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취약계층’이 쓴 의료비 만큼 돈 내라고?

  • 등록 2025.08.08 02:3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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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웅의 정책 스토어] 12번째 칼럼입니다.

 

 

[평범한미디어 김진웅 성동구의회 정책지원관] 2024년 7월26일 73차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는 중요한 결정이 이뤄졌다. 의료급여(저소득층 의료보장제도) 수급자의 본인부담체계가 정액제에서 정률제 및 차등제로 변경된 것이다.

 

현행 본인부담체계는 총 진료비나 약제비에 관계 없이 의원급 1000원, 병원급 1500원, 상급 종합병원 2000원, 약국 500원으로 정액제가 일괄적으로 적용되었다. 하지만 개편안은 전체 의료비의 비율만큼 본인부담률이 책정된다. 즉 1종 외래 본인부담률은 의원급 4%, 병원급 6%, 상급 종합병원 8%, 약국 2%가 적용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정률제다. 정률제와 함께 차등제도 도입될 예정인데 외래 치료 횟수가 연 365회를 초과하면 본인부담률을 30%로 적용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밝혀두면 사회복지학 박사로서 필자가 보기에 심히 우려스럽다.

 

 

지난 7월10일 국가인권위원회는 보건복지부가 입법 예고한 의료급여법 개정안 2건(시행령과 시행규칙)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취약계층의 건강권과 의료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으므로 재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아래와 같은 취지로 설명했다.

 

 

 

 

소액 생활비도 아껴야 하는 수급권자에게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수급권자의 특성과 건강상태, 질병의 복합적 성격 등을 간과하여 의료기관 이용이 시급한 사람들의 건강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 본인부담 보상제는, 의료비를 이미 지출한 후에 매월 환급해주는 사후적 장치로서 수급권자에게 본인이 지불해야 하는 의료비의 예측을 어렵게 만든다. 나아가 제때 진료 및 치료를 받아야 할 시기를 놓치게 하는 등 수급권자의 의료 이용 포기로 이어져 건강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

 

의료급여 수급자는 의료기관이 좋아서 병원에 자주 가는 것이 아니다. 관련 논문(의료급여 수급자와 건강보험 가입자의 임상적 건강 수준의 격차 분석)에 따르면 수급자는 평균 3.84개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반면, 비급여 대상자는 평균 2.19개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는 6개 이상 만성질환을 동시에 가진 환자는 건강보험 가입군에서 단 0.7%에 불과했으나, 의료급여 환자군에서는 23.3%로 무려 23배나 많다. 따라서 수급자의 병원 이용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유는 많이 아프기 때문이지, 병원에서 불필요한 건강 서비스를 누리는 걸 좋아해서가 아니다. 재차 강조하지만 수급자들은 대부분 많이 아파서 그렇지 극히 일부의 의료 쇼핑 문제를 일반화할 수 없다. 그런데 당시 조규홍 전 장관을 비롯 복지부 고위직들은 마치 수급자들의 의료기관 이용 빈도가 점차 높아져서 건강보험 재정이 위협을 받는 것처럼 인식했다. 하지만 심평원(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보관하는 각종 의료 데이터들을 보면 이들의 현실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대체 왜 이런 결정이 내려진 것일까? 필자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 대한 혐오 현상에 주목하고 싶다. 한국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기생수 혐오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 복지부 조직도 자유롭지 않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기존의 ‘생활보호법’(1961년 제정)을 완전히 대체한 것으로 대표적인 공공부조 정책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1999년 9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됨에 따라 2000년 10월부터 도입되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시스템은 생활보호법의 한계를 개선해 한국 복지정책의 획기적인 변화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고 25년 동안 안정적으로 정착했다. 사회복지학의 최우선 원칙은 바로 ‘열등처우의 원칙’이다. 즉 “구제 대상 빈민의 생활수준은 최하층의 독립 근로자의 생활수준과 같아서는 안 되는 조건”에서만 구제가 제공되어야 한다. 쉽게 말하면 생계급여 혜택을 받는 수급자들은 노동 소득을 받는 노동자보다 더 많은 복지 급여 혜택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도 초기만 하더라도 의료급여 수급자에 대해서는 이런 대원칙의 예외로 봤다. 병이 있어서 병원에 가야 함에도 돈이 없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들의 의료급여 제공은 열등처우의 원칙을 적용하지 않은 것이다.

 

아무리 대통령이 검사 출신이고 복지부 장관이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이라 복지 철학이 부족해서 이런 문제 많은 조치를 강행하더라도, 복지부 내에 있는 복지 전문가들은 필사적으로 반대하고 막았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아쉽기만 하다. 이들은 의료급여 수급자의 평균적인 건강상태 통계를 알고 있을 것이고, 이들에게 투입되는 건보 재정이 악화됐다는 가설에 대해 충분히 반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개악을 추진하는 정부조직으로 전락했다. 복지부는 누구를 위해 존재했던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2022년 9월 조 전 장관이 기재부 출신으로서 복지부 수장이 되면 안 된다는 논조로 칼럼을 쓴 바 있다. 그로부터 2년이 흘렀는데 결국 의료급여 수급자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건보 정책이 시행될 위기에 처했다. 검사 출신 전직 대통령이 경제관료를 복지부의 수장으로 앉힌 몰상식의 후과라고 생각한다.

 

자. 이제 의사 출신이자 질병관리청을 이끌어왔던 현직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인권위의 권고사항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빠른 시일 안에 입장을 정리해서 밝혀야 할 것이다. 정 장관은 적어도 수급자들을 건보 재정을 갉아먹는 적폐로 몰아가진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들도 국가로부터 의료 복지를 정당하게 제공받아야 할 주권자 국민이다. 시간이 얼마 없다. 관련 시민단체들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나와서 일단 8월15일까지 입법 절차를 완료하겠다는 기존 복지부의 계획은 중단된 상황이지만 완전히 철회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빠르게 검토를 거쳐 이전 정권의 잘못된 정책 결정을 시정해야 한다. “국민주권 정부”를 내세우고 있는 이재명 정부의 철학과 맥을 같이 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다시 밝혀둔다. 복지부는 의료급여 수급자의 건강권을 위협하는 의료급여법 시행령 개정안을 철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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