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7일 19시반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남구 광덕사에서 진행된 임의진 목사의 강연 현장에 윤동욱 크루가 다녀왔습니다. 강연 주제는 <절에서 듣는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윤동욱 크루가 현장 취재를 해온 것을 토대로 박효영 기자가 두 편에 걸쳐 기획 시리즈 기사를 작성합니다. 이번 기사는 1부입니다.
[평범한미디어 →현장 취재: 윤동욱 크루 / 기사 작성: 박효영 기자] 시인으로도 활동 중인 임의진 목사가 절을 찾아 종교의 경계를 허물고 참된 삶과 신앙의 자세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임 목사는 3대째 내려온 목사 집안에서 태어나 가혹했던 어린 시절과 6.25 전쟁 당시 집안 어른들이 순교했던 아픈 가족사를 고백했다. 그는 “할아버지는 순교하셨고 집안에서 다 13명이 돌아가셨다”며 “기독교 집안에서 제일 힘든 게 새벽 예배다. 어린 초등학생을 새벽 4시에 깨워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하니 동자승이나 목사 자녀들이나 극한 직업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셈”이라고 회상했다.
아무튼 그 어린애가 뭘 안다고 더 자야 되는데 동자승이나 다름 없다. 동자승도 그렇고 목사 자녀들도 그렇고 너무 힘들다. 그래서 (사람들이) 입만 열면 목사 아들이 돼가지고. 이런 말을 들으니까 이제 안 들으려고 감정 노동을 많이 했다. 그냥 착한 척을 하는 거다. 교회 가면 하는 일이 뭐냐면 자는 거다. 훌륭한 목사님은 교인을 재우는 목사다.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는 남양주에서 10년간 신장 목회를 하다 그만두고 현재의 거처를 마련하게 된 과정을 전하며 부처님과의 특별한 인연을 소개했다. 임 목사는 “목사를 그만두려니 돈이 전혀 없었는데, 그때 스님 친구가 암자를 하나 만들려다 미국으로 가게 됐다고 해서 살라고 자리를 내어줬다”며 “부처님의 은혜와 자비하심으로 그곳에 살고 있다. 예수님은 고생만 시키시는데 부처님이 날 도와주셨다”고 위트 있게 전했다. 또한 임 목사는 어린 시절 다운증후군을 앓던 형과의 자전거 추억을 떠올리며 처음으로 ‘예수’를 느꼈던 순간을 고백했다. 그는 “어린 시절 숨겨둔 자전거를 형이 타고 놀까봐 화가 나서 대문을 열었는데 형이 자전거를 타지 않고 동생을 위해 가만히 밀고만 놀고 있었다”며 “그때 가슴 속에서 그냥 줘라. 줘라는 소리가 울렸다. 내 마음을 살리는 참된 소리를 들었던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자존감을 느꼈다. 그랬다고 해서 지금 내가 이제 여러분에게 차를 준다거나 집을 준다거나. 그런 것처럼 진짜로 줘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내 마음을 살릴 수 있었다. 짧은 인생 살아가는 기쁨이었다.
임 목사는 종교적 독선과 고집을 경계하고 타인을 받아들이는 ‘관용’의 자세를 강조했다.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생각하고 믿고 아는 것이 틀릴 수 있다. 상대의 지혜를 얻고자 대화를 해야 하는데, 자신이 믿는 게 전부라 생각하고 남을 정죄하는 놀이를 해서는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으로 부처님을 믿을 수도 있는 관용이 필요하다.
사람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사람이 비정상이다. 종교도 시대와 상황에 맞게 변해야 하고 맞춰가야 한다.
내가 평생 성경을 본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번역해 보니까 이제 알게 됐다. 쓸데 없는 것이라는 거야. 성경을 번역해 보니까 알게 된다는 태도가 바로 무상하다는 것이다. 구약 성경에도 또 전도서에 보면 헛되다. 인생이 헛되고 헛되다라는 그 성서 구절이 있는데. 불가에서도 이 무상한 인생에서 계속 얘기한다. 무상하다라는 것은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거다. 근데 이 무상한 게 좋은 것이다. 제일 위험한 사람이 변하지 않는 사람이다. 변하지 않고 한결 같은 그런 사람 좋게 생각하지 않은가? 근데 여러분 사람이 안 변하면 안 된다. 변해야 죽을 수도 있다. 또 사람은 시대에 따라서 변해야 한다. 아니 불교도 시대에 맞는 불교여야지 수천년 전의 불교이면 안 된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그는 계산 없이 내어주는 ‘호구’ 같은 삶 그리고 타인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거룩한 낭비’야말로 참된 종교인 태도라고 설파했다.
사랑으로 베푸는 것을 어떻게 가격으로 셈할 수 있겠는가. 계산기 없이 밥을 하고 내어주는 거룩한 낭비. 이 거룩한 허송세월이 인생에 필요하다. 세상은 다 돈벌이에만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이런 바보와 호구가 있어서 텅 비어 있는 곳에서 정서적 위로를 받게 된다.
아울러 그는 삶의 알량한 마지노선으로 ‘염치없게 살지 않는 것’을 꼽았는데 가난하지만 거룩한 신심(불교적으로 마음의 상태를 바르게 알아 실천하고 그 결과가 분명함을 확신하는 태도)을 가졌던 전남 강진 민중교회 시절 교인들과의 추억을 나눴다. 당시 자신이 썼던 시 ‘마중물’(첫 시집 <참꽃 피는 마을> 수록)을 소개하기도 했는데 ‘마중물’은 아래와 같다.
우리 어릴 적 작두샘에 물 길어 먹을 때
마중물이라고 있었다.
한 바가지 먼저 윗구멍에 붓고
부지런히 뿜어대면 그 물이
땅속 깊이 마중 나가 큰물을 데불고 왔다.
마중물을 넣고 얼마간 뿜다 보면
낭창하게 손에 느껴지는 물의 무게가 오졌다.
누군가 먼저 슬픔의 마중물이 되어준 사랑이
우리들 곁에 있다.
누군가 먼저 슬픔의 무저갱으로 제 몸을 던져
모두를 구원한 사람이 있다.
그가 먼저 굵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기에
그가 먼저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꿋꿋이 견뎠기에.
종교 불문 인간이 추구하는 진리는 사실 멀리 잇는 것이 아니다. 그리 어렵지도 않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을 수도 있다.
진리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따뜻하게 스며드는 거룩함이며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곁에 있는 것이다. 종교의 자유, 신념의 자유, 삶의 자유를 얻고 타인을 타락시키거나 분별하는 일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누리길 바란다.
→2부에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