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우리는 항상 생각한다. “설마 지금이 70~80년대도 아니고 무려 2020년대 인데 독재국가로 돌아가겠어? 영화 <서울의 봄>처럼 쿠데타가 일어나겠어? 게다가 SNS도 있고 인터넷도 있는데? TV, 라디오, 신문 밖에 없던 예전과는 다를 거야”라고 말이다. 게다가 국민들의 의식 수준도 예전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는 독재 국가가 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12.3 계엄 사태를 보고도 그럴 수 있을까? 신진욱 교수(중앙대 사회학과)는 현대 민주주의 선진국들도 언제든지 독재국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지난 7일 19시 광주 동구에 위치한 광주청년센터에서 <광장 이후 혐오, 양극화, 세대론을 넘어>라는 주제로 강연이 열렸다. 연사로 참여한 신 교수는 동명의 책을 냈는데 여러 저자들(이재정/양승훈/이승윤)과 공동으로 쓴 책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고 독재는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크나큰 착각이다.

신 교수는 이번 12.3 계엄을 언급하며 계엄을 막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광장에 있었음을 상기했다.
계엄을 막은 힘은 바로 광장에 있었다. 국회에서 탄핵 소추를 한 것도 중요했고 법원에서 체포영장을 발부한 것도 중요했고 헌법재판소에서 8대 0으로 탄핵 소추를 인용한 것도 중요했지만 그 모든 헌법기관들이 계엄 세력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작동을 했던 이유는 바로 그 배후에 국민이 섰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그 생각을 했다. 법원에서 체포영장 발부 여부를 판단을 할 때, 헌법재판관들이 탄핵 소추 인용 여부를 판단할 때 그 사람들의 머릿속에 뭐가 있었겠는가? 체포조의 수거 대상 중에 현 이재명 대통령 무죄 선고를 한 판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만약 탄핵에 실패하고 계엄 세력이 돌아올 경우에 그들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리거나 액션을 취한 사람들이 가장 1차적으로 죽임을 당할 것이다.
신 교수조차도 신변에 위협을 느꼈다. 그동안 윤석열 전 대통령에 비판적이었던 야당, 언론인, 시민사회 활동가 등등 각계각층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탄핵 정국 동안 수많은 인터뷰를 하고 글을 썼다. 내란 세력이 만약 다시 돌아온다면 ‘내가 가장 먼저 죽을 것’라는 생각을 항상 했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학자들이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노조 지도자들, 야당 당원들, 진보적인 시민단체 활동가들 모두 그 대상에 포함된다. 우리의 존엄과 생명이 위협받는 경험을 했다. 이제 우리 사회는 2024년 12월 3일 이후로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우선 신 교수가 말하는 ‘헌정의 위기’에 대해 들어보자.
민주주의 위기라는 것은 어떤 추상적인 체제의 위기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기본권의 붕괴를 의미한다. 행복추구권, 집회의 자유, 언론의 자유, 출판의 자유 등등 이러한 주요 권리들이 무너질 뻔했다. 폭력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위로는 국가가 행하는 폭력이고 아래로는 극우 집단에 의한 폭력이다.
신 교수는 12.3 계엄과 별개로 전체적으로 한국의 민주주의 위기가 심각해졌다고 주장했다. 여러 데이터들을 제시했는데 사실 듣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문제를 일으킨 최고권력자를 두 번이나 탄핵시킨 만큼 제도적 회복력은 있는 것 같아서 살짝 의문이 들었다.
계엄 사태가 터지고 나서 나는 방송, 라디오 가리지 않고 나가 목이 터져라 설파했다. 나는 원래 방송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보고 정치사회학자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일반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것 이상으로 한국 민주주의가 벼랑 끝에 있다고 느낀다. 여려가지 지표를 봤을 때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작년에 모든 신문, 방송, 논문 발표 등 채널을 통해서 지금 한국의 독재화 위기가 예사롭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녔더니 수많은 사람들이 ‘신 교수 왜 그래? 무섭게’라는 말을 많이 했다.
