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좋은마음심리상담센터 대표이기도 한 정의석 상담심리전문가는 이런 말을 했다. “자기 자신을 가장 잘 괴롭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뭔가 와닿는 그런 문장이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월 7일 18시 30분에 광주 전일빌딩에서 뜻깊은 강의가 열렸다. 조금 늦게 강의 장소에 도착하니 주최측은 센스 있게도 컵과일과 간단한 스낵을 준비해서 청강하러 온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강의를 시작한 정 대표는 먼저 이렇게 말하며 주위를 환기했다.
심리학에서 많은 치료자들이 고민했던 공통적인 것 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긍정적으로 평가해준 것들은 생각하지 않고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에만 신경쓰느냐다. 예를 들어 부모님에게 칭찬을 받지 못하면 자신을 가치 없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러다가 우울증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왜 우리는 이러한 기질을 버리지 못할까? 불안 때문일까?
그러다가 정 대표는 오늘 이야기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강조했다.

오늘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이거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타자의 시선들을 내 시선과 동일시한다. 부모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한다. 인정받지 못하면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아무리 긍정적이고 현실적이고 타당한 어떤 증거를 가지고 날 이야기한다고 해도 내가 기존에 받아들인 타자의 시선이 확고하다면 그것에 의해 부정당하고 불행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정 대표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런 사람들의 두 번째 특징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칭찬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너는 왜 이렇게 실수를 많이 해?’,‘왜 이렇게 덤벙거려?’,‘외모는 또 왜 이래?’ 등의 말을 듣게 되면 그런 점이 있는 것 같다고 수긍을 하게 된다. 즉 자신의 내면화된 세계 속에서 타인이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은 맞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내면은 사실 자기 긍정과 자기 회의의 내적 전쟁터다.
그 다음 정 대표는 예를 들어 설명을 진행했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웹툰 전공생이 있다. 이 학생이 다니는 학교에는 같은 전공생만 한 학년에 100명 정도 된다. 다른 학교까지 합하면 같은 전공을 하고 있는 학생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졸업하기 전 이 학생은 자신의 웹툰을 한 특정 사이트에 올렸다. 굉장히 걱정을 했지만 의외로 반응이 괜찮았다. 이때 이 학생은 기분이 좋아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더 불안에 시달렸다.

그 불안감이 나에게도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왜 불안할까?
웹툰을 그릴 때마다 항상 독자들의 평가를 걱정한다. 좋은 평가를 받기를 원하지만 또 한편으로 좋은 평가가 오면 자체 필터링을 해버린다. 나쁜 평가를 받으면 ‘아 내가 역시 좋은 평가를 받을 리가 없어’ 이러며 매일 자신을 소진시킨다.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면 좀 더 행복한 작가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다가 한 청강생이 “댓글을 보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라고 반문했다. 그러자 정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댓글을 보지 않아도 문제가 생긴다. 왜냐하면 타인의 조망 능력이라고 하는 것이 인간에게 있기 때문에 이 작가는 가상의 독자 A,B,C 등을 상상한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할 때 A,B,C가 했을 법한 부정적 피드백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낸다. 댓글을 보지 않더라도 그것은 큰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 대표는 시선에 대한 관점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설파했다.
우리는 지금 계속 나 자신과 시선에 관한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만 사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시선은 내 시선이 아니다. 이것은 잠깐만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들이 엉뚱하게 느껴질수도 있다. 여러분들은 1분 1초까지도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 정 대표는 또 예를 들어 이야기했다.

예를 들면 어떤 청년의 부모님이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져 청년은 알바와 학업을 병행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청년에게 너무 무리하지는 말라고 이야기해준다. 그러자 그 청년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뭔가 부족한 게 있으면 자신을 탓하게 된다. 다수의 부모들은 당연히 그런 자식에게 ‘너무 잘했다’,‘충분하다’,‘장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러나 내면화된 시선은 청년을 가혹하게 몰아붙인다. ‘너 그 정도로는 안 된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이 세상은 험하다’ 등등으로 말이다.
그 다음 정 대표는 상전과 하인이라는 개념을 들어 우리의 자아가 하나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상전과 하인이라는 개념이 있다. 우리의 자아는 하나가 아니라 분열되어 있다. 그래서 자신에게 비난과 비판을 가하는 가혹한 셀프를 상전, 탑 독이라고 부르고 자신의 원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하인, 언더독이라고 부른다. 결국 자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타인처럼 대해야 한다. 자신과의 심리적 거리감이 필요하다. 우리는 나에 대해 생각하면서 자기가 가장 소중하다는 착각을 갖고 살아간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가장 괴롭히는 존재는 자신이다.
정 대표는 또 하나의 예를 들어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이혼을 한 어떤 여성이 있다. 이혼을 하면 본인은 더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힘들게 야근을 하고 집에 갔는데 애들은 말을 지지리도 안 듣는다. 이혼한 남편에게 주말에 애를 봐달라고 부탁하면 골프 약속이 있다며 거절한다. 이 경우에 여자는 ‘내가 뭘 위해서 열심히 살고 있는거지’라는 생각이 들며 깊은 우울감에 빠진다. 이 경우 마치 주변 환경이 여자를 괴롭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 근본적인 원인은 여성 자신이다.
그렇다면 여자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일종의 내려놓기를 해야 한다.

아이가 게임을 할 때 굳이 그것을 통제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가 방에서 뭘 하는지 내가 확인하려 들지 않아도 된다. 직장에서 자신이 칭찬받으러 그 만큼 야근하지 않아도 된다. 직장에서 좀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해도 된다. 친정에게 지나치게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이 생각하는 엄마로써의 역할, 아내로써의 역할, 자식으로써의 역할에 지나치게 모두 충족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자기 내면에 대한 지나치게 폭력적인 기대나 시선들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자신의 시선들은 타자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낸 감옥이다.
강의를 하면서 정 대표는 “사실 나도 내가 말한 것처럼 잘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소회를 드러냈다. 원래 남에게 조언이나 상담을 잘 해주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은 조언한 대로 못 사는 사람도 많다. 어쩌면 정 대표가 한 말처럼 막상 마음을 그렇게 다잡고 살기는 현실상 어려울 수도 있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채찍질 해야 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살면서 한번 씩이라도 이런 의문과 의식을 차려보는 것도 삶을 대하는 또 하나의 자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