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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에게 빠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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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걸그룹 멤버에 빠진 남편이 아내와 딸에겐 무심한데 덕질에만 올인하고 있다. 덕질 자체는 문제가 없다. 허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 더구나 결혼 7년차 아내와 초등학생 딸이 있는 남편이, 걸그룹 덕질에만 삼매경이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jtbc <사건반장> 별별상담소에 소개된 사연인데 해당 남편 A씨가 덕질하고 있는 걸그룹의 멤버(외국인 멤버라고 한다)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았다.

 

사실 누구나 중요한 취미활동이 있을 것이다. 낚시, 해외축구 감상, 독서, 영화, 식물 가꾸기 등등. 그런 취미활동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과몰입하는 게 덕질이라면 거기까지도 괜찮을 수 있다. 아내 B씨는 왜 A씨의 덕질이 못마땅할까? B씨 입장에서 A씨의 덕질이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A씨는 걸그룹의 공연이 있는 날이면 지방이든 해외든 가리지 않고 다 직관을 간다고 한다. 심지어 그 유명한 ‘대포 카메라’도 구입했다.

 

 

여기까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지 모르지만 문제는 걸그룹에 쓰는 돈의 10분의 1 정도만 가족한테 쓰고 있다는 점이다.

 

걸그룹 공연을 다 챙기고 굿즈와 대포 카메라까지 살 정도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갔을 것이다. 게다가 해외 스케줄에는 당연히 숙박비와 비행기 값도 포함된다. 무엇보다 팬 사인회에 당첨되기 위해서는 발매한 앨범을 적게는 수 십장, 많게는 백 장 넘게 구매해야 한다. 조공(연예인에게 선물하는 행위)은 별도다. A씨는 원래 가족 사진으로 되어 있던 스마트폰 잠금화면을 걸그룹 사진으로 바꿨다. B씨의 서운함을 슬슬 자극하기 시작하는데 결국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A씨는 원래 아내 생일 선물을 따로 챙기지 않고 외식으로 퉁치는 스타일이었고 한다. 그런데 웬일인지 갑자기 B씨의 생일에 선물로 명품 립스틱을 줬다. B씨가 너무 기뻐했는데 알고 보니 A씨는 걸그룹 멤버에게 비싼 명품 지갑을 선물했다고 한다. 립스틱은 4~5만원대인데, 지갑은 4~50만원대였다.

 

언젠가부터 대놓고 본격적으로 덕질을 시작한다. 일단 퇴근하고 오면 맡은 집안일을 다 하긴 하는데 방에 들어가서 해당 멤버의 그날 영상을 다 찾아본다. 딸에게 아이돌 영업을 해서 나란히 팬이 되기를 설득해서 딸과 같이 덕질을 하고 있다. 팬카페 활동도 열심히 해서 매일 같이 글을 써서 팬들 사이에서 A씨의 닉네임이 유명해졌다. 또 덕질 문화 중에 포토카드가 있다. 앨범을 사면 그룹 멤버 사진이 있는데 좋아하는 외국인 멤버가 아닌 다른 멤버 사진이 있으면 다른 팬들 것과 교환하기 위해 전국 어디든지 찾아다닌다. 집에서는 요리 한 번 안 하면서 아이돌한테는 도시락 서포트를 하기 위해서 새벽부터 도시락을 직접 싸서 팬 사인회에 간다고 한다. 

 

 

중요한 지점은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비싼 선물을 줬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챙겨야 할 가족에게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을 안겨줬다는 점이다. 혼자 살면 대출 받아서 걸그룹에게 비싼 선물을 해주든 말든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다. 물론 절친이 있다면 걱정돼서 KBS joy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사연 신청을 할 수는 있겠지만, 친구가 A씨와 같이 살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냥 자기 맘대로 살게 놔두면 그만이다. 그러나 바로 옆에 아내와 딸이 있지 않은가?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것이다. 본인의 덕질에 빠져 아내의 심기는 ‘아웃 오브 안중’인 상태가 됐다. 

 

사실 A씨를 마냥 욕하기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 요리 외에 다른 집안일을 소홀히 하지는 않고 딸과 함께 걸그룹 일정을 쫓아다니기 때문에 B씨가 집에서 혼자 편하게 있을 때도 종종 있다고 한다. 그러나 B씨는 점점 심각해지는 남편의 덕질이 우려스럽다.

 

이런 비슷한 사례들이 꽤 있다. 과거 KBS 고민 상담 프로그램 <안녕하세요>에는 연예인에 대한 지나친 덕질로 인해 가족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사연들이 종종 소개됐다. 2PM 우영씨에게 빠진 엄마가 고민이라는 고3 아들은, 새벽 6시부터 Heartbeat 소리에 깬 적이 많다고 했다. 엄마가 30개 넘는 팬사이트를 다 가입해서 우영씨의 스케줄을 체크하고, 수 십개씩 앨범을 구입하고, 우영씨 사인회에 챙겨갈 카메라를 두고 왔다고 딸에게 수업 빼고 와달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전 부활 보컬 출신 가수 정동하씨에게 빠진 아내로 인해 너무 힘들다는 남편은, 아내가 자신의 생일을 기억도 못 하면서 정동하씨 생일 때는 가죽 팔찌를 선물했다고 하소연했다. 아내는 남편이 아파서 입원했을 때도 정동하씨의 공연을 보러갔다고 한다. 남편은 이런 아내에 대해 정동하씨를 연예인이 아닌 남자로서 좋아하는 것 같다고 푸념했다. 현재는 해체한 걸그룹 여자친구의 예린씨 광팬 고등학생 남동생이 걱정스러운 누나는, 남동생이 한 달에 3주 넘게 무단 결석을 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물론 팬과 연예인의 바람직한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무엇이든 물어보살>에서 가수 허각씨가 꿈에 나와 고민이라던 40대 남성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허각씨가 부른 ‘너의 뒤에서’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남성은 우연히 본인이 운영하는 카페에 방문한 허각씨에게 사인만 받고 사진 촬영을 요청하지 못 했는데, 그게 한으로 남아 허각씨가 나오는 꿈이 악몽으로 바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날 깜짝 출연한 허각씨와 기념 사진을 찍고, 눈 앞에서 라이브를 감상한 남성은 여한을 풀었다. 여타 민폐형 덕질 사례들과 달리 해당 남성은 본인의 학창시절 향수를 자극한 허각씨에게 과도한 돈을 쓰지 않았다. 자기 감성에 맞게 허각씨의 곡들을 무지 많이 듣고 멀리서 그를 바라보며 응원할 뿐이었다. 사실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이 민폐라고 손가락질 하지 않고 그 자체로 인정해줄 수 있는 팬이 진짜 팬이다.

 

그런데 덕질하는 사람들이 굿즈 같은 것을 구입하며 돈을 쓰는 심리는 뭘까? 큰돈을 선뜻 소비하는데 좀 아깝지는 않을까? 박상희 소장(샤론정신건강연구소)은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내 지인 중에 아미(BTS 팬덤)가 있다. 그분도 BTS를 보기 위해 해외도 나가고 선물도 한다. 그래서 내가 물어봤다. 왜 그러는지? 그분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주는 행위가 나 자신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답했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어떤 빈곳 하나를 채워주는 느낌이라고 한다. 예쁜 꿈 같은 것을 거기에 투사한다고 한다. 어떤 분들은 ‘스타들이 나를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락을 하거나 조공을 한다. 다양한 이유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 같다.

 

다시 돌아와서 B씨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A씨는 과몰입의 1단계 선을 넘었다. 하지만 아직 가족과 본인의 본업을 내팽개칠 정도의 2단계 선을 넘지는 않은 것 같다. 승재현 대외협력실장(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남편이 덕질을 하다가 선을 넘어 자기 삶이 무너지는 단계까지 가게 되면 그때부터 분명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계속 남편의 행동을 잘 주시하고 일정 부분 선이 넘어가면 그때 다시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고 조언했다.

 

 

흔히 술과 담배, 도박 또는 마약에 빠지지 않은 것이 어디냐? 이런 식으로 말하곤 하는데 그 대상이 무엇이든 과몰입과 중독은 위험하다. 덕질 자체는 건전한 취미활동이 될 수 있고 삶의 활력을 줄 수 있다. 덕질을 하더라도 자신의 일상 루틴을 침범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하는 게 좋다. 무엇보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우선이다. 내가 동경하는 연예인은 분명 그 다음이다. 연예인이 가족보다 우선인 삶을 살고 싶다면 경제적 독립을 이룬 뒤에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아야 한다. 자기 주변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주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정동하씨는 본인에게 빠진 팬에게 아래와 같이 말했다.

 

정말 내 음악 때문에 힘을 얻고 그랬다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오히려 내가 더 힐링이 되고 힘이 될 때가 많다. 근데 지금은 반대로 본인 스스로도 가족들과의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잃고 있고 남편도 역시 힘들어하고 있고, 아이들도 힘들어하고 있어서 안타깝다. 사실 혼자 무거운 마음을 안고 (내 콘서트에) 오는 것보다 1년에 한 번, 2년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가족들과 함께 웃는 얼굴로 올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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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욱

안녕하세요.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입니다. 권력을 바라보는 냉철함과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겠습니다. 더불어 일상 속 불편함을 탐구하는 자세도 놓지치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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