 정서에 합리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정책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기본소득 찬성론이 있겠지만 반대론 역시 만만치 않다. 반대론자들이 거대한 다수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외면한채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 기본소득을 밀어붙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지속가능성의 차원에서 보더라도 기본소득은 불안감이 있다. 2025년 기준 국가 1년 예산 중 의무 지출 총액은 365조원이다. 전체 예산 677조원에서 53.9%를 상회한다. 2028년이 되면 433조원으로 100조원 가까이 상승한다. 여기에 기본소득 소요 비용이 더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이재명 정부가 임기 안에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제도 등을 전면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기란 불가능하다.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 국민연금 등도 전부 조정을 해야 하는데 이러다간 대통령 자리가 위태해질 정도의 대국민 반발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을 것이다. 레임덕은 시간 문제다.

 

그러므로 기존 복지체제를 손대지 않고 기본소득을 현실화시킬 방법이 없다. 누군가 필자에게 기본소득의 지속가능성과 안정성을 주장한다면 오히려 묻고 싶다. 그 대책 없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냐고.

 

마무리하자면 정책 토론이 정치 토론으로 번지면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재앙이다. 정책과 정치는 다른 영역이다. 정치의 종착지는 정책이다. 정책을 고안하고 실현하기 위해서 그 수단으로 정치일 뿐이다. 국민들은 정책 토론의 합리성에 정치 이념이 끼어드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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