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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탕’ 좋아하는 사람들 안 죽으려면 ‘열 실신’ 꼭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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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지난 2월말 유튜브 채널 <그리구라>를 보다가 번뜩이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인 김구라씨와 그의 아들 김동현씨가 충북 충주 수안보면으로 가서 ‘수안보 온천’을 즐기는 내용이었는데 구라씨가 계속해서 온천 찬양을 하며 즐기는 모습이 조금 우려스러웠다. 두 사람은 아래와 같이 대화를 나눴다.

 

 

구라: 사실 노천탕이 위에는 차갑고 아래는 따듯하고 그래서 이렇게 식히다가 또 다시 입수하는 것이다. 여기 있으면 정말 시간 가는줄 모르고 진짜 힐링돼. 원래 온천으로 허가를 받으려면 최소 45도 이상에서 60도 사이여야 한다. 늘어지지 한숨 자.

 

동현: (오늘 날씨가) 영하 10도가 넘는데 근데 지금 덥다. 옛날에는 2~3분만 있으면 나가고 싶었는데 이젠 계속 있고 싶네.

 

구라: 그러면 게임하자. 밖에 앉아서 누가 오래 버티나. 다시 탕으로 들어가면서 마무리하면 되지.

 

동현: (실제로 노천탕 밖으로 나와 앉아 있다가 1분도 안 되어 다시 입수하면서) 원래 10초도 못 버틸 날씨인데.

 

구라: 노천탕 아니면 어떻게 버텨. 사실 도심 속 노천탕은 옆 빌딩에서 볼까봐 걱정을 하는데 근데 여긴 그런 게 없다. (밖에 쌓여 있는 눈을 퍼서 팔에 묻히면서) 원래 이렇게 해. 이게 시원함이 극대화되지. (아들도 아빠를 따라 다리에 눈을 묻히는데 기분이 노곤해지면서) 눈이 풀려 자동으로.

 

일단 구라씨가 말한 정보 하나만 정정하면 온천법에 따르면 온천의 기준은 “지하로부터 솟아나는 섭씨 25도 이상의 온수”이다. 일단 수온이 25도를 넘어야 하고 특정 성분(질산성질소/테트라클로로에틸렌/트리클로로에틸렌)이 기준치 이하로 검출되어 목욕하거나 음용해도 건강에 이상을 주지 않는 수질이어야 허가를 받을 수 있다. 한국에 있는 온천들 중 거의 대부분은 25도를 조금 넘기는 미온수에 불과하다. 그래서 온천업자들은 온천수를 재가열해서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있는데 일부 고온 온천들(부곡온천/동래온천/수안보온천)을 제외하면 전부 인위적으로 가공할 수밖에 없다. 덕구온천(42도)만 재가열하지 않고도 고온을 낼 수 있다.

 

구라씨가 찬양한 것처럼 뜨끈한 온천수에 하반신을 담그면서 상반신은 차가운 곳에 둘 수 있는 노천탕의 경험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노천탕 매니아들도 많다.

 

 

그러나 노천탕은 위험할 수 있다. 조심해야 한다. 올해 설 연휴 기간 일본 훗카이도로 패키지 여행을 떠난 70대 할아버지 이모씨가 노천탕에서 목숨을 잃은 바 있었는데 비슷한 시기 똑같은 문제로 숨을 거둔 노인이 2명 더 있다. 당시 크게 이슈화되진 않았는데 ‘히트 쇼크’라는 용어가 언론 지면에 등장했다. 차가운 곳에서 뜨끈한 곳으로 이동할 때 혈압이 급격히 낮아져서 위험할 수 있다는 건데 사실 의학용어는 아니다. 의학적으로는 ‘열 실신’이라고 표현한다. 일본에서는 온천 문화가 한국보다 훨씬 발전해 있기 때문에 열 실신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연간 2만여명에 이르고 있어 이미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지 오래다. 교통사고 사망자 규모를 뛰어넘을 정도인데 일반적으로 일본은 주택 내부 온도가 한국에 비해 낮은 편이다. 건축물 단열 성능이나 바닥재 등으로 인해 난방력에서 상대적으로 열세한데 집에 있는 욕실(화장실)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런 환경을 뜨거운 수온으로 떼우려다 보니 열 실신 사고가 자주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인들의 집은 상당수 WHO가 권고하는 동절기 적정 실내 온도 18도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응급의학 전문의 허재홍 과장(제천서울병원 응급의학과)은 온천욕을 하다 열 실신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갑자기 주변 환경이 바뀌어서 체온이 올라가면 땀을 내서 체온을 조절하는데 온탕은 땀을 내도 기화열이나 이런 게 없기 때문에 체온을 조절하기 힘들다”며 “혈압이 떨어져서 실신할 수도 있고 어지럽고 기절하는 것은 전부 뇌로 가는 산소량이 떨어져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결국 혈액 순환이 잘 안 된다는 뜻이다. 혈압이 떨어진다(저혈압 상태)는 말은 머리로 가는 피를 보내주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갑자기 온도 변화에 노출되는 것이나 온탕에 좀 오래 비교적 있는 걸 주의해야 한다.