원래 신 교수는 공동체에 대한 성격 진단을 하는 것에 매우 신중한 편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 교수가 한국의 민주주의가 독재화의 위험이 있다고 진단했다는 것은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파시즘론이 많았다. 파시즘이 오고 있다. 그때도 극우 테러가 많았다. 나는 신중파다. 극우 테러가 일어났다고 해서 파시즘의 전조로 이야기하는 것은 성급하다. 파시즘의 토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는 있지만 ‘파시즘의 전조가 나타났다’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르다. 결국 나는 ‘민주주의의 퇴행’ 정도의 의견만 가진 학자였다. 그러한 내 입에서 극단적인 이야기가 나오니 나를 아는 사람들이 놀라게 된 것이다. 각 나라들의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의 정도를 평가하는 기관들이 세계 도처에 있다. 이 데이터를 가지고 학자들이 논문을 많이 쓴다. 스웨덴 예테보리 대학 연구소,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국경 없는 기자회 등의 기관들에서 전세계의 민주주의 전문가들이 모여 각 국가의 자유도를 평가한다.

전세계 국가들의 민주주의 지수를 평가하는 기관들은 현재 우라나라의 정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예전 문재인 정부 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인권, 자유 수치는 굉장히 높았다. 거의 ‘눈 떠보니 선진국’ 이런 소리까지 나왔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들어 그 수치들이 수직 하락하기 시작했다. 거의 3년차 가서는 라트비아,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역시 내전 중인 라이베리아, 시에라이온 등의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평가를 받았다. 심지어 한국 바로 위에 순위가 아프리카 국가인 가봉이다. 가봉은 2023년도까지 독재자가 다스리는 나라였다.
나라 밖에서 정치를 연구하는 외부인들은 한국을 그렇게 보고 있었다. 그런데 왜 내부자인 한국인들은 위기를 체감하지 못 하는 걸까?
서서히 젖어가니까 그렇다. 갑자기 무너지는 게 아니라 서서히 부식되는 것이다. 마치 개구리를 물 속에 넣고 물을 서서히 끓이는 형태인 것이다. 우리는 극복했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백슬라이딩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항상 눈을 똑바로 뜨고 있지 않으면 어느날 훅 하고 나타난다. 계엄을 막았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의미인지를 평생 잊으면 안 된다.
계엄을 막아서 천만다행이지만 이상한 대통령이 언제든지 계엄을 선포해서 전국민의 기본권을 짓밟을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 정도의 고도 자본주의, 민주주의 정보화 수준을 가진 나라에서 이런 일은 원래 상상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일어났다. 수방사, 특전사, 방첩사, 정보사 등 우리 나라 최정예 부대가 다 동원되었다. 그런데 군부 장성들, 장차관, 대통령실 비서관들 중에 단 1명도 계엄이 일어나기 전에 ‘국민 여러분 큰일 났습니다. 지금 계엄을 시도하려 해요’라고 말한 사람이 없다. 이 자리에 온 사람들은 일당백이 되어서 가는 곳마다 이야기를 하셔야 한다.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노조도 없고, 시민단체도 없고, 광주도 없다고 말이다.
자유 민주주의라는 표현. 말 그대로 자유의 가치와 민주주의가 결합한 것인데 한국에서는 극우세력이 참 좋아하는 말이다.
나는 ‘리버럴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굳이 번역하지 않는다. 번역하면 ‘자유 민주주의’가 되는데 우리나라에서 자유 민주주의는 독재라는 의미로 변질되어 쓰인다. 민주주의 연구를 할 때 리버럴 민주주의라는 것은 수준 높은 민주주의를 뜻한다. 그러면 수준 낮은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일단 정기적으로 선거는 한다. 그 다음에 투표권과 다당제가 보장된다. 집권 세력에 대해서 비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정권 교체는 쉽지 않다. 이 정도 수준이 미니멈한 민주주의다. 이러한 수준 낮은 민주주의에서는 인권 침해나 언론의 자유 같은 것에 집권 세력의 정치적인 개입이 만연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지난 3년 동안 검찰이 집권 세력을 기소하지 않는 것을 보았다. 우리나라는 그래도 1987년 이후로는 나름 ‘리버럴 민주주의’라고 평가를 받았었다. 그 정도 수준에 있는 나라가 갑자기 어느 날 계엄을 때리면서 가장 억압적인 포고령을 발표했다. 이 계엄사령부의 포고령은 우리가 항상 상기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이번 사태에 전세계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재차 거듭하지만 한국의 민주주의는 견고하지 않다. 공존을 거부하고 상대를 제거하려는 정치 세력이 정권을 잡았고 실제로 시도까지 했다.
우리는 항상 민주주의는 공고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말은 다시 정의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공고화라는 것은 영원히 독재로 못 돌아간다는 뜻이 아니라 ‘임박한 위험이 없다’는 뜻 정도로만 해석해야 한다. 쉽게 말하면 마음 놓지 말라는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지 우리는 모르고 있다. 윤석열이 파면된 것 이외에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그 사실을 가는 데마다 이야기한다. 이제부터 다시는 그런 시도가 일어나지 못하게끔 제도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해당 세력은 당연히 없어져야 한다. 사람들의 사고도 바뀌어야 한다. 어떤 갈등이 있더라도 민주적인 과정 이외의 방식으로 화난 걸 표현하면 안 된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은 탄핵 반대 지표를 봐도 알 수 있다.
탄핵 반대했던 사람들의 여론이 35% 정도 되었다. 35~38%를 왔다 갔다 하는데 그 사람들이 모두 계엄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 중에 반 정도가 계엄을 옹호한다. 그런데 탄핵 반대의 논리가 그렇다. ‘민주당이 오죽했으면 그랬겠나?’ 이 사고 자체가 위험하다. 이 사고가 바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무리 상대방이 미워도 민주적인 과정 바깥에서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신 교수는 한국 시민들이 보여준 길거리 시위에 대해 전세계가 감동한 것이 아니라 충격을 먹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와 평화적인 시위를 한 것에 대해 전세계가 감동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세계는 엄밀히 말하면 감동 받지 않았다. 충격을 먹었다. 내가 아는 외국 교수나 언론인들은 한국이 이번 계엄으로 인해 신뢰에 타격이 있다고 전했다. 오히려 박근혜 정권 때는 한국의 신뢰도가 올라갔었다. 한국은 이 정도 일이 일어나도 헌법 절차대로 진행이 되는 나라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여기는 전쟁이 일어나든 경제 위기가 오든 무슨 일이 일어나건 간에 헌법 교과서에 써있는대로 위기를 극복할 나라구나. 그러나 지금은 인식이 ‘장기적으로 큰 투자를 할 나라는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또 이런 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걸 우리가 극복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번 계엄은 친위 쿠데타다. 셀프 쿠데타이기도 하다. 민주적인 선출로 권력을 획득한 정권이 그 권력을 이용해 민주주의 체제를 때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쿠데타와 셀프 쿠데타는 뭐가 다를까?
일반적인 쿠데타는 권력 지배 체제 내에서 일으키는 거지만 집권 세력 바깥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배 체제 내에 군부 같은 집단이 집권 세력을 쳐서 자기들이 집권 세력이 되려고 하는 게 일반 쿠데타다.
쉽게 말해 고려의 무인정권 시절이나 박정희·전두환의 쿠데타를 떠올리면 쉽다.
셀프 쿠데타는 집권 세력이 자기 권력을 영구화하려고 일으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군, 검찰, 경찰, 정보기관 등 모든 정부부처의 권력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 일반 쿠데타는 실패하면 집권 세력이 다 잡아들인다. 그러나 셀프 쿠데타는 1차적인 시도가 실패했더라도 그 권력이 계속 유지된다. 정권 교체까지 지속이 되는 것이다. 사실은 헌재 탄핵까지가 아니라 정권 교체까지 내란 세력의 권력이 지속된 것이다. 심지어 아직도 윤석열이 임명한 경찰청장 등의 고위직이 남아 있다. 셀프 쿠데타는 그동안 80%가 성공을 했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