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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박정희 성역화에 스크래치를 냈다”

※ [박성준의 오목렌즈] 134번째 기사입니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확실히 영화가 지닌 뛰어난 몰입감과 연출력은 티가 났다. 2시간 넘는 러닝타임 내내 사건의 진실을 추리해가는 긴장감이 있었다. 하지만 유신체제의 수장 故 박정희 대통령이 장악하고 있는 중정(중앙정보부)의 자작극으로 육영수 여사가 암살당한 것 아니냐는 영화의 질문에 말 그대로 “긁힌 사람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박성준 센터장(다소니자립생활센터)은 “지루할 틈이 없고 사건의 전개가 빠르게 진행되는 그런 영화였다”면서 “처음부터 영부인 피살 사건의 미스터리를 따라가며 추적하는 상상으로 풀어냈기 때문에 영화 자체로만 보면 문제삼을 게 없다”고 강조했다.

 

영화 <암살자들>이 지난 9월23일 추석 연휴 직전에 개봉해서 10월2일 기준 182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영화는 1974년에 발생한 ‘박정희 대통령 저격 미수 사건’과 ‘동아일보 광고 탄압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번 오목렌즈 대담(10월1일 10시)에서는 <암살자들>을 둘러싼 여러 논란을 짚어봤다.

 

 

한 마디로 문세광의 범행 배후에 중정이 있을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문세광이 단독 암살자가 아니라 다른 공범이 있을 수도 있다는 질문을 하는 의미에서 영화 제목이 ‘암살자들’이다. 우파 진영에서는 유가족이 살아있는 현대사를 다루면서 국면 전환을 위해 ‘남편이 부인을 죽였다’는 식의 설정을 한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상영 중단과 사과를 하지 않으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낼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은 유영하 의원을 통해 아버지로부터 받은 친필 편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유 의원은 “좌파의 역사 왜곡을 바로잡을 몽둥이가 될 것”이라며 열을 냈다. 하지만 영화가 개봉한지 꽤 지났는데 아직도 압박만 하고 실제로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내지 않는 이유가 있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 상상과 허구를 가미한 영화적 연출작임을 밝혔기 때문에 법원에서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 박 센터장은 영화에 등장하는 많은 의혹과 정황들이 상당 부분 팩트에 기반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닌 극 영화이기 때문에 ‘상상력으로 이상한 점을 의심해보는 픽션’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분명히 팩션 영화인데 이거를 전부 팩트로 믿게 하는 힘이 영화적인 힘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것 때문에 우려하는 거라고는 알겠는데. 나는 이게 오히려 영화를 잘 만들었다는 증거일 수 있다고 얘기하고 싶다. 영화를 못만들었다면 큰 주목을 못받고 사장될 수 있었는데 관객수가 많아지고 그렇게 메시지가 읽히기 때문에 우파들이 반발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화를 영화로 봐야 된다고 얘기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처음 시작부터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긴 했지만 미스터리 부분에 대한 상상이 들어갔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박 센터장은 우파에서 발끈하는 배경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 일가에 대한 성역화’가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파에서는 박정희라는 인물에 가해지는 그 어떤 스크래치도 견디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무엇보다 박정희 일가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고 그 가족들도 여타 크고 작은 스크래치가 있는데 유일하게 온전하게 남아 있던 상징이 바로 육영수 여사다. 실제로 육영수 여사는 남편의 철혈 독재 통치 와중에도 국모급으로 추앙받고 당시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영부인의 피격 사건에 남편인 박정희 대통령측이 연루되었다는 식의 상상력을 가미한 것 자체가 이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자 신성 침범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명백한 군사 독재 정권이었던 박정희·전두환 두 정권에서 공안 탄압이나 간첩 조작 사건 등이 수없이 많이 실제로 일어났다. 자신들의 집권을 위해, 정치적 이익을 위한 이런 반인륜적인 행태가 비일비재했던 만큼 중정이 기획한 자작극이라는 가설이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 다만 아직까지는 가설에 불과하고, ‘문세광 단독범’이라는 정설에 여러 가지 풀리지 않는 의혹과 이상한 점들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우파의 반발은 냉철한 사실관계와 근거에 따른 것이 아니라 “어떻게 남편이 아내에게 그럴 수 있냐”는 식의 감정적 반응에 치우쳐 있다. 유 의원이 공개한 친필 편지만 하더라도 이런 식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장녀인 박근혜 전 대통령한테) 아버지가 맞을 흉탄을 어머니가 내 대신 맞고 가셨다. 내가 맞고 어머니가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몇 번이고 생각해본다. 이제는 네가 어머니의 대역을 해주어야 하겠다. 좋은 아버지가 되게끔 무슨 희생이라도 하겠다.

 

유 의원은 “단 한 번도 세상에 내놓지 않았던 편지로, 영화가 없었다면 앞으로도 공개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우파쪽 인물은 아니지만 MBC 사장을 지낸 최승호 피디도 페이스북에서 “육영수 여사가 저격당한 비극적 사건의 기획자가 박정희 대통령 혹은 그의 수하였던 중앙정보부라고 상상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좌우간 균열을 한층 더 심화시키는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문세광의 저격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짧은 시간에 이뤄지고 신속한 재판과 사형으로 이어졌기에 남아 있는 증거들에서 여러 문제점을 찾아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박정희 정권이 영부인을 죽인 범인이라는 의심을 하다니? 이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당시 중학교 1학년 어린 나이였지만 육 여사의 죽음이 대중들에게 준 슬픔의 크기를 기억한다. 아내의 영구차에 손을 올리고 망연한 표정을 짓던 박 대통령의 모습도 남아 있다. 박 대통령은 그 사건 뒤 급격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고 그 역시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다. 박정희란 인물은 과도 많았지만 대한민국이 오늘의 경제적 도약을 이루게 한 거인이란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를 빼고 대한민국의 오늘을 설명할 수 있는가?