 

피를 뇌에 원활하게 공급하지 못 하는 상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노천탕이 위험한 것이다. 구라씨는 바깥 기온 영하 10도의 한파 속에서 급격한 체온 변화를 “시원하다”면서 되려 즐겼다. 허나 이렇게 무심코 노천욕을 즐기는 습관을 반복하다간 열 실신으로 사망하거나 중태에 빠질 수도 있다. 저혈압이 있는 사람이나 고령층, 기타 기저 질환자만 조심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보통 마른 체형을 가진 사람들은 오래 앉아있다 일어났을 때 순간적으로 어지러움을 느끼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법 한데 이런 게 대표적인 저혈압 증상이다. 열 실신은 급격한 저혈압으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극단적인 현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방심하면 누구나 당할 수 있다.

 

 

접촉 빈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노천탕 외에도 도심 속 대중 목욕탕 즉 사우나에도 열 실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노천탕은 온도차가 확연히 느껴져서 어느정도 주의를 하게 되지만 사우나 안에서 우리가 자주 하는 행동들이 자칫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이를테면 △사우나 안 찜질방에서 장시간 머물러서 지나치게 땀을 많이 배출하거나 △냉온탕을 빠르게 들어갔다 나오는 행위 등이 은근히 위협적이다. 고령일수록 절대적으로 조심해야 하는데 사실 이런 행위들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방심하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60도 이상의 찜질방에 들어갈 때는 몸 상태를 살피고 5분 정도만 머무르는 게 좋다. 냉온탕과 열탕을 급히 옮겨 입수하는 습관을 버리고 입수 전 탕 안의 물을 몸에 적시면서 체온이 급변하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노천탕도 그렇고, 냉온탕 오가는 것도 그렇고, 찜질도 그렇고 전부 온도차에서 오는 쾌감을 느끼려고 그러는 것일텐데 이것만 기억하자. 과유불급. 조심하면서 즐기자.

 

오형규 원장(오율 의원 본점)도 “상부는 차고 하부는 따듯하기 때문에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장점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서 노천탕의 효과를 인정했다. 다만 안전하게 사우나와 온천욕을 즐기기 위한 몇 가지 팁을 당부했다.

 

①순차적으로 탕 온도를 높여가기

②4분 이상 고온 목욕을 자제하기

③고령층은 혼자 노천탕이나 사우나에 가지 말고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가기

④입수 전 가벼운 스트레칭이나 기지개 켜기

⑤온천에서 나올 때는 빠르게 물기를 닦고 미리 준비해놓은 가운 등을 걸치기

⑥음주 후 입욕 절대 금물

⑦고령층이나 심혈관 질환자들은 노천탕에 방문하기 전에 의사와 상담하기

 

 

③의 중요성에 대해 허 과장은 “열 실신이 일어나더라도 대부분 옆에서 도와주면 정상적으로 회복하는 경우가 많다”며 “혼자 방치되면 탕 안이니까 익수가 되는데 익수는 아주 위험하다. 물이 한 10초만 기도 속으로 들어가도 회복이 아주 어렵다”고 환기했다.

 

그리고 주변 사람이 열 실신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면 바로 119에 신고하고 심폐소생술을 실시해야 한다.

 

오 원장은 “목욕 도중 쓰러진 저혈압 상태가 되면 환자를 완전히 눕힌 상태에서 다리를 머리보다 높게 둬서 피가 뇌로 흐르도록 해줘야 한다”며 “심박수가 떨어지거나 호흡이 없는 것 같을 때는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면서 구조대를 기다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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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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