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철민의 산전수전 山戰水戰] 38번째 글입니다.

[평범한미디어 김철민 크루] 어김없이 올해도 추석 시즌이 되었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맞이하는 두 번째 추석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예전에는 이 말이 참 좋았다. 어릴 적 추석은 풍요롭고 즐거웠다. 오랜만에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음식을 나눠 먹고,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는 정겨운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말이 더 이상 와닿지 않게 되었다. 명절이 다가와도 예전처럼 설레지 않고 오히려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진다. 어릴 적 느꼈던 명절의 풍요로움도, 친인척 사이에 오가던 ‘정’도 사라진지 오래다. 이제는 1년에 두 번 뿐인 명절에도 가족들이 모이지 않는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연휴를 활용해서 해외여행을 떠나는 친척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청소년기에는 명절에 모이는 문제로 작은아버지 댁과 우리집이 크게 다툰 적도 있다. 요즘 명절에 해외여행을 떠나는 문화적 풍경이 자리잡았는데 단순히 이것만으로 앙금이 생긴 것이 아니다. 작은아버지 가족은 명절만 되면 해외여행을 떠났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맏며느리인 나의 어머니가 독박으로 명절 음식을 준비하곤 했다. 어쩌다가 한 번쯤 명절에 자리를 지키더라도, 어머니가 다 차려놓은 음식을 늦게 와서 먹기만 하고 돌아갔다. 심지어 할머니와 아버지 앞으로 들어온 과일이나 고기 같은 명절 선물까지 몽땅 챙겨가기 일쑤였다. 어린 마음에 보더라도 그 모습이 참 얄미웠다. 명절 내내 고생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화가 났다. 그때는 왜 어머니만 이 모든 명절 중노동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맏며느리라는 이유로 명절마다 어머니의 희생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을 받아들일기 어려웠다.
이런 불편항 상황이 반복되면서 우리 가족의 명절은 점점 단출해졌다. 어차피 우리 가족끼리만 모이게 되니 집에서 명절 특선 영화를 보거나 함께 밥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전부였다. 어느 순간부터 명절이라고 해서 전혀 특별할게 없어진 거다. 그나마 가깝게 지내던 외가 친척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사촌 형제들이 하나 둘 결혼하고 자녀가 생기면서 각자의 가정을 꾸려나갔고, 자연스럽게 만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누구 하나가 특별히 잘못해서라기보다는 각자의 삶이 바빠지면서 관계가 조금씩 멀어진 것 같다. 아마 이런 변화를 겪는 것이 우리 가족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핵가족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었고, 저출산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가족의 모습도 달라지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 결혼이나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도 늘어나면서 명절에 온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는 풍경 자체가 예전보다 낯설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명절에 가족이 반드시 모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행을 떠나는 것도, 각자의 집에서 쉬는 것도 모두 나름의 사정과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만 내가 기억하는 명절의 모습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쉬울 뿐이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곁에 없다는 사실이 명절을 더욱더 달갑지 않게 만든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맞이하는 두 번째 추석이지만 아직도 아버지의 빈자리가 크다. 아버지의 부재가 익숙하지 않고 여전히 괴롭다. 동생들도 말을 하진 않았지만 나와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예전처럼 여섯 식구(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2남2녀)가 함께 모일 수 없다는 비극적인 현실이 명절이면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작년 추석부터는 명절을 조금 다르게 보내기로 했다. 남은 가족끼리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꼭 해외여행이 아니어도 좋으니 국내여행이라도 다녀오면서 새로운 추억을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작년에는 펜션을 예약해 가족들과 함께 다녀왔다. 이번 추석에도 가족들과 갈만한 펜션 몇 곳을 찾아 놓고 어디로 갈지 고민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내게는 가족과 함께 여행을 다닌 추억이 그리 많지 않다. 여섯 식구가 함께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며 사진도 찍고 즐겁게 지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 와서 그런 추억을 충분히 많이 새겨놓지 못했던 것이 참으로 뼈아프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남은 다섯 식구가 함께하는 시간이 더욱 간절하고 소중하다. 앞으로는 가족들과 더 자주 여행을 다니려고 한다. 특별한 관광지를 찾아가지 않더라도 그저 함께 밥을 먹고 산책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많이 만들고 싶다.
특히 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더 쓰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식들에 비해 여행 자체를 그다지 많이 다녀보지 못했다. 해외여행이라고 해봐야 베트남 두 번과 필리핀 한 번이 전부다. 그마저도 아버지 친구 모임이나 외가 친척들과 함께 다녀왔던 여행이었다. 온전히 우리 여섯 식구만 함께 떠났던 해외여행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어떠했나? 나는 그동안 혼자 해외여행을 일곱번이나 다녀왔고, 국내 여행도 여기저기 참 많이 다녔다.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며 좋은 풍경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름대로 즐거운 추억을 많이 쌓았다. 그에 비해 부모님이나 동생들과 함께 여러 조합으로 가족 여행을 기획해보지 못한 것 같다는 자책감이 든다. 그래서 장남으로서 세 동생들에게도 미안하고 특히 부모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 내가 여행을 다니며 느꼈던 즐거움을 부모님과도 함께 나눌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텐데. 왜 그때는 나만 그렇게 미친 듯이 여행을 다니고 가족들을 챙기지 못했던 걸까. 아버지가 내 곁에 계실 때 조금만 더 부지런히 가족 여행을 다녀올걸 거듭해서 후회와 한탄만 하고 있다. 지나가버린 시간을 되돌릴 순 없다. 앞으로는 이런 아쉬움을 남기지 않고 싶다.
사실 지난 8월말 죽마고우인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크루와 태국 푸켓으로 5박6일 여행을 다녀왔다. 30년지기 고향 친구인 윤 크루와 단둘이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없어서 작년에 최초로 방콕을 다녀왔는데, 올해는 푸켓을 갔다왔다. 태국은 그야말로 최고의 관광지라서 반복해서 가도 질리지가 않고 오히려 또 다른 도시를 더 방문해보고 싶은 여행욕을 솟구치게 한다. 그래서 이번 대학원 2학기가 끝나면 겨울방학 기간을 활용해서 윤 크루와 치앙마이로 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치앙마이 여행을 친구와 가는 게 아니라 어머니와 단둘이 가보고 싶다는 상념이 든다. 어머니와 치앙마이의 황홀한 풍경을 만끽하며 함께 걷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수다도 떨고 싶다. 평소에는 쑥스러워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여행지에서는 조금 더 편하게 꺼낼 수 있지 않을까. 어머니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디를 가보고 싶은지, 남은 인생 목표는 무엇인지,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는지 등등 되려 가까운 모자 관계라서 묻지 않았던 질문을 던지고 어머니의 깊은 속내를 알아가보고 싶다. 어쩌면 어머니도 누군가의 아내이자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누군가의 맏며느리로 살아오느라, 온전히 본인을 위한 삶과 시간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던 것 같다. 이제는 어머니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며 많이 즐기셨으면 좋겠다.
아버지가 없는 명절은 앞으로도 익숙해지기 어려울 것 같다. 그 빈자리가 완전히 채워지는 날은 평생 없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더욱더 남은 가족들과 함께 웃을 수 있는 추억의 공간을 키워가고 싶다. 언젠가 우리 다섯 가족이 “그때 그 여행 정말 대단했어. 너무 좋았어”라며 추억을 곱씹으며 회상할 수 있도록 말이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더 많은 추억의 공간을 만들지 못해 사무치는 한으로 남은 만큼, 이제는 곁에 있는 가족들과의 시간을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다.
이제는 한가위의 풍요로움을 떠올리는 기준이 완전히 달라졌다. 대가족이 북적이게 모여야만 풍요로운 게 아니다. 남아 있는 다섯 가족이 함께 만날 수 있는 ‘명분’이 주어짐에 따라, 진짜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 것 그 자체가 바로 한가위의 풍요로움이다. 평범한미디어 독자들도 이번 추석 연휴를 후회 없이 잘보내길 바란다. 푹 쉬고,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수다도 많이 떨고, 재밌는 것도 보고, 좋은 곳도 다녀오고 스트레스 없이 맘껏 즐기는 추석을 보냈으면 좋겠다. 올 추석은 일요일(9월27일) 새벽 2시쯤에 보름달이 태양의 정반대에 위치해서 완전히 동그랗게 관찰된다고 한다. 추석 당일 금요일(9월25일)에 볼 수 있는 보름달은 완벽한 원이 아니라 일정 부분 가려진 형태일텐데, 모두가 소중한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즐추’가 될 수 있길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