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를 보고 싶은 동기부여가 될 만큼만 읽다가,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면 그만 읽고 바로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좋다. 물론 이동진 평론가처럼 스포를 확인해도 영화를 보는 재미가 반감되지 않는 타입이라면 그냥 읽어도 상관없다.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와 박효영 기자 공동 작성] 공포물을 꽤 좋아하고 즐기는 편이다. <심야괴담회> 애청자이며 공포 유튜브도 챙겨 본다. 당연히 이번에 개봉한 영화 <살목지>도 오픈하자마자 바로 감상했다. 4월초에 개봉해서 약 한달 동안 30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을 만큼 큰 성공을 거뒀는데, 공포 영화의 약진은 분명 눈여겨볼만한 대목이 있다. 사실 <살목지>가 제작된다고 했을 때 걱정 반과 우려 반이었다. 기대감이 들기 보단 애타는 마음이 컸다. 살목지라는 곳은 충남 예산에 위치한 저수지다. 그런데 <심야괴담회>에서 살목지를 조명한 뒤로 너무 많이 유명해졌다. 살목지 에피소드는 <심야괴담회> 역대급 회차로 남았는데 단숨에 ‘심령 스팟’으로 떠올랐고 너무 많이 어뷰징된 만큼 과연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심히 걱정스러웠다. 평범한미디어 멤버들만 쉴드를 쳐줬던 <늘봄가든>의 전철을 밟진 않을지 입이 바싹바싹 말랐다.
<늘봄가든> 말고도 최근 들어 한국형 공포 영화는 형편 없는 작품성으로 악평을 독차지했다. 유관 장르라고 할 수 있는 오컬트 영화 <파묘>가 대성공을 거뒀지만, 실화를 기반으로 고만고만한 예산이 들어가 어설프게 제작됐던 <옥수역 귀신>과 같은 공포물이 대표적이다. 이제 더 이상 <여고괴담>과 같은 작품은 나올 수 없는 것일까?
하지만 <살목지>는 다르다. 우려는 기우였다. 물론 공포물 특유의 클리셰적 문법을 따라갔지만 모든 것을 뻔하게 가져가지 않고 조금씩 비틀어서 신선함을 안겨줬고, 오싹한 긴장감과 텐션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목적과 타겟팅이 분명한 뛰어난 연출과, 배우들의 열연도 볼만했고, 보는 내내 심장을 콩닥콩닥 하게 만들었다. 한 마디로 쓸데 없는 사연팔이와 서사에 치우치지 않고 공포물의 본질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다. 오랜만에 좋은 한국형 공포 영화가 나온 것 같다.
무섭지도 않은지 요즘 살목지에는 야간 방문자들이 그렇게 많아졌다고 한다. 공포 체감을 하러 가는 것인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다녀간 만큼 귀신들도 지칠 것 같다. 귀신들이 힘에 부쳐 살목지의 공포스러움이 반감되지 않을까 싶다. 정말로 “너무 시끄러워서 있던 귀신도 도망”갈 판이다. 해당 지자체는 안전 사고 문제와 주민들의 생활권 보장을 위해 야간 입장을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낮 시간대 햇살 맑은 타이밍에 방문하면 그냥 평범한 저수지다.
슬슬 영화 속으로 들어가보자. 주인공 수인(김혜윤 배우)은 로드뷰 서비스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다. 그런데 살목지 로드뷰에 정체불명의 물체가 찍혔다. 살목지 여자 귀신이 찍힌 것이다. 소위 ‘귀신 소동’으로 로드뷰 회사는 곤혹을 치렀고 이내 해당 살목지로 가서 로드뷰를 다시 찍기로 결정한다. 가수 이승환의 뮤직비디오 속 지하철 열차 귀신 소동이 20년 넘게 이어져오다 허무한 진실로 마무리될 만큼 길게 갔는데, 로드뷰 스팟에 명백한 처녀 귀신이 찍혔으니 발칵 뒤집힐만하다.
결국 회사 구성원들 중 누군가 살목지로 가서 다시 로드뷰 촬영을 해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소를 피할 수 없다. 그렇게 수인이 자원해서 팀이 꾸려졌는데, 공포물의 세계가 효과적으로 전개되도록 필요한 인간군상이 모두 모였다. 공포물의 클리셰 abc가 다 들어갔다. 진지한 주인공, 귀신 따위 믿지 않는 대범한 인물, 귀신을 좋아하는 호기심녀, 배신하는 사람 등등.