 

‘감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라는 화법이 영화가 던지는 의혹과 가설에 대한 반론의 거의 대부분이다. 물론 최 피디도 사후적으로 <암살자들>을 감상하고 “이런 정도는 극 영화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그동안 영화가 해온 범위 내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박정희 대통령이 육 여사를 죽이라고 했단 말이냐’는 비판을 하는 것이 무리일까? 그렇지는 않다.

 

박 센터장도 <암살자들>의 메가폰을 잡은 허진호 감독이 ‘연출적 패착’을 한 부분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영화 자체는 박진감이 넘치지만 굳이 ‘다큐멘터리적 결말’이 부른 역풍을 자초할 필요는 없었다는 것이다.

 

허진호 감독은 단순한 의혹 제기 수준으로 끝내고 싶었겠지만, 후반부에 사실적인 부분을 강하게 주입하면서 관객들을 현실의 역사 왜곡 논쟁으로 끌어들이는 빌미를 제공했다. 특히 마지막에 실제 저격 영상을 보여주고 ‘아직도 육영수 여사의 두부를 관통한 탄환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자막을 넣었는데 마치 박정희 정권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감추고 묻어버린 것처럼 묘사했다.

 

창작의 자유와 역사 왜곡의 경계선을 긋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허 감독은 2016년에 개봉한 영화 <덕혜옹주> 때에도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의 목소리에 직면한 적이 있다. 덕혜옹주는 좌우 진영 모두에 그렇게까지 민감한 인물은 아니라서 논란이 크게 번지지는 않았다. 허나 덕혜옹주는 독립 운동의 시도조차 하지 않은 인물임에 틀림 없는데 영화에서는 마치 그런 시도를 한 것처럼 돼 있다. 그래서 김형민 전 SBS CNBC 피디도 “허 감독의 전작 <덕혜옹주>는 사실 한 조각에, 허위 아홉 조각을 섞은 식은 피자 같은 영화”라며 “개인적으로 <덕혜옹주>는 역사 왜곡을 넘어 ‘새역사 창조’에 가까운 공상과학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김 전 피디는 페이스북에서 표현의 자유와 창작의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취지로 아래와 같은 지점을 분명히 밝혔다.

 

상영 중단? 저주하든 욕하든 자유지만 법으로, 물리적으로 막으려 든다면 ‘사수’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언제 이른바 좌빨들이 <건국 전쟁> 따위의 쓰레기 영화라도 상영관을 막은 적이 있던가? 경찰에 고발한 적 있던가? 그런데 이른바 우꼴들은 그걸 자연스레 자행하고 그걸 자랑스레 여긴다. 정치인들의 소동 말고 예술의 영역에서 말이다. 크리에이티브 영역에서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재미있는 걸 못만드는 거다. 그래서 나는 모든 종류의 역사 왜곡 금지법에 반대한다. 김일성 만세를 부르든, 전두환 만세를 부르든 하다 못해 히틀러 만세를 부르든 그 논의 자체를 법적으로 가로막는 것에 반대한다. 5.18 왜곡 금지법도 당연히 포함된다. 그건 절대 지켜지지 않을 법이고 5.18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도 좋지 않은 법이라 본다. 이진숙 같은 사악한 정치인만 띄워주는 꼴이 된다. 친일찬양금지법? 마찬가지다. 무슨 말이든 떠들게 하라. 그리고 반박하면 되지 않는가. 그걸 법으로 막는 순간 국가보안법을 만든 사람들과 다를 게 없어진다. 국가보안법이 무슨 소용이라도 있었던가? 주사파들을 낳고 기른 게 국가보안법이었다.

 

가처분으로 압박하거나 발끈할 게 아니라 영화에 나온 디테일에 대한 구체적인 반박으로 대응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허 감독은 실제로 2005년에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밀도 있게 다룬 여러 사실관계들과 의혹들을 토대로 영화를 제작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일단 두 다큐 프로그램에서 제기한 의혹들에 대한 반박부터 시작해보는 것이 좋다. 이를테면 <암살자들>에서 배우 유연석이 카메오로 연기한 ‘이와사 사토시’라는 인물은 명백히 창작된 허구가 맞다. 그러나 실제로 문세광이 이용했던 호텔에 ‘의문의 한국인’이 함께 있었다는 점과 그 내용을 진술했던 여행사 직원들이 중정에 의해 입막음을 당했던 부분부터 사실관계를 확인해봐야 한다.

 

결론적으로 박 센터장은 “확정적인 역사적 사실을 완전히 뒤틀어버리는 허무맹랑한 결론이 아니라면 미스터리와 의혹에서 출발한 픽션은 어디까지나 영화적 장르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다만 관객들에게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혼동하게 만드는 연출적 완급 조절의 아쉬움이 있다. 작품을 둘러싼 소모적인 보이콧 양상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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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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