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장애인 기본권은 ‘30년’ 동안 멈춰 있다

  • 등록 2025.04.29 1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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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웅의 정책 스토어] 6번째 칼럼입니다.

 

 

[평범한미디어 김진웅 성동구의회 정책지원관] 대한민국에서 장애인 권익을 법률로 보장하기 시작한 날은 1998년 4월11일이다. 이날 국회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편의법)’을 통과시켰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이 지난 2008년 4월11일에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고 16년이 흐른 2024년 12월19일 대법원은 “장애인 접근권을 제한하는 장애인 편의법 시행령을 정부가 24년 넘게 고치지 않은 것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해당 법률을 보면 점포 면적이 300제곱미터 약 90평 미만인 시설에서는 장애인 출입로와 호출벨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돼 있다. 그나마 법이 개정되어 15평 이상부터 의무 설치를 해야 하지만 여전히 15평 미만의 점포들에는 휠체어 장애인의 접근이 불가능하다. 휠체어 장애인들은 집 근처 편의점에도 가지 못 하는 것이 현실이다. 전국에 있는 전체 편의점 90% 이상에서는 장애인 이동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아 장애인 출입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체장애인 김모씨가 대법원을 통해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전까지 우리는 장애인의 생활 이동권에 철저히 무지했다.

 

우리나라는 1998년부터 5년 주기로 장애인 편의시설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는데 2023년 기준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대상에 해당하는 시설물은 19만991개소에 달한다. 그러나 설치율 평균은 79.2%에 그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남이 71.5%로 편의시설 적정 설치 비율이 가장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강원 73.9%, 경남 75.2%, 전북 75.3%, 경북 76.6%, 제주 77.7%, 충북 77.9%, 충남 78.3%, 광주 78.5%, 인천 78.8%, 부산 79.4%, 대구 81.2%, 대전 81.6%, 울산 82.6%, 경기 82.7%, 서울 84.0%, 세종 86.7% 순이다. 대도시 위주로 평균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다. 이처럼 법률에 따른 의무 대상마저도 법을 지키지 않고 있으니, 의무 대상이 아닌 시설들은 더욱더 장애인의 접근권을 보장하지 못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위법에 따라 장애인 편의시설 관련 조례도 잇따라 제정되었지만 서울을 비롯해 충북, 충남, 경북 등 4곳은 관련 조례가 없다.

 

조례가 있어도 문제다. 전국 13개 광역단체와 다수 기초단체들에는 장애인 편의 관련 조례(장애인 의 편의시설 설치사항 사전점검에 관한 조례)가 제정되어 있으나, 의무 대상 설치율이 평균적으로 80%에도 미치지 않고 있다.

 

대법원이 장애인 이동권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기념비적인 판례를 내놨음에도 정부는 여전히 무감각하다.

 

한 사람의 생활사에서 사적이거나 공적인, 크고 작은 만남과 활동의 많은 부분이 건물 안에서 이루어지기에, 그곳에 이르기 위한 통로의 시작인 ‘1층’의 공유는 일상성의 동등한 참여라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에게는 불과 2센티미터의 턱도 1층에 이르는 것을 방해한다. 지체장애인에게 턱과 계단은 마치 삶과 죽음의 경계선과 같다. 소규모 소매점에 대한 장애인 접근권의 문제는 ‘쇼핑’의 문제가 아니라 삶 그 자체의 문제이다. 비장애인은 점심시간에 우연히 친구를 만나 식당이나 커피숍을 가거나, 귀가하다 문득 생각이 나서 서점과 꽃집에 들르고, 갑자기 배가 아파 약국을 이용하거나 동네 의원에 가면서, 내가 그곳에 접근할 수 있는지 없는지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장애인의 일상생활 또한 그래야 한다. 계획된 쇼핑은 대형 할인점과 온라인으로 대체될 수 있지만 우연과 즉자성으로 이루어진 나날의 ‘삶’은 대체될 수 없기 때문이다. (2022다289051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 오경미 대법관과 신숙희 대법관의 보충의견)

 

이에 필자는 정권 불문 정부가 당장 해야 할 일을 제언하고자 한다.

 

먼저, 6차 장애인 편의증진 국가종합 5개년 계획을 수립할 때는 제도로 된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2000년부터 정부는 장애인 편의법에 따라 5년마다 장애인 편의증진 국가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5차 계획(2020~2024년)이 종료됨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그간의 성과와 한계를 평가 및 분석하여 6차 계획을 다시 짜야 한다. 5차 계획에는 △공공 및 민간시설의 이용편의 수준 향상 △이용자 편의 확대를 위한 편의증진 관련제도 및 법령 개선 △편의증진 기술개발 및 연구 △편의증진 교육 및 홍보 강화를 중심으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안전하고 편리한 시설이용 편의수준 향상을 도모하도록 했는데, 이번에는 대법원 판결 취지를 확실히 반영해서 개선안을 만들고 6차 계획 안에 포함시켜야 한다. 아울러 6차 계획에는 무작위 샘플링을 통해 실태조사를 실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를 통해 실질적으로 장애인 이동권이 일상에서 얼마나 취약한지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나아가 현행 적정 설치율 79.2%를 100%까지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6차 계획에 담아야 한다.

 

 

두 번째는 지자체 편의시설 사전검사 의무화 시행이다. 무엇보다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실제로 편의시설 설치 의무 소매점 등에 대한 문제는 대부분 지자체 소관이며 인허가권도 지자체에 있다. 이를테면 지자체는 계단 등에 의해 장애인 통행이 자유롭지 못 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간이 경사로 지원 사업을 할 수 있다. 편의시설 의무 소매점은 법률과 조례에 따라 이를 거절할 수 없다. 그래서 법률과 조례를 개정해서 지자체의 역할과 기능을 대폭 강화해야 하고, 동시에 의무 소매점이 설치하지 않고 버티게 될 경우 패널티를 강화해야 한다. 물론 간이 경사로 설치에 따른 비용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적절히 지원해주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지방의회가 의무 소매점에 대한 사전검사 통제를 받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사전검사 전후에 대한 편의시설이 제대로 설치되었는지 그 결과를 지방의회에 보고하고 의결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적정 설치율이 100%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 세 번째는 장애인편의법을 개정하는 문제다. 일단 정부는 장애인편의법 시행령에 따른 15평 이상으로 한정한 편의시설 의무설치 기준 면적을 폐지해야 한다. 즉 면적 기준이나 건축 시기와 관계 없이 대한민국 모든 시설에 ‘턱’이 없도록 해야 한다. 계단이 있더라도 휠체어 경사로가 반드시 갖춰져 있어야 한다.

 

분명 대법원은 국회와 정부의 소극적인 조치에 대해 “단순 입법 미비로 그치는 것이 아닌 위법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더구나 예산 집행권과 행정 사무 통솔권을 쥐고 있는 행정부는 국회에서 위임해준 입법 의무를 준수하지 않았고, 오히려 국민의 공복으로서 마땅히 봉사해야 하는 공무원 조직이 경제 논리에 천착해서 장애인 이동권이 20년 넘게 제자리걸음었던 것에 대해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장애인편의법이 시행된지 27년이 흘렀다. 곧 30년이다. 이젠 바뀔 때도 되었다. 4월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올해는 이미 늦었지만 2026년 장애인의 날에는 부디 대법원의 당부대로 세상이 변화했으면 좋겠다. 그날이 되면 새로운 대통령과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과와 함께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겠다는 담화를 꼭 해주길 바란다.

김진웅 pyeongbummedi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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