그렇게 그들은 살목지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차량 후진을 하다가 돌탑을 건드려 무너뜨리고 말았는데 웬 정체불명의 할머니가 나타났다. 돌탑을 다시 쌓고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 꼭 이런 타이밍에 미스터리한 노파가 등장하곤 하는데 ‘맥거핀’인지 ‘복선’인지 냄새만 잔뜩 풍긴다. 팀원들은 찜찜한 마음에 돌을 다시 올리고 다들 나름의 소원을 빌었다. 근데 갑자기 뜬금없이 새로운 팀원이 나타난다. 그 사람은 바로 훨씬 이전부터 살목지에서 로드뷰 작업을 하고 있었던 수인의 선배 우교식 피디(김준한 배우)였다. 살목지에 내려간 뒤로 연락이 끊겨 행방불명 상태였던 우 피디가 갑자기 나타난 것인데, 이에 수인은 반가워하고 그동안 왜 연락이 안 되었는지 이것저것 물었다.
친절한 우 피디는 갑자기 “뭐가 그렇게 궁금한건데?”라며 정색했다. 수인은 물론 보는 관객들도 쎄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는 순간이다. 우 피디 뭔가 이상하다. 눈치 빠른 관객들은 여기서 이미 눈치 챘겠지만 우 피디는 사람이 아니고 귀신이다. 연락 두절된 사람이 갑자기 살목지로 나타나서 극 초반부터 스토리에 개입한다는 설정 자체가 귀신임을 직감하게 만든다. 그러나 알고 봐도 쫄깃함이 줄지 않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
팀원들 중 세정(장다아 배우)은 공포물 매니아라는 설정이다. 부업으로 자신만의 호러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데, 보는 내내 세정이 같은 인물이 나중에 어이 없게 죽임을 당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정말 그렇게 됐을까? 직접 보고 확인해보길 바란다.
주인공 빼고 주말 작업으로 불만 가득한 팀원들이지만 일은 일이다. 로드뷰를 찍어야 한다. 그런데 내내 불신하던 카메라 감독 송경태(김영성 배우)가 가장 먼저 변을 당했다. 송경태의 친동생 송경준(오동민 배우)도 이번 일정에 동행했는데 그는 해군 특수부대 SSU 출신이자 전형적으로 대담하고 운동 잘하는 캐릭터다. 엄청난 신체 능력을 자랑하는 만큼 형보다 훨씬 더 귀신의 존재를 불신하는 허세가 강하다. 다들 예상되지 않는가? 이렇게 겁이 없는 캐릭터는 귀신 앞에서 자신의 물리력만 믿고 오버하다가 화를 면치 못한다. 형의 죽음을 목도하고 눈이 뒤집혀 귀신을 도발하다가 결국 살목지 복판에서 사망한다. 사실 SSU 출신급이면 수영과 잠수의 도사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마석도가 와도 물귀신들 앞에선 장사 없다. 귀신들에게 인간의 힘으로 맞선다는 것은 무모함 그 자체다. 그렇게 될 것 같다는 예상이 100% 적중해서 참으로 씁쓸했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아무 상관 없는 살목지 커플 캠핑러가 등장해서 비극에 이르는 장면이 오싹하게 만들긴 했지만, 사실 그걸 제외하고 본격적인 공포의 시작을 알린 장면은 ‘물수제비’였다. 장비가 고장나서 수리가 완료될 때까지 무한 대기를 하는 와중에 경준과 막내 팀원 성빈(윤재찬 배우)이 물수제비 놀이를 한다. 마지막에 사이드암으로 던진 돌이 여섯번 넘게 물수제비를 튕기고 끝나야 하는데 역방향으로 되돌아와 계속해서 똑, 똑, 똑 소리를 내며 점점 근접해온다. 스타카토처럼 템포가 짧아지며 점점 다가오는데 뭐죠? 지금 저만 들리는 게 아니죠? 이 말을 하는 순간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던 조명을 그대로 강타한다. 이 장면은 상당히 무섭다. 역대급 점프 스케어로 남을 것 같은 명장면인데 흡사 <여고괴담> 최강희 배우의 교실 복도 점핑샷이 연상됐다. 테이프를 빨리 감기하듯 되돌아온 물수제비의 정체는 ‘새’였지만 아무래도 수상했다.
<살목지>는 이처럼 큰 줄기로 봤을 때 클리셰적 문법으로 전개된다. 특정 공간에 다다른 인물이 (귀신에 의한) 초자연적인 현상에 리타이어 되는 식이다. 공포 영화의 정석과도 같은 방식이다. 그렇게 배틀 로얄처럼 1명씩 자꾸 죽게 되자 남은 팀원들은 패닉에 빠졌다. 성빈은 나라도 살아야겠다는 일념의 모드를 탑재하게 됐고, 여친 세정과 탈출을 도모한다. 급히 차를 몰고 살목지를 벗어나보려 하지만 어디 그렇게 호락호락하겠는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계속 같은 자리만 빙빙 돌게 된다. 네비게이션? 당연히 귀신이 고장내버렸다. 같은 장소를 빙빙 도는 것은 전형적인 귀신 홀림 증상이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냥 해가 뜰 때까지 기다리면 안 되나?
그런데 영화 설정상 시계도 움직이지 않았다. 단순 고장으로 그런 것일 수도 있는데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만약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1분이 1년 같을 것 같다. 이들은 살목지의 저주에 꼼짝 없이 갇히고 말았다. 결국 자동차는 물가로 치닫는데, 이때 마침 같은 로드뷰 회사의 직원이자 수인의 전남친 기태(이종원 배우)가 극적으로 나타난다. 죽음의 문턱에서 귀신이 아닌 기태가 수호신으로 등장해 구해주는 것이다. 물론 나중에 죽게 되지만. 기태는 고장난 장비를 대체할 새로운 장비를 갖고 본사에서 현장으로 온 급파 직원이다.
한편 진지한 태도로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던 수인은 돌탑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기 시작한다. 돌탑을 뽀개버린 뒤 고무보트를 타고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확실한 탈출법이라는 입장이다. 성빈은 ‘수인이 너무 이상하고 수인 자체가 귀신의 원흉’인 것처럼 단정한 뒤 세정을 설득해서 수인과 기태 둘을 버리고 튀자는 제안을 하는데, 세정은 이를 받아들인다. 1대 밖에 없는 법인 차량을 갖고 튀는 것은 ‘추태’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면 댓가를 치르는 게 공포물의 법칙이라는 걸 왜 모르는 것일까? 둘만 차를 타고 서울로 도망가려다 귀신에 홀려 제정신이 아니던 상황에서 맞닥뜨린 경찰관! 지금 경찰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다행인 것 같고 보는 관객들도 안도의 숨을 쉴 수 있게 됐다. 이제 경찰의 도움을 받아 수인과 기태도 구하게 되면 양심의 가책을 덜 수도 있다. 그런데 아뿔싸! 배신자의 뒤통수가 근질근질하지 않겠는가? 세정은 경찰관이 이것저것 상황을 묻는 질문들에 답변을 하다가 문득 쎄함을 느꼈는데, 이내 두 경찰관의 눈이 빨갛게 변해 있었다. 그렇다. 이들은 경찰로 위장한 귀신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귀신들은 자꾸 페이크를 준다. 이 귀신들은 다시 세정과 성빈으로 변신해서 수인과 기태를 곤혹에 빠뜨린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스포일러였지만 이제부턴 진짜 스포다! 주인공 테크로 막판까지 생존한 수인과 기태는 모든 저주의 원천인 돌탑을 부수기 위해 고무보트를 타고 살목지를 건너려고 하는데, 뒤에 타고 있던 기태가 이상하다. 또 밀려오는 쎄함! 그때 저 멀리서 기태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사실 보트 앞에서 노를 젖고 있던 사람은 기태가 아니었다. 귀신 홀림이 주인공을 위기로 몰아 넣은 것인데, 물 공포증이 있는 수인은 저수지에 빠지게 되고. 우리의 수호신 기태가 수인을 구해준다. 이내 돌탑에 다다른 수인과 기태는 저주 걸린 돌탑을 부숴보지만 그 안에도 귀신이 있었고 귀신은 수인을 돌탑 안으로 끌어당기려고 한다.
여차저차 평온한 회사 내부 장면으로 컷이 넘어 갔다. 나름 잘 마무리됐고 이젠 영화가 끝나야 한다. 회사로 복귀한 기태, 충격으로 병가를 낸 수인. 근데 수인이 난데 없이 회사로 복귀했다. 이제 괜찮아졌냐는 물음에 괜찮다고 답한 수인. 그런데 커피를 타고 있던 수인이 보이지 않는다. 기태가 탕비실에 가보니 수도꼭지가 틀어진 채 검은물이 넘치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기태는 다시 살목지에 홀로 덩그러니 있었고, 수인이 물 속에서 나오고 있었다. 엔딩이 이것이다. 엔딩 장면에 대해 여러 해석들이 있는데 아마 수인도 귀신에게 먹힌 것 같다. 또한 기태도 결국 살목지를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살목지는 모두를 죽음의 세계로 이끌었다. 극장에 다녀온 관객들의 왈가왈부 해석 논쟁이 한창이다. 굳이 자처해서 살목지로 팀원들을 데려온 수인이 애초부터 원흉이 아닐까? 이름도 水(물 수)자에 引(끌 인)이다. 그럴싸한 풀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수인이 처음부터 귀신이었을 수도 있고, 귀신 홀림으로 조종을 당했을 수도 있다.
곰곰이 사색해봤다. 내가 볼 땐 <식스센스>나 <싱글라이더>처럼 주인공이 귀신인 것 같지는 않고, 귀신 홀림론에 마음이 간다. 여러분들은 어떤 쪽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