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이 우울한 이유는 ‘국가’ 때문이다

  • 등록 2025.05.13 09: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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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웅의 정책 스토어] 7번째 칼럼입니다.

 

 

[평범한미디어 김진웅 성동구의회 정책지원관] 한국은 우울 사회다. 그리고 대표적인 저부담 저복지 국가다. 국민 소득 3만불 시대는 일찍이 도래했고, 이제는 4만불을 내다보며 나아가고 있는데 한국의 복지 지출은 GDP 대비 15%에 그치고 있다. OECD 평균치의 69% 수준에 불과하다. GDP 규모로만 보면 한국은 전세계 10위권임에도 현실이 이렇다. OECD 회원국 중 한국보다 복지 지출이 저조한 국가는 멕시코, 튀르키예, 코스타리카, 아일랜드 뿐이다.

 

이러한 결과는 신자유주의에 매몰된 경제학자들, 기업가들, 보수 양당의 낙수효과 기대와 파이를 더 키우자는 신념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니 1년 GDP가 2549조원(1조8213억달러)인데 언제까지 파이를 더 키워야 한다고 할 것이며, 위에서 흘러내리는 물에 의존해야 하는 것인가?

 

그러는 사이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신건강은 피폐해져만 가고, 삶의 질은 하락해가고 있다. 지난 7일 발표된 조사 결과(서울대 보건대학원 BK21 ’정신건강 증진과 위기 대비를 위한 일반인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1500명 중 절반 정도가 정신건강이 “좋지 않다”고 응답했다. 심각한 것은 ‘장기적 울분’ 상태에 해당하는 비율은 절반 이상(54.9%)이었다. 심지어 12.8%는 ‘높은 수준의 심각한 울분’을 경험하고 있다고 답했다. 우울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우울 사회는 왜 도래한 것일까? 여러 측면에서 다각도로 접근해볼 수 있겠으나 필자는 저부담 저복지 국가 구조에서 그 원인과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인 적정 생활비의 절반도 안 되는 국민연금 수령액

 

2024년 12월 기준 ‘국민연금 공표통계’에 따르면 노령연금 수급자의 평균 국민연금 수령액은 82만원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평균액이다. 같은 기간 20만원 미만을 받는 수급자는 58만명에 달한다. 노인 1인당 적정 생활비는 165만원이다. 이에 반해 국민연금 평균액은 82만원에 그치고, 58만명에 달하는 노인들은 20만원 미만의 연금을 수령하고 있는데 이러한 현실을 마주하는 노동자들은 대기업 직장인과 공무원, 공공기관 임직원이 아닌 이상 저임금 또는 고용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매달 강제로 징수하는 국민연금은 언제 고갈될지 모른다는 뉴스를 매일 접하고 있는데 저임금 노동자들의 심리 상태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오래 납부해서 겨우 받게 되는 국민연금액은 공무원 연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 하는 수준이어서 은퇴 후에도 상대적 박탈감과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도록 하는 곳이 한국 사회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해서 매일 치열하게 스펙을 쌓고, 죽도록 경쟁하며 주기적으로 멘붕을 경험하는 것이 한국인의 국룰이다. 이런 한국인들의 정신건강이 온전하길 바라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다.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도 연금제도가 나의 노후를 책임지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이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싹트게 한다.

 

건보 있어도 민간 보험료를 많이 낸다

 

2023년에 발표된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의 ‘2020년도 한국의료패널 기초분석보고서(I)’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의 80% 가량이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 평균 보험료는 28만원 이상이다. 또한 여러 실태조사들을 보면 한국 건강보험의 보장률 즉 100만원 의료비 기준 국가에서 보장해주는 액수는 64만원에 그치고 있다. 나머지 36만원은 오로지 국민의 몫이다. 반면 OECD 회원국 국민들이 누리는 평균 의료비 보장률은 76.3%다. 한국 건보가 최악의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되어 있다는 명제 뒤에는 OECD 평균 이하라는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이처럼 10위권 경제 대국의 국민들이 누리는 복지 수준은 매우 처참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렇지 않아도 가처분소득이 넉넉하지 않은 저소득층과 일반 시민들은 한숨만 늘어간다.

 

모든 걸 ‘가족의 돌봄’에 맡기고 있는 대한민국

 

‘간병 살인’이라는 끔찍한 용어가 한국 사회에서 익숙하게 들리게 된지 꽤 됐다. 우울한 한국인의 파국이 바로 간병 살인이다. 치매 부모, 지적장애 자녀, 중증질환자 등을 가족이라서 어쩔 수 없이 돌보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살인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는 것인데 네이버에 ‘간병 살인’을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들이 나열된다.

 

 

가족에게 맡겨진 간병의 부담은 상당 부분 지자체의 복지 정책으로도 해소하 수 있다. 하지만 지자체마다 사회서비스 정책이 천차만별이다. 지방자치법에 따른 국가 위임사무와 지자체 고유 사무가 있는데 대부분의 사회서비스는 고유사무다. 지자체장의 이념과 정책 방향성에 따라서 사회서비스를 늘릴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다. 최소한 복지 제도에 있어서 지역별 양극화 현상을 최소화해야 하며 사회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한다. 표준화를 위해 사회서비스원이 출범했지만 최근 서울은 지자체 최초로 서울 사회서비스원을 없애버렸다. 마찬가지로 일부 보수 성향 지자체장들은 사회서비스원의 역할과 기능을 등한시하고 있다. 현실은 녹록치 않다. 당장 내 가족 중 누군가가 암에 걸리거나 교통사고에 따른 지적장애를 갖게 된다면 ‘독박 간병’의 부담 뿐만이 아니라 엄청난 간병비가 가족의 숨통을 조여올 수밖에 없다. 잠깐 상상해보자. 발달 장애인, 치매 가족, 거동이 불가능한 최중증 장애인 등이 곁에 있다면 그들을 24시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일상이 마비된다.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삶이 멈춰버린다. 이러한 개인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회서비스인데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서 충분한 사회서비스를 누리고 있는 가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매일 같이 네이버에 뜨고 있는 기사들을 보면 ‘돌봄의 사회화’가 아닌 ‘돌봄의 개인화’에 따른 비극들로 가득하다. 내 가족이 아프고 내가 아플 때 국가는 사라진다. 그러나 국가는 내가 돈을 벌 때는 귀신같이 매월 정확하게 한치의 오차도 없이 세금을 거둬들인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복지 현주소다.

 

꽤 많은 한국인들이 장기적 울분 상태에 빠져 있다. 다양한 원인들과 구조적 문제가 있겠지만 필자는 돈을 덜 쓰는 복지국가에서 살아가는 국민들이 짊어진 부당한 짐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의 노후생활 보장, 건강권 보장 그리고 돌봄의 부담을 개인에게서 사회로 옮길 수 있도록 중부담 중복지 국가로 전환할 수만 있다면 우울한 한국인들이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국가의 존립 근거는 외형과 덩치를 키우는 것이 아니고 국민들의 행복과 삶의 질 향상에 있다. 국민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 국가를 위해 국민이 있는 게 아니고 국민을 위해 국가가 있다. 잊지 말아야 한다.

김진웅 pyeongbummedi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